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10월 9일 청림회(2)
36.
諸佛遣使(제불견사)도 亦復如是(역부여시)러라
모든 부처님의 견사(遣使)도. 파견한 시자들도 와 가지고 전부다 그와 같이 말하더라.
(37번부터 39번까지 읽으심)
37.
爾時(이시)에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그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見所分身佛(견소분신불)의 悉已來集(실이내집)하야 各各坐於師子之座(각각좌어사자지좌)하며
소분신(所分身)한 바 부처님이. 모두다 실이내집(悉已來集)해서 각각 사자좌에 앉으시며
皆聞諸佛(개문제불)이 與欲同開寶塔(여욕동개보탑)하고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住虛空中(주허공중)커늘
모두 모든 부처님께서 보탑을 함께 열어주기를 듣고.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공에 머무시니.
一切四衆(일체사중)이 起立合掌(기립합장)하야 一心觀佛(일심관불)하더니
대중이 일어나서 합장하여 일심으로 부처님을 관하더니.
38.
於是釋迦牟尼佛(어시석가모니불)이 以右指(이우지)로 開七寶塔戶(개칠보탑호)하니
그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오른 손으로. 손가락으로. 우지(右指)로 칠보탑을 열으시니
出大音聲(출대음성)호대 如却關鑰(여각관약)하고 開大城門(개대성문)이러니
대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때 대음성은. 큰 음성이 흘러나왔다하는 이 음성은. 다름 아닌 누굽니까? 다보여래의 음성입니다. 자 우리 내면의 세계에서 하나의 큰 떨림이 있다. 이것은 이제 대음성이다. 왜 음성이 크냐··· 그건 뭐, 말할 필요도 없죠. 일체중생을 제도할라며는 속삭여서는 될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본래 마음이 그와 같이 크다. 이런 뜻에서 큰 곳에서 큰 음성이 나오고. 제가 쳐 보면 큰 북을 치면 큰 소리 나고 작은 북을 치면 작은 소리 납니다. 징 치면 징 소리 나고 꽹과리 치면 꽹과리 소리 납니다. 자··· 그렇습니다. 깨닫고 나며는 즉!시에 다보여래를 보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고향의 그 자리. 다보. 다보. 다양--한 보배. 온갖 오욕칠정. 희로애락. 그죠?
39.
卽時(즉시)에 一切衆會(일체중회)가 皆見多寶如來(개견다보여래)호니 於寶塔中(어보탑중)에 坐師子座(좌사자좌)호대
다보여래가 그 보탑 속에 사자좌에 앉아 가지고
全身不散(전신불산)이 如入禪定(여입선정)하며
온전한 몸. 전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선정삼매에 들었다. 전신불산(全身不散)이 여입선정(如入禪定)이라. 마치 선정에 들은 것 같았느니라.
又聞其言(우문기언)호니 善哉善哉(선재선재)라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快說是法華經(쾌설시법화경)일새
그 말씀을 들으니. 선재라, 선재라. 석가모니불이 이 법화경을 설할 새 선재선재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거는 굉장히 좋은 일이다.
我爲聽是經故(아위청시경고)로 而來至此(이래지차)호라
내가 이 경을 들은 까닭으로 여기에 왔다. 자··· 법화경이라는 거는 이제까지 많이 해 왔습니다마는 어떠냐. 근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사람을 위해서 탑의 문이 열리고. 예? 법화경을 설한다· 들린다. 이런 얘기가 여기 이제 해당이 되겠습니다. 법화경을 설하는 데는 너와 내가 끊어진 아-주 고요한··· 근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런 자리가 법화경을 설할 만하고. 나머지 자리는 아니다, 이거야.
