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블루스 _ 김학리 개인전
일시 : 2009. 5. 8 ~ 5. 21
장소 : 갤러리 브레송

청계천 블루스
서울시민들의 꿈과 애환이 담긴 청계고가와 그 주변의 삶의 모습은 서울의 발전상을 고스란히 나타내어 주고 있다.
청계천은 원래 이름이 개천(開川)으로 옛 서울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은 원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자연 하천이었다. 아낙네 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고 멱을 감고 아이들에겐 이곳이 놀이터였다. 원래 사람이 사는 곳이 제일 지저분한 곳이 아니었던가 서울로, 서울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주민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생활하수는 자연스럽게 청계천으로 흘러들었으며 심지어는 배설물까지 청계천으로 유입되어 청계천은 점점 그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도심하천으로서 생태적 구실을 하였던 청계천변에서 특히 심각했던 것은 주민들의 위생문제였다. 청계천 주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였고 장마나 집중호우라도 내리면 사람들이 내다버린 쓰레기와 생활 하수가 고스란히 다시 사람들에게 되돌려졌다. 청계천 하수가 다시 주거 밀집지역으로 역류하였던 것이다. 이런 청계천변의 오염 때문에 전염병이 돌면 청계천 주변 및 전 시가를 휩쓸었고 이로 인하여 오염된 청계천에 가까운 곳에 거주 할수록 주민들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다고 한다. 오염된 청계천의 물은 도심 한복판을 흐르면서 경관면이나 위생면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청계천의 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아스팔트로 묻어 버리는 '복개공사'였다.

청계천 복개공사는 광교에서 동대문 오간수다리(평화상가측)까지 길이 2,358.5m, 폭 16∼54m의 청계천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개하였다. 청계천에 대한 복구공사가 완료된 이후 새로 복개가 된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가가 밀집하게 되었고, 상인들의 물품차량과 도시를 관통하기위한 차량들로 교통량이 폭주하면서 도심에서 외곽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도로의 신설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 문제로 인하여 새로이 청계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63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계천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청계 고가 도로는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여 그 주변으로 엄청난 물류 이동과 그에 따른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박정희 정권은 청계천변의 판자촌과 종로 3, 4가의 대규모의 사창가를 미아리와 청량리로 분산시켜 몰아내었다. 그리고, 판자촌은 서울 외곽지역 국유지에 8평씩을 나누어주고 무허가 건물을 지어 살도록 하여 미리 이주시키고, 아파트 건축을 강행하였다.

새로운 삶의 터전 - 황학동 벼룩시장
황학동 벼룩시장청계천 복개 공사가 완료 되고나서 주민들은 고가 주변으로 다시 생활의 터전을 만들기 시작하여 지금 전국의 최대 물류 시장으로 발전 하였다. 바로 청계천 고가도로는 삼일빌딩과 함께 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울개발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된 현재의 청계고가도로는 너무 노후되었고 주변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아 이 일대를 슬럼화하는 문제를 낳았다. 신설동 방면으로 동대문을 쇼핑 상가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황학동 벼룩시장의 초입이 보인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일명 도깨비시장 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6.25.전쟁을 겪은지 5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한국민들의 손으로. 전쟁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50년 만에 세계22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바로 물을 중심으로 한국의 개발이 이루어 졌다. 서울엔 또 다른 강이 흐르고 있고 조그만 강물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지금, 2005년, 서울 시민들은 이제 청계천의 기적이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