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모든 일을 마치고...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는 광민이와 동영이.
아직까지...집에 돌아가지 않은 은형이와 보람이는...
아니. 오늘 새롭게 탄생한 멋진 커플 한 쌍은...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열심히 사랑을 속삭이는 중이고...
난 입고 왔던 옷을 들고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와 버렸다.
우리 그냥 사귀까?
......
중학교 때. 나한테 했던 말이랑 똑같잖아...
한 글자도 안 틀리고...정말 똑같잖아...^-^...
잠깐!!!!!!
지금 뭐라구 하는 거니 이강순!!!
먼저 바람피운 건 너잖아...왜 이런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데!!.
정말 뻔뻔하다....자긴 깨진 바로 그날 승현이한테 가놓고.
그래. 나한텐 승현이다.!
박승현!! 박승현!! 아자!!!!
-_-
내 자신에게 단단히 기합을 불어넣고...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왼팔에 건 채..씩씩하게 까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이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어...오늘 일 너무 잘했다...내일 여덟시까진 거 알지..?"
"네!"
"그래. 내일 보자. 오늘 너무 수고했어. ^-^"
"네!"
등을 몇 번 두들겨주더니...의자 올리기에 동참하는 사장님.
광민이와 은형인 아예 나라는 존재를 잊은 듯...
이쪽으로 눈빛조차 줄 생각을 않고.
늘 요란한 동영이가 이곳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온다.
"너 지금가면 큰일 당해."
"-_- 큰일 안 당해. 택시타구 들어갈 거야."
"며칠 전에 택시 타서 봉변당한 케이 여고 학생들 얘기 못 들었어?!"
"말 지어내지마. -_-"
"그래. 미안해. 습관이 돼나서.."
"-_-^"
가볍게 인사를 하고...계단 쪽을 향해 몸을 트는데..
누군가 나의 왼팔에 팔짱을 껴버리고...놀란 가슴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환하게 웃는 보람이가 있다.
"데려다줄게...^-^ 그래도 되지?"
"응..^-^.."
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군데군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술 취한 아저씨들의 고함소리...
지금 막 활동을 시작한 야타족의 음악소리. -_-
우린..말없이 택시를 잡기 위해 정류장 쪽으로 올라가는 중이고.
제법 쌀쌀한 탓에..온몸을 웅크리고 호호 입김을 불고 있는데..
"미안해. 강순아."
"응..? 뭐가..?"
"은형이.."
"아..아냐!! 뭐가 미안해!!"
"잘 할게..은형이 아프지 않도록...니가 했던 만큼은 못하겠지만.
정말 잘할 거야.."
"내가 하긴 뭘 했다구.! 아냐...잘 됐어. 미안하고 고마워...
은형이랑 행복하게. 예쁘게...만나...내가 그 동안 못해준 거...니가
많이많이 해줘....미안해. ^-^.."
"^-^..."
예쁘게. 싱긋 웃어 보이는 보람이.
그래. 그 영계나. 오락실에서 본 여자에 비해. 보람이 너라면.
충분히 안심이야.
죄책감 없이...은형이 깨끗이 지울 수 있어...
니가 있다면. 너 같이 착하고 예쁜 아이가 있어준다면.
어느덧. 정류장 앞에 다 와버린 나와 보람이.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은형이와 어떤 관계이든 간에..보람이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친구이다.
"조심히 들어가. 아까 내가 핸드폰번호 입력해줬지? 자주 문자 보내구. ^-^"
"그래...너두 잘 들어가..."
"응...빠빠이에요. ^-^"
"아참...보람아.."
"응..?"
"은형이 자꾸 담배 피더라...걔 금연초만 물다가..요새 들어 자꾸 그래...
담배 못 피게 하구..."
"그래...걱정하지 마...^-^"
"팔자걸음 걸으면. 어른들이 안 좋게 보잖아...그것도 못하게 하고..."
"응!!"
걱정 말라는 듯. 두 손을 휘휘 저어 보이는 보람이...
"아...걔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데. 요즘 같은 계절엔 특히 더해...
감기도 한번 걸리면 심하거든. 병원 가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그래도 꼭 데려가야 돼."
"그래. 걱정말구 얼른 들어가. 나도 다 알아요. ^-^ 엄마 걱정하시겠다."
"응..."
빵빵거리는 택시..
앞문을 열고서 나를 앞좌석에 태우는 보람이.
반쯤 열린 창문사이로...열심히 손을 흔드는 보람이...
"참! 사랑한다는 말 해주는 거 무지 좋아해!!
그 말...1년 동안...해준 적이 없거든...그 말도 자주 해주고...
그리구!! 다혈질인 거 알지!?!? 화나면 무조건 미안하다고 해야 돼!!!!!"
...
이미...저만치 멀어진 보람이에게...
내 작은 목소리가 들릴 턱이 없었다...
아무리 화나도...헤어지잔 말 절대 하면 안되고....
질투심 무지 강하니까...다른 남자랑 말도 하면 안돼...
놀러 다니는 거 굉장히 좋아하는데..내가 매일 귀찮단 핑계로 미루기만
했었거든..
그러니까...보람이 넌 착하니까...
자주자주...놀러 다녀...놀이동산도...바다도...은형이네 고향집도...
