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13)
오늘은 로마서 강해 열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성경을 보면 중간, 중간에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한 번에 한 소제목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9장 30절에서 시작되는 “믿음에서 난 의”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말씀을 살펴 볼 차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믿음에서 난 의”라는 소제목에 속한 말씀은 9장에서 끝나지 않고 10장 15절까지 갑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성경의 1장, 2장, 1절, 2절, 3절 하는 구분은 성경이 기록될 때부터 있었을까요?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 9장은 여기까지, 여기부터는 10장 했을까요? 아닙니다. 신약성경의 장과 절이 구분된 것은 16세기의 일입니다. 프랑스의 스테파누스라는 분이 이 작업을 했습니다. 1553년에 처음으로 장과 절이 구분된 성경이 나왔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담겨있는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장과 절은 그것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로마서를 가지고 말씀드린 것을 복습을 하려고 합니다. 본문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좀 느슨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갈 것입니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느낌을 주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질문을 하나 했는데요, 몇 가지 더 하겠습니다. 예배 시간이니까 소리내어 답 하지는 마시고 알면 고개를 끄덕끄떡 하는 식으로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 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성경은 어느 성경입니까? 정답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입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961년, 그러니까 63년 전 4월 12일에 유리 가가린이라는 소련, 지금 러시아 사람이 최초로 우주비행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더구나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선을 발사했기 때문에 자유세계에 준 충격이 컸지요. 소련은 우주비행 성공을 무신론 선전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우주를 돌아다니며 신을 만나려고 했어도 신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신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이 이마에 손을 대고 우주에서 사면을 돌아보는 그림을 많이 퍼뜨렸습니다.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에도 실었다고 합니다. 저는 2000년을 전후해서 선교 문제로 러시아를 종종 방문했었는데 그 때도 모스크바 중심가에 이 그림이 크게 붙어 있는 것을 갈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저도 약간 그랬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오바댜서를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오바댜서는 한 장으로 되어 있는 짧은 성경인데요, 구약에 한 장으로 되어 있는 성경은 오바댜 하나뿐입니다. 저는 그때 구약에 오바댜라는 성경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모스서와 요나서 중간에 있는 것을 힘들게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는데 오바댜서는 그 얼마 뒤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련의 우주비행 2,500여 년 이전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뒤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오래 전에 미리 이렇게 말씀해 놓으셨구나!’ 깨달았습니다. 약간 흔들리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장 짜리 짧은 성경, 잘 알려지지 않은 성경 제목을 발음하기가 어려운 성경, 오바댜서가 무척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모두 이렇게 귀합니다.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열심히 읽으셔야 합니다. 여기 학생들이 여러분 있는데 젊은 시절에 특히 힘써 읽어야 합니다. 학생 시절에, 젊은 시절에 읽은 말씀은 오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성경을, 그러니까 구약이지요. 열심히 읽었습니다. “믿음에서 난 의”이 소제목 안에 들어 있는 9장 33절,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 28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바”라는 말씀 뒤에 나오는 것은, 그리고 앞에 두 글자쯤 들어가서 인쇄되어 있는 말들은 모두 구약 인용입니다. 로마서 9장에만 이런 곳이 다섯 군데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인용한 것 말고도 바울은 구약 내용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여러분, 성경 힘써 읽으시기 바랍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 실천목표가 네 개 있는데 네 번째가 성경통독입니다. 힘써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실천에 옮기려고 애쓰지 않으면 목표가 헛목표가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니까’ 하면서 종이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자주 읽는 일도 소흘해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힘써 말씀드립니다.
자, ‘제일 중요한 성경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수정하겠습니다. ‘기독교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 성경은 어느 성경입니까?’ 정답, 로마서입니다.
그 다음 질문, 로마서에서 제일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두 글자로 된 말인데요, 무엇입니까? 정답, ‘믿음’입니다. 로마서에는 믿음이라는 말이 40번이나 나옵니다.
