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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아흔아홉 굽이 큰 고개,대관령 옛길
국가명승 제 74호 지정(2010.11월 15일)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관련 지명이 史書에 기록된 곳으로, 대관령 옛길은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역로이자 교통로로서, 영동지역민들에게는 관문이자 강릉의 진산인 곳이다.
대관령 옛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이래 주요 교통로의 역할뿐 아니라 이 길을 이용한 수많은
민중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며, 또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길로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대관령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주변 계곡과
옛길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울고 넘는 고개, 대관령 옛길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사서에 관련된 지명이 기록된 곳으로, 영동사람들에게는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한 고갯길이다. 대관령 옛길은 고려시대 이래 주요 교통로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이 길을 이용한 수많은 민중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대관령의 명칭에 관한 유래로는 지역에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대관령은
고개가 워낙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통과하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대관령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관령을 넘는 것은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일도 아니지만 옛날에는 매우 힘든
고행길이어서 그야말로 울고 넘는 고개로 이름난 길이었다. 대관령은 ‘고개가 하도 높고
하늘이 낮아서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는 말이 전해지는 큰 고개다.
대관령은 신라시대에는 대령大嶺, 고려시대에는 대현大峴, 굴령堀嶺이라 했으며,
조선시대 『태종실록』에는 대령산大嶺山이라 하고 있다.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대관령이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이 문헌에는
“대관령은 강릉부 서쪽 45리에 있으며, 이 주州의 진산이다. 여진女眞 지역인 장백산에서
산맥이 구불구불 비틀비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동해의 가장자리를 차지한 것이
몇 곳인지 모르나, 이 영嶺이 가장 높다. 산허리에 옆으로 뻗은 길이 아흔 아홉 굽이인데,
서쪽으로 서울과 통하는 큰 길이 있다. 부의 치소에서 50리 거리이며 대령이라 부르기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관령 옛길은 「해동지도」,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 여러 고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대관령은 강릉의 진산이기도 한 곳이다. 강릉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국사성황당이 위치한 곳으로서, 대관령 옛길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길이기도 하다. 대관령은 영산靈山, 신산神山으로 많은 전설과 민속이
전하고 있다. 신령스러운 장소인 대관령에서는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산신제’와
‘국사성황제’가 열린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을 산신으로, 강릉출신으로 신라 말 고려 초의
고승인 범일을 국사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다.
대관령 옛길은 겨우 한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조선 중종 때 강원도관찰사인
고형산高荊山이 비좁고 험한 길을 넓게 닦았다고 한다. 길이 넓혀졌기 때문에 한양으로
가는 길은 매우 편해졌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에 상륙하여 한양으로
진군했는데, 조정에서는 대관령 길이 넓혀지는 바람에 한양이 조기에 함락되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리하여 인조는 대로하였으며, 죽은 고형산은 묘가 파헤쳐져 부관참시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옛길, 느림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다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고갯마루의 정상은 해발고도 832m이며, 동쪽 사면으로는 남대천이 발원된다.
도보로 고개를 넘던 시절에 이용되던 대관령 옛길은 성산면 어흘리로 들어가면 계곡으로
형성된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원울이재를 지나 계속된다. 원울이재는
아래제맹이(하제민원)와 웃제맹이(상제민원) 사이에 있는 고개다. 원울이재는
강릉으로 부임한 고을 원님이 두 번 울었다고 하는 고개다. 첫 번째는 강릉으로 부임하는
길에 한양에서 머나먼 길을 지나 험한 고갯길을 내려 온 원님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두 번째는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원님이 강릉의 후한 인정에 감동해서
다시 울고 넘었다는 전설을 가진 고개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된 대관령 옛길은 옛날에 가마골로 불리던 어흘리
마을의 주택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상류로 계속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나란히 우측으로 난 옛길을 약 30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통나무로
벽체를 하고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주막집에 다다른다. 예전에 주막이 있었던 터에
재현된 ‘ㄱ’자형의 주막집은 흙 마당이 친근한 느낌을 준다. 마당 한 옆으로 놓인
물레방아와 자연석으로 만든 수조는 매우 정겹다. 그 옛날의 주막집에서는 허기진
길손들이 주린 배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주막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굽은 산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신사임당의
‘사친시’가 쓰인 안내판이 위치한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다시 가파른 흙길을 따라 한 참을 오르면 반정半程에 다다르게 된다.
강릉 사람들은 이 반정을 반쟁이라고 한다. 고갯길의 절반 정도에 위치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이다. 반정은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이용되었던 영동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옛길은 고속도로를 가로 질러 계속된다. 이곳에서부터는
더욱 지형이 가파르기 때문에 옛길은 갈지자 형태로 크게 굽이져 오르며 쉼터를 지나
계속 오르면 국사성황당까지 연결된다. 현재 백두대간에는 여러 개소의 옛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현재 명승으로 지정된 옛길은 6개소에 불과하다. 명승으로 지정된
옛길 중에서도 대관령 옛길은 옛길을 대표할 만한 가장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통 옛길이라 할 수 있다.
