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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오봉산 산행기
오늘은 서울시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춘천 오봉산 산행을 하는 날이다. 8시 출발 집결지인 교대역으로 가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피서철 막바지 피크에 오랜만에 날이 개여서 나들이 차량이 많아서인지 차의 속도가 더뎠다.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나 겨우 양평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산에 올라 그 기운을 느끼는 것이 목적인데 지방에 있는 산을 가자면 교통사정으로 오가는 시간이 더 걸릴 때가 있다. 다만 오늘은 북한강 강변길을 따라 우기에 수량이 많아진 강을 보며 간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길가의 논에는 벼가 출수되고 있었다. 식물이 결실을 맺기까지 최대한 몸줄기가 자라나야 한다. 무더운 여름철의 높은 기온과 수분이 무성하게 자라나게 한다. 온대 식물인 벼가 자라기애 알맞은 기후이다. 벼의 생장 과정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여름철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8월 무더위 속에 한층 자라 출수가 된 후 여물어갈 때면 가을 문턱에 다다르게 한다.
벼 뿐 아니라 여름은 모든 식물의 부쩍 성장하는 시기이다. 한여름 더위는 폭발을 앞둔 화산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심한 해에는 인내력의 한계에 다다르게 한다. 특히 8월은 그 정점에 달한다. 그렇게 여름은 땀이 뻘뻘 흐르듯 걷잡을 수 없는 열띤 상태로 지나간다. 하지만 8월 막바지는 더위가 물러가고 대지의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그 절기가 처서인데 가을 농사에는 그 처서의 시기가 중요했다. 가을 작물의 씨앗을 심을 시기로서 그보다 이르면 더위에 시달려서 발육이 어렵고 늦으면 생육시간이 부족해서 좋은 작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로 보면 자연의 운행 흐름이라는 것이 여유롭지만은 않다. 시시각각 제 철에 맞게 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8월이 지나고 나면 식물도 생의 결실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이고 한해의 마감도 점차 의식하게 된다.
10시20분 청평댐을 보며 지나갔다. 댐에서 몇 개 수문으로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가평에서 춘천 방향으로 우회한 길을 따라 갔다. 길옆으로 그득히 강물이 흐른다. 물이 끌어 오르듯 움틀거리며 생긴 귀갑무늬 같은 물살이 얼음조각 떠가듯 흘러간다. 우기에 내린 비와 무성해진 숲이 머금으며 그 수량을 이루어낸다. 춘천 시내 방행에서 우측으로 돌아갔다.
11시 30분 배후령에 도착했다. 일행이 내려 스트레칭을 하고 산길을 올랐다. 고개 마루에 둥글레차등 말린 것들을 비닐에 포장해 팔고 잇엇다. 조금후 앞 봉우리 능선에 올랐다. 주변이 트여 보이자 본격적인산행의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산이건 봉우리에 오를 때면 산행의 기분에 도취되어 차가 막히거나 시간이 지체되었거나 다 잊게 된다.
11시 48분 오르던 산봉우리에 꼭대기에 섰다. 거기서 오봉산의 존재가 숲 사이로 보였다 가려지지 않은 지점을 찾아 뒤로 조금 들어가니 시야가 훤히 트인 곳이 나왔다. 거기서 오늘 산행지가 다 보였다. 우로 돌며 차례로 봉우리를 넘는 길이었다. 풀 벌레소리 새소리가 한층 무성해진 숲에서 들려왔다.
12시 첫 번째 봉우리에 쉽게 올랐다. 처음으로 물이 보였다. 다시 다음 봉우리로 향했다. 느리고 완만한 흙길이었다. 숲길을 걸으며 바람과 숲내음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다시 계곡을 지나 다음 봉우리를 올랐다. 몇그루 큰 소나무 뿌리가 패여나간 흙길에 길을 가로막듯 얽혀 있었다. 풍화암 사이에서 어렵게 뿌리를 박고 있는 터에, 흙길이 빗물로 쓸려나가 점점 더 뿌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12시 7분 그 산 봉우리에 올라 다시 휴식을 취했다. 조금 쉬다 내리막길을 내려가 다시 오르니 능선길 좌측으로 우리가 내린 배후령이 보였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소양호가 소나무 사이로 얹듯 보였다.
