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를 자주 키웠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강아지들이 2/3정도 된다.
어렸을 적, 말잘듣고 착한 진돗개 '가리'는 아파서 죽었고, '도꾸'라고 불리던 검은 색의 잡종개는 너무 멍청해서 엄마가 팔아버렸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나운 개가 한마리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개는 너무 착하고 멍청한 도꾸를 많이도 괴롭혔다. 엄마는 도꾸와 그 사나운 개를 한번에 처리해버리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쁜이'이라고 불리던 발발이 한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내가 대학1학년때였는데 2년정도 키웠나? 말도 잘 듣고 착하고 나름대로 똘똘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이쁜이'는 남의 집에 들어가 밥상 위의 반찬을 먼저 시식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개'가 사람 먹는 밥상을 탐하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이쁜이'는 집에 없었다.
엄마는 아무리 이뻐도 개가 어떤 '사고'를 일으키면 어떤 식으로든 처분하셨다.
결혼을 하고 나도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울산에 와서 처음으로 키우게 된 강아지는 '나리'였다. 시누남편이 데리고 온 강아지였다. 종을 알 수 없는 잡종이었지만, 우리 말을 잘 듣고 제법 귀염을 부리는 강아지였다. '나리'를 키우던 중에 친척이 키우던 시츄 '아리'를 데리고 왔다. 그 강아지는 집안에서 키우던 강아지였지만, 우리 집안의 전통상 집안에 키울 수 없어 현관밖에 메어놓았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나리'만 돌아다니고 '아리'는 집에 없었다. 동네를 수소문하여 알아본 결과, '나리'가 '아리'를 데리고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아래채에 살던 사람이 문을 열어놓은 틈에 나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리'가 동네 할아버지들이 준 막걸리를 받아마셨다고 한다. 동네 지리에 익숙한 나리는 비틀거리며 돌아오긴 했는데, '아리'를 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 후 우리는 '아리'를 볼 수 없었다.
우리 술주정뱅이 '나리', 나리는 새끼를 낳은 후에는 더욱 자주 외출을 하였고, 꼭 남의 집에가서 변을 보고 돌아왔다. 하는 수 없어 우리는 시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으로 보내고 말았다. 며칠 뒤, 나리는 없었다.
그 다음에 키우게 된 강아지는 '레오'였다. 아래채에 사는 사람들이 자꾸 문을 열어두는 통에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져 진도개 한마리를 가져왔다. 용감하라고 이름을 '레오'로 붙여두었는데, 그 고마운 강아지는 우리가 그 집에 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을 무사히 지켜주었다. '레오'는 우리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 현관에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한 강아지였다. 배달부도, 경찰도, 이름 모를 이상한 방문자들도 '레오'가 온 후부터는 현관문을 불쑥 여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동네는 오래된 동네여서 경찰과 낯선 사람들이 '도망자'들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아파트로 이사한 후, 아이들은 강아지를 그리워했다. 그래도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는 없는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동물병원을 지나다 무료분양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그 동물병원에서 태어난 강아지인 모양인데 주인이 못키우겠다고 동물병원에 두었다고 했다. '공짜'라는 말에 혹해서 데려오고 말았다. 닥스훈트인데, 이름을 '카이'라고 지었다. 당분간 어른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야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참 좋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변도 치우고 오줌도 뉘우고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훈련시키는 방법도 익히곤 한다.나는 아이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만일 강아지 때문에 집안이 더러워지거나 이웃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도로 데려다 주겠다고. 그래서인지 싫은 내색안하고 잘 돌본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재미난 것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닥스훈트는 '서열'을 잘 가린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주인인지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는 것. 좋은 습관을 유도해서 그것을 강아지의 성격으로 변화시켜두는 것이 좋다는 것 등. 예를 들어 실수로라도 착한 일을 한다든지 하면(착한 일이라고 해서 별건 아니고, 지정된 장소에 변을 눈다든가, 명령을 잘 들었을 때) 칭찬을 해주면, 그것이 습관으로 몸에 배게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새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