듣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택시가 집 앞에 도착 할 때까지...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혼자
되뇌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에게 욕을 댄박 만큼 얻어먹은 뒤..
조용히 방에 들어와 침대 구석에 놓인 은형이와의 추억들을 꺼내보았다.
....
.......
내일은 정말 다 태워버려야지!!
승현일 위해서도...보람일 위해서도...은형일 위해서도...
그리고...날 위해서도......
행복해. 은형아.
보람이니까. 너 정말 이번엔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나 같은 못된 거 깨끗이 잊고. 착한 보람이랑...진심으로 행복해야 해...
그냥...무조건 웃어야 해...
....
........
그 후로. 사흘이란 시간이 감쪽같이 흘렀고...
매일매일 미뤄온 은형이의 상자는..
아직 완전히 태워지지 않은 채 서랍 속에 들어있다..
오늘은 토요일!!!!!!
나는 승현이와의 공포영화를 위해 가볍게 집을 나서는 중!!!
어제 새벽까지 일을 한 덕분에 온 어깨 구석구석 안 결리는 곳이 없구나.
ㅠ_ㅠ
승현이 만나면 안마해 달라구 해야지. 히히.♡
어느새 아주 편한 사이가 된 우리 두 사람!!
난 왼손에 든 핸드백을 마구 휘두르며...눈앞에 슨 노란 택시 안에
낼름 올라탔다.
"피자헛 앞이요!!"
"네에_!"
아저씨의 경쾌한 대답과 함께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창가 쪽에 얼굴을 갖다 붙였다.
어휴. 더워죽겠네 참말로. ㅠ_ㅠ
사흘 동안 변한 게 조금 있다면.
보람이와 많이많이 가까워졌고. 그 만큼 동영이와도 친해져버렸고. -_-
승현이와 꿀밤 맞기도 할 만큼 편한 사이가 되었고.♡
동영일 향한 화진이의 말투에게서 심상치 않은 흔적을 여러 개
발견해버리고. -_-
흐응...암만해도 이상하단 말야...
분명해. 마음이 있는데. 자존심 상해서 말을 못 꺼내는 것이야...
"여기요오...다왔습니다..."
"아..네..!!"
언니가 손수 만들어준 엉성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한 뒤. 가뿐한 발을 뜨거운 땅위에 내려놓았다.
으앗! >_
승현이랑 첨보는 영화다!!
기지개를 쭈욱 펴며 주위를 휘 둘러보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
먼저 표를 끊어놓기 위해 매표소로 향하고...
음...어디 보자...몇 시에 있나...
"언니. 이거 3시 50분부터 시작하는 거죠?"
"네. ^-^"
음. 지금이 30분이니까. 그전에 오겠지?
그래 이 시간껄루 끊자!!
단오한 결심을 내리고..지갑을 뒤적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굉장히 커다란 음성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휙 돌아가 버렸고..
"이야. 너 웬일이야!!! 수원에 웬 볼 일루 오셨어?!"
"넌 여기서 뭐 하는데."
"나 피자먹으러 왔지. 우리 그이랑. 히. ^-^ 근데 진짜 수원엔 웬일이야?"
"드디어 성공했네. 다모임에 사진 올리고 아주 별 쇼를 다 하더니만."
"다 니 덕분이지 뭐냐. 은형이 보구 갈래?"
"됐어. 니 남자친굴 내가 왜 봐. 혜진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나 해라.
그때 니가 뺨때린 것 땜에 충격 큰가 보더라..."
"아...걔...지금 어딨는데?"
"서울에 있지 어딨어. 하여튼 최보람 사악한 건 알아줘야 돼.
지가 다 저질러놓고 애꿎은 애 뺨을 때리냐... 걔네가 알면 나 바루 왕따
먹어. -_- 내가 너한테 사진 넘긴 거 알아봐라...바로 끽이다. 끽."
"히. 소꿉친구 좋다는 게 뭐야. 어. 잠깐만...전화 왔다..."
......
.......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드는 보람이.
난 지금 들려온 모든 소리를 부정하기 위해...두 손으로 귀를 꽈악 틀어
막았고..
저. 남자앤...
까페 닉스에서...승현이랑 나랑 키스하던 거...핸드폰으로 찍던...승현이
친구...최보람...니가...왜 쟤랑.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난 행여 그들의 눈에 띌까...쓰고 있는 모자로 온 얼굴을 가렸고..
뒤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린...
날 한차례 더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 맞다. 너두 그거 보여주까?!"
"뭐...?"
"이개순. 원조했다고 내가 조작한 사진 있잖어. 이거 아무한테두 말하면
안 돼. 너한테 첨 말하는 거야."
"야!! 그것두 니 짓이었냐!!!! 다모임에 원조했다고 올리고 지랄했던 거?!!
승현이가 그것 땜에 얼마나 힘들어했는데!!!"
"말하지 마!!!!!!"
"말 안하지. 내가 병신두 아니구...한번 보자...봐봐..."
"응...키키. >_<"
..
지갑 깊숙한 곳에서...손바닥 크기로 접힌 사진을 한 장 꺼내는 보람이.
그것을 펼쳐서...그의 눈앞에 보이면...
"우와 존나 감쪽이다. 진짜 딱 원조현장 포착이네.
