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도 힘들어 못논다
어제 해남 땅끝마을 쪽에 있는 큰댁엘 갔다. 큰아버님이 팔순을 맞아 조촐히 식사자리를 마련한다고 해서. 여수에서 왕복 6시간의 거리에 있는 제법 먼 거리다. 고향에 다다르자 눈에 익은 풍경들이 정겹다.
마침 큰댁 대문 앞에 마을회관이 있어 회관 방에 식사를 차렸다. 사촌들과 몇몇 친척 분들이 참석하였고, 마을 어른들도 몇 분이 오셨다. 식사와 술자리가 시들해지면서 마을 아낙들이-이미 육칠십을 넘긴 분들이라 할머니라고 해야 할 듯 하지만 이들보다 젊은 아낙들이 거의 없다보니 이 분들이 젊은 아낙들이라 한다.- 방 중심을 차지하고 화투를 시작하면서 걸진 입담에 웃음소리가 크다.
그 중에 찌르르 가슴을 파는 웃으개가 있었다.
“놀기가 힘들어야. 허리 꼬부리고 일하는 게 낫지, 놀기가 일하기 보담 징허게 어렵당께. 어디 놀 수가 있어야 말이제.”
“맞어야. 사람 하나 구경할라믄 눈구녕을 몇 번이나 씻고 와야 헌당께.”
“맞다야. 참말로 오늘이 잔치는 잔치다야.”
“이런 날도 드믄께 얼른 사람 있을 때 자리 깔어부러라이.”
한 아낙이 구석 간이 이불장에서 담요를 꺼내 펼친다. 그 안에는 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촤르르 화투장이 굴렀다.
이윽고 100원짜리 삼봉을 쳤고 우리 큰아버님 아낙들 속에 끼어 흥겨운 화투놀이를 즐기신다. 팔순의 남자는 이 젊은(?) 아낙들 속에서 별로 늙어 보이지 않는다.
내 고향 깡촌은 이미 늙어 있었다. 큰 길도 뚫렸고 집들도 더 호사스러운데, 사람들 말로는 예전에 비해 겁나게 발전했다는데 그 곳은 늙어 있었다. 짠한 아픔이 감도는 고향의 맑은 햇살을 받으며 친척 분이 살던 지금은 비어있는 집 앞에서 나는 조국 근대화에 불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되려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