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10월호 <화제 작가>
일시 : 2021년 8월 25일
장소 : 푸른사상사 서울사무소
생수 같은 시간을 챙겨 가방에 넣고 사북행 버스를 탄다
- 시인 맹문재 -
그리하여 전철역 계단에서 웅크리고 자는 노숙자를 보면서도
해고 노동자의 부고를 읽으면서도
엉터리 심사위원의 변명을 들으면서도
실컷 울지 못한다.
- 「슬픈 웃음」 부분, 『사과를 내밀다』 수록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와 불평등과 우리가 함께 보듬고 나누어야 할 대상과 일들에 대해서 문을 걸어 닫고 외면한 채 무감하게 지낸 지 오래다.
이러한 때 소외당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과 현실, 잊혀가는 역사와 사건을 끊임없이 시인의 목소리로 담고 있는 맹문재 시인을 만났다.
2012년에 발간된 시집 『사과를 내밀다』의 해설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시인을 이렇게 소개한다.
“맹문재의 시는 자기 고백의 시다. 시의 화자는 대개 시인과 일치하며, 시인의 삶의 내력이 고스란히 시에 드러난다. 그는 쇠를 만들어 밥을 먹어본 노동자 출신이지만, 지금은 시인이자 대학교수가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삶에는 과거와 현재 이상의 어떤 거리가 놓여 있다. 이 거리는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맹문재 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노동자의 삶은 현재 그의 삶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현재의 삶에 개입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가늠하고 점검하는 기준이 된다.
이완숙 : “우리 시대의 좋은 시는 어떤 것일까? 망설임 없이 말한다. 정치시! 정치 참여시!”를 절실하고 정직한 답변이라고 평론집 『시와 정치』의 머리말에서 말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맹문재 : 시인이 정치시를 표명하는 자세는 사회 참여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정책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이 인간 가치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 가치가 지배하는 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정치시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예술가들 블랙리스트, 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 검찰의 반개혁, 왜곡 언론, 친일문학상 시행, 비정규직 노동 등 우리 사회에는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매우 많습니다. 역사 발전을 이루기가 얼마나 힘든지, 곧 정치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공동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 추구하고 있습니다. 시장 자유의 이름으로 평등의 가치를 폐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상황인데도 한국의 시단은 정치 문제를 도외시하는 면이 강합니다. 시인들은 작품의 순수성 및 예술성을 주장하며 정치 참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한 개인으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 컸기 때문에 영향받은 것으로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시대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시인들의 태도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지요. 시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는 흐름에 타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인 시인이 갖는 이와 같은 태도는 시대와 역사에 부끄러운 것이지요.
이완숙 : 평론집에서 소개된 시들의 주제인 임금, 노동시간, 재해보상, 비정규직, 탈핵, 반매카시즘, 반전의식, 통일에 대한 문제는 2021년 현시점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치적 과제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 연대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맹문재 : 사회적 상상력을 갖는 것은 문학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 상황이며 구조 등과 관련해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지요. 사회적 상상력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한국 문학에 추구되고 있습니다. 소설가와 시인이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면이 다소 위축되고 있지만, 가치는 결코 폐기할 수 없습니다. 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요구됩니다.
사북항쟁 40년이 되는 해(2020년)를 맞아 사북항쟁과 광산 노동자, 진폐 재해자들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아 시집 『사북 골목에서』를 발간하였다.
지난날의 항쟁을 지도 삼아
길을 알려주는 토민(土民)을 만나기도 하지만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없기에
골목은 추상적이다. ...
나는 그 골목에서 아버지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입갱하는 광차를
석탄이 달라붙은 도랑물을
“우리는 산업역군 보람에 산다”는 표어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방문이라고 다짐하고
골목 끝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아버지는 개집처럼 서 있었다.
―「사북 골목에서」부분, 『사북 골목에서』 수록
시인은 “폐광촌 광부들을 관념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나의 일기를 흔든다”라며
“생수 같은 시간을 챙겨 가방에 넣고/사북행 버스를 탄다”(「연기를 하러 가다」 부분)라고 했다.