“믿음에서 난 의” 이 소제목에 속해 있는 9장 30절에서 10장 15절까지를 보아도, 9장 30절 끝부분,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2절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10장 6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8절, “믿음의 말씀” 네 번 나옵니다. 그와 함께 “믿는 자”(9;33, 10:4, 10:11), “믿으면”(10:9), “믿어”(10:10) 이런 말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가 더 많아집니다.
그 다음 질문, 로마서의 요절은 몇 장, 몇 절입니까? 정답, 1장 17절입나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는 ‘믿음’이라는 말이 한 절에 세 번이나 나오네요.
우리 교회 바로 옆에 천주교가 있습니다. 천주교와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는데 제일 크게 다른 것은 기독교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 기독교의 3대 표어입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8장까지는 이론입니다. 12장에서 16장까지는 실천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중간의 9장, 10장, 11장은 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데요, 여기에서도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9장 30절은 우리를 두고 한 말인데 한 절에 의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10장 3절은 이스라엘이 구원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인데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에도 ‘의’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의라는 말은 두어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어사전에 있는 풀이인데요, 정의입니다. 아모스는 아모스서 5장 24절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라고 외쳤는데 그런 뜻입니다.
의를 모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의는 대부분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를 한문으로 어떻게 적습니까?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적습니다. 두 글자로 줄여서 ‘칭의(稱義)’라고도 합니다. ‘의롭다고 일컫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또 뭐라고도 합니까? ‘이신득구(以信得救)’라고도 많이 말합니다.
9장 30절과 31절을 보면 이방인은 의를 얻고 이스라엘은 의를 얻지 못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방인’에는 우리도 들어갑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구원 얻는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지옥의 불쏘시개 깜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뒤집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방인들은 믿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32절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라는 말씀이 있지요,
유대인들이 의지한 행위는 구체적으로 율법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의에 이르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기본은 십계명입니다. 이것이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613조항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율법 613조항’이라고 입력하니까 다 나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입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것, ‘이렇게 해라’하는 것이 248가지, 부정적인 것, ‘하지 말라’하는 것이 365가지입니다. 조금 읽다가 ‘너무 복잡해, 나 이거 못 지켜, 이대로 못해!’ 또 ‘이렇게 할 필요도 없어!’ 하고서 더 읽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다보니 더 복잡해졌습니다.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이라고 해서 집에만 있을 수 없지 않아요? 회당도 가고 움직여야 하는데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만 갈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안식일에 환자가 생겼는데 의사가 어느 정도까지 치료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안식일에 두손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괜찮았습니다. 여자 옷은 두손으로 끈을 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남자는 두레박을 묶어 우물에서 물을 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자가 떠 주는 물을 마시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목사님께서 사울의 회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울의 회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사울은 율법에 대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율법을 다 지키려고 애쓰면 애쓸 수혹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갈등이 커졌다. 그런데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하면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저가 믿는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가?‘ 의심이 생겼다. 다메섹 가는 도상에서 그 예수를 만나고 회심하게 된 것이다.’
율법으로는, 행위로는, 내 공로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주 예수를 구주로 고백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믿음을 엘리베이터에 비교하곤 합니다. 높은 건물에 올라갈 때 걸어 올라가려면 힘이 듭니다.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입니다. 123층, 555m입니다. 이것을 걸어올라가려고 하면 정말 힘들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아주 쉽게, 짧은 시간에 바깥 경치를 구경하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내 힘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엘리베이터 타고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일에 전철을 타고 삼각지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서 교회로 옵니다. 2번 출구가 높은 곳에 있습니다. 계단이 가파르고 급합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편하게 올라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교인들을 만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에스컬레이터를 많이 이용하는데요, 다리 힘이 약해져서 요즘은 가끔 ‘아, 이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면 나는 전철로는 교회에 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믿음이라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꼭 필요합니다.