넌 그 머리루 공부를 해라 공부를."
"미쳤냐 공부를 왜 해...야 나 은형이 기달려. 가봐야 돼.!!
연락해! 알았지?!"
"알았다. 안 들키게 조심해. 너 걸리면 나까지 새 된다!"
"그럼. 내가 누구니."
....
....
손을 흔들며..보람이가 저만치 사라지면..영화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승현이의 친구.
.....
......
왜..요즘 들어..이상한 문자며..버디쪽지며..유치한 괴롭힘이 오지
않는지..께름칙하고..궁금했었어..
계속 당하는 내가 불쌍해서..그만 둔건가 생각하고..그냥 잊고 있었어..
근데..그게 아니었네..
이제...원하던 목적을 달성해서...
....괴롭힐 필요가 없어진 거였네...
손에 들려있던 지갑이 아래로 떨어지고...
계단을 따라 마구 구르는 동전들.
매표소 언니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내 손은...무의식적으로...은형이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
.......
최보람. 나...어떻게든 참아 보려구 하는데......
도저히...참아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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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빠오는 숨소리..
이유모를 웃음만 자꾸 터져 나오고..손가락 마디마디는 심하게 떨려오고..
나는 이제야 알게 됐는데 이 모든 게 진정 사랑이란 걸
그대여 제발 가지 말아요♬
제발 나를 떠나가지 말아요♬
I know we must say good-bye♬
we must say good-bye
어느새 바뀌어있는 은형이의 컬러링.
평소 같았음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받았을 텐데..
한참동안 노래만 흘러나오고..바로 음성으로 연결돼버린 핸드폰.
피하고 있다...내 전화를...!!
허탈한 마음에 핸드폰을 닫고...멍하니 바닥을 내려보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인정할 수 없지만..
내가 들은 건...환청이 아니었다.
두 눈에. 그리고 두 귀에 .보람이와...승현이 친구의 얼굴이. 목소리가...
똑똑히 새겨져버렸다.
그리고...
"아 차 밀려 죽는 주 알았네!! 오래 기다렸지!!"
...
찌푸린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난 승현이.
"어...?! 아냐. 방금 왔어!!"
"머리 이상하다."
"..응..??"
"들어가자!!"
"그...그래...-_-"
쓰고 있던 모자를 푸욱 눌러쓰며 뜨거운 햇빛을 피하는 내 남자친구.
나는 혼나간 얼굴을 한 채 그의 뒤를 따랐고..-_-
계단을 올라 영화관 안에 들어설 때쯤.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챈 승현이가.
"밥 굶고 왔어?"
"아니..-_-"
"근데 표정이 왜 그래..머리 맘에 안 들어서 그래?"
"나 지금 내 머리 아주 맘에 드는데!!"
"진심으로.ㅇ_ㅇ?"
"응..-_-"
"그래. 얼른 영화 보자!! 불 꺼지면 의자 못 찾는단 말야!"
승현이가 불쑥 문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난 떠듬떠듬 뒤를 따른다.
중간좌석쯤에 털퍼덕 앉는 승현이. 커플용 좌석인 바람에. -_-
난 본의 아니게 그 옆에 찰싹 붙어 앉았고..
스크린에 비추는 여배우의 얼굴이. 최보람 년과 겹쳐지는 환각을
맛보았다.
이잇........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이마엔 갈매기 주름살이 서너 개쯤 생기고.
진지한 얼굴로 영화를 보다가...어이없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승현이.
-_-
"너 왜 이상한 표정 지어!!"
"-_-..니 친구 걔 있잖아."
"누구...?"
"그때 닉스에서 봤던 애. 너랑 나랑 뽀뽀..-_- 하는 거 핸드폰으루 찍은 애."
"응."
"걔랑 친해...? 걔 어떤 애야?"
"달리기 되게 잘하는 애."
"-_-^....."
굳은 내 얼굴을 외면한 채.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기는 승현이.
난 핸드폰을 꺼내 권은형에게 문자를 쓰기 시작했고...
내용을 말하자면 이러했다.
내 전화 피하는 건 알겠는데.
중요한 일이야. 정말 중요한 일이라구!!
최보람에 관한 거니까. 보는 대로 전화해.
슬금슬금 승현이의 눈치를 보며 전송버튼을 누르려는데...
아까부터 자꾸 나를 흘낏대던 옆 좌석의 아줌마가.
별안간 버럭 고함을...고함을...-0-..
"맞네!! 은형이 여자친구지 학생?!"
"..네..-0-..?"
"아닌가..? 이름 강순이 아냐..?"
"..강순이는 맞는데요..누구...세요?"
"아이고. 맞네. 사진 만치 이쁘네!! 나 은형이네 큰 고몬데.
은형이가 만날 때마다 학생 사진 보여주면서 자랑하드라고.
이렇게 반가울 일이 있어. 근데 은형이는 어쩌고?"
"은형이랑은...헤어졌는...데요..."
"엥..? 그럴 리가 있어..?"
왠지 은형이네 아빠랑 조금 닮아 보이는 이 아줌마는..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나와 승현이를 번갈아 보았고..-_-
나는 손에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고..=_=
차가운 얼굴로 권은형의 큰 고모를 훑어보던 승현이가..
