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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리품
역대하 20:24-30
20: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 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0:25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취할쌔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 고로 각기 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하고
20:26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0: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선두로 즐거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그 적군을 이김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0:28 무리가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20: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한고로
20: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나님께서 벌리신 그 전쟁의 뒷마무리가
어떻게 이어졌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홀로 하셨는데,
그 결과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이 얻은 것은
적군들이 놔두고 간
많은 재물과 보물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이 그득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전쟁에서 얻어진 것을 전리품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탈취물이라고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리품과 승리를 인하여
26절에 보면
사람들이 여호와를 송축했는데
그 지명 이름이
송축이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브라가 골짜기인데
"브라가"라는 뜻이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뜻이죠.
자, 이렇게 해서 즐거워하고,
28절에는
비파와 나팔과 수금을 총 동원해서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면서 찬양하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에서
진정 달라진 게 있고 변화된 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적군들이 완전하게 박살났다는 것도
변화된 것 중에 하나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송축하는 인간들로
새롭게 유다 나라가 변모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원래 그 표준 모델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에는
천사들에 의해서
찬양하고 송축하고 영광을 돌리는데,
지상에서의 인간들은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이고 하나님의 원수들이고
하나님 앞에 도전하는 그런 세력 속에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도 영광인 것처럼
땅에서도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운 그 찬양을 위하여
마치 천사와 같이
지상에서도 하나님을 송축할 줄 알고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천사가 하는 일을
지상의 인간들이 해내더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게 하신 분은,
전쟁을 친히 벌리시고
친히 용사가 되셔서
홀로 전쟁에 나가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로 인해 그 전쟁에서
전리품을 끌어안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겠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그 본래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고
영광돌리는 것이죠.
마치 하나님 앞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된 하나님의 성도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흰옷을 입고
자기의 면류관도 반납하고 던지면서
그 어린양과 하나님 보좌 앞에서
노래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찬양의 가사내용은
자기들이 어떤 식으로
구원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내용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면 진짜 된 통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구원받은 은혜의 감사를
잘 표현할 수 있는가에 쏠려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하는 원래 모습은
바로 본문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드실 때에
그들이 어떤 찬양을 했는가를 통해서
또 확인해야되고 점검해야 되겠지요.
본문 21절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전쟁후의 상황을
이렇게 조치를 합니다.
"백성들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이렇게 전쟁에 나갈 때부터
칼과 활을 드는 대신에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을 앞장세웁니다.
다른 부대들은 모두
강력한 전투부대를 앞장세우는데
여기 여호와의 전쟁은
노래하는 사람을 앞장세워서
무슨 전쟁이 되겠습니까?
결국 노래는
상대방의 마음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의 사기를 낮추기 위해서,
상대방을 흩으려 놓으려는
전략적인 것이 아니고
적군들은
자기들의 활과 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비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전쟁을 인간의 전쟁으로 본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결국 이 전쟁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과 인간의 싸움으로 바뀌게 해서
결국 적들은 이스라엘에 의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패배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하나님께서
자기 전쟁을 벌리면서 건지고자 했던
그 본래의 전리품은
바로 찬양할 줄 모르는 자기백성이
찬양하는 백성으로 달라지는 것,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그 굳은 마음,
악한 마음을 품고 있던 인간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그런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친히 전쟁을 벌린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찬양을 학문적 영역으로 끌어오리려는 시도 자체를 싫어합니다.
소위 '찬양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에 의하면,
시편에 나오는 대로 찬양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입니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찬양, 찬송하면
그것이 하나의 무기가 되고
수단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안 도와주면
못 배기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찬양이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찬양을
주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없으면서도
종교 기술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서
신앙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노림수는
전혀 찬양과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워낙 없기에
믿음을 가장하기 위한 위선적인 것입니다.
종교개혁 때에 루터나 칼빈이
제일 먼저 한 것이
교회에서 성가대를 없앤 것입니다.