군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이 80이 된 사람이 군대 이야기를 하려니까 좀 쑥스러운데요, 저는 제주도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제주도 모슬포라는 외진 곳에 공군 레이더 부대가 있는데 거기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제주도에 갈 기회가 있으면 될 수 있는대로 모슬포를 찾아보곤 합니다. 지금은 김포에서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쉽게 가지만 1960년 중반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휴가 나왔다가 돌아가려면 오산비행장에 가서 C-46 수송기를 탔습니다 오산에 레이더 부대들의 본부가 있거든요. C-46 수송기가 소리가 요란하고 흔들리기는 했지만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대 바로 옆에 활주로가 있는데 거기에 내려서 더 좋았습니다. 지금은 그 활주로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믿어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비행기 타고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는 것과 같습니다.
기상이 나쁘거나 사정이 있어서 비행기가 여러날 뜨지 않으면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기차 타고 밤새껏 목포까지 가서 –1960년대에는 KTX 같은 것은 물론 없었습니다- 배가 대개 저녁 늦게 출항하기 때문에 부두 음식점에서 아침, 점심 사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배를 타고 밤새 파도에 시달리면서 새벽에 제주항에 도착해서 부두 주막에서 쪽잠을 자고 버스를 타고 세 시간 가까이 비포장 일주도로를 달려야 부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고생이 심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내 힘으로, 행위로, 공로로 구원 받으러고 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처음부터 제주도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처음에는 서울 공군본부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군본부가 대방동에 있었습니다. 잊지 못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비가 내리는데 교회에 가기 위해 –공군본부 안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비옷을 입고 부대를 빠져나와 부대 옆 골목에 있는 작은 민간교회에 갔습니다. 교인이 별로 없었습니다. 수요일 저녁 예배에는 원래 교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비가 오니까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이런 농담이 있지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느냐? 비오는 수요일 저녁에 재림하실 것이다’ 젊은 목사님이 로마서를 강해 하고 있는데, 이신득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설명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촉촉하게 젖어들면서 ‘아, 저것이다!’ 느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다가 군대에 갔기 때문에 로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식적으로, 막연하게 알고만 있었지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것이, 깨달음이 느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심각한 얼굴을 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유심히 주목해 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도 대방동에 갈 일이 있으면 그 교회가 있던 곳을 눈여겨보곤 합니다. 대방역에서 올라가서 공군호텔 건너편인데 아마 어디로 옮긴 것 같습니다. 로마서를 강해할 때마다 그날 제가 했던 그런 체험이 성도들에게도 있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이것은 설교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인데요, 지난 주일에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오묘하게 인도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울에 있다가 제주도로 전속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섭섭한 느낌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제게 크게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는데 제대 날짜가 1967년 3월 31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학교는 3월 1일에 개학을 합니다. ‘한 달 늦게 제대하는데 학교에서 복학을 허락할까? 한 학기 늦어지는 것 아닌가?’ ‘복학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 강의를 듣지 못한 것을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군대에서 외진 곳을 벽고지(僻孤地)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격오지(隔奧地)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몰랐더니 벽고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제대하기 두 달 전에 휴가를 내보내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때 공군에서는 백령도가 제일 벽고지였고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제주도도 벽고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2월에 휴가를 나와 아주 여유있게 준비를 해서 복학을 하고 공부를 잘 하고 제때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계속 있었더라면 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게 고마워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나 군대생활 서울에서 했어' 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했어‘라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정교한 인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9절을 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 설교제목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9절의 끝부분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9절 앞부분,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10절 뒷부분에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힘써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시인해야 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힘써 시인해야 합니다..요한1서 4장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힘써 시인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일 토요일로 8월이 끝나고 2024년의 3분의 2가 지나갑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남은 3분의 1, 믿음 위에 서서 의의 길, 구원의 길, 영생으로 연결된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545장을 행진곡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이 눈이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지만, 믿으면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며 믿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부족한 우리를 택해 믿음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부족한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길을 걷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이 진리를 널리 전하기에 힘쓰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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