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 내 마음도 꽁꽁 언 탓일까?
무척이나 차갑고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거울 앞에 선 내가 낯설다.
삐죽 삐져나온 머리카락사이로 새하얀 새치가 눈에 띄는가 하면,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하지만 탄력 잃어 푸석거리는 피부도 영 못 마땅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인정해야하는 나로 받아드리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현실의 무수한 사실들과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것인지. ....
흐릿한 시선으로 다시금 거울속에 있는 OLD BOY를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이름도 모를 여인이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정확히 나흘전 밤의 일이였다
큰딸과 소주한잔 하자며 포장마차가 줄지여 있는 야시장에 들렸는데
두어잔쯤 먹었을 때쯤 바깥에서 유리병 깨지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렸다
소란스러움이 여자의 절규로 변하는 것이 심상찮아 밖으로 나가서 살펴본 즉,
술에 만취해 만신창이가 된 사십대 중반의 여자에 몸부림과
딸로 보이는 두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차가 출동했고,
경찰관의 설득에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발악을 해대더니
결국 강제 연행하는 것으로 한 시간 여 소동이 잠잠해졌다.
그 누구도 그녀의 죄명은 알려 하지 않았고,
또한 경찰관의 대처가 적법한 지 따위에도 무관심한 듯 했다
그날 밤 나는 그 여자의 절규하듯 울부짖은 울음소리가
새벽녘까지 환청으로 들려와 잠을 설쳤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발광하게 했을까.......
사뭇 깊어지는 생각 속에 쉬이 잠들 수 없었다.
내 나이쯤의 그 여자, 나이에 비해 턱없이 늦게 둔 어린 두 딸과
결국 술의 힘을 빌려 쏟아 내야 할 그녀의 울분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참 많은 생각들이 붐벼 왔다.
나도 가끔, 내 존재 가치에 회의를 가지곤 한다.
내가 품어온 삶의 모습, 내가 누리고 싶은 인생의 질과는
애당초 저만치 동 떨어진 내 일상에서 요즘엔 자주 넌덜머리를 내곤 한다.
인생의 목마름이 목까지 치받칠 때, 글쓰는 팔자를 운명으로 알고 저버릴 수 없을 때,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이 최선인양 덤덤히 내 행복을 덮어 버릴 때,
나의 부모형제가 지향하는 신앙과 행복 방향에 철저하게 어긋나는 내 삶를 볼 때,
정말이지 살맛이 나지 않는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녀처럼 발악적인 광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망가질 수 없다는 내 이성이 자제시키고 있을 뿐이질 않는가.
그도 그럴 것이,
그 낯선 여자의 살아온 알수없는 이야기가 며칠간 머릿속에 계속 이어지면서
내 우울증에 다소의 자위적 동지애를 느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인가.
하지만 그러했다.
그녀 역시 무언가에 대한 이유 있는 항변 이었을테니까.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우리네 삶.
지독한 상실감으로 맥이 빠질 때, 철저히 혼자라고 느낄 때
차라리 추락해 보자. 한 잔의 술을 빌어 발악을 해 보자,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뚜렷한 내가 보이지 않을까.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소중한 내 인생에서
진정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잠시 거울속에 투영되는 저 OLD BOY......
이 새벽도 나는 참 외롭고 쓸쓸하다.
멜
첫댓글 풍성해야할 가을이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까 ...정녕 해답은 없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