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민일보 [데스크칼럼] 윤승병 <편집국/부국장>
DJ는 '호남민중'의 '정신적 지주'
2009.08.13.00:01
광기와 맹신이 소용돌이치는 시대, 불의만 있고 공분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그래도 당신 있어서 한 줄기 희망이었는데, 가시더라도 아직은 아닙니다. 훌훌털고 일어나십시오. 태양은 하나 뿐 결코 둘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정치적으로 유일한 호남의 태양격, 홀로 크게 빛을 발했던 태양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호남민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종교를 비유해서 말한다면, 신적(神的) 인물이었다.
호남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냉대 받는, 비권력의 땅이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때는 수많은 이들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영남군부에 의한 '광주학살'로 불리운다. DJ는 이때도 호남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민주주의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군법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아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온갖 핍박을 받게 된다.
누가 뭐라해도, DJ는 호남에서는 살아 있는 신과 같은 정치인이었다. 신은 누가 만드는가? 종교학적으로 따지면, 결국 신도 인간이 만든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앙의 정점에 있는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진대, DJ는 호남민중들이 자신들이 느껴온 정치적 차별과 긴 한을 풀어줄 기대인물이었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이면서 신적 지위에 올라간, 단 하나뿐인 이 시대 호남 민중의 영웅이었다.
DJ는 호남(湖南) 민중의 태양(太陽)이자 신(神)이었다.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태양이자 신이었다. 더 나아가 지구상에 흩어져 살아온 한민족의 정치적 태양이자 신이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받아들인 나라이다. 국체, 즉 나라의 몸이 자유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다. DJ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질기게 한 평생 살았던 정치인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운은 날로 융성,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 모두 민주주의라는 국가의 몸(國體) 때문이다. DJ의 일생은 오직 나라를 위한 길고긴 장도(長途)였다.
태양이 빛을 잃으면 어둠이 몰려온다. 그렇듯 태양적 인물인 DJ가 사망(서거)한다면 당연히 호남 민중들은 정신적 공황, 어두움 속에 휩싸일 것이다. 새로운 큰 인물, DJ 보다 더 크거나 그와 버금갈 수 있는 큰 인물을 대망하면서 그 어둠을 묵상할 것이다.
종교적으로, 추앙해오던 신이 사망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남민이 DJ가 인간인줄 알면서도 그에게 신에 준할 정도로 깊은 신뢰와 믿음을 보냈던 것에 대하여 호남민들은 가슴으로 슬픔을 맛볼 것이다. 그는 불면(不滅)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떠나 보내야하는 슬픈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DJ에 대하여 굳이 작은 지역인 호남을 전제로 한 것은, 그가 태어난 고향이 호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신적 영역에서는, 장소를 막론하고 그를 존경하는 염(念)이 강하다면, 그런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 자체가 호남이 될 수도 있어, 지역적인 제한성을 탈피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DJ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 호남을 너머 이 땅이 낳은 큰 인물이다.
DJ는 민족이 갈라진 남북분단의 상처치유를 위해 평생 일했던 정치인이었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취해냈고, 남북한 화해-협력의 신기원적 모델을 창출했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DJ는 호남민을 이끌었던 정치적 중심인물이었다.
이쯤해서 바라는 일이 있다. 바라건대 그 허탈함의 기간이 길지 않고, 다시 움트는 새싹의 새순이, 대한민국과 세계 앞에 기여할 수 있는 위대한 DJ의 후신이 나타났으면 한다. DJ 보다 뛰어난 정치인물이 호남, 아니 대한민국에서 다자(多者) 배출되어 DJ보다 더 웅대한 정치지도자가 출현하기를 대망한다. 아니 갈망한다.
운명은 재천(在天)이라 했거늘, DJ의 남아 있는 생이 얼마인지 모르나 마지막 1초까지라도 이 문명의 시대에 지구상 마지막 남은 민족분단의 치유에 기여하기를 소망해본다.
한국 정치사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했다. “(DJ와는) 평생을 함께한 경쟁자이자 협력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관계일 것”이라며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다.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역사적 화해'를 한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DJ를 문병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화와 민족 화해에 큰 발자취를 남긴 나라의 지도자이신만큼 문병하고 쾌유를 비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다.
DJ는 여섯 번째 사신을 패대기치면서 보기 좋게 병상에서 일어나셔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남긴 국가적 갈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해 놓아야 한다. 다섯 번 자신을 구했다는 하나님이 그의 호흡을 살려낸 것도 그런 소명을 위한게 아닐까 싶다.
당신은 몇 차례나 운명의 끝자락까지 다녀온 사람답게 감정적 언행을 자제할 줄 알았으며, 증오하는 사람들과 양식을 잃은 언론의 모진 붓질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도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역사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 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통한 죽음 앞에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진 것 같다"고 통절한 절규를 남기고, 상심하여 그 길로 누우셨다니, 그 '반쪽'마저 속절없이 가버리면, 이 민초들을 어찌하시렵니까. 이번에도 '새벽처럼' 돌아오소서·····,
가슴팎에 성한 곳 없을 상처를 안고도 당신은 이 겨레, 이 땅, 민주주의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민주주의와 조국사랑은 종교의 엄숙주의에 가깝고, 역사에 대한 경건한 자세는 수도승과 닮았습니다.
예리한 칼 끝에 심장을 난도질 당하는 아픔을 견디고 살아온 고통과 한 많은 세월, 어찌 당신 육신의 세포 마디 마디가 멍들지 않았겠습니까만은, 소용돌이 치는 역사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겪어왔던 고난의 풍상에 어찌 온전한 부위가 남았을까마는, 그래도 당신은 꼭 일어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