법화경 자리는 어떤 자리냐? 더 알기 쉽게 비유드리며는 이바지 음식 같은 거.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고 혼기가 차 가지고 딸 시집 보낼 때, 차악-, 맛있게 차려놓는 이바지, 그거 있잖아요? 매일 먹는 된장찌개 이런 거는 아함경 같은 거예요. 겉절이, 이런 거는 이제 반야심경 같은 기라. 천수경 같은 거. 예? 이 법화경쯤 나오며는 진수성찬 정도가 아니고. 진수성찬도 몇 번 먹을 수 있지마는 이바지 음식은 평생에? 한 번이라. 그래 우리 일생에 한번, 법화경을 만날라 하며는 자기의 모든 자비와 자기의 모든 인격을 동원해 가지고 최대한의 자기가 나아갈 길을 자꾸 선정해 놓고 그 목표로 끊임없이 가야 되는 거라. 그리되면 그 이름이 열렸다. 그 이름이 뭐였어요? 다보여래. 다보여래라는 거는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듣는 거. 뭐, 맛 보는 거. 온체가 전부다? 보배덩어리라. 팔만사천 행동을 하더라도? 앞으로 자빠져도 복덩어리요, 뒤로 자빠져도 복덩어리요. 아무리 자빠져도 깨지고 다치지 않는다, 이거야. 상처가 나지 않는. 진짜 푹신-푹신-한 융단 같은 길에 그냥 너무너무 아름다운 길이 다보여래라고 하는 지칭입니다.
그러니까 근기가 됐으니까. 법화경을 설할 때쯤 되니까 누가 나옵니까? 다보여래가 나왔다. 나, 이거 듣고 왔다, 이거야. 법화경을 설할 수 있으며는. 이런 소리를 못 듣고 한 세상 가시는 분이? 부지기수라. 그래, 무늬만? 불교야 무늬만. 다보여래는 결단코 뭡니까. 우리 안에 색성향미촉법. 온전한 생멸법이 바로 다보여랩니다.
그래, 인인이 근기가 다르고 업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를 통해서? 천백억 화신의 석가모니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한테는 일본말로 법화경을 설하는 거죠. 미국 사람한테는 미국말로 설하고. 한국 사람은? 한국말로 설하고. 중국 사람은? 중국말로 설하고. 아프리카에 법화경 하면 이럴 거야 움바라짜꿈바··· (대중 웃음) 막 하겠죠? 그거도 법화경이라. 아프리카말을 아시는 가배, 웃으시는 거 보니.
40.
爾時四衆等(이시사중등)이 見過去無量千萬億劫 滅度佛(견과거무량천만억겁 멸도불)이 說如是言(설여시언)하고 歎未曾有(탄미증유)하야
그 때에 사중이. 사부대중이. 모두가 견(見)했다. 과거의 무량한. 천만억겁.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을 설하시고.
그래 다보여래가 떠억 출현하시는데 그걸 증명하는 사람은 또 누굽니까. 중중무진입니다. 그죠? 천만억겁의 모든 부처님이 찬탄했다. 일찍이 있지 아니한 일이다. 미증유의 일이다, 이렇게 찬탄했다는 것은. 그냥 일반 사람들이, 온 국민이 그냥 박수쳤다 해도 될 건데. 과거에 무량천만억겁의 멸도부처님께서 완벽함을 이루었던 그런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말을 설하심을 듣고 일찍이 있지 않은 것을 찬탄해 가지고
以天寶華聚(이천보화취)로 散多寶佛(산다보불)과 及釋迦牟尼佛上(급석가모니불상)이라
보배 옷 무더기로 다보 부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 위에 보시했다.흩으셨다. 보시한다, 이런 말들이. 흩으셨다, 공양한다, 이런 말들하고 똑같지요. 산화락 산화락(散花落 散花落) 하는 것처럼. 보시한다 할 때 보[布]라고 하는 것은. 넓다는 뜻이고. 시[施]라고 하는 것은 흩는다, 산[散]이란 뜻입니다. 보시한다. 널리 베푼다, 이런 말이 보시거든요. 그래 공양이라는 의미가 있죠. 산[散]이란게 그냥 ‘흩을 산[散]’자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온통 그냥··· 홈빡 다 덮어씌우는 게 산[散]이라고 보시면 돼요. 한두개, 갖다 바치는 정도가 아니고. 너무 좋아 가지고 그죠? 아이고 마··· 다 퍼주는 거라. 마음이 흡족하다 이런 뜻이예요.
41.