"내가 이강순 남자친군데요."
"어므나...."
"일어나..나가자."
들고 있던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어울리지 않는 거친 손동작으로 나를
일으키는 승현이.
그러더니만.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어두침침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승현아. 잠깐만!! 왜 흥분을 하구 그래. 모르고 그런 거잖아."
"흥분한 거 아니야...화난 거야..."
"뭘 그런 걸 갖구 화를 내..."
"그런 거니까 화내는 거야!!!!!!"
"...."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쯤. 승현이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가고.
나도 최보람 년 때문에 잔뜩 흥분해있는 상태였기에..
구겨진 얼굴로 그 애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앞서가다가..휙 뒤를 도는 승현이. -_-
멀찌감치 뒤떨어진 날 보더니...
"왜 안 따라와!?!!"
"......나도. 지금 많이 화났거든..."
"..뭐..?!"
"나도 지금 많이 화났다구!!!!"
......
........
"....난 지금 억지로 웃는 것도 무지 힘든데..넌 아무 것도 몰라준다.."
"안 들려!!!!!!"
"내일 보자."
"-0-..뭐라고!!!!!"
버럭 고함치는 나를 남겨둔 채. -_-
매정스레 택시에 오르는 승현이.
평소 같았음 당장 전화를 걸었을 테지만..머릿속을 꽉 채운 최보람 년 때문에
모든 의욕 상실!!!
....
........
죽어가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무작정 공중전화를 찾기 시작했고..
전방 10미터 이내에서 전화박스를 발견하곤...미친 듯이 그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주저 없이 권은형의 번호를 누르는데....
....
......
그렇게 20초쯤 흘렀을까..
"여보세요...."
가라앉은 목소리..
예고도 없이 철렁 내려앉아버린 심장.
"여보세요..."
"...나...나...강순인데..."
'철커덕...뚜...뚜...뚜...뚜...'
-_-......
-_-^....
ㅠ_ㅠ.....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나를 끔찍해하고 있다...
이래선. 은형이에게 알릴 방법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정말 정면충돌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 같은 겁쟁이가..분명 말도 꺼내기 전에 울어버리고 말텐데..
웃고 있던 최보람 얼굴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집에 가버린 승현이는 까맣게 잊은 채..중얼중얼..그녀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고 있다...
벌써. 3시간 째.
그리고. 약 한 시간 전부터...
이런 나의 모습을 신기하단 듯 바라보는 가족일당들.
한참 전에 집에 도착한 나는 소파에 길게 누워 같은 말을 연거푸
주절대고 있고...
오렌지를 문 언니가...제법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조용히 입을 연다.
"내가 보기엔. 차였어."
"에이. 설마. 사귄지 얼마나 됐다구."
엄마의 대답에. 입에 넌 오렌지를 꿀꺽 삼키며 손바닥을 터는 강윤언니.
"아니야. 이쯤하면 벌 받을 때가 됐다 싶었지."
"무슨 벌. 쟤가 벌을 왜 받어."
"내가 밤마다 말해줬잖아! 저년이 은형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맞다. 까먹구 있었네. 저 못된 년.."
수군대는 모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점점 솟구쳐 오르는 불덩이.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왜 맨날 나만 못된 년이야!!!!!!-0-!!!!!!"
"저 기집애 애기 때 도라지 뿌리 달여 먹였더니. 목청 좋은 것 좀 봐."
"엄만 아무 것도 모르잖아. 내가 밖에 나가서 무슨 꼴 당하는지!!!!"
"강윤아 전화 온다 전화 받어라. 니가 무슨 꼴을 당하는데.""
"험한 꼴. 불쌍한 꼴. 비참한 꼴!"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아니?? 구체적으로 말해보란 말야."
휴...말하면...내가 다 말하면...!!!!
차라리 혼자 뒤집어지는 게 났지요...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고...
그때. 안방으로 전화를 받으러 간 언니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자신이
새롭게 붙인 나의 별명을 외친다. -_-
"야. 신녀! 전화 받어!!"
"누군데......."
"중학교 동창이래!!"
"....지금 가."
옷자락을 붙드는 아빠를 뿌리치고..
성큼성큼 안방으로 들어섰다. -_-
매정한 얼굴로 나를 훑어보더니. 전화기를 넘겨주는 언니.
..
"여보세요.."
"어. 강순이야? 나야!!"
수화기를 통해 울려 퍼진 건.
2년 만에 듣는 중학교동창생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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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여러 가지 각오를 다지고 있는 나의 소심한 모습.
엎치락뒤치락...어설프게 짜 맞춘 작전을 되 읊어보고...
"응. 내일 6시까지 수원역 앞으로 나오면 돼. 꼭 와야 해.
애들두 다 온다구 했어!"
그렇다.
이것이 몇 시간 전에 걸려온 동창생의 전화.
내일. 권성중학교 3학년 5반이었던 아이들의 동창모임이 있고.
덕분에 나는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곳엔 권은형이 올 테고..!!
어쨌든 마주칠 수 있으니까...얘기는 해볼 수 있을 거야..
자. 어서 작전 세 개를 떠올려보자!!
1. 만나자마자 양어깨를 붙든다.
2.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자락을 늘고 잡는다.
