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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산행 장동고개-금병산
2주 만에 다시 장동고개에 섰다. 어제는 수시로 몰아친 눈보라에 금년 들어 첫 황사까지 몰려들어 하늘이 희뿌여며 몹시 침침했는데 밤사이 안녕이란 말처럼 오늘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활짝 갠 하늘은 멀리까지 조망이 되고 잠잠한 날씨는 다소 온도가 떨어졌어도 포근함을 준다. 절개된 도로를 건너 이어지는 입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두 장승이 나란히 서서 다정히 맞아준다. 산길에는 어제 내린 눈이 깔려있다. 오늘 산행은 어설픈 눈밭산행이 될 성싶다. 눈 덮인 산은 금세 음영이 드러나기에 양지와 음지가 확연하게 구별되며 앞 사람 발자국까지 찍혀있다. 시원하면서도 산뜻한 공기가 가슴을 파고드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난번 계족산 봉황정 방향을 휘돌러보고 내딛는 발길이 가뿐하다. 불그스름한 참나무 낙엽과 흰 눈이 뒤엉키니 뜬금없이 백설기도 같고 버무리떡이 스쳐 지나기도 한다. 작은 산새들도 나와서 아침을 노래하며 즐기고 있다.
제1탄약창 진지가 앞을 가로 막는다. 본래는 미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저 아래로는 그들을 상대로 즐비한 술집과 홍등가로 불야성에 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도 찾아보기 힘들고 술집도 절로 없어져서 그냥 조용한 산촌을 이루고 있을 뿐 옛 영화(?)는 사라져 고즈넉하다. 망루의 초소에는 24시간 CC TV 감시라는 표찰만 여기저기 매달려 있고 무인감시를 하는 곳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2중 철책을 둘러 중간으로 가끔 보초들이 순찰을 도는지 그곳은 제설작업을 하여 누런 흙길을 내보인다. 왼쪽으로 접어 오른쪽 울타리를 타고 가파른 길을 지나가야 한다. 철조망 경계가 험악한데다 눈까지 있어 길 없는 길을 가려니 만만치 않다. 지루하게 30분쯤은 지나서 마지막 꺾이는 지점 망루 쪽에 다다르니 우리 때문에 5분대기조가 출동하였다며 초병이 불러 세운다. 조금 후 완전군장을 한 10여명 군인들이 소총에 무전기까지 대동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CC TV에 외부인이 접근하여 사진 촬영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조용한 주말 아침 대기조에게 출동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영문을 몰랐던 우리는 찍었던 사진 몇 컷을 자진해서 지워버렸다. 찍어봐야 고작 울타리를 배경으로 한 설경일 텐데 엄청난 군사기밀이라도 탐지한 것이 되었다.
어쨌거나 본의 아닌 결과로 미안한 마음이다. 처음의 초병에게 물어보니 이제 전역을 2개월 남짓 남겨두었다고 한다. 사실 그들도 최전방에 비하면 근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터에 등산객들로 이런 일들이 가끔 생겨나나 보다. 잠시 발이 묶여 쉼터가 된 셈이다. 저 아래로 철도정비창과 신탄진인삼담배제조창 너른 부지가 드러난다. 조금 지나니 정자에 잘 다듬어진 산책로까지 마련되어 많은 시민들이 오간다. 길목에 누군가 정성들여 쌓은 여러 개의 돌탑이 명소를 만들어 놓았다. 이제 대전시민의 젖줄인 거대한 정수장이니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음지에 쌓인 눈은 짓밟아서 미끌미끌 빙판이 되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잠시 한눈팔다가는 꽝 엉덩방아로 끝나지 않을 성싶다. 길을 묻는 나그네에게 지긋한 연세에도 친절하게 일러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그래도 안쓰러운지 목적지 금강까지 함께하는 자상함을 보여준다.
장동고개에서 금강까지 7km 지점에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오랜 가뭄 탓에 강은 거의 메말라 하천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누군가 낚시에 고기잡이를 하였는지 아님 단순히 술자리로 쓰려고 만들었는지 테이블에 파라솔을 꽂고 비닐을 뒤덮어 그럴듯한 휴식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강이라고 하지만 바람기가 거의 없으니까 생각처럼 춥기보다는 오히려 따스한 봄을 느끼게 하는 날씨다. 임자 없는 빈집에 들어가 탁자에 빙 둘러앉아 간식시간이지만 사실상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낭에서 각자가 준비한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으니 그런대로 푸짐한 뷔페식단이 되었다. 이제 강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한 때 수영장으로 알려졌던 곳에는 오리가 잠수를 즐긴다. 곧 머나 먼 길을 떠나야 할 테니 그들은 어쩌면 가는 겨울이 아쉽고 오는 봄이 야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텃새처럼 그냥 눌러앉아 사는 녀석들도 많아진 것 같다. 비둘기도 한 몫을 거든다.