이완숙 : 시집 해설에서는 “막장 정신을 자랑하는 광부들”은 늙고 병들어 방치되고 있지만, 맹문재의 시집을 통해 영원한 산업 전사로 거듭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희미해진 사북항쟁과 광부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사북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맹문재 : 제가 시집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농부였던 아버지께서 한때 사북에 계신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몇 번 찾아뵌 것이 전부였지만, 사람들이 신고 다니던 새카만 장화며 도랑물이며 비가 오면 질척이는 동네의 골목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큰 충격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사북항쟁 40년이 되는 해에 기념시집을 내자고 결심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써온 작품들이 있었는데, 제가 광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동안 간행하지 못하다가 용기를 낸 것이지요. 광부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것은 물론 사북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사북항쟁은 계엄사령부 군인들이 죄 없는 광부들을 잔인하게 짓밟은 인권 유린이었습니다. 광부들을 ‘빨갱이’로 몰아 이루 말할 수 없는 폭행과 고문을 가했지요. 폭행을 당한 광부들은 이빨이 부러지고 고막이 터지고…… 심지어 여성들은 성적 학대까지 당했지요. 사북항쟁은 단순한 노노갈등의 문제가 아니에요. 광부들은 오랫동안 기업주의 횡포로 고통받아왔기에 생존권을 요구했을 뿐인데, 신군부는 공권력을 악용해 광부들을 탄압한 것이지요.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폭력이기에 반드시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또한 부마항쟁과 5·18광주항쟁 사이에 있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부들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1989년 석탄합리화정책 시행 이후 광산촌은 급속하게 무너졌습니다. 국민들이 소득 증대로 석탄 대신 공해 발생이 적은 에너지를 선호하면서 마련된 정책이었지만, 폐광에 따른 대책 없이 졸속으로 시행되어 광부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폐광촌에는 광부 생활하다가 부상당하거나 진폐 및 규폐 환자 등으로 노동할 수 없는 광부들만 남아 있습니다. 진폐 재해 보상금을 받는 광부들도 있지만, 몸이 상한 그들의 처지에 눈물이 납니다. 정부가 폐광촌 광부들의 생계 대책으로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 뒤 2003년 카지노 등을 운영하는 강원랜드를 개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민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바는 미약합니다. 오히려 2012년~2013년 강원랜드에 채용된 518명의 직원이 모두 청탁 대상자였다는 언론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완숙 : 현대사회 속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또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맹문재 :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의 통과가 쉽지 않아 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국민동의청원을 하고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했지요. 지난 시대에 비해 한국 사회는 놀라운 경제 발전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의 삶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됨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더욱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잘살게 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많은 언론이나 지식 전문가들이 노동문학을 지난 시대의 것으로 표명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역사의식이 약한 문인이 합세한 것이지요. 역사를 지운 자리에 예술이란 이름을 넣으려고 하는데, 어불성설이지요. 따라서 문인들은 보수적인 언론과 기득권 세력에 기대지 말고 자기반성을 토대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동자의 사회적 존재성을 인식하고 연대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완숙 : 『시와 정치』의 책머리에서 “좀 더 집중해서 세상을 읽고 글을 쓸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2021년과 앞으로의 계획과 이루시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해 주세요.
맹문재 : 올해는 김수영 시인 탄생 100년이 되는 해여서 이와 관련된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에서 김수영 특집을 26회 계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싣고 있는데, 기획위원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이번에 한국시학회서 발행하는 『한국시학연구』에 「김수영 시인의 연보 고찰 (1)―출생에서부터 일본 유학까지」라는 논문을 수록했어요. 이외에도 김수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인환 번역 전집』과 『박인환 시 전집』에 이어 올해는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간행합니다. 이번 전집에 57편의 영화평론이 수록되는데, 앞으로 박인환 시인은 영화평론가로도 입지를 굳힐 것이에요.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수준 높은 영화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했어요. 박인환 전집은 매년 간행되고 있는데 내년에는 『박인환 평론 전집』을 예정하고 있어요.
올해는 김규동 시인 타계 10주년이 되기도 합니다. 조만간 『김규동 시인 연구』(가제)가 간행되어요. 성실하게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논문 원고를 청탁해 현재 거의 들어와 있어요. 유족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기도 합니다.
이밖에 조선일보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동인문학상’ 폐지를 위한 민족문학연구회 세미나 행사도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준비 중입니다. 매년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주최하고 있는데, 친일 문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하루빨리 폐지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이외도 이러저러한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데, 시간 관계상 이 정도로 소개할게요. 귀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
정연수 평론가는 『사북 골목에서』의 해설 말미에서 “이 시집은 한국산업 사에 대한 시적 기록이자 한국 탄광촌 100년사가 낳은 미학의 결정체이다. 탄광촌의 역사와 광부의 삶을 이만큼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그리고 애정있는 자세로 기록한 글이 있었을까? 탄광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문제 현장을 외면하던 한국문학이 이 시집에 빚졌다는 것을 함께 상기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오늘도 빛바랜 책장처럼 넘겨버린 역사에 대해 관념으로만 넘어둔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소외된 이웃, 형제들에 대해 우리가 연대하고 능동적으로 고쳐가야 한다고 노래하는 맹문재 시인에게 빚졌음을 상기하며 그의 앞으로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한다.
*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 1991년 『문학정신』 작품활동 시작
*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 수상
* 시집 『기룬 어린 양들』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사북 골목에서』
* 평론집 『시와 정치』『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등
*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mmunja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