爾時(이시)에 多寶佛(다보불)이 於寶塔中(어보탑중)에 分半座(분반좌)하사 與釋迦牟尼佛(여석가모니불)하시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은 可就此座(가취차좌)하소서
야··· 참. 이런 사람이 진짜 있으면 좋겠어요. 그죠? 석가모니 부처님은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생멸의 진리라고 한다며는. 다보부처님이라고 하는. 나의 본래로부터 갖춰져 있는, 뭐라할까. 이치적인. 원론적인. 본래적으로 갖춰져 있는 내 불성이라는 거라. 각자 주인공. 내 불성. 예? 이게 꼭 그리 있는 거는 아니예요. 그래 이게 어렵다는 거예요. 헷갈린다 이거야. 그래, 우리는 있다 없다에 너무 익숙해 있는데. 요거, 있는 거는 아닌데 쓰며는 다 나와. 살짝만 움직여도··· 요거도 그거거든요. ··· 요거도 그거라, 이거라. 요거도 그거다, 이거라. 이제 느낌은 오지요? 근데 요걸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없어요. 정말··· 모르는데 그 답답안하나···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며는 저절로 겸손하고 그 무한광대한 힘 때문에 청정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 숱한 시행착오 속에 살며는 내가 업력에 끄달렸구나. 또 참회하고 또 정진하고. 정진하고 정진하고. 바닷가에 조약돌이 하루아침에 그래 반들반들한 게 아닙니다. 이 파도에 저 파도에 끊임없이 실키고··· 닳키고···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법화경 읽을만한 근기가 되고 절대신심으로서 자기존재가 불성이고. 일체 낱낱의 눈에 보이는. 다른 사물은 놔두고. 사람사람이 귀하게 보이는 그 순간에? 다보 부처님과 지금 현실의 내가 다시 만나서 또 다른 이상향을 추구하니까. 제가 평소에 쓰던 말이 이런 게 있습니다. 온전한 생멸법이 온전한 불생불멸이다. 온전한 석가모니가 그대로 온전한 다보여래다, 이런 말씀입니다.
42.
卽時(즉시)에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入其塔中(입기탑중)하사 坐其半座(좌기반좌)하사 結跏趺坐(결가부좌)러시다
그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탑 속에 들어갔다. 탑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전하게 심오한 진리에 딱 들어맞았다는 얘깁니다. 지금 문 밖에서는 우리 문 안의 얘기를 알 수 없잖아요, 그죠?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보여래에게 쏙, 들어가셨다는 말은. 내외계합(內外契合)이다, 이거야. 안팎이 명철하고. 환-하게 뚫려서 들어맞는 애기예요. 그 탑에 들어가서 뭐, 다른 거 하신 것 아니고. 그 반좌에 앉았다[坐其半座]. 다보여래가 양보해준 자리에 앉으셔서 뭘 하셨습니까 결가부좌하셨습니다. 결가부좌라고 하면 절대 고요. 삼매거든. 괜히 그 가부좌 트는 게 아니고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다가 가부좌만 틀면 눈도 내리깔고 손도 모둡고 혓바닥도 천장에 붙이고. 자리도 꼿-꼿하게 앉고 이렇게 되니까. 정신상태를 다른 데에 흐트림 없이 올곧하게 하였다.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다보부처님이나 쌍둥이임에 틀림없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리 되면 대목이··· 이렇게 나오죠. 금강경 같은 데는 호래호현(胡來胡現)이요 한래한현(漢來漢現)이다. 검은 사람이 오면 거울에 검게 나타나고 흰 사람이 오면 희게 나타난다. 미인이 오면 미인이 나타나고 추한 사람이 오면 추하게 나타난다. 그래 부처님이 오면 부처님이 나타나고 도둑놈이 오면 도둑놈이 나타나듯이. 고런 상태가 요렇다고 보아지면 됩니다. 근데 우리는 그렇게 보지를 못하고. 도둑놈이 와도? 우리 부모님인양 착각을 해 버리고. 부처님이 와도 도둑놈인양 뚜드려 패 버리고. 이게 아주 자기 마음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니까. 사(邪)와 정(正). 정(正)과 사(邪)를 똑똑히 구별하며는 사(邪)가 곧 정(正)이 되고 정(正)은 더욱더? 깊어진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죠. 요런 상태를 고렇게 말씀할 수가 있겠어요.
43.
