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찬진씨 부모님께서는 미국 여행중이시다. 환갑을 맞아 미국 관광도 하고 외삼촌댁에도 다녀오실 겸 가셨다. 내가 정식으로 찬진씨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것은 두분이 미국으로 떠나시기 직전인 지난 7월 말이다.
오는 20일께 찬진씨 부모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시기 때문에 그 무렵 최종 결혼 날짜를 잡을 생각이다. 지난 9일 아침 일간스포츠를 보고 새벽부터 빗발같이 쏟아지는 매스컴의 전화로 정말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일간스포츠에서 말을 해주지 않아 우리도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미 보도가 되고 서둘러 기자회견까지 했으니 오는 31일 약혼식을 올리고 가급적 빨리 결혼식을 가질 생각이다.
찬진씨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컴맹이었던 관계로 찬진씨와 데이트를 하면 서도 그 사람이 그렇게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람인 줄을 몰랐다. 그저 컴퓨터 전문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그에 대해 몰랐는지를 설명 해줄 수 있는 단적인 사건이 있었다.
만난지 한달만의 일이다. 한번은 둘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 찬진씨 가 크레디트 카드로 계산을 하는데, 서명란에 '이찬진'이라고 자신의 이름 석자를 적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그의 이름을 '창진'으로 알았던 나는 깜짝 놀라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찬진씨는 예의 사람 좋아 보이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이름은 '이찬진'이라고 다시한번 정확히 소개했다. 어찌나 미안하고 무안 했던지.... 내가 워낙 연기 이외엔 정치, 경제, 컴퓨터 등엔 캄캄한 편이라 서 발생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우리는 별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만나서 데이트를 즐겼다. 출강중인 수원 전문대학의 강의가 끝나고, 찬진씨도 회사 퇴근후인 저녁시간을 이용해 만 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주는 쪽은 찬진씨가 아 니라 나였다는 사실이다.
운전면허증만 있지 운전을 하지 않는 찬진씨는 주로 택시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편이라 둘이 만나면 자가운전자인 내가 꼭 승용차로 찬진씨를 대방동집까지 바라다주고 방배동 우리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여느 연인들과 다른 데이트 방식에 처음엔 억울한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 이다. 여자들은 어느 정도 여왕처럼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공주병들이 약 간씩 있게 마련이다. 찬진씨는 나의 이런 심리를 만족시켜 주질 못했다. 마찬가지로 연애시절 내게 그 흔한 꽃다발 한번 자진해서 선물한 적도 없 다.
혹시나 하며 기대하다 지친 내가 "남들은 사랑하는 여인한테 꽃도 사보내고 그런다는데..."라며 찬진씨에게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서야 딱 한번 꽃다발 선물을 받기도 했다. 완전히 엎드려서 절받는 격이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자상함이나 섬세함을 갖추진 못했다. 하지만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찬진씨가 좋은 것은 내게 인간적인 깊은 신뢰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