그 이유가 성가대를 함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컬컬하고 답답한 심령이
찬양대의 노래로 말미암아 확 풀리면서
그 다음에 목사의 설교가
절로 은혜가 되도록 조치할 수 있다는
이 발상 자체가 비 신앙적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주문 외우듯이 사용하는 이 관행이
만약에 습관이 되고 습성이 되면
그때부터 만약에 찬양대가 찬양할 때에
음정, 박자가 좀 안 맞으면
그 다음 순서로 목사 설교해도
일단 예배의 기쁨의 감소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여
성령이 역사하는 예배가 아니라,
인간의 노래와 찬양대로
사람의 영혼을 음악적으로 호리는,
그래서 분위기를 조절해서
거기에다 말씀을 섞어 넣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허구에
불과 합니다.
은혜를 일부러 유발시키기위한
감정적 허구 말입니다.
이런 방식은
천주교에서 계속해서 시도해 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칼빈, 루터는
진짜 하나님이 계시면
진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들의 노래의 장난 속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서
모든 성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속으로 우러나는 노래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재롱피우는
쇼를 관람하기 위해
예배에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정 누구이며,
어떻게 다른 인간으로 달라져야하는가 하는
이 문제에 매달리면서
진정한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나와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일부러 있는 성가대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했던 바는
진정으로 찬양할 줄 모르는 인간이
진정으로 찬양할 줄 아는 인간으로
달라지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활동으로 일어난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도
기쁘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정말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중의 교회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면
주로 무엇으로 측정합니까?
실질적으로 병이 낫고
실질적으로 뭔가 경제적인 이득이 있어야
하나님의 기적으로 간주하잖아요.
성경대로 돌아가면
그런 식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돌아가면
경제적인 부가 오고
교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가
하나님 계시기에
세상 걱정 부러울 게 없다는
인간 자체로 바뀌는 것,
이게 하나님과 마귀와 싸워서
하나님의 승리한 하나의 전리품으로
나 자신을 집어 넣자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이 대목을
상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민수기 31장 25절에서 30절을 한번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로 더불어
이 탈취한 사람과 짐승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 분지 일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되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취하여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얻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을
오십 분지 일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 인에게 주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바깥에서 전쟁을 하는 것은
누가 합니까?
그건 마땅히 군인들이 전쟁을 하지요.
그러면 군인들이 전쟁을 할 동안에
자기 가족들은 전쟁을 하지 않았지요.
그러면 그들이 전쟁을 통해서 얻어진
많은 전리품은
다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군인들이 피흘려 수고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몽땅 군인들 것이라고
마땅히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전리품의 반을 잘라서
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에게 주고
반은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전쟁에 나갔던 사람이나
전쟁에 나가지 않았던 사람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군인들은 실지로 전쟁에 나가서 싸웠는데
그 노동의 대가를
하나님이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요.
우리는 이런 의심에서부터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전쟁은
순전히 하나님에 주도하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붙여주셔서
일어나는 전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전쟁이지요.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말은
모든 이스라엘의 생존과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이런 전쟁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분명히 하자는 겁니다.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워 얻은 전리품은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전리품을 나누어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붙여준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만해 보이는 적을 골라서
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주는 자는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도록
그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마무리를 하느냐하면
시작도 하나님이 하시고
마무리도 하나님이 하시고
전쟁에 나갔던 사람은
전쟁을 구경했다는 것뿐이지,
집에서 구경 안한 사람이나
구경한 사람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갔던 사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집에 있던 사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새로운 인간으로 달라지게 하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군사에 나갔던 사람들이 받은
절반 가운데서 오백 분의 일은
누구한테 드리느냐하면
여호와께 드립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집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 놀고 있던 사람도
반을 받는데
그들이 받은 전리품의 절반 가운데서
오십분의 일을 놀랍게도
레위지파 사람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제사와 찬양입니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오백 분의 일과
최종적으로 오십분의 일을 받는 그 주체자의
그 둘을 상호 연결해 보면
하나님에 의해서 레위인들이
제사 드리고 감사하고
찬양했다는 것이 나오지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무엇을 하든
그리고 가정에서 아낙네들이 무엇을 하던
그 중간 과정을 빼버리면
전쟁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그러한 전쟁에 있어 진정한 무기는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한
제사나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백성들은
그 결과를 은혜로 얻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인이나 집에 가족들이나 말입니다.
