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라, 새 힘을 얻으리라
본문: 이사야 40:27-31
순천만 습지에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갈대숲을 걸으면서 힐링합니다. 늦은 오후가 되면 아름다운 낙조를 보기 위해 전망대까지 오르는 행렬이 눈에 띕니다. 또 밤이면 천문대에서 별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갈대를 보면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며 해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또 밤하늘에 별들을 헤아리며 별들을 하늘에 달아 놓으시고 그 수효를 세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시선을 두고, 진정한 주인공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자는 드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들의 시선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백성들은 힘을 잃고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피곤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를 피곤으로 표현했습니다. 피곤이란 단어에 사람이 겪는 온갖 어려움과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의 출발은 백성들의 시선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짐에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대한 시선을 놓치면 금방 약해집니다. 믿음의 사람인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주목하는 대신 앗수르 군대의 위협에 마음이 녹아졌고, 39장을 보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신생 강대국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생각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백성들 역시 낙심한 이유는 같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지 않음입니다. 27절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백성들은 오랜 세월 앗수르와 바벨론에 고통당하므로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들의 형편을 모르고, 내 사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낙심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들이 시선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짐에 있었습니다.
아담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30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사람은 쉽게 낙심하고 좌절함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눈앞에 놓여 있는 염려와 근심에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한때 모세도 피곤하여 낙심할 때가 있었고, 엘리야도 죽기를 구할 정도로 낙심하였습니다. 다윗도 낙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온갖 편리함을 갖춘 시대를 삽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합니다. 사는 집, 음식, 의복이 다 갖추어 있지만, 피곤합니다. 이유는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과 밀착된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라
피곤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나 자신을 강하게 함이 아니라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백성들의 낙심과 피곤함을 치유하려고 하나님을 주목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도록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이사야 40:12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한지를 말합니다. 13~14절에서 창조의 일을 홀로 행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1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 바벨론을 물통의 한 방울의 물이나 저울에 작은 티끌처럼 여기십니다.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것은 강대국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28절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그러므로 너희들은 앗수르, 바벨론 때문에 피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걱정거리인 앗수르, 바벨론보다 그들을 티끌이나 물방울 하나쯤으로 여기시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40:1에서 낙심하여 있는 백성들에게 “너희의 하나님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위로가 어디에서 올까요? 사40:3~4은 장차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될 세례요한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세례요한은 진정한 위로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에게서 옴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골짜기를 돋우고, 언덕을 고르게 하여 메시아의 오심을 길을 준비하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보라! 세상 죄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외침으로 백성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유도했습니다.
사람은 자칫하면 믿음의 시선이 흩어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저도 늘 한계를 경험합니다. 어쩔 땐 히말라야도 오를 것 같은데, 몸이 아프면 ‘이렇게 늙고 병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어 낙심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며, 그분에게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에 매이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선지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낙심을 치유하는 방도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제시했습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에 빼앗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가치관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이제 결론은 분명해졌습니다. 29절 말씀처럼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에게가 아니라,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창조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돈 많은 자가 힘을 얻음이 아니고, 권력을 쥔자가 힘을 얻음이 아니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습니다.
다윗은 시편18:1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바울도 그의 유언과도 같은 딤후4:17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짐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시는 분이심을 믿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더 가까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이 주 예수입니다. 또 비둘기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맘 어루만지사 위로와 평화를 주십니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낙심에서 일으키시고 힘주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어떤 문제로 힘이 빠져 있나요? 자녀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영적침체 때문에, 건강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습니까? 여호와를 바라보십시오.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함이 우리의 힘입니다. 여호와는 영원하시며, 전능한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해주시는 분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가 커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어도 별일 아닌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함은 우리의 일이며, 앙망하는 자에게 힘주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너희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문제에서 눈을 떼고 여호와를 바라보십시오. 어렵고 피곤한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여러분 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