12시 7분 다시 앞 봉우리에 올랐다. 높은 지대에서 산행을 시작해서인지 봉우리를 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다 드라마틱하게 소양호가 펼쳐보이는 장관을 상상했었는데 예상이 빗나간 느낌이었다. 오봉은 차례로 넘나드는 것이 아닌 옆으로 평풍처럼 펼쳐진 능선이었고 그 우측 끝에는 부용대가 이어졌다.
세 번째 봉우리 정상에 올라 커다란 바위위에 서니 멀리 소양호가 보였다. 소양호는 주변 산들이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작은 호수처럼 보였다. 전에 소양강댐에서 드넓게 보이던 소양호를 그 근원인 윗부분에서 다시 보는 감회가 새로웠다. 스케치를 하다 다시 다음 봉오리로 향했다. 길게 쉬고 잇던 일행이 지나가고 있었다. 암릉을 넘어 4번째 봉우리를 올랐다. 앞서가는 일행이 쇠줄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힘겹게 보였다. 그 봉오리를 오르니 작은 진혼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비석에 “사랑하는 산을 통하여 극복의지를 키우다 여기 산화하노니 진혼하노라 ” 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12시 48분 오봉산 정상(779m)에 섰다. 올라오기 시작한 곳이 높기 때문인지 뭔가 싱거운 느낌이었다. 뒤로 간동면과 멀리 파로호가 보였다. 파로호는 금강산댐에 대응해 만들었던 댐이다. 당초 더 높게 만들려 했지만 논란끝에 낮은 댐이 되었다. 강원도는 너른 산간지대이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큰 산들이 등줄기를 이루고 있고, 그로부터 뻗어나온 산들이 넓게 퍼져 있어 인적이 드문 곳이다. 그리고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처럼 깊고 길게 골짜기가 이루어 물길이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에 큰 고을이 형성되지 못한 것은 인근이 다 높은 지대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크고 깊은 산들이 풍부한 수량을 머금고 있다.
이 지역에는 홍천, 화천, 춘천 등 물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그렇게 수량이 많은 것은 마치 갈대기로 물을 받듯한 형국 때문이다. 크게는 한북정맥과 백두대간, 그리고 한남정맥이 아우르는 너른 지역의 물들이 가지가 모여져서 한강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그처럼 위로는 넓고 나가는 곳은 한곳이어서 다 모여 나가게 된다.
춘천은 한강기맥과 소양북기맥 사이서 생성된 수원과 그 너머 백두대간과 한북정맥 사이서 생성된 수원이 모이는 곳이다. 금강산, 회전령 광치 청평산(오봉산)을 뻗친 산줄기를 소양북기맥이라 하고 그 남쪽에 오대산에서 시작되어 황방산에서 갈라진 몇 개로 갈라지는 한강기맥이라 한다. 소양강은 한강기맥과 소양북기맥 사이서 생성된 수원이다. 한강기맥 가지중 북쪽으로 공작산 구절산으로 내달은 가지 북측 너머에 있다. 그처럼 이 지역의 산세는 산이 크면서도 마침내 뻗지 못하고 한강에 가로막혀 단맥이 된다. 그 안에 들어서고 나면 지맥기문둔갑술을 펼쳐 놓은 것처럼 갈래를 찾기 어렵다. 뻗치지 못한 지맥이 기가 소용돌이 치듯 물길과 치렁하게 얽혀 있다. 산과 산, 물과 물이 답하다 서로 메아리친다.