3. 최보람의 정체를 밝힌다.
이거야!!
할 수 있어. 이거 세 개쯤은 할 수 있고말고..!!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그 당시 같은 반이었던 미영이.-_-
그녀가 내일 나온다면..모든 아이들 앞에서 엄청난 꼽을 주겠지만.
그래..괜찮아..어차피 다시 마주칠 애들 아니니까!!
이불을 목 끝까지 뒤집어쓰고...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나약한
모습. -_-
아차. 잠들기 전에 동영이에게. 내일 알바 빠지게 될 거라고
문자를 하나 보냈고...
덕분에 새벽 1시쯤. 그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한참 최보람을 혼내주는 꿈나라에 빠져있는데...
"여보..세요..=_=..."
"개순아!! 내일 알바 왜 못나와?!"
"아..동영이구나..나..내일 동창회 모임 가야 돼서..=_=..어디야..?"
"보람이네 집."
"뭐-0-!!"
저주스런 이름 두 글자에 번쩍 깨어버린 잠.
"알았어. 내가 얘기해주께."
"보. 보. 최보람네 왜 있는데?!"
"말 더듬는다!!!!!!!!!"
"=0=..최..걔네 집에 왜 있는데?! 걔 지금 뭐 하는데!"
"제길.! 알 없다!!!!! 원. 투. 쓰리.
쓰리. 투. 원!! 바이바이 씨유어게인!!
나이스 드림 꾸세용!!"
..뚜...뚜........
너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만..
이건..해도 해도..너무하잖아...
도대체가. 진지스러운 모습이라곤. 그 때 한번 빼고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구나!!!!!!!!!-0-
남의 머리만 이리저리 들쑤셔놓고..핸드폰전원을 꺼버린 김동영. -_-
그리하여 난 베개 끝을 물어뜯으며 길고 긴 새벽을 견뎌내야 했고..
다음날 아침 해가 밝자마자. 퀭한 눈으로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온 방 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화장대위의 잠잠한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승현이가 정말 단단히 화가 나버렸어...
그게 그리도 화낼만한 일이었던가...
아니. 그렇다 쳐도. 왜 나한테 삐져있는 건데-0-!!!!
욱한 마음에 핸드폰을 열고. 통화키를 누르고..
....
.......
한참의 신호 끝에..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남자친구 승현이.
"여보세요.."
"나. 나. 강순인데.!"
"..어.."
"잤어..?!"
"...어.."
"..계속 잘...거야?"
"어.."
"-0-...."
"내가 이따 전화할게.."
"..으응...."
평소 때완 너무 다른 분위기로 전화를 끊는 승현이.
이강순 인생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네..
벌 받는 건 왕따된 거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휴..ㅠ_ㅠ..
포르르 한숨을 내쉬고. 넋 나간 얼굴로 벽시계를 바라보는 중.
그렇게 짧은바늘이 장장 숫자 7개를 건너뛰었을 때.
굳어버린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권은형. 최보람만은 정말 안 된다.!!
최보람 그년은 정말로 안돼.
내가 기필코 그 아이의 거짓 탈을 벗겨다주겠어.!!
버스가 달리는 내내. 주먹을 움쳐 쥐고 마음속으로 외친 말이다.
나는 스스로 놀랄 만큼 용감해져있었고.
내심 나 자신을 대견해하는 중이었다. -_-
그러나.
나의 몸뚱이가 수원역 5미터 근방에 다다랐을 때.
그렇게 다짐했던 모든 각오는. 덩실덩실. 머릿속의 바다를 따라
저 멀리 떠내려가고 말았다..
"어머. 강순이도 왔네!! 그럼 인제 다 온 거야?!"
"드디어 왔네. 너 오기만을 목빼서 기다리구 있었다. ^-^"
..첫 번째 대사는 어제 전화를 걸었던 세림이고.
두 번째 대사는 도끼눈을 번뜩이는 미영이다.
20명쯤 되 보이는 아이들이 반갑게 나를 맞았고..
내가 지금 놀란 이유는..아니. 무너져버린 이유는.
결코. 미영이의 의미심장한 말이 아니다.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악마보다 무서운 그녀.
은형이 옆에 따악 붙어서 활짝 웃어 보이는 그녀.
"강순아!!!! 기달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ㅇ^!!"
..최보람이다.
=======================================================
옛 수원 갈비 집.
-_-.....
테이블 하나마다 7명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고.
이리하여 우리 동창회 모임생들이 차지한 테이블이 세 개.
나의 옆에는 보람이가 철썩 들러붙어 있고.
첫 번째 테이블엔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어대는 은형이가 있다.
맞은편엔 세림이와 소곤대는 미영이.
신이시여. ㅠ0ㅠ !!!!!!!
"야 고기 진짜 맛나다. 그치. 강순아."
"...응."
"은형이가 같이 가자구 계속 졸라서...좀 눈치 보인다...흑...ㅠ_ㅠ"
근데 왜 왔니. 응?
왜 왔니.
대체 왜 왔니!!!!!ㅠ0ㅠ
"그래두 이렇게 보니깐 넘 반갑다. 꺄. >_<"
"응..나도.."
