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은 요정은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사람들 또한 요정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그들과 끊어지고, 그들 나라로 가는 길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요정의 나라 국경 근처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그건 우연에 불과하단다.
바로 이점이 근대인들의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톨킨은 바로 이런 요정의 삶과 끊어진 길을 회복하고, 통로를 뚫는 작업을 하려고 하고 있다. 요정의 나라로 들어가서, 요정의 나라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바로, 요정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요즘으로 치면 창작옛이야기나, 판타지라 해야겠다.
톨킨은 "요정이야기에 관한 정의는 요정의 나라 그 자체의 본질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14쪽)는 말을 한다. 톨킨은 요정의 나라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게 바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비록 요정이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인간 정신의 통찰력(Man's visions of Truth)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정의 나라를 탐험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톨킨은 그렇지만 이 요정의 나라는 말의 그물에 갇히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직접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란다. 그러니까 묘사할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 느낄 수는 있는 세계라는 말이 흥미롭다. 느낄 수 있다는 건 실체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에너지이자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저 요정의 나라를 그러면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앞에서 한 톨킨의 말을 빌면 요정의 나라로 들어가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정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인간은 마법에 걸려야(enchanted)한다. 저 마법에 걸린다는 말에는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인간은 언제 마법에 걸리는가. 마법에 걸리는 실제 체험담을 이야기해봐야 한다. 아마도 가장 쉬운 길은 일단 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또 프로이트와 융의 공부도 일단 깊이 해봐야 한다. 지금 융의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하다 보면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꿈을 통해서 요즘 나는 상당히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가 하는 판타지 공부는 직접 몸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한다. 요정이니 정령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근대인의 운명은 그들과 소통하는 길이 끊겼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톨킨도 그러니까 그 길을 지금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정이야기라는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