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이 쪽팔리면 안된다 아이가'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마지막에 한 말이다. 친구들이 자신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도록 요구하였지만, 끝내 자신이 친구를 죽였다고 진술을 한 것에 대하여 교도소를 면회를 간 친구가 '왜 법정에서 그렇게 말을 하였느냐?'고 한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는 가끔 부산을 가면 범일동 도로가에 세워놓은 영화 '친구'의 기념조각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폭력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약간은 무모하고 그래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켜나가는 그 영화의 매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통부에서 조방앞으로 건너가는 철길 건널목 다리아래 시궁창에 어떤 배우가 얼굴을 처박으며 떨어지는 영화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영화배우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였었다.
오늘은 설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매우 춥다. 다음 주말이면 춘분이 다가오는데 이러다 늦겨울이 오는 봄의 바지가랑이라도 잡지 않는 것인지...
정초부터 안빈낙도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안빈낙도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이 아니라 안분지족 (安分知足)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봄이오면 주말농장을 일구고 밭농사를 열심히 지어야겠다. 많은 수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아침 길을 걷다보니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이른 아침에 자신의 몸에 이름을 새기고 지나가는 자동차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직업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온 것이다.
그중 평소 아는 인물도 있고, 소문을 들어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다 그렇듯 한결같이 머리속에는 돈으로 세상을 매수하고, 권력으로 세상을 짓누르려는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그들도 당연히 선택을 받고나면 언제 보았냐고 모른체 할 사람들일 것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다 주인이 있거나, 없어도 서로들 가지려고 온갓 짓거리를 다 해댄다. 그래서 가지면 못가진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는 세상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수렵어로시절의 약탈근성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양심이 마치 자신의 양심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서는...
요즘세상 그들만의 의리, 명분이 밥먹여 주는 세상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세상살이 쪽팔리게 살지 말자!
누구의 말처럼 이 세상 '괜히 왔다간다' 는 소릴 하지않게
안그러면 양심마저 서글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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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安貧樂道)
원헌(原憲)은 공자의 제자다. 그는 청정하게 절개를 지키며 안빈낙도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집은 풀로 엮었고 문은 쑥으로 만들었으며 문기둥은 뽕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지붕에선 물이 새고 아래로 습기가 찼다. 하지만 원헌은 단정하게 그 가운데 앉아 전혀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예악(禮樂)과 교화(敎化)를 닦으며 도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자공(子貢)이 원헌을 방문했다. 그는 큰 말이 끄는 거대한 마차를 타고 순백의 화려한 의상을 걸쳤다.
원헌이 사는 곳은 골목이 좁아 자공의 큰 마차가 지나갈 수 없었다. 자공은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걸어서 원헌의 집을 찾았다. 이때 원헌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를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채 그를 맞았다.
가난하고 병들어 보이는 원헌의 모습을 본 자공이 물었다. “아! 선생께선 병이 나신 것입니까?”
원헌이 대답했다. “내 들으니 돈과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 하고 도를 배웠음에도 힘써 행하지 않는 것을 병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가난하긴 하지만 병이 든 것은 아닙니다.”
자공이 이 말을 들은 후 몹시 부끄럽게 여겼다.
당나라 때 오균(吳筠)은 ‘영원헌자(詠原憲子)’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재물이 없어 가난하긴 하지만 도가 있어 진실로 병든 것은 아니라데, 자공이 그의 높은 풍격을 흠모하며 물러나 화려한 수레를 부끄럽게 여겼다네”
공자에게는 또 안회(顔回)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한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만으로 간소하고 비루한 곳에 살았다.
모두들 이런 생활을 고생스럽게 여겼지만 그는 오히려 한마음으로 도를 추구하며 시종일관 즐거워했다. 공자도 이런 안회를 칭찬하며 현명하다고 했다.
사실 신전문화(神傳文化) 속에는 유, 불, 도를 막론하고 모두 ‘도를 얻는 것(得道)’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빈곤의 고통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도를 찾아 도를 배우며 도를 얻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즐거움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안빈낙도이다.
사실 가난하고 천한 것은 도를 얻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단지 개인의 절실한 이익과 관계된 가난과 부귀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으로 도를 추구하는 마음의 확고함을 형용하고 이를 통해 세속의 그 어떤 이익과 유혹도 그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