아이고.ㅠ_ㅠ 이강순 이 천하에 미련 곰탱이. ㅠ_ㅠ
원수 옆에 앉아서 성질도 제대로 못 내고 빌빌대다니...
난 나의 소심한 성격을 마구 원망하며 고기를 어그작 씹어댔고...
조용하다 싶었던 미영이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 맞다 니네 얘기 들었어?! 이강순 왕따 먹은 거?!"
....
.....
술렁대며..미영이 쪽으로 시선을 꽂는 아이들.
난 애써 태연한 척 컵 속의 사이다를 들이켰고..
"몰라?? 얘 왕따잖아. 야. 권은형. 인젠 너랑 상관없으니까 말해도 괜찮지?!"
....
.....
슬쩍..곁눈질을 하는..바보 같은 강순이.
그리고..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젓가락장난을 하는 놈을 보고..
깊숙이 고개를 수그려야했다.
"쟤 원조 한 거 몰라? 얘기 한번도 못 들었어?
아저씨랑 뽀뽀한 사진 한참 떠돌았었는데...세림이 너두 몰랐어?"
"..으..응.."
....
굳은 얼굴로 나를 훑어보는 남자아이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여자아이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화나게 만든 건...
"야. 너 뭐야??! 말이면 단줄 알어!?!? 니가 봤어?! 강순이 그런 거
봤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미영이를 몰아붙이는 보람이었다.
하...
...정말...뭐라고..말을 해야 하나...이럴 땐...
"넌 뭔데?! 이건 중학교두 같이 안 나온 게 어디서 굴러와 갖고."
"니가 강순이 그런 거 봤냐구!!! 얘 그럴 애 아니야. 알겠냐?!"
"니가 걜 잘 아냐?! 같은 반인 내가 잘 알지!! 근데 너 뭔데 자꾸
지랄싸대냐!!"
"뭐...? 야!!!! 너. 따라 나와!!"
벌떡 일어나는 보람이를 보며 미영이가 무언가를 소리치려 할 때..
보람이 옆에 성큼 다가서는 은형이..손에는 여전히 담배가 들려있고..
젓가락장난을 할 때완 완전 상반되는..무지하게 화가 난 얼굴.
"이게 진짜. 야!!!! 너 죽구 싶냐!!"
"뭐..뭐가..!!"
"죽을라고 남 여자한테 들이밀고 싸대냐!!!!"
"니 여자친구가 먼저 나한테 욕했잖아!!"
"어쭈. 목소리 안 낮춰!?!?"
".........."
"한번만 더 그래라. 엉!?"
.....
........
비오는 날. 나 때문에 미영이한테 막 소리 지르고 욕한 적 있었지.
권은형 너...그때랑 똑같은 눈이다. 그때와 같은 목소리고...
같은 얼굴이다...다른 게 하나 있다면.
이번엔. 최보람 때문이다...
차가운 콜라병을 보람이 얼굴에 갖다 대주며...씩씩대고 있는 은형이.
"괜찮어? 열 식혀."
"난. 괜찮지...강순이가...강순아..왜 말 안 했어....
그런 일 있었음 말했어야지......"
눈물에 꽉 메인 목소리...들키기 싫어서...
억지로 물 컵을 들이켰다..
대답할 수 없음에..한참동안..물만 들이켜 버렸다..
미영이가 울음을 터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고..
걱정스런 얼굴로 뒤를 따라가는 세림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담배를 꺼내 문 채 밖으로 나가는 은형이..
그리고...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훑어대는 동창생들.
"니들 왜 그런 눈으로 사람 째려봐!?!!!"
보람이의 고함소리에...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대화에 열중하는
동창생들.
보람이가 아니라. 은형이를 두려워한다는 것.
그런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괜찮아. 강순아...근데 어떻게 된 거야...사진이라니...
누가 지어낸 얘긴데..?"
정말...뭐라고...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구나..
니가 지어낸 얘기잖아...최보람...
니가 생각하고...니가 지어내고...니가 꾸며낸 짓이잖아...
왜..그렇게...잔인해.. .
같이 웃어놓고..같이 얘기해놓고..왜..대체 왜..
그러나. 끔찍한 이 아이보다..더욱 견뎌낼 수 없는 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멍청한 내 모습.
걱정스러운 얼굴로..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최보람.
그리고..아무런 뿌리침 없이..멍청히 붙들려있는 나의 차디찬 손.
"나..은형이 데리고 들어올게..잠깐만.."
그치. 이쯤에서 잠깐 자리 비워야지.
그래야 나 비난받으니까..그래야 나 망가질 테니까..
보람이가 조심스레 문밖으로 나가고..
예상대로..대놓고 나를 손가락질하는 아이들.
그중. 유난히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연정이라는 친구가 첫마디를
꺼낸다.
"쟤 저럴 줄 몰랐는데..그치..권은형이랑 깨졌다는 소리는 들었거든.
그럼 원조 할려구 깨진 거야?"
"그런가보지..어우. 뻔뻔해..쟤 잘난 건 얼굴하나밖에 없잖어. 그거 믿구
막 나갔나본대? 낄낄."
"조용히 말해. 아까 그년 또 지랄할라."
..
...
당장 일어나서..뛰쳐나가고 싶은 맘이 너무나 간절했지만.