전쟁의 시작도 하나님이시고
그 전쟁에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게끔
지상에서 제사의 업무와 찬양에 종사하는 자들은 레위인들이요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전리품의 최종 귀착지점은
하나님이요 레위인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에
하나님이 반복되는 전쟁을 통해서
진정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바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헌신하고 찬양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에서 천국 백성의
천국에서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일으킨 전쟁 덕분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이렇게 덜렁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영원토록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이것이었잖아요.
이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라는 점을
진정으로 알고 고백할 수 있는
새로운 종족의 발생,
이런 새로운 인간의 발생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 나올 때에
첫 번째 아말렉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칼 들고 산밑에 내려와서
전쟁을 치루었고
산위에서 모세는 지팡이 들고 기도했지요.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받쳤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든 손이 내려오면
저 산밑에서 어떠한 정황이 오든지 간에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설치든 관계없이,
여호수아는 밀리게 되어있고
산위에 있는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여호수아가 피곤하든 어떻든 간에
적들이 밀리게 되어있고,
이건 결국
앞으로 이스라엘이 치르는 모든 전쟁,
앞으로 신약시대에 벌어지는
모든 구원의 효력과 능력은
지금도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그 기도의 효력 덕분으로
너희들이 구원받는 줄 알아라 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12절에 보면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 물을 나누도다"
집에 거한 여자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집에 거한 여자들도
탈취 물을 나눈다는 말입니다.
자, 아무 것도 없이도
하나님의 전쟁의 혜택을 입게 하시는 것,
이것이 우리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그 하나님께 선물을 받아서
우리에게 공짜로 선물을 나누어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나누어진 그 은사가
바로 구원의 은사라,
전쟁에서 얻어진 은사,
곧 구원의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사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 영광을 하나로 모아 보면,
이런 것들은
그들 한사람 한 사람이 다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것은 주님이 홀로 다 이루어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주 제목으로 걸었던 나사로를 보세요.
그 거지 주제에
하늘나라가 어디라고 감히 내다봅니까.
거지이기 때문에
감히 부잣집 대문 밖에만 있었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비천한 자격자에 불과한
이 거지 나사로가 죽고 난 뒤에는
부자도 차마 못 들어가는
하늘나라 들어간 것은
바로 나사로가 그 말 그대로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에 의해서만 내가 존재한다는 그것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제 끝으로,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처음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나라로 될 때,
홍해를 건너오면서 미리암이 찬양을 합니다.
그 노래가사 속에
여호와께서 친히 용사가 되셔서
그 주님의 오른손으로
주님의 원수를 부숴 버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결과는 13절에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의
최종 마무리이지요.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 고로
각기 그것을 들고 송축하면서
그들이 28절에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간다고 되어있습니다.
세상 전쟁에서 얻은 재물 가지고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는
역대하 그 당시의 이 모습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을 시켜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합니까.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하나님에 의해서 얻어진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기도의 감사,
주님에 대한 감사,
성령 주심에 대한 감사,
이게 세상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하늘나라 전리품들이죠.
이런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피,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
이런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 성전에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어린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 성전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고백하지요.
"이렇게 구원받은 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 찬양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모습입니다.
끝으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내가 이렇게 남하고 시기와 질투에 휘말렸는데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수시로 주시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는 은사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에 얽매일 때마다
다시 한번 하늘나라 바라보면서
"하늘나라가 더 좋습니다"라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이 세 가지의 귀한 전리품을
우리 마음속에 가득 채우게 하시면서
지금도 우리를 하늘나라 성전으로
인도해 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생활 때문에 찌들렸습니까? 억울하십니까?
분통터집니까?
주께서 마귀로부터 빼앗아서 주신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성령의 열매입니다.
자기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주님의 선물인 줄 아시고
이 선물 가지고
천국 갈 것을 날마다 재촉하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