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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주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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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 |
象 |
物 |
invisible |
sensible |
visible |
intangble |
intangible |
tangible |
한 개인에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허공의 기운은 일단 자신과는 무관하므로
정체가 불명한 氣로 정의한다. 이것은 느껴지지도 않고 별반 의미도 없는
‘무감각한 (insensible; 인센서블)’한 영역이다.
여기에 어떠한 동기 因子가 개입되면 그것은 차츰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단계를 象으로 논한다. 象은 막연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현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보이지만(비저블: visible), 실제로는 쥐어지지 않는(인비저블:
invisible)’ 특별한 현상으로 설명된다. 가령 甲木과 같은 것이다. 글자는
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구체적인 형태를 설명할 수 없다.
이제 世事에 대입하여 象을 논해보자.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까. 범인들은 나타난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근거나
이유로 그것을 설명하지만, 정작 필연적인 因果는 간과하기 십상이다.
실은 인간의 思惟로는 헤아리기 요원한 세계가 있으므로 命理는 그것을
살피고자 했다. 甲이라는 象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주체에게 각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것을 일차적으로 분화시킨 것이 바로 六神이다.
甲는 財도, 官도 되며 혹자에게는 印이나 食일 것이다.
우선 財에만 포커스를 맞추자.
歲月에서 甲을 보면 혹자는 財를 취하고, 혹자는 財를 잃는다.
이때 財의 得失은 모두 우연하게 이뤄진 게 아니다.
예외 없이 財를 탐(貪)하거나 구(求)하는 의지가 바탕이 된 것이다. 혹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지금 속된 貪慾을 논하는 게 아니다.
凡人은 스스로 富를 쫒았다고 하겠지만 그것도 틀린 소리다.
運에서 甲木 財神이 도래했기에 자연 財貪(蓄財에 대한 의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의 얘기가 아니다.
富者가 되었다고 하자.
거기엔 분명 원인과 교훈이 있다. 보통은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과 지혜가
개입된다. 그러나 富를 스스로 쌓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運이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력했다고 반문한다면 입을 다물고 싶다.
財神이 도래하지 않으면 아예 財를 향한 의지조차 나타나지 않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총명한 수험생도 運이 배반하면 이전과 달리 부진해진다.
運이 오면 鈍才도 곰과 같이 공부하고 底力을 보이게 된다.
반대로 破産했다 치자.
이럴 때면 스스로 분개하며 분수를 잃었다고 심히 자책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평정심을 잃은 것은 運이 배반했기 때문이다. 財神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財貨를 貪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命理의 시초다.
눈부신 성공을 거두어도 겸손을 잃지 않는 게 마땅하다.
바닥을 쳐도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은 금물이다.
그런데 특별히 재화를 탐하지 않고, 욕구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되고 거지가 되는 수가 있다. 부자가 되려는 의지가 강렬하지도 않았고,
크게 욕심을 부린 일도 없는데 興하거나 亡했다.
이것은 寅木 財神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寅木은 한 개인의 의지와 향상심 등과는 무관한 요소다.
甲과 寅은 그렇게 다른 것이다. 甲도 木이요, 寅도 木인데 다 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너무 심하게 아래 수준이다. 피드백이
요구된다.
甲은 象이요, 寅은 物이다. 재차 甲을 정리해 보자.
이것은 보통 ‘감지는 되지만(센서블: sensible)’, 확연하게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감지된 象이 구체적인 物로 화현(化現)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감되고 보이는(비저블: visible)’
것은 物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甲만 보고도 財를 得한 경우는 어떤 상황일까. 이것은 八字 중에
이미 寅木의 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象이 物을 보아 이 둘이
조합된 것을 두고 바로 ‘物象의 결합’이라 한다. 한편 ‘甲+寅’이 아닌
寅 만으로 부자가 된 것은 어떤 연유인가. 이는 글자 그대로 物의 유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八字 원국에 甲의 象이 존재한다면 재정적인 성취는 한결
명료해진다.
天干은 象이요, 地支는 物이다. 干支가 결합되면 物象을 이루므로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
또 地支의 物 그 자체만으로도 현상으로 나타남을 논했다.
이렇게 物이나 物象으로 기물(器物)을 이루면 실감나는 得의 국면이 된다.
氣가 증폭되어 구체화된 이 같은 영역을 ‘유형(탠저블: tangible)’의
범주로 분류한다. 이때 ‘체감도(actual feeling)’가 가장 높은 것은
物象이 결합된 시점이자, 상황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구하고, 그것이
언제 손에 쥐어질지를 가늠하는 확실한 척도로 삼을 때는 먼저 ‘物象이
결합되는 시점’이 근거로 한다.
象만 나타나고 物이 나타나지 않으면 현상을 단지 見했을 뿐 得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단순한 기초 중의 기초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숱한 術客들조차 이를 모르고 자신의 머리를 깎지 못하는
사태를 보아왔다.
단지 財의 象만 비치는데, 財神이 도래한다고 해서 상황이 호전될 것이란
착각을 한다. 이는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결과로 귀착된다. 또 단순한 物象의
결합 이외에 化現되는 運氣의 조합이 있는데, 이것들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언제나 헛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世事는 뜻한다고 해서 모두 구해지는 게 아니다.
象이 物과 결합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뜻하는 바가 실현된다.
또 어떤 대상을 바라고 구하지 않아도 物 그 자체의 運으로만 유입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得이 곧 福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物象의 결합이 지나치면 오히려 덧없는 결과를 보게 된다. 어디 이 뿐인가.
命理의 기틀은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각론에서 후술한다.
그러니 五行 生剋制化의 단순한 툴(tool)만 가지고 世事를 읽어낼 심산
이라면 그 용기는 가상하지만 또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實體와 虛像을 분간하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리해 보자.
氣는 미진하고 무의미한 단계에서 증폭되고 化現된 物象에 이르기까지
광의적인 개념으로 쓰이지만 ‘파이널블로’가 언급하는 氣는 物象으로
실체화되기 이전 협의의 의미로만 쓰게 된다. 따라서 ‘보이지도 않고
(인비저블: invisible)’, ‘형체로 인식되지 않는
(인탠저블: intangible)’의 영역에 속하는 범위에 국한해 氣로 일컫는다.
invisible |
visible |
氣 |
象 |
物 |
物象 |
木 |
甲 |
寅 |
甲寅 |
intangible |
tangible |
이제 실상에서 得失을 논한다면 ‘tangible 군’에 속하는 寅木, 物이나
甲寅, 物象을 보아야만 得으로 실감될 수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보이지 않게 형성된 木氣나 甲木의 象 만으로는 得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象에 속하는 甲은 物인 寅을 보지 않는 한, 無用에 불과하단
말인가. 혹은 甲에 비해 寅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뜻일까.
또 八字에 존재하는 글자의 의미와 歲月에서 다가오는 글자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