이 아이들에게 뒷모습 보이기 싫어서..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모습만은 보이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물통을 움켜잡았다.
"깡 좋다..나 같음 벌써 울구 일어났는데.."
"이강순 원래 안 저러지 않았어? 픽하면 울고 그랬는데..
원조하더니 간이 부었나부다."
"미영이만 불쌍하지 뭐...근데 아까 권은형 쫌 웃기드라.
그래두 지가 사귀던 여잔데.."
"야. 나 같애두 내가 사겼던 남자애가 그 짓 하면 정 딱 떨어진다!!"
마른침을 자꾸자꾸 삼키며..창가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꾸역꾸역 치미는 눈물을 침과 함께 넘겨대는데..
촤르르륵....
심상치 않은 물소리와 함께. 바로 터져 나오는 여자의 비명소리.
"꺄아악>_
"그 짓이 뭔데?"
ㅇ_ㅇ..
귀에 확실히 익은 목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까만 손수건을 목에 감은 승현이가..
손에 들린 물 컵을. 그대로 쏟아 부었다.
연정이. 머리위로.
"애. 애 뭐야!!"
"찔찔아. 잘 들어. 권은형보다 내가 더 무서워."
"나 알어?! 너 나 아냐구!! 뭔데 물을 뿌려!!!!"
"이강순 바보야?! 왜 그러구 있어. 빨랑 안 일어나?!"
정말. 눈부신 천사처럼 내 앞에 등장한 승현이...
난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재빨리 그의 옆에 가까이 붙어 섰다.
웅성대는 아이들을 한명 한명씩 쏘아보고는.
중얼대듯 한마디를 내뱉는 나의 천사.
"그냥 다 죽어라. 이 미친것들아."
"-0-...."
할말을 잃은 채 승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
남자들 중 싸움질에 취미 붙인 아이가 없다는 게..제일로 다행스러운 일.
어쨌든...
난 크나큰 감격에 젖어 그의 손에 이끌려나왔고...
목에 감은 수건을 잡아 뜯으며 마구 성질을 내는 승현이.
"아!!!!!!! 짜증나!!!!! 너 누가 그런 데 가래!!!!!!!!!"
"...고마워..."
"뭐가 고마운데!!!!! 어디 갈 때 허락 받으라고 했잖아!!!!!!"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아씨...진짜...누가 그런 꼴 당하고 있으래. 누가 그런
얼굴로 불쌍하게 앉아 있으래!!"
"....."
난 눈물이 잔뜩 번진 추하디 추한 눈으로 승현이를 바라보았고.
씩씩대며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승현이.
그리고..문 앞 기둥에 기대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은형이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올려보는 보람이를 보았다.
짙은 눈으로..승현이를 흘낏대는 권은형.
"니가 여긴 웬일이냐?"
"부탁인데 제발 좀 쌩까줘라."
"좋을 대로. 들어가자 보람아."
"어..그래..강순아..힘내..내가 전화할게. 알았지? 신경 쓰지말구. 응?"
엉거주춤하는 최보람의 어깨에. 한쪽 팔을 휘감는 은형이.
나에게 미안하단 표정을 해 보이는 악마년.
그렇게. 악마 두 개가 갈비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승현이는 불도 안 켜진 택시를 향해 무작정 까만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근데 승현아...어떻게...알고 온 거야...."
"니가 와달라고 문자 보냈잖아!!"
"..응...문자라니?"
"암튼 너. 앞으로 나 없이 암데도 가지마. 알겠어?!"
"응..응..ㅠ_ㅠ.."
"울지 말고.! 눈물 뚝하고!!"
"ㅠ_ㅠ.."
"에이씨..그러게 누가..휴.."
말끝을 흐리며..손을 꼬옥 잡아주는 승현이..
내가 보낸 문자라는 게 맘에 걸리긴 했지만.
되물을 겨를도 없이..퐁퐁 솟아나는 눈물을 닦아야했다.
...
돌아오는 택시 안..
싸늘히 날 외면하던 은형이 얼굴이 자꾸 걸려서..
눈물을..그칠 수가 없었다.
승현이가..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야속한 눈물은..자꾸자꾸..흘러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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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
승현이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간 사이.
하고 있던 십자수를 들고 와 옆에서 꿍얼대고 있는 화진이.
"야. 미영이 학교 왜 안 온줄 알어?"
"안 왔어?"
어쩐지 오늘 따가운 눈초리가 안 느껴진다 했더니..
난 얼른 2분단 뒷자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정말로 텅 비어있는
미영이의 자리.
"어디 아프대..?"
"아니. 어제 새벽에 집에 가다가. 의문의 까만 보자기한테 맞아서.
몸져누웠대."
"..-0-..의문의 까만 보자기..?"
"아주 쌤통이지 뭐야. 그 말 듣고 얼마나 웃었는데.
까만 보자기가 뭐니 까만 보자기가. 평소에 원할 살 일을 얼마나 해댔으면.."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건.
어젯밤 승현이의 목에 매여져있던 까만 손수건이었고..
흐뭇한 미소를 질질 흘려대고 있는데..
"너..오늘 알바 몇 시부터니..?"
"..응? ㅇ_ㅇ? 왜?"
"..아니. 그냥..뭐...놀러 가볼까..해서.."
"왜에.? 누구 보러?"
