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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김영춘 통일강국의 꿈
 
 
 
카페 게시글
김영춘의 눈 스크랩 지리산둘레길 운봉~창원 구간(26km)을 걷다.
하늘이 추천 0 조회 8 09.11.24 11: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1. 14(토) 바람불고 흐림.

 

아침 7시에 금성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식사를 하고(음식이 맛있다고는 말못함) 8시에 길을 떠났다. 읍내가 끝나는 지점에 서림공원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비전마을을 지나 화수교까지 약 4.5km는 람천을 따라 비포장 둑길을 걷는 호젓한 길이다. 지난 9월에 왔을 때 버스기사가 잘못 내려주는 바람에 신기교에서 운봉읍까지 2km 남짓을 거꾸로 걸어봤었는데, 그 길을 되짚어 가며 불과 2달 만에 을씨년스러워진 늦가을 강변 풍경에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새삼 실감하였다.

 

 

 (서림공원과 람천의 모습)

 

4km 정도를 걸으면 황산대첩비가 나타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장군이던 시절, 이곳에서 왜구의 부대와 싸워 크게 이긴 전공을 기려 세운 비각이 자리를 넓게 잡고 서 있다. 넓이가 1,000평은 족히 될 듯하였다. 바로 지척의 비전(碑前)마을은 이 대첩비 옆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그 사실보다 훨씬 가까운 역사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마을이다. 바로 판소리 동편제의 본향이라는 사실이다. 마을의 입구에 역시 수백평이 넘어 보이는 넓은 집이 서 있고 그 안에는 조선 말엽의 가왕(歌王) 송흥록(1863년경 사망)과 20세기의 국창 박초월(1916~1983)의 생가들이 복원되어 있다. 송흥록은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는 인물인데 철종 임금 앞에서도 소리를 하여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까지 받았다니 그의 소리가 얼마나 절창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수교를 건너 대덕리조트를 지나치면서 길은 람천을 버리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옥계저수지를 만나 눈을 즐겁게 하고 야트막한 산을 넘으니 흥부골휴양림이다. 거기서부터 월평마을을 지나 인월면 소재지까지는 한 식경 거리이다. 11시 경에 지리산길 안내센터에 도착했다. 운봉~인월 구간은 9.4km인데 중간에 좋은 구경거리들이 있어 시간이 더 걸렸다. 안내센터를 구경하고 봉사하는 분에게 다음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할 곳이 있는가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덕분에 인월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안내센터 바로 옆에 있는 <한우마을>이라는 정육점 식당에 들어가서 소고기떡국을 먹었다. 날씨가 추워선지 따뜻한 떡국에 대한 연상이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식사후 인월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출발한 시각이 12시 20분. 원래 인월~금계 구간이 한 코스로 설정되어 있는데 개통된 5개 구간 중 가장 긴 19.3km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아침에 운봉~인월의 9.4km를 걸었으므로 금계까지 간다면 인월 시내를 걸은 것까지 쳐서 오늘 30km 가까운 거리를 걷게 된다. 내일 남은 금계~동강 구간이 15.2km에 불과하므로 오늘 구태여 무리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서 금계에서 3.2km 못미친 창원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전화로 민박집에 예약을 했다. 중군마을을 거쳐 시멘트포장로를 한참 따라 올라가니 황매암 입구이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갈래는 오솔길을 올라가는 황매암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포장로를 따라 내려가는 쉬운 길이다. 길의 설계자는 강요하지 않고 두 길을 모두 안내하고 있다. 우리는 주저없이 황매암길을 따라 나섰다.

 

정취있는 오솔길을 걸어 황매암에 도착하니 13시 20분이다. 인월에서 1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장항교까지가 다시 1시간 거리인데 길에서는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장항마을 입구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서 있었다. 수령이 4백년이라는 늙은 소나무인데 내 눈에도 영물이구나 하는 느낌이 올 정도로 장대하면서도 기품있는 모습이었다. 장항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다 내려가기 직전에 <장항쉼터>라 이름붙인 간이 천막식당이 하나 있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았다. 추웠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소냐, 달막달막하다가 파전 안주로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 술 못마시는 후배는 한 잔 막걸리에 나중 고갯길에서 내내 힘들어했다. 애고, 술먹인 내가 잘못이지... 

 

 (황매암을 막 지나 낙엽쌓인 오솔길)

 

 (장항마을의 당산나무 - 접근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았다)

 

 매동마을 입구에서 등구재 5.3km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이 마을은 둘레길이 처음 시작되었던 곳으로서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민박시설이 많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정표에서 제법 거리가 멀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지만 꽤 큰 마을이었다. 매동마을 건너편 산자락에는 일성콘도가 높이 서 있었다. 지리산록의 아기자기한 마을들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콘도미니엄이 생뚱맞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 숲 속 길과 콘크리트 농로를 번갈아 걷는 길이었다. 상황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잠깐 다랑이논의 둑길을 따라 걷기도 하였다.  

 

천천히 걸어서였을까, 등구재 고개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5시였다. 이 고개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점이란다. 이제는 우리같은 나그네들 아니면 사람의 왕래조차 뜸한 길이지만 옛날에는 창원, 금계, 의탄, 의중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넘어 인월장을 보러 다녔다는 길이다. 그 세월의 부침을 되새겨보며 창원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제법 규모가 크다. 나중에 들으니 산골 마을로서는 이례적으로 100여호나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과거 200여호에서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2km 거리의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서울서 내려와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한 후배를 기다리며 연락을 취하는 사이, 금새 마을길이 안보일만큼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산골의 일몰과 명암의 반전이 이렇게 급격하다.

 

 (등구재를 넘어오면서 찍은 장면-사진 속 인물은 위의 표지를 읽고 있다)

 

우리가 예약했던 민박집 이름은 <하여사밥상>이다. 식당은 아니지만 이 댁 여주인인 하여사님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 ‘밥상’을 앞에 내세운 것이다. 나는 경상도 사람으로서 이렇게 음식 솜씨가 좋은 주부는 처음 만난 것같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와서 옆방에 묵게 된 전주 아저씨도 저녁을 먹으며 계속 ‘정말 맛있다’를 연발하였다. 나중에 합류한 우리 일행이 연구소의 여성 회원이라서 원래는 이 집에서 옆집 방을 얻어주기로 했는데, 불을 때지 않아 방이 차가울거라며 우리 남자들보고 마루에서 자라고 권한다. 하는 수없이 방은 여자 후배에게 내주고 우리 둘은 마루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마루의 큰 유리창 너머로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구름에 덮혀버리고, 낮부터 불던 바람은 지붕을 날릴듯 거세게 울어대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내일 서울은 영하 2도라는데 이렇게 바람이 불면 추워서 어떻게 걸을까 걱정하다 잠이 들었다. 원래 이 동네 출신이면서도 수십 년 동안 부산 등 외지에 나가 살다가 7년 전 귀향했다는 이 집 아저씨가 새로 지은 집인데도, 장작을 땐다는 이 집 난방이 워낙 강력해서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추운 줄을 모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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