강 건너 절벽 위가 장어집들이다. 물줄기를 바라보니 과연 금강의 장어가 제대로 한 마리나 올라가려나 싶다. 국도 신탄대교 다리 밑을 지나고 경부선 철교를 지나며 고속도로 밑을 지나 한국타이어공장으로 가는 길이 좀은 으슥한 탓인지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물이 많으면 지나가기 힘들 텐데 계속 강을 타고 내려간다. 강 너머 현도 쪽은 강변도로를 닦고 있는 모양이다. 포르롱포롱 새들이 난다. ‘할미새’가 구름판을 박차듯 날갯짓한다. 모래섬에 버드나무가 가득 들어찼다. 새들이 둥지를 트는 낙원이 되었으면 싶다. 좀은 푸른 기운이 감돈다. 마침내 금강과 갑천의 합수지점에 다다른다. 대전천과 유등천이 만나 유등천이 되고 유등천과 갑천이 만나 갑천이 되고 갑천과 금강이 만나 이제 아예 금강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물결은 새여울을 만들었으니 이는 곧 신탄진을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룬 문평동 뜰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대전의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정맥의 혈관을 타고 여기서 종적을 감춰버린다. 그런 탓인지 대청호 쪽에서 흘러온 물이 맑다면 갑천에서 흘러온 물은 아주 탁하기 그지없다. 간장과도 같고 콜라와도 같다. 여과하고 정화했겠지만 빛깔만은 어쩔 수 없었던가. 보기에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걸쭉한 탓에 웃자랐던 풀들은 켜켜이 그대로 누워 감촉이 푹신푹신하다. 저만큼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물을 보면 설마 먹기 위하여 잡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즐기기 위하여 잡는 것이지 싶다. 젊은 남녀가 한가로이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는데 시샘하듯 까투리 한 마리가 화들짝 난다. 갑천을 따라 오른다. 비닐하우스들이 농한기로 농부의 손길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헤어져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대파줄기가 하얗게 삭아버렸지 싶은데 속에서 파란 속잎이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듯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갑천의 마지막 교량이랄 불무교를 유유히 넘어간다.
‘불무교’는 결코 짧지 않은 다리다. 다리의 제원을 알아보려고 명찰처럼 달고 있는 동판을 찾았으나 없다. 그 자리가 텅 비어 있다. 혹시 말만 듣던 대로 누군가가 떼어 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순간 씁쓸해진다. 도로는 투자한 가치에 비해 도통 내왕하는 차량이 없어 한산하다. 언덕 너머에 한국석유공사 송유관저유소가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유류차량들이 들락거린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다시 산행을 하게 되는 셈이다. 오봉산에 오른다. 잠시 조망을 한다. 저 너머 타고온 산줄기가 보인다. 갑천이 그림처럼 들어오며 활처럼 휘어 돌아가는 물줄기가 환상적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갑천 바닥을 들여다보면서 온갖 더러움이 극치를 이룬 듯 구역질이 동하였었는데 저토록 아름다움으로 비추다니 겉과 속이 이처럼 다른 것이다. 가보지 않고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쉽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일이 아니지 싶다.
산자락을 내려서니 구룡고개로 구즉에서 대평리로 가는 길인 게다. 이 높은 곳에서 벼농사를 짓는다. 언뜻 물이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증을 더한다. 앞산자락이 눈으로 하얗다. 갑자기 검은 염소들이 우르르 몰려내려 온다. 눈밭에서 뭘 찾아 먹었을까나. 까치들이 신바람 나게 짖어 댄다. 보덕봉으로 향한다. 송강동 뒷산이 된다. 사람들이 정자에 많이 모여 있다. 개도 따라 올라왔다. 우리도 잠시 자리를 잡고 쉬어간다. 이 인근에 대해 안내판이 톡톡히 제몫을 한다. 금고동, 봉산동. 구룡동. 송강동, 관평동, 용산동, 탑립동 등은 법정동으로 크게는 행정동인 구즉동에 속한다. 이제 3km여 용바위를 향하여 돌진이다.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곳곳에 묘들이 잘 가꾸어졌지만 경주김씨 묘역이 다시금 눈에 확 들어온다. 조팝나무인가 파릇파릇 싹을 내밀고 있다. 밤나무 단지를 겹게 올라챈다. 아무래도 겨울 저녁나절은 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오늘의 목표지점이랄 금병산에 다다른다. 연화봉을 지나고 전망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조금 더 갈 것이냐 이쯤에서 마무리냐 하다가 그만 접기로 한다. 이제 내림 길이니 산을 계속 타려면 다시 이 길을 처음부터 헐떡헐떡 올라야 하리라. 그래도 7시간 30분은 짧지 않았다. 오늘 산행은 마치 대전 시내 반 바퀴쯤은 돌았지 싶도록 멀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날씨 하나만큼은 포근한데다 쾌청하여 나무랄 데 없었다. 산 자체는 그다지 험하지 않지만 약간 눈길에 많은 봉우리들을 넘나들었다. 그뿐이랴, 금강을 타고 걸으며 갑천과 금강이 합수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내천 사상으로 민족종교임을 내세우는 수운교(水雲敎)로 하산이다. 경내로 들어서 사찰의 법당격인 도솔천 옆에 넘쳐흐르는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간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듯싶다. 그 위로 석종도 보인다. 잔디밭 광장을 지나고 송림을 빠져나오니 자운대로 군부대지역이다. - 2009. 02. 21. 文房 |
첫댓글 제가 고등학교때 장동 미군부대 초대받아 위문공연을 한적이잇어요.[교회성가대] 작은 마을이 온통 양색시들이 우글거렸어요. 참 신기한 동네였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