爾時大衆(이시대중)이 見二如來(견이여래)가 在七寶塔中 師子座上(재칠보탑중 사자좌상)하사 結跏趺坐(결가부좌)하고
그 때에 대중이 두 부처님께서 휘황찬란한 칠보탑 가운데에 사자좌위에 계신 것을 견(見)하고. 결가부좌하시고. 거기까지 견[見]자가 떨어져야 되겠습니다. 그 때에 대중들이 두 여래께서 칠보탑 가운데에 계시면서 사자좌 위에서 결가부좌하고 계신 것을 보고.
各作是念(각작시념)호대
각기 이와 같은 생각을 짓되
44.
佛座高遠(불좌고원)이시니 唯願如來(유원여래)는 以神通力(이신통력)하사
말로는 차마 할 순 없고. 냄새나는 중생이 부처님, 조금만 당겨 주십시오···, 이렇게 할 수는 없고 뭘 합니까? 속으로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저 높고 먼 곳에 이렇게 계시니 오직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서, 쓰셔서
令我等輩(영아등배)로 俱處虛空(구처허공)케하소서
저희들 무리들로 하여금.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도 다보탑 있는 허공에 좀 데리고 가 주셨으면···, 하고 아이가 이제 장난감 가게를 지나면서 저거 하나 샀으면··· 싶을 때 엄마가 니 그거 하나 사주까··· 이렇게 하는, 퍼뜩 눈치차리는. 선타(仙陀)와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부처님 뭐, 즉시 알아차리시겠죠.
항상 경전에 이런 말이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 내지는 즉시에. 이게 바로 현전일념라. 그거는 어디, 찰나. 눈곱만큼도 잡념이나 잡담이 붙을 수가 없는. 잡심이 붙을 수 없는 자리예요. 즉시에.
45.
卽時釋迦牟尼佛(즉시석가모니불)이
중생들이 생각, 하자마자.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하자마자 눈 앞에 과보받는 것은 즉목교보(卽目交報)다. 또 죽어서 과보를 받으면 몰후침륜(沒後沈倫)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즉시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以神通力(이신통력)으로 接諸大衆(접제대중)하사 皆在虛空(개재허공)케하시고
신통력으로 모든 대중을 제접하시어 모두다 어디에? 허공에 있게 하시고. 우리 마음은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것이 신심이 확실하고 근기가 있고 완전무결하고 참회할 거 다 참회하고 익을 대로 익었으며는? 즉시에 떨어지는 단감처럼. 홍시감처럼 그렇게 즉시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즉시에 잘 안 이루어지면 내가 아직 습기번뇌가 많이 남았고 마음에 추하고 탁한 것이 많은가보다··· 그러면 나 스스로를 맑히고 맑히는 작업을 계속할 뿐이다. 다 깨쳤다 하더라도 그렇게 얘기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죠. 사리불이 이렇게 했죠. 나는 죽는 것도 원치 않는다. 또 뭡니까? 나는 더 이상 사는 것도 원치 않는다. 살고 죽는 것은 더 이상 내인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멸법은 더 이상 내인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품팔이가 마치 품삯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시절인연을 기다릴 따름이다.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 시절인연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참회 정진 보시 지계 인욕. 그게 뭐, 진부하게 들어오는 얘기겠습니다마는 그 길밖에 길이 없으니까. 보시 지계 인욕. 아래[엊그제] 능엄경 할 때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보시하고 지계하고 인욕은 수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걸어야 될 길이고. 거기서 안쪽으로 알맹이가 채워지는 길이 있는데 아--주 알토란 같은 마음으로 방편을 잘 써서 물을 건널 때 건너고 벼랑으로 오를 때 밧줄을 타고 오르고 방편분별을 잘 쓰는 정진력. 부단한 정진력이 안으로 알맹이가 채워지는 거하고 같다고 말씀드렸죠. 거기서 얻어지는 것이 선정과 지혠데. 그것이 곡식이 안으로 옹골차게 영글어가고. 제대로 맛이 배이며는 반야바라밀까지 형성이 되는 것인데. 그전에는 끊임없이 보시하고 계율. 지계하고.
