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으로 치닫는 어느 날, 대구와 울산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하루를 더 머물러 영천의 은해사로 갔다. 단풍이 절경이라는 팔공산과 그 산의 자락 마다 입소문이 자자한 절집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은해사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여관을 하나 잡아서 하룻밤을 묵고 은해사까지 가을 들녘의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간다. 이른 아침. 제법 이른 시간임에도 촌로들의 가을 들일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긴. 가을걷이에 한창 바쁠 때이니 일분일초도 아까우리라.
농가의 담장 위로 빠알간 홍시가 수즙은 새색시처럼 감잎 사이로 얼굴을 내어민다. 그 담장을 타고 온 바람이 스칠 때마다 단풍나무의 붉은 잎이 오소소 떨어져 내린다. 바람의 가을이 난무하고 있다.
흩날리는 가을을 걸어 은해사에 도착했다. 일주문에서 입장료 2,000원을 주고 표를 끊은 후 합장 세 번하고 은해사로 들어섰다. 일주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금포정이 나온다. 조선 숙종 때 이곳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으니 이곳은 조선시대의 계획조림구역이다. 금포정이란 이곳 송림에서는 일체의 살생을 하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령 300년의 소나무들이 빼곡한 숲길을 따라 걸으니 보화루 앞이다. 보화루 앞 두줄기 폭포가 마치 변산의 채석강 같은 바위 벼랑 위에서 쏟아져 내린다. 여름에 와서 보면 참 시원할 풍경이로구나.
보화루를 들어서면 은해사 경내.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때 창건된 사찰로 당시 이름은 해안사 였으나 사찰의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들어 그 풍경이 마치 은빛이 넘실대는 은빛 바다와 같다고 해서 은해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화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오래된 향나무 한그루가 시선을 잡아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 오래되어 보이던 이 향나무는 경상북도 보호수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현액으로 남았다는 대웅전은 아쉽게도 대공사중이다. 기와를 전부 걷어내고 뻘건 진흙만 남은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하고 은해사를 마저 돌아본다. 성보박물관 앞에 이르니 하늘빛이 묘한 아름다움을 펼쳐내고 있었다. 흐리지만 밝은 잿빛의 하늘이 사찰 분위기와 잘도 어울린다.
산문 안으로 들어서니 청정하고 청정한 약수가 그득하다. 이렇게 맑은 물빛이라면 나 같은 중생의 업장도 정화하고 소멸 시켜줄듯 싶어 실컷 마셔본다.
은해사 큰절을 빠져나와 산내 암자 중의 하나인 백흥암을 향해 길을 잡는다. 흐리던 하늘에서 기어코 빗방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며칠간 영하의 날씨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우산을 접었다 피기를 몇 번, 다행히 비는 잠시 내리다가 그쳐준다. 고맙기가 그지없다.
가을 가뭄으로 말라비틀어진 단풍잎이 많이 눈에 띄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은 전체적으로 붉고 노란 가을 단풍산으로는 그 아름다움에 손색이 없다. 과연 팔공산이 가을 단풍산으로 유명한 것은 명불허전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가을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은해사에서 백흥암까지는 2.5km의 거리이니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백흥암에 도착을 하니 가을빛이 더욱 진하다. 단청 하나 없는 전각들이 오래된 목재의 빛깔 그대로의 색으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사찰이나 궁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단청과 문양이다. 그런데 오랜 전각에 이렇게 단청 없이 나무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단아하고 깔끔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가끔은 채색 없는 원래의 아름다움이 그 무게를 더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백흥암 경내로 들어서니 명경 같은 약수가 커다란 돌그릇에 넘실거리고 있다.
어찌나 맑던지! 이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면 자연히 정화가 되고 업장도 소멸될 것 같아 한 바가지를 가득 담아 오장과 육부까지 흘려보냈다. 백흥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기도도량으로 지금 스님들이 공부중이시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종무소에 들려 총무스님께 허락을 받고 자세히 돌아보고 싶어 종무소에 들르니 스님이 아니 계신다. 경내를 빼꼼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한다.
