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말, 14살 어린 소녀가 지친 걸음으로 경주시 구정동의 복지시설인 성애원을 찾아갔다.
약간 추운 날씨였는데 털 스웨터, 운동복 바지에 손에는 흰 종이 두 장을 들고 있었다.
은비를 처음 본 성애원 원순이(48) 원장은 '봉사활동을 하러 온 중학생'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로 왔니?"
이 아이는 어머니가 써주었다는 두 장 짜리 편지를 내밀었다.
- 은비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이름이 은비일 뿐 성도 없습니다. 제가 19살 때 낳았습니다.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했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 염치 불구하고 맡깁니다.
부디 불쌍한 이 아이를 저 대신 키워주십시오.
편지를 읽고난 원장이 물었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니?"
"엄마가 경주버스터미널까지 함께 와 이 편지를 이 곳에 전해주라고 했어요."
"엄마가 쓴 거니?"
"아뇨. 엄마가 부르는대로 제가 썼어요."
"공부는 했어?"
"한글은 알아요."
"학교는?"
"다닌 적이 없어요."
당시 은비는 알파벳도 모르고 컴퓨터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엄마하고 살던 데를 기억하니?"
"서울 수색동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원장은 이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정신병이 있는지 검사했다. 열네살이라는 아이가 학교를
안다니고 한글밖에 모른다니 혹 정신지체아가 아닌가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검사 결과 지극히 정상이었다.
2006년 9월, 14살이라는 주장에 따라 1992년 2월 18일생으로 새 호적을 만들었다.
호주는 아이 자신이었다. 그때까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는 은비의 호소에 따라 보육원은
검정고시 과정을 이수하게 도와주었다. 은비는 단 1년만에 초등과정, 중등과정을 다 합격하여
보육원 식구들을 기쁘게 했다. 바로 다음해 경주여고에 입학했다.
경주여고 이인환 교장은 "검정고시로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은비가 처음이고 검정고시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복지시설을 나와 경주여고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한 방에 8명이 썼다. 친구들에게
"나중에 의사가 될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이과생이던 은비는 2009년 11월 전교 석차가 46등이었다.
그러던 2010년 1월 5일 15시 20분, 보충수업을 마친 뒤 "복지시설에 장학금 서류를 전달하겠다."며
학교를 나간 뒤 실종되었다. 이날 보충수업은 오전 8시 20분에 시작해 오후 2시 50분에 끝났다.
이 날 아침 8시 4분 성애원 원장에게 "장학금 서류를 갖다드리러 집으로 갈게요.",
이어 4분 뒤 "6교시 끝나고 바로 갈게요."라는 문자를 한번 더 보냈다. 오후 2시 53분 담임교사에게
"장학금 서류 주러 성애원에 다녀오겠다"고 통화를 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그러고는 실종이었다.
성애원의 원 원장은 은비가 약속시간에 오지 않자 오후 7시에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오후 10시 40분에 "문자 보면 연락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오후 11시 20분엔 성애원 직원들이 은비에게 전화를 했지만 역시 꺼져 있었다.
다음 날 오전 7시 다시 전화했는데 신호는 갔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성 원장이 오전 8시 30분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는 "은비가 어제 기숙사에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제야 실종 사실을 알아차린 원 원장과 은비 담임교사는 경주경찰서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주경찰서는 즉시 수사반을 설치해 김은비 학생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방송 등에서 김은비 양을 찾는 호소, 청원 운동이 빗발쳤다.
한편 경찰에서는 김은비의 휴대전화 감청을 하던 중 실종 다음날인 1월 6일 오전 5시 43분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서 이 전화가 켜졌다 꺼진 사실을 알아내고 즉시 용인경찰서, 분당경찰서와
수사공조를 시작했다. 휴대전화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해당 기지국은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있어서 딱히 특정한 장소를 지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후 실종수사팀 이인우 형사는 학교 근처 CCTV 검색을 통해 김은비가 당일 오후 3시 13분에
경주여고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채 흰색 쇼핑백을 들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찾아냈다.
버스 승차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경주여고에서 성애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의심스런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이인우 형사는 경주여고를 지나가는 버스 25대의
CCTV를 조사했다.
