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의 3,15의거와 웅변가들의 역할
1960년 봄, 마산은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낸 도시였다. 부정선거에 대한 항거로 시작된 3,15의거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마산은 단순한 지역을 넘어 민주주의 회복의 발화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격변의 중심에는 학생과 시민들의 집단적인 행동이 있었고, 그 행동을 조직하고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웅변이었다.
특히, 마산지역의 웅변가들은 단순한 연설자를 넘어 현장을 움직이는 실질적 주도 세력이였다.
당시, 마산의 시위현장은 매우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사전 계획이나 조직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결집시키는 데에는 설득력이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 웅변 능력을 갖춘 청년과 학생지도자들이었다. 특히, 웅변학원 강사로 일하던 마산상고 출신 강주성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바다에서 떠올랐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고, 순식간에 시가지로 달려가 마이크를 잡고 그가 연마해둔 웅변 실력으로 군중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청년 학생들이 교대로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하였으며, 마산경찰서 앞까지 군중들을 이끌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당시, 연설자들의 목적은 군중을 모으는 것이었으며, 흩어져 있던 학생과 시민들은 그들의 외침을 듣고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설뿐 아니라, “일어나자.” “부정선거를 규탄하자.”와 같은 짧고 강한 구호는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외침은 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시위 주도자들은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였다. 단순히 모이는 것만으로 시위가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로 행진할 것인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했다. 시위 지도자들은 이러한 지침에 따라 연설을 하였고, 시위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며 군중을 움직였다.
또한 시위 주도자들은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 억압에 대한 울분,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슬픔을 넘어 지속적인 시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향성이 필요했다. 연설은 이러한 감정을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재구성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연설로 시위 현장을 선도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웅변가 강주성과 시위 주도자들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소신과 신념에 따라 군중들 앞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결국, 마산의 웅변가들은 단순한 연설자가 아니라 혁명을 이끌어내는 주체들이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말했고 역사를 움직였다.
☛ 마산의 구두닦이 청년 오상원이 남긴 웅변
구두통을 메고 민주주의의 연단으로
1960년 3월 15일, 마산의 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청년과 노동자, 상인과 직공, 그리고 구두닦이와 무직자까지 거리로 나섰다. 당시 마산의 밤시위에는 도시 하층민들의 참여가 특히 두드러졌으며, 구두닦이와 부두노동자, 넝마주이 등 평범한 사람들이 항쟁의 주체가 되었다.
그 가운데 오성원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조실부모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내 다방 등을 전전하며 구두를 닦아 생계를 이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 그는 자신의 생업을 잠시 내려놓고 거리로 나섰다.
그날 마산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분명했다. 부정과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 오성원이 가진 것은 구두통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손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는 구두통만 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민의 양심을 함께 메고 있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오성원은 경찰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동료 구두닦이 두 사람이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오성원은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어떤 연설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부정선거는 잘못되었다.”
“국민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권력을 지켜서는 안된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과 죽음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행동하는 웅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