오늘 산행은 구간이 짧은데 비해 조망이 좋아서 즐거운 나들이 분위기였다. 그러서인지 점심 식사가 더 즐겁게 느껴졌다. 일행은 단체 사진과 개인별 기념 사진을 찍고 정상 부근에 자리를 폈다. 장소가 넓지 않아서 24명의 일행이 다 앉을 수 없어 두 곳으로 나눠 앉았다. 내가 앉은 서초 건축사회 팀은 오늘도 어김없이 비빔밥을 비볐다. 옆에서 박남재 건축사가 김건구 건축사가 준비한 양푼에 비비는 것을 보고 그 솜씨에 감탄을 했다. 날씨도 맑아서 소풍나온 분위기였다. 막걸리, 소주 매실주등 여러 가지 술을 권하며 즐거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1시 30분 하산을 하기 시작해 홈통바위를 지났다. 그곳은 한 사람이 빠져 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은 통로였다. 그 위로는 지붕 트러스처럼 횡으로 몇개 결쳐 있었다. 아래로 내려와 다시 앞 산봉우리를 올랐다. 앞에서 누가 오는데 가까이서 보니 뜻밖에 우리 회원인 신현기 건축사였다. 따로 차를 갖고 와서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함께 암 산을 오르니 일행이 몇분 올라 있었다. 주변이 다 내려다 보였다. 소양호가 아까보다 가깝게 보였으나, 거기서도 산에 가려서 더 넓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봉우리 아래가 청평사이다. 걸음을 옯기다 바위에 있는 뱀을 발견했다. 그것을 손으로 집어 던지려다 오른쪽 손가락을 물렸다.
순간 따금한 느낌이 들었다. 물릴 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손끝에서 피가 났다. 급히 입으로 피를 빨아 뱄었다. 조금후 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하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 가다 일행에게 보여주니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박기현 회장이 칼로 물린 바로 앞부분을 그어 피를 빼고 고무줄로 응급 지혈을 했다. 하지만 점점 아파왔다. 내려가면서 손에 붉은 피가 묻은 것을 본 다른 일행이 112 구급대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더니 그가 바로 확인 전화를 걸었다. 매우 정확한 분 같았다. 112에 신고했는데 청평사 입구에서 기다릴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암릉을 힘들게 내려와 청평사에 도착했다.
청평사는 973년(광종24) 영현선사가 백암선원으로 창건되었다. 그후 두번의 중건을 거쳐 조선시대 보우선사가 크게 중건하면서 청평사라 개칭하였다. 여기에는 국보 115호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을 비롯하여 여러건물과 암자, 그리고 대감국사 탄연이 쓴 문수원기, 이암이 쓴 장경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근래 신축한 것인데, 다만 보물 164호로 지정된 회전문과 돌 축대만이 옛 보습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곳 회전문은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과 연관이 있어 더 유명하다. 청평사 입구에서 구급대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위치를 물어보았다. 입구 다리에 있다고 했다. 차를 빌려서 올라갈까 묻는 것을 내가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 절은 오봉산을 배경으로 앞이 소양호 물길과 이어진 시원한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소양강댐에서 이곳까지 뱃길이 닿는다. 몇 년 전 그 뱃길로 청평사를 다녀간 일이 있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를 배를 타고 가는 맛이 상쾌하였다. 배를 내려 들어가는 동안 호숫가에 핀 야생화와 다리 옆에 선 큰 미루나무가 인상적이어서 스케치를 한 일이 있다. 청평사가 그 안에 있어서인지 어귀에 상점도 꽤 늘어서 있었다.
영지를 지나 입구를 지나왔다. 영지는 고려 시대에 조성된 정원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길이 좌측으로 꺽이는 다리 입구에서 두 명의 구급대원을 만났다. 여기까지 와준 것이 고맙고 고생을 시킨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내려가면서 사진을 찍었더니 대원들이 빨리 가자고 독촉을 했다. 선착장에 구급대 보트가 매어 있었다. 보트에 타자 인적사항을 묻고 구명조끼를 입혔다. 그 보트를 타고 댐까지 나왔다.
춘천을 물의 도시라고 한다. 풍부한 수량 때문인데 그것은 소양호가 생기기 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물의 도시라는 말은 춘천호에서 더 느낄 수 있다. 소양호는 국내 최대 담수량을 자랑한다. 이 곳 호수는 댐을 막아 생긴 것이지만, 호수가 많은 것은 한번에 다 흘려 갈 수 없어 정체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로 인해 낭만, 물, 산, 댐, 깊은 큰 산세중의 평온한 평지 풍부한 수량이 춘천의 특색을 이룬다.
