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형님은 62년 범띠이다.
그러니 나랑 어중간한 나이터울이다.
내가 초등학교 1-2학년때로 기억이 되니
그때 우리작은형님은 5-6학년이나 되었을법하다
아주 추웠던 겨울의 이야기다.
벙어리-
표준말로는 벙어리이나
우리는
"버버리"라고 했다
벙어리장갑-
역시 버버리장갑이었다.
늘상겨울만 되면
양쪽을 털실로 꼰 끈으로 결속시킨(한쪽 잃어버릴까봐)
버버리장갑을 끼어야했는데
씨게토도타고,새총도 만들고하던
촌에서 할일많은 아이들에게는
버버리장갑이 참 불편했었던 모양이다.
어느 아주 추웠던 겨울날이었다.
해걸음에...
그러니까
노루꼬랑지만큼 짧았던 해가
도솔봉에 가까이있을때 쯤
버버리장갑을 끼고나에게 시게토 침을 만들어주던 작은 형아가
깜짝놀랄 제안을했다.
"야- 내인데 있쟈나 오백원이있는데
우리친구 병희있쟈나 가는 시장에서 250원짜리 멋찐 장갑 샀드라-
우리 이걸로 멋진 장갑 사로 갈려?"
"?"
오백원이라-
이순신장군의 초상과 현충사,거북선이 그려진
당시 우리로서는 설날에 한번구경할까말까한 거금...
"형아야 그런데 어디서 났는데...?"
"...그거는 묻지말고..."
"그런데 엄마한테 다들키면 우째노?"
"...사로가기 싫나?"
"...그건 아닌데...낼가면 안되나?"
"...시장가면 금방올수있다"
"...해걸음인데..."
"가기싫나?"
"아니?"
행여 작은형이 "관두자"라고 말할까싶어서
이것저것생각없이 장에 사로가자하였다.
아마도 작은형도 혼자서 읍내에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운날씨였다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어린나이로서는 참 먼 거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큰딸이랑,작은놈같이 어리고 철없던?? 같다.
작은형은 추우니 단도리를 하고가자하고
방에들어가서 우리아부지 아끼시는 목도리를 가져와서
내빵모자뒤로 둘러묶고는
뽀끈 붙잡아 매주었다.
지경터를 지나고 그때에는 아직 두산교가 없었기로
임동수씨집앞으로
독산개천을 건넜는데 돌다리(징검다리)옆으로
얼음이 꽝꽝얼어 붙어있었다.
독산 그 칼바람몰아치는곳을 어린아이둘이서 쫄망쫄망걸어내려오는거다.
서문거리를 지나고
금새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나는 더럭 겁이났다.
빨리집으로 돌아가야할텐데...
풍기지서를 지나고
풍기국민학교앞 오케이상회를지나고
십자꺼리에서 좌회전하여
퍼스럭퍼스럭 모래들이 밟히는 길을 따라서
순흥통로쪽으로
거기서 다시 우회전을하면 옷가게들이 즐비한
시장이다.
가끔씩-
엄마따라 옷사러 오던 그골목.
하마 거리에 전깃불들이 켜졌다
백열등이지만
전깃불구경을 몇번못해본아이에게는 참 신기하고 신통하다
저녁무렵이되니
배도 고팠던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지금 작은형과 내가하고있는
이것이 정당하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다.
작은형에게 생긴 거금의 출처도 모를뿐더러
작은형이 은근히 비밀로 부칠것을 말했으니
따라는 가고있지만 뭔가 켕기는 그런기분
거기다가
날씨는 춥고
배는 좀 고프고
날은 어두워지는 상황
어린마음에도
괜히 따라왔다 싶을정도로 회의감이 들기시작할무렵.
드디어 "대흥상회"간판이 보인다
다왔다-
...
왜냐하면
대흥상회 사장님이 두산3리(홍정골)출신이시고
황사장님 모친께서 옷보따리를 해 이고 우리동네로
이웃동네로 옷장사를 다니셨기로
옷을 사러갈때면 항상 엄마는 대흥상회에만 갔고
옥신각신 황사장님이랑 깍기실랑이를 벌이다가 옷을 사시기때문이다.
그런데
작은형은 내손을 잡고 그곳으로 들어가지않고 "오복상회"로 들어갔다.
"저게 안드가고...왜 ?"
"병희가 여서 샀다카드라"
좀 의아해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잊어버렸다.
아마도 작은형 생각이 대흥상회 황사장께서 우리를 알아보시고
나중에 우리엄마한테 이사실을 말하지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
그 찬란한 백열등 조명아래 그 아름다운 장갑들-
이것,저것
알록달록한 앙고라장갑
색깔이 얼마나 이쁘던지...