5~6개의 버스 CCTV는 이미 지워졌고, 다른 CCTV에서는 은비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김은비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샅샅이 조사했다. 대부분 친구들로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전단지를 용인을 비롯한 경기도 지역에 뿌리고, 택시기사 등에게 배포했다. 용인시외버스터미널
CCTV도 검색했다. 또 휴대전화 전파가 수신된 수지구 기지국 인근의 CCTV 18대를 검색했으나
역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경찰은 김은비가 기숙사를 나갈 때 성경, 속옷, 하의와 상의 각 두 벌,
플루트를 챙겨간 것으로 확인하고, 실종이 아니라 가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던 중 1월 29일 SBS는 큐브라는 방송을 통해 김은비의 사연을 보도했다. 1년만에 초중등
검정고시를 마치고 경주여고에 입학,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경찰의 탐문 수사 결과 가출 가능성은 점점 더 커져갔다. 상식적으로 14살까지 엄마와 있었다면
분명 엄마가 어디 살고 있는지 기억이 날 테고, 그리워하던 나머지 부모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 추리에 따라 경찰은 은비가 예전에 엄마와 살았다고 주장한 서울 은평구 수색동에 가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은비 모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경찰의 가출 의심에 대해 성애원은 "은비처럼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이 말없이 가출을
했을리 없다."며 실종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원순이 원장은 "가출했더라도 은비는 전화라도 할
아이"라고 했다. 은비가 작년 12월 27일 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부쩍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원장이 "수능 뒤 같이 찾아보자"고 위로했다고 한다. 원 원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은비가 성경·플루트·바지 한 벌·상의 두 벌을 들고 나갔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에 대해 원 원장은 "은비가 찍힌 CCTV에서 은비의 손에 짐이 없었다"며 이 사실 자체를 반박했다.
한편 친구들은 은비가 평소에 부모님과 연락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주희라는 친구는 "은비는 엄마한테 온 문자라고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도 있고 올해 사촌동생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진학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아빠가 서울 유명 사립대 병원 의사인데
의료사고가 나고 일이 꼬여 어쩔 수 없이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친구들의 증언을 근거로 경찰이 가출 의심을 굳혀나가자 원 원장은 "은비가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도 평범한 가정에서 살던 아이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그렇게 거짓말했을 뿐 그동안 부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종수사팀의 이인우 형사도 "작년 8월부터 최근까지 은비의 통화내역을
조사해봤지만 부모라고 여길 만한 사람은 없었다"고 원 원장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후 수사에 전혀 진전이 없던 중 2월 2일 경찰서로 제보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 은비 학생 외삼촌입니다. 제가 SBS 큐브를 보고 제 조카가 나오길래 집에 확인해 보았는데,
은비(실명은 다름)는 지금 집에 잘 있습니다. 어머니, 가족과 함께 잘 있습니다.
황당한 제보였다. 경찰이 확인하니 사실 그대로였다.
여기서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미혼모가 맡겼다는 이 아이는 가족이 멀쩡하게 다 있는 아이였다.
경찰이 확인한 진실은 경악할 정도였다.
김은비는 가명이고, 본명은 따로 있으며, 2006년 4월 보육원을 찾아간 것은 실은 가출하여
갈 데가 없어 찾아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어머니가 쓴 편지라는
것도 이 학생이 직접 쓴 가짜였다. 이후 가명으로 호적신고를 마친 이 학생은 경주여고에 들어가
무려 4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거짓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이러다보니 당시 고3이던 그는 단 1년만에 초등학교, 중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할 수 있었다.
여고에 들어가 전교 14등을 한 것도 이미 다 배운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약 4년에 거친 가출에
싫증을 느낀 이 학생은 2010년 1월 5일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 보육시설에 들른다는
핑계로 기숙사를 나와 곧장 어머니가 사는 용인 수지로 돌아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반전 드라마가 또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김은비라는 가명으로 살아온 이 학생의 진짜 생년월인은 1998년 2월 18일이다. 성은 李다.
김은비 0410
가출일시 2006년 3월말 1015
귀가일시 2010년 1월 6일 0105
0410코드의 대범한 가출 드라마가 한 달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 학생은 주민등록법 위반죄를 지었으며, 속임수로 무상교육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민사에서도 무상교육을 받은 부분에 대해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할수도 있다.
보육시설에서 밥값 등 생활비를 구상청구할 수도 있다.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처벌을 면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영화사에서 영화 찍자며 제의해와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쇼킹한 사건이니만큼 새 소식이 들어오는대로 수정보완하겠다. 어차피 김은비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사진은 전국에 뿌려진 수배전단에 나온 것이니 명예훼손이 될 것도 없다.
- 아래 사진은 큐브에 나온 것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물두 살에 고3 연기를 하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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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 <가족 '정신적 문제 있다' 주장, 이전 학교는 '고3때 첫 가출...성적안나와 부담 가졌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