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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포럼 Tamjin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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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포럼 오피니언 & 논단 정약전과 문순득의 만남
극선 추천 0 조회 235 11.05.09 08:18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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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10 20:32

    첫댓글 표해시말, 자산어보, 경세유표, 운곡선설...
    정약전과 문순득의 만남이 단초였다는 이야기 ... 처음 배웁니다.

  • 11.05.13 12:29

    ㅡ개인적인 일 땜에 오늘에서야 들어왓습니다. ㅡ기왕에 정약용 형제분 이야기가 나온김에 제기해보는 의문점? ㅡ정약용 선생은 유배기간 초반기에 고생한 것 말고는 상당히 느슨하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유배생활을 했는데... ㅡ왜 흑산도 동생분을 그 기간 동안에 단 한번도 안 만났을까요? ㅡ심부름꾼을 통해 서신과 소식을 자주 주고받은만큼 ㅡ나중에는 기회를 보아 그 중간에서라도 한번쯤 접선(^^ ^^)해 볼만 했는데요 ㅡ남양주 마현이 고향인 다산 선생은 <한강길>을 자주 배로 오고다닌 <뱃사람>이기도 했습니다요, ㅡ또한 <물길, 조수론>에 관한 글도 쓰신 분이구요

  • 작성자 11.05.14 04:50

    예양강님 말처럼 정약용은 상대적으로 느슨한것 같으나 형인 정약전이 더 큰 죄인으로 감시와 탄압이 심했던것같습니다. 절해고도인 흑산도에 유배되어 중간인 우이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데 다시 흑산도로 들어가게 하는 조선정부의 모습에서 확인이 되며 정약용은 관산도 여러번 왕래하였다합니다. 강진 오기전 2년전에 졸한 존재공 생가방문, 그리고 그옆의 마을학다리에 자자일촌한 것으로 봐서도.......

  • 11.05.18 08:40

    ㅡ며칠간 일 때문에 다시 오늘에서야 봅니다. ㅡ다산선생이 관산에 오셧던 것은 사실이지요ㅡ<영호정 팔경>, 천관산을 노래한 <충식송>을 보면 ㅡ 그런데 존재선생의 생가 방문과 학다리 마을에 자자일촌햇다는 사연은 어떻게 되는지요? ㅡ몰라서 질문드립니다. ㅡ압해(나주)정씨 다산선생은 압해에서 상계분파된 장흥 지방의 영광정씨와도 꽤 돈독했던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1.05.18 10:25

    관산죽교3구를 학다리라고 합니다. 물론 관산읍내에 있는 마을이지요. 이마을이 다산선생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전마을이 정씨입니다. 김씨가 딱 한집 있는데 부인이 정씨입니다. 정약용선생이 나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자손을둬 나주정씨로 본을 쓰고 있는데 손이 없어 영광정씨에서 양자를 가서 원래 한손이랍니다.지금은 압해정씨로 통합하는 작업중이랍니다. 현 민노당 전남도의원 정우태의원이 이마을 출신입니다.

  • 11.05.19 14:33

    ㅡ기왕에 한번 더 ㅡ 아마 짐작컨대, ㅡ 정약용 선생의 후손들이 아니라 큰집격인 압해(나주) 정씨에서 상계분파된, 장흥지방의 정씨 일문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거기에 가서 <영호정 팔경 ㅡ위장흥정씨>을 남겼더랍니다. 다산은 장흥의 영광 정씨, 장흥의 정(丁)씨들도 크게 보아 같은 정씨 집안으로 보았으며 ㅡㅡ장흥의 영광 정씨들 역시 강진에 귀양온 다산선생에게 쌀을 보내주엇다는 전설(?)이 전해진다합니다.
    ㅡ다산의 다신계 18제자 중에는 <영광 정씨 정수칠>이라는 분도 있었구요. ...정우태 도의원과 고인이 되신 정옥태 교수는 같은 집안인 것 같습니다.

  • 11.05.18 22:41

    ㅡ다산 선생의 <영호정 팔경>은 인터넷 검색도 되구요, ㅡ장흥 향토지, 신문 등에도 <장흥지방의 여러 팔경>과 더불어 이미 소개되었답니다.

  • 11.05.18 22:51




    <영호정 팔경>. ㅡ장흥정씨를 위해 짓다[映湖亭八景 爲長興丁氏作]


    험준한 뿔바위가 하늘 높이 줄을 섰고 / 嵯峨石角列天庭
    비 지나간 낭떠러지 씻겨 더 푸르다네 / 雨過雙厓洗更靑
    해질 무렵 한 줄기 가로놓인 푸른 자취 / 薄晩翠痕橫一抹
    선녀가 구슬봉에 숨어 살아 그렇는가 / 卻疑仙女隱瑤峯

    ㅡ관악(冠岳)의 개인 이내

    대숲에 밤이 짙어 등잔불을 마주하면 / 篁林瞑色對孤檠
    교교한 밤을 쟁글쟁글 작은 시내가 울다가 / 靜夜玎玲小澗鳴
    갑자기 하얀 빛이 실내를 비치는데 / 忽見白毫光射室
    갈고리 같은 조각달이 동영에 떠서라네 / 一鉤殘月上東榮

    ㅡ상잠(觴岑)의 새벽달

    앞 시내에 물이 잦고 흙모

  • 작성자 11.05.18 23:29

    그곳 정씨들 얘기로는 자기네들이 정약용선생의 직계후손이라 주장합니다. 제친구가 몇명 있는데 은행에 근무하다 은퇴하여 그곳에 가잇는 친구가 있습니다. 휴가 때면 같이 산행도 하지요, 중앙대에서 법대 학장을 하던 정옥태교수는 저의 2년 선배가 되시죠, 이분들은 지금 영광,나주,압해를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1.05.20 09:09

    예양강님 정확하게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 원래 압해정씨가 목포앞 압해도에 귀양와서 본을 압해로 썼으나 후손들이 영광정씨에서 나주정씨가 손이 없어 양자를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압해정씨로 합본을 하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굳이 세분하자면 관산 학다리 정씨는 영광이고 다산은 나주라고 합니다.

  • 11.05.20 14:53

    ㅡ<극성 ^^>스런 질문에 <극선 ^^>하게 답주시어 감싸합니다 ^^^^ ㅡ전 아직 죽교리 영호정에 못 가보았습니다.
    ㅡ다산 선생이 그토록 멸시하다시피 싫어했던, 촌학구 시골선비들, 향원들,
    다산 선생 말마따나 상투적 문구의 한시 몇수 정도로 모든 학문을 다 이룬양 음풍농월로 폼잡던 그런 건달풍 시골양반보다는
    <흑산도 문순득>이 훨 존경 받을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ㅡ<장흥의 문순득>이 되시길 기원함니다.

  • 작성자 11.05.21 08:32

    다산이 나주,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해서 제자들중에는 이강회를 비롯한 소위 호남학파들이 많이 있었던 지역적 한계와 호남실학의 대표적 인물인 존재에 대한 다산의 존경심과 정경달에 대한 다산의 존경심도 대단하여 자기 제자들에게 반곡의 저서를 필독서로 삼도록 하였다는 정황과 또한 외가가 해남윤씨라는 인척관계등으로 호남사람들을 좋아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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