이곳의 극락전과 수미단은 모두 문화재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과 보화루를 사진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산문을 빠져 나오려니 진돗개 ‘견보살’이 배웅을 한다.
순하고 영특해 보이던 견보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니 하얀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백흥암에서 견보살과 작별을 하고 묘봉암을 향해 오른다. 백흥암에서 묘봉암까지의 다시 2.3km. 콘크리트로 포장된 산길은 점점 가파르게 바뀌어 간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이 점점 힘겹다. 그래도 숨었다 나타나는 가을 풍경들이 있기에 큰 위안이 된다. 해발고도는 점점 높아만지고 산길은 끝이 없다.
얼마나 올랐을까? 돌아보니 세상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작은 절집. 묘봉암. 묘봉암 역시 은해사의 부속 암자로 관음기도와 산신기도의 성지로 유명한 암자라고 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은해사의 대중스님들께서 올라 산령각에 기도를 올렸던 암자로 국운을 걱정했던 스님들의 호국불심을 느끼게 하는 암자다. 바위 언덕 위에 올라서면 원통전이 세상을 내려다보듯 세워져 있고 이 원통전 안에는 지붕 같이 튀어나온 자연석 아래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는 자연석 아래 부처님을 모셨던 석굴이었는데 지금은 그 위에 법당을 지어놓아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게 된 것이다. 묘봉암 원통전에 도착을 하니 스님의 염불소리가 팔공산 산자락이 단풍빛으로 적셔져가듯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예불이 끝나길 기다리며 공양주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주지스님을 뵙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며 점심공양도 하고 스님도 뵙고 가라고 하신다.
인연이 있던 먼저 주지 스님은 지금은 영천의 다른 절로 떠나셨고 새로 오신 스님도 참 좋은 스님이시라고 꼭 뵙고 가란다. 예불이 끝나고 스님과 함께 점심공양을 한다. 기골이 장대하신 스님은 하얀 눈썹이 매력적이신 분이었다.
팔공산이 좋아 속가를 떠나서도 이곳 팔공산에서 오랜동안 공부를 하셨다던 스님은 얼핏 팔공산의 산신령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말년을 지낼 절집을 찾다가 마침 이곳 묘봉암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스님은 이 작은 절집이 너무 좋다며 맑은 미소를 짓는다.
안 바쁘면 하루 묶어가라는 스님의 말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이왕 나선 길이니, 이곳 팔공산의 절집들을 더 찾아보고 싶어 암자를 나섰다.
스님께 깊은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찾아뵙겠다 하니 선물까지 챙겨주신다. 한사코 손 사례를 저었지만, 너 사양하면 섭섭해서 안 된다며, 꼭 가져가라고 비닐봉지에 담아 잘 챙겨주신다. 스님의 선물은 부처님 성불하신 보리수의 손자나무의 이파리를 넣은 액자다. 가지고 다니기에 다소 불편할 듯싶었지만 스님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고 묘봉암을 나섰다.
깊은 겨울이 오기 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스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있을까? 막상 길을 나서면 반나절이면 찾을 수 있는 곳인데. 덕원(德園)스님. 감사합니다.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님 건강하시고 성불하소서.
묘봉암을 넘어 중앙암으로 가고 있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갔다. 중암암으로 접어드는 길은 긴 화강암 돌계단이 좁게 이어져 있다. 이곳 역시 숲은 붉은 단풍빛으로 가득하다. 묘봉암과 달리 이곳 중앙암은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인지 찾는 관광객들이 무척이나 많다. 건들바위를 지나니 바위문이 나타난다. 건들바위는 어느 밤 암자 위에 있던 바위가 큰소리를 내며 절을 덮칠 듯이 들썩이고 있어서 스님이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 원래 있던 자리보다 한참을 뒤로 물러서서 자리를 잡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바위다. 엄청나게 웅장한 바위 몇 개가 뒤엉킨 사이로 좁은 바위문 보인다. 이 바위의 짧은 굴이 천왕문이고 중앙암의 일주문이기도 하다. 돌구멍절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돌구멍을 지나면 중앙암이다.