지계라는 거는 그렇게 말만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도둑질 안 하고 살생 안 하고 음행 안 하고 거짓말 안 하고. 그죠? 술 많이 안 먹고. 술은 많이 먹으며는. 술잔에는 항상 뭐가 있습니까? 새 그림이 있죠, 새 그림. 새는 물에 안 빠지거든. 술 겉은 데에 안 빠지니까. 술 먹고 새처럼 물에 빠지지 마라, 술 먹고 술독에? 빠지지 마라고 새를 요렇게 술잔에 황새, 그려놨잖아요? 술 먹고 불로장생해라고 그린 게 아닙니다. 술 먹고 실수하지 마라고 새 그림을 술잔에 넣어놓은 거예요. 새는 어떤 데. 독한 새를 한 마리 그려 놓은 게 있어요. 짐새[鴆-]라고 해요, 짐새. 그 새의 독을 짐독이라고 하죠. 능엄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정진력이 없는 사람이 설법을 하며는 불능설법이라. 설법을 하지를 못해, 아예. 하지를 못 한다고. 그런 사람이 설법하며는 뜨거운 감자를 한 입에 넣어가지고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뜨거운 감자, 있지요? 우리 흔히, 신문지상에 얘기하는 거. 먹자니까 먹지도 못하겠고 뱉자니까? 뱉지도 못하는 거. 그게 바로 불능설법이예요. 그리고 선정의 힘이 없는 사람이 법을 설하며는 오염된 거라[오염설법]. 마지막에 지혜가 없으면서 설하는 거는 남의 눈도 까고 지 눈도 까고 해 가지고 그거는 전도설법이라 그래요, 전도설법. 불능설법 오염설법 전도설법. 그러니까 설법을 하면서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말고 그 중생과 내와. 그 사람 안에서 또다른 사람과 일체중생이 자타일시성불도의 정신으로. 명예와 이익은 별개 문제예요. 스님 오늘 법문 잘 들었네요. 차라리 욕을 하십시오. 욕을 하시는 게 낫다 이거야. 그러면 법문 못 하셨네예 해야 되겠어요? 그건 더더욱? 아니고. 그런 말은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들은 다른 데서 공양을 대접받더라도 맛있다 소리도 하면 안 되고. 맛없다 소리도? 하면 안된다는 얘기가 그런 얘기죠. 밥에 평등하면 또? 법에 평등하다. 그러니까 밥이든지 법이든지 주는 사람도 주는 물건도 받는 사람도. 삼륜이 청정해서 본래? 없어야 이무소득고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그, 법문을 잘한다든지 법문을 못한다든지 그것은 다? 망상시비분별일 뿐이다.
以大音聲(이대음성)으로 普告四衆(보고사중)하사대
큰 음성으로서 널리 사중에게 고했다. 큰 음성으로 널리 사부대중이니까 대자대비로 일체중생을? 구제하시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46.
誰能於此 娑婆國土(수능어차 사바국토)에 廣說妙法華經(광설묘법화경)이오뇨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 널리 법화경을 설하겠느냐?
今正是時(금정시시)라
지금이 바로 그 때야. 금정시시(今正是時)라. 지금이 바로 시시(是時)라. 이 때라. 이런 말을 아--주 좋아하셔야 됩니다. 이런 말 좋아하시며는. 언제 잊어버릴래, 그 얘기를. 지금 바로. 언제 그 생각을 떠날래? 지금 바로. 생각해 보고 이거는 우리 얘기가 아닙니다. 그··· 되겠습니까. 안 되지마는 하다하다 보며는 되는 날이 올 것이다는 거죠. 금정시시(今正是時)라. 이것이 임제록 같은데는 이리해 놨죠. 즉금현재(卽今現在)라. 바로 지금 여기다, 이거야.
如來(여래)는 不久(불구)에 當入涅槃(당입열반)일새
나 여래는 머지않은 날에 곧 장차 어디에? 열반에 들어간다.
佛欲以此妙法華經(불욕이차묘법화경)으로 付囑有在(부촉유재)니라
부처님이 이 법화경으로서 부촉함이 있게 하시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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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온전한 생멸법이 온전한 불생불멸이다. 온전한 석가모니가 그대로 온전한 다보여래다, 이런 말씀입니다." _()()()_
동영상을 보듯이 녹취해 주시는 가을 햇살님_()()()_
나를 신앙으로 몰입하게 해주는 생활의 고통에 감사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생활이 편안하게 돌아가면 나태해지는게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늘 변함없는 녹취에 감사드립니다_()_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 널리 법화경을 설하겠느냐? 今正是時라 지금이 바로 이 때라.....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