"누구라니? 그냥 놀러 가는 거잖아!"
"흐음..."
"왜?! 뭘 생각하는 거야 너?!"
"으음....."
"그만 상상해!!!!!!!!!-0-"
"내가 뭘..-_-"
복도 끝에 들릴 만큼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십자수를 움켜쥐고 자리로 휭 사라져버리는 그녀.
내가 봤을 때 동영인 너한테 역부족인 듯싶구나..-_-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씩씩대며 바늘을 허공에 찔러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책상 위와 머리위로 마구 떨어져대는 물방울.
"아악. >_<"
"으아아. 덥다!!!!!!"
"뭐야..ㅠ_ㅠ..책 다 젖었잖아.."
"우리팀이 삼대 이로 이겼어!!"
"넌 몇 골 넣었는데..?"
"빵골!!!!!!"
"에이..."
"넣을라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리에 앉는 승현이.
머리와 교복 깃은 거친 세수로 인해 흠뻑 젖어있고..-_-..
입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그치만..두 눈이 슬퍼 보인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참..
"어제 목에 두른 까만 손수건..어딨어..?"
생뚱맞은 나의 질문에..머리를 마구 털어 대다가..
휙 고개를 쳐드는 승현이.
"까만 손수건.?"
"너 여자 못 때리잖아..."
"응. 여자 못 때려.!"
"근데..왜..그랬어..?"
"응!!"
승현이가 씩씩하게 말을 이으려는 찰나.
맘씨 좋은 한문선생님이 앞문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는 씨익 웃으며 다시 머리를 털어 댄다.
초여름의 무더위 속에..
따분한 수업시간이 끈적끈적하게 지나가고..
어수선한 청소시간.
열심히 청소중인 아이들을 단번에 무시한 채.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 _ -
"왜? 강순이 내가 먼저 알았잖아.!! 그리고 요새 맨날 너랑만 갔잖아!"
"그러니깐 오늘도 나랑 간다니까!!"
"그런 억지가 어딨어.! 강순이가 니 꺼야?!"
"그래. 내꺼다!!!!!!"
"넌 니 친구들하구 가면 되잖아!! 나 강순이랑 같이 갈 데 있단 말야!!"
"니가 내 친구들하구 가라!!"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딨어?!"
=_=...정말이지..
민망스럽구나..
카랑카랑한 화진이의 목소리도.
막무가내인 승현이를 넘어서진 못했고..대충..승부의 판가름이
결정지어지려는 순간.
마지막 한방을 날리는 그녀.
"그래? 그럼 나 강순이 친구 안 해. 니가 맨날 데리고 다니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강순이 인제 친구 하나두 없네?"
ㅠ_ㅠ..저 기집애가 근데..
"놀지마..강순이 나랑 놀면 돼..!"
"그래? 그럼 니가 얘랑 목욕탕도 같이 가줄 수 있어?!
미용실도 같이 갈 수 있어?! 쇼핑도 같이 할 수 있어!? 눈썹은? 못 다듬어주지?!"
".........씨....."
"못하지? 못하잖아!!"
"오늘만이야!! 얘 데리고 이상한데 가기 만해!!!!!!!"
-_-.
이리하여.
옹졸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나의 옆자리를 꿰찬 화진인.
그 여느 때보다 당당한 얼굴로 교문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암만 봐도 너랑 동영인 아니야...
열흘도 못 가서 파토가 날거다..
빨리 옷을 갈아입으라는 그녀의 성화에..쏜살같이 집에 도착하여
사복으로 갈아입고..
콜택시를 부르고..
15분 만에 라이브 까페 앞에 도착한 우리 두 사람.
"아직. 30분이나 더 있어야 돼.."
"그래? 그럼 이 앞에서 놀고 있자."
"할 것 없는 이 텅빈 복도에서. 뭘 하고 놀아."
"창밖에 보면서 지나가는 애들 씹으면 되지!!"
-_-. 동영이를 기다리고 싶다고 그냥 솔직히 말해라.
2층 복도.
널따란 창가에 턱을 괴고 서서.
눈을 지그시 감아버리는 그녀.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세 번째 계단 위에 털퍼덕 주저앉고..
그렇게 7, 8분가량이 흘렀을까...
저 밑에서부터.. .
건장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듯 귓가를 간질이고...
창문에 비치는 머리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녀. -_-
"이 백년 먹은 병신 새끼!!!! 안이라니까!! 안!!"
"..너 과학시간에 죽어있었냐? 미쳤냐? 이젠 완전 돌았어?"
"하 참..너..얼마 걸래..광민아..잘 생각해 봐..지구 밖에 사람이 산다고 쳐봐.
너 지구 회전하는 거 알지. 그 정돈 알지!"
"뭐래 이 똘빙구가."
"그럼 지구가 삥글삥글 돌 때 사람이 밑으로 다 떨어질 거 아녀!!!!!!!"
맞구나. 동영이 너 맞구나.
-_-
굳은 얼굴로 머리를 매만지는 화진이.
어느새 눈앞에 성큼 나타나버린 동영이와 광민이. -_-
의아한 얼굴로 나와 화진일 번갈아 보더니..
"쟨 또 왜 왔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매정한 한마디를 툭 내뱉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