중암암은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로 암자 위로도 절벽이다.
이곳의 다른 유명한 것은 화장실, 바로 해우소이기도 하다.
이곳 해우소 역시 바위 위에 지어진 터라 볼일을 볼때 그 깊이가 끝도 없어 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스님들 끼리 자기 절이 좋다고 자랑하다가 이곳 중앙암이 해우소 하나만 해도 이 정도이니 이 보도 더 크고 좋은 절이 어딨겠냐는 일화로도 잘 알려진 절이기도 하다.
뭐니뭐니해도 정말 유명한 것이 바로 기암에 세워진 절의 진귀한 풍광에 있지 않을까?
중암암 뒤로 돌아 오르면 더우 유명한 석굴을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극락굴이다.
극락굴 앞에 도착을 하니 바위굴 안에서 아주머니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난 벌써 다섯바퀴째다. 네바퀴 남았어.
난 여섯바퀴 남았다.
극락굴의 바위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거대한 바위 사이로 'ㅁ'자 굴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굴을 아홉바퀴를 돌면 업장이 소멸되어 극락에 갈수있고 소원도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아주머니들이 그 좁은 굴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한번 돌아볼까!'
처음에는 넉넉하게 들어갈만한 공간이 꺽이면 꺽일수록 점점 좁아진다.
그리고 마지막 빠져나오는 구간.
몸이 낀다. 헉! 이러다가 갇히는 거 아닌가?
뒤에 따라오시던 아주머니 이번에는 몸을 낮추고 밀어넣으라는 것이다.
몸을 낮추고 다시 밀어 넣는다. 아이고! 이제 옴짝달싹도 못할 지경이다.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하니 식은땀까지 흐른다.
아주머니 도저히 움직여지질 않아요! 나좀 살려주세요!
기겁을 하며 사정을 하니 내팔을 잡아끌어 빼내어준다. 덕분에 뒤에 따라오던 아주머니들 전부 도로 원위치!
진땀을 흘리며 굴 입구로 빠져나오니 아주머니들 살 빼라고 핀잔을 주신다.
십년감수한 기분으로 진땀을 훔치고 있노라니 아저씨 한분이 신나게 웃으며 쳐다보고 계신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셨나보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일행의 남자분 비명소리가 굴 밖으로 들려온다.
사람살려~~~
굴 입구에서는 웃음보가 터진다. 전부 같은 경험자들인 것이다.
극락가기 글른 사람들이다. 하하하!
바위에 낀 사람들이다. 하하하하!
중암암에서 봉우리를 하나 넘어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다시 암자 하나와 마주친다.
기기암이다.
선본사 갓바위까지 들러볼 작정이었는데 묘봉암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갓바위까지는 시간상 무리다.
선본사 갓바위는 다음 기회에 들러 보기로 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온다.
그리고 찾아든 곳이 기기암이다.
입구부터 조경이 아름답다. 조경석 사이마다 나무를 심어 주변경치와 무척이나 잘어울린다.
그 조경석 위에 새로 지어진 법당과 선방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서 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스님들 수행에 방해가 될까봐 꾹 눌러 참는다.
다시 내려와 옛날 전각들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얼핏 보기에는 일반 사찰의 전각과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듯한 전각과 전각을 잇는 작은 나무다리는 툇마루까지 이어지고 그 툇마루는 반짝거리며 가을 사그러져가는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이 기기암은 고려시대 기성대사가 '몸은 사바세계에 머물고 극락에 머문다'는 오묘한 뜻을 담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은수납자들이 참선의 수행처로 경내는 신성하고 고요하기 이를데 없는 암자였다.
발자국 소리 하나도 조심스럽던 기기암. 어디선가 낙엽 떨어지는 사그락 거림 마져 큰 울림이 될듯한 암자. 마치 수행자 처럼 경건함을 안고 돌아나오던 팔공산.
이 가을 단풍잎 만큼이나 붉은 불심(佛心)을 느껴본다.
-미디어붓다 김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