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은 시집 『밤의 수족관』출간
이희은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났고, 2014년 {애지}로 등단했다.『밤의 수족관』은 그의 첫 시집이며, 한 여성 시인의 내면의 감성과 시적 성찰로 쓴 일기라고 할 수가 있다.
오래된 서랍 무덤 속에서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일기를 꺼내 고통스럽지만 잃어버린 자기 모습을 찾아 다시 일기를 이어 쓰면서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내주고 있다.
‘밤의 수족관’이라는 무의식 상태에서 바라본 자신의 모습 또한 일그러진 물고기 모습이라도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고, 그 모습 그대로를 껴안으면 별자리로 승화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라고 꿈을 꾸고 있다.
시집 『밤의 수족관』은 어린 시절의 무의식적 소망을 표현하는 어느 추운 밤의 길고 긴 꿈에 대한 기록이다.
감추어졌던 빛이 드러났다// 나는 부력이 사라진 옥상에 걸터앉아/ 손가락 끝으로 불빛을 이어갔다// 빌딩 끝에서 시작하여 가로수 길을 이어가다가 요양병원에서 꺾어 천변 도로를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더니// 물고기 한 마리 물살 위로 떠올랐다// 꼬리지느러미가 잘린, 토르소를 닮은, 애초부터 어둠이었던 것처럼 눈이 퇴화한, 비늘에 십자가의 낙인이 찍힌,// 휘어진 몸으로 수초에 걸려/ 아가미엔 늘 모래가 서걱거렸을 물고기// 짧은 순간, 수면 속에서 솟구쳐 올라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자신의 별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밤의 수족관] 전문
화석이 된 일기를 꺼냈다// 부장품으로 구석에 있던// 서랍을 닫을 때 밀어 넣었던 글자들/ 조각 그림처럼 맞추어 보았다// 뒤집힌 주머니 같은, 찢어진 지폐 같은, 짝 잃은 장갑 같은,// 당신 일기 속,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굳어버린 어제가 떨어져 내렸다// 아무에게도 손 내밀지 못했던 글자들/ 이제야 내게 왔다// 일기를 이어 써야 할 시간이다
---[서랍 무덤] 전문
붉은 물고기들 지느러미 흔들며 벽 속을 떠돌고, 웅크린 주택의 창문 불빛도 꽃잎처럼 떨어진다, 단풍나무 마른 이파리 몇 개 축축한 바람이 슬몃슬몃 핥으며 지나가면, 집 나간 엄마의 얼굴에는 이끼가 자라나고, 길고양이 한 마리 다리 절뚝이며 구름을 밟고 다닌다 하늘 한쪽엔 해먹 같은 초승달 떠 있지만, 눈코 없는 졸라맨은 민들레 대궁을 꺾어 들고 씨앗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알코올 클리닉에 다녀온 아빠는 벽 속에서도 아직 비틀비틀, 해님 그리려는 순간 분필이 뚝, 부러진다, 그림들은 점점 시들어 짙어진 어둠과 함께 아이의 눈 속으로 빨려들고, 아이의 눈동자가 파문을 일으킨다, 바닥에 뒹구는 분필로는 이제 별 하나 그려 넣을 수 없다
― 「골목을 그리는 아이」 전문
이희은 시집 『밤의 수족관』은 그늘을 보듬으려는 화톳불의 몸짓에 닿아있다. 그늘은 상처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휘어지고 구부러진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면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때 시인은 손바닥을 더듬어 내밀한 세계를 손금에 기록한다. 가느다란 선線, 그러니까 “지도에 없는 골목”에서 호명하는 대상은 “불발된 폭죽”처럼 한껏 긴장을 응축하고 있다. 이렇듯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슬한 이름들은 대개 어둠에 기댄 채 웅크린 모습이다. 어둠은 “한쪽으로 기운 심장”을 지닌 화자들의 안식처일 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시인은 기울어진 세계의 이미지를 손바닥에 옮겨 놓는다. 손금마다 어둠의 속살처럼 “물비린내 가득한” 이야기가 출렁인다. 그늘진 곳을 더듬어 반음에 걸친 목소리를 읽을 수 있다는 건 타자들과 체온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밤”이라는 명제 앞에서 몸을 낮출 줄 아는 이희은의 시는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잔잔한 떨림을 지니고 있다. 그런 울림은 길다. 차가운 구석 어딘가 숨어있는 밤의 얼굴을 찾느라 시인이 걸어갔을 숱한 시간을 시적 발화점이라고 볼 때, 그늘이 몸을 관통하는 순간 사물의 고유한 파장을 잡아챈 『밤의 수족관』은 “구부러진 달빛”의 목소리를 집요하게 기록한 서사이다.
-최은묵 시인
이 시집의 표제작인 「밤의 수족관」과 유사 계열에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인용한 시 「질문」은 「밤의 수족관」의 말미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자신의 별자리를 찾아 떠나갔다”는 물고기의 고행길에 바로 직전 상황을 형상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악몽은 옆구리에 지느러미를 달고/ 방 안을 헤엄치기 시작”하면 시적 화자가 머무는 방이라는 공간은 일순간 수족관으로 변하고, 제 몸조차 물고기로 변태한다. 화자는 자신의 삶에서 끝내 깨달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아가미를 벌렸다가 닫았다”가 “가시 뼈 사이사이 통증이 물풀처럼” 흔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몸부림이 “매번 거품 같은 질문”이 될 뿐 정작 수족관 물의 깊이는 가늠하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시계는 물결처럼 매번 같은 대답”으로 미끄러지며 화자는 늙어가고 있다. 즉 시간의 퇴적은 시적 화자에게 ‘늙는 상태’나 ‘죽음’에 가까운 몽환을 겪게 했을 뿐 자아가 가진 균열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내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 박성준 시인, 문학평론가
----이희은 시집 이희은 시집 『밤의 수족관』, 도서출판 지혜
첫댓글 귀한 첫 시집 출간을 손바닥 아프게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