소양호를 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하게 물위로 내달렸다. 댐 선착장에 당도하니 다시 구급차가 가다라고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춘천 성심병원으로 갔다. 문득 일행이 궁금해할 것 같아 구급차안에서 상황을 알라는 전화를 했다. 응급실에 닿자 당직위사와 간호사등이 부산히 움직이며 응급 처치를 했다. 처치실로 옮겨 약통에 손을 담그게 하고 수액과 해독제 링거를 꼽았다. 박기현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겠다고 해서 많은 인원이 나 때문에 귀가가 늦어질 것 같아 그냥 가시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돈이 없어서 더 거절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항체 주사라며 3대를 더 놓았다. 처치실에서 처치를 끝내고 다시 응급실로 내가 누운 병상을 옮겼다.
여기서는 일주일을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주 해외에 갈 사정이 있어 그럴 수 없다고 하자 여기서 치료를 끝내고 서울에 가서 이틀만이라도 입원하면서 경과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하루만 입원하면 안되겠냐고 하니까 그것은 안된다고 했다. 입원하면 일주일 있어야 퇴원시켜준다고 했다. 집이 멀어 난감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시키는대로 서울로 가서 오늘밤 입원하겠다고 하니 링거 주사가 끝나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링거를 꼽고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여서 움직이기 어려웠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니까 소변통을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한번도 써본 일이 없어 그만두라고 했다가 갖다 달라고 해서 용무를 보았다.
박기현회장 등 일행이 찾아왔다. 침대에 누워 맞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잡으며 걱정스런 얼굴로 돌봐 주는 것이 감사하고 미안했다. 괜찮으니 어서 가시라고 권하자 몸조리 잘하라고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황선욱 건축사가 카드로 대신 계산하겠다고 했다. 박기현 회장은 비상금을 빌려 주었다. 집에서 먼 곳에 떨어진 병원에 와서 이런 동료가 없었다면 난감한 상황이었을 것 같았다.
황건축사가 여행자 보험에 전화하고 계산하는 사이 링거가 거의 다 들어갔다. 아무래도 일행과 함께 타고 온 차로 서울로 가서 다른 병원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했다.의사 선생님에게 서둘러 같이 가겠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미리 다 예기를 한터라 순수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대신 서울에 가서 꼭 입원하라고 했다. 차를 타니 차 안에서 궁금해 하던 일행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서울로 오는 길이 많이 막혀 9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되었다. 차는 광장 역과 출발한 교대역에 서기로 했다. 9시 10분경 광진구 광장 역에 내려 전철을 타고 태능입구역에서 이종호 부회장과 박노철 건축사가 내리고 잠시 후 내렸다. 태능입구역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신신당부한걸로 보아 하루는 꼭 입원해야 될 것 같았다. 다시 검사를 하고 입원 준비를 하느라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입실했다. 주말 오후에 당직자가 혼자서 미처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검사를 반복하고 입원을 하려니 짜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병상이 창가여서 시원한 바람이 통했다. 밤에 추울까봐 담요를 덮었다. 잠깐 실수로 여러 가지 번잡스런 일을 불러왔다. 뜻밖에 병상에 누워 일상과 다른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하였다.
(070811)
첫댓글 그 와중에도 산행기를 쓰셨네요. 빨리 일어나셔서 왕성한 활동 하시기 바랍니다. 하순께 지리산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산행수기를 쓰신것보니 걱정이 덜합니다 빠른쾨유 바랍니다...
서울에 와서 바로 입원했습니다. 의사가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경과를 확인할때까지 이틀은 입원하라고 하더군요... 약을 타가지고 왔습니다. 손에 부기가 남았지만 거동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지리산에 갈 수 있습니다. 걱정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염려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뱀에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계속 사진촬영및 스케치등등 여유있는 프로 정신은 감동이었습니다...큰 부상은 아닌듯 싶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상처는 그 정도여서 다행이지만 우리모두에게 느낌은 컸습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산행이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염려해주신 덕분에 상처가 아물어 예정대로 중국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번 일로 산행에서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케 되었습니다. 다음에 더 즐거운 산행 함께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