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과거 길~ 2014.02.17(월)~18(화)
포근한 날씨~ 봄이 '성큼'...
봄기운을 얻어 나들이를 했다.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043-833-5352)
(충북 괴산군 연풍면 새재로 1924)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은
속리산의 영봉(靈峰) 문장대를 지나
월악산을 바라보며 북행(北行)하는
백두대간의 신선봉 자락 푸른 솔숲에 있는
단체 휴양교육 시설이다.
이곳 고사리(古沙里)는
경북 문경에서 제1, 제2, 3관문을 통해
당도하는 충북 괴산의 첫 동리이며
새들도 쉬어 넘는다는 정다운 조령(鳥嶺)~
새재의 아랫마을이다.
숙박시설 : 14인용 14개실
대강당 : 최대 400명 이용 가능
식당 : 150석(야외식당 포함)
실외수영장 : 7월 15일~8월 15일까지 개장
생전의 김옥길 총장이 은퇴하신 후
못내 그리운 고향 평안남도 맹산 마을과
흡사한 이 심심산골을 만년의 거처로 삼은
인연이 닿아, 1985년 11월에
붉은 벽돌로 지은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이 완공되었다.
생전 김옥길 총장이
휴양지로 사용하시던 숙소
오전 여정 -끝-
차량으로 이동~ 점심 식사
약돌돼지고추장(4인분)
더덕구이~(4인분)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얼음동산이 흐느적~ 흐느적~
봄이 성큼이다.
▼ 백두대간 이화령
▼ 이화령에서 바라본 연풍 방향 풍경~
▲ 숙소에 도착 ▼ 삼관문 산책~
문경새재 과거 길~
부산진~ 동래~대구~상주~
연풍~용인~한양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등뼈였다.
부산 동래읍성에서 서울 남대문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3, 4번 척추신경이었다.
과거길에 나선 수많은 선비들이 이 길을 따라
한양에 올라갔다.
김시습, 이황, 이율곡,
류성룡, 김만중, 정약용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이 고개를 넘었다.
임진왜란 땐 왜군들이 이 길을 따라
쳐들어왔다가 다시 쫓겨 내려갔다.
문경새재~(다산 정약용)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문경새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될 정도로
그 명성이 이젠 한국을 넘어섰다.
가장 한국적인 고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옛길'이라 하면 문경새재가 대명사다.
옛길 그대로가 큰 매력인 문경새재는
도립공원 입구에서 3관문까지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지만
포장길인 충북 쪽에서 고사리 마을과
3관문 입구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하다.
문경새재 입구에서 3관문까지 걸어갔다 오려면
왕복 15㎞나 되니 걷기가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이화여대 고사리수련관' 쪽으로 차를 타고
3관문 입구에서 1관문으로 내려가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또 하나
문경새재 박물관이 있는 제 1관문에서 출발~
2관문을 거쳐 3관문을 넘어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을 거쳐
괴산 땅 연풍으로 내려가면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 다른 방법은 1관문에서 출발
3관문이 있는 새재 정상까지 올랐다가
왔던 길로 다시 하산하는 방법으로
왕복 13.5km.
이 길은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저녁~
그리고 날이 밝은 다음 날 아침
▼ 수안보 파크호텔 사우나 ~♨
▼ 노천탕에서 바라본 풍경~
▼ 문경새재 휴양림 안내도
문경새재 과거 길은
가족과 함께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손색이 없다.
만보~ 이미 수차례 다녀 왔지만
걸을 때마다 즐거운 발길이었다.
문경 새재는 조선 오백년 인재의 절반을
배출했다는 고갯길이다.
오죽하면 전라도의 선비들조차
그 머나먼 길을 돌아 문경 새재를 통해
과거 길에 올랐겠는가?
이를 뒷받침 하는
저 멀리 남도 땅 진도 사람들의
'진도아리랑' 민요를 음미해 보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제는 웬 고갠가~
구부야아~ 구부구부야아~ 눈물이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첫댓글 조령의 문경새재 과거보러가던 길은 한번은 가볼만한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