옛길은 현대의 문명세계를 잠시 잊게 하는 장소다. 옛길을 걷는 것은 지나간 역사 속
느림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옛길은 점점 빨라져만 가는, 속도에 함몰되어 버린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유의 공간이다. 옛길을 걸을 때는 잠시 동안이라도 수도승이나
구도자가 되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옛날 보부상들이 봇짐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던 흙길,
과거 길에 오른 선비가 청운의 꿈을 안고 오르던 돌 뿌리 가득한 옛길을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 보는 것은 문명의 수레바퀴에 얽히고설켜 있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문화재청 인용)
※ 대관령 옛길 코스 : 대관령 하행 휴게소~풍해조림지~국사 성황당~반정~옛주막터~우주선 화장실~
어흘리~바우길 게스트하우스, 14.6km,6시간 소요
※ 실제로 걸은 대관령 옛길코스 : 신사임당 사천시비~반정~쉼터~옛주막터~우주선화장실~징검다리~
대관령박물관까지,
약6.5km,4시간(점심식사및 대관령박물관 관람시간 포함)
※작년 선자령 트레킹(2013. )할때
대관령 하행휴게소~풍해조림지~국사 성황당을 거쳤기에 이번엔 이쪽 코스는 제외한듯...
사전예고된 일정을 당일 단축하였다
신사임당 사천시비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 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버리네
신사임당 시비에서
도로를 따라
약 200m 가량
걸어서 내려가면....
대관령 옛길(반정)이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대관령박물관까지이다
대관령옛길 트레킹이라 하면 이곳 반정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를 주로 이용한다
영동과 영서를 관통하는 관문,영동고속도로^^
이제 대관령옛길은
역사속으로 남아버렸다
옛 사람들이 걸어다녔던 이 길을
오늘 우리가 걷는다하니
뭉클해진다
이곳에 부임하여 오고가는 관리들도
한양가던 선비들도
생필품을 팔고 나르던 보따리장수도
군사물자 싣고다닌 수레도
한양올라가며 눈물짓던 신사임당도
이 길을 거쳐간
수많은 시인 묵객들도
...........
모두가 걸었던 이 길
역사속의 그 길을
오늘 걸어가보기로 한다
11월초,
낙엽더미 수북히 쌓인 길
지금은
길을 넓혀 놓았지만
예전엔 한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았다고 한다
선행을 베풀었던 기관 이병화의 유혜불망비
빽빽한 숲길을 걷노라니
씽씽 달리는 소음이 들린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난다
옛길과 현대 길이
공존한다
길을 나선지
30여분,
신사임당 시비앞에서 인증샷......
여위어진 나무줄기사이로
짐승처럼 웅크린
산 능선
담장처럼 둘러처져
아득히 높아만 보여
이곳이
첩첩산중임을 알린다
쉼터에서 점심식사 겸 휴식
양지바른 곳이라
따뜻하였다
길은
주막터로 ~~~
좁고 불편한 길을
넓혀놓았더니
병자호란때 적군이 이 길로 한양까지 쳐들어왔다 하여
인조의 노여움을 샀다는 것이다
훗날,
이전저런 역사적인 스캔들로 인해
국가명승지로 지정되었으니
참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대관령 고갯길이다
대관령 아흔아홉구비라 했던가
옛길도
돌고 돌아
몇 구비를 넘어 섰는지....
혼자 넘어가기는
첩첩산중이라 무서움이 앞서고
간이휴게소인 주막집마저 없었다면
이 긴 고갯길을
옛 사람들은
우찌 넘었을꼬!
비가오나
눈이오나
넘어야할 길
걸어야 할 길
길은 말이 없고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걷는다
느린 길의 미학^^
반대편(대관령 박물관)에서 넘어오면
다소 오르막이 많아
조금 힘이 든다
옛 주막터 이정표
옛주막터
가까이에 닿으니
계곡이 흐르고....
노랗게 물든 잎갈나무^^
터줏대감처럼
길위 서서
오가는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옛주막터^^
대관령 박물관 쪽으로~~~
우주선 화장실^^
그냥 갈수 없어
볼일을 보니
내부도 깨끗한 화장실이다
징검다리 건너
대관령 박물관쪽으로~~
(이쪽 길은 계곡의 숲길이 이어져있어 포장도로쪽으로 내려가는것보다 운취가 있다)
대관령 박물관^^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양양 휴휴암^^
하조대 등대^^
하조대^^
소나무 보호수^^
수령 약 200년
오늘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하조대를
보고
다시
귀가에 오른다
첫댓글 솔바람님, 참 존경스럽습니다. 자유로운 영혼 속에 알찬 그대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앎이, 사람에게 주는 따스함이, 부디 이 생의 나들이 동기로서 동행하여 오래도록 힐링하도록 해요.
여행을 다녀오고 며칠지나면 잊어버리지만
기록은 오래 남습니다
댓글에 더욱 분발하겠슴다
코스좋았네요..1박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