정말로 포근하고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산길을 헤메던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집을 발견하고 나서
이런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직도 그 때의 화려하던 그풍경을 잊을수 없다.
주인 아줌마께서
추워하는 아이들에게
육각모양의 사기로 만든 컵에 따뜻한 오차를 한잔주셨던것 같다.
그곳에서 나는 많이망설인끝에
좀 화려한색의 장갑을 골랐고
작은형은 나보다가는 좀 우중충한색의
알록달록한 자섯손가락장갑을 골랐다.
한켤레에 250원쓱-
두켤레를 사고 나오니
사방이 더 어두워진것 같다.
종종걸음으로 서문거리 독산을 지나쳐오는데
얼마나추운지 눈물이 날것 같았고
그 칼바람이 무섭기까지했다.
게다가 날이 이미저물고
집에서 엄마가 찾으리라 생각하니
불안도 하고
배도 고프고
한편으로는 작은형이랑 "공범?"이된것 같은 기분에
이래저래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그래도
손에 끼고있는 새 털장갑을 보면서
참 이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 하였다.
독산
임동수씨집앞 개천을 건너야했다.
돌다리가 미끄러웠기로
작은형이 업어서 건네주려하였고
작은형에게 업히니(그때 작은형이랑 등치가 비슷했었다)
괜히
세삼스럽게 찡-했다.
중간쯔음에서 작은형이 잠시 비틀했기로
그 바람에 내가 붙들어매고왔던
아부지 목도리가 물에 떨어졌고
물따라 흘러가는 목도리를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잃어먹었다 그래야지 머..."
어린마음에
안타까웠다.
울매나 아깝든동...
잃어버렸다고 혼이야 나지않겠지마는
무척이나 죄송했다.
그날 저녁늦게
많이 어두워서
집에도착해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먹으면서
엄마한테 혼났다.
괜히 눈물이 날것 같았고 불안했다.
아부지는 추운날에는 일찌거이 집에 들어와야한다고만 하셨다.
그렇지만 시장에 다녀왔다는 말과 아부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작은형은 새장갑을
책상빼닫이에 깊게 숨겼고
나도 옷장깊숙히에 숨겨두웠으며
엄마에게 다들킬까 싶어서
집에서는 끼지못하고
잠바주머니에 몰래넣어가서
씨게토탈때 꼇으며
집에서도 아무도 없을때 한번쓱 껴보곤했었다.
물론
나중에 뽀록났지만
엄마는 크게 야단을 치지않으셨다.
그 장갑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어린유년기의 기억처럼
그냥 어느날-
사라져버린거다.
그렇게 아쉬움은 없으나
그 장갑한켤레로 나는 야릇한 추억이있다.
관수 어머니 보내드리던날-
대구 모병원 영안실에서
미리왔던 친구들이 가고
대흠이,호춘이,영찬이,그리고 시락이...등 몇친구들이 남아서
이런저런이야기를 하던중
그날 처음 만난
(영찬이도 이름만들었고 그날 처음 만났다)
시락이가 오복상회 자제라하여
괜히 그생각이 났었고
지금도 처가에 갈때면
오거리 순흥통로 그아래 오복상회가 있었슴과
그때의 일을 추억하곤한다
ㅎㅎㅎ
고 위쯔음에 찐빵을 팔고,팥빙수를 팔던 중국집이 하나있었더랫지...
아직도 해마다 겨울이면
알록달록 색동 앙고라장갑이 그곳에 있을까...
-중학교 2학년 도덕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통상적으로일컷는)오복은
수
부
강녕
유효덕
고천명
이었던가?
아뭏튼
금계중학교 1학년3반에는
너무너무 내성적이던 우상국이와
너무너무 날씬하던 시락이와
하얀얼굴에 점이 몇개있던 덕영이와
또또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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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사모'에서 시보네 선배님이 '풍우회'로 나는 거기서 '금계중 총동문회' 카페로 퍼날랐네요. 나가 그 작은형이라는넘 연문이하고 금계 25회 동기동창인데. 요런 이쁜글 금계 동문회 카페에 직접 쫌스크랩해 달라꼬 부탁하면 삐질러나?? 요즘 연문이 기름장사는 잘 하고 있는가 모르겄네.. 3년전 금계중 총동창회 주관할때 아찔한 기억이 있지요.
선배님 글 보면서 저도 몰래 유년시절 생각에 흠뻑 바져봅니다... 내게도 그런시절이있었는데 ^^*
아름다운 추억 잘보고 간다...늘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