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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傳經
5)라훌라에게 설한 법문
부처님은 사미인 라훌라에게 다음처럼 많은 법문을 설했다.
(1)《사마네라판하》
(2)《라훌라상윳타》
(3)《아빈하라홀로와다숫타》
(4)《마하라훌로와다숫타》
(5)《출라라훌로와다숫타》
(6)《암바랏티카라훌로와다숫타》
라훌라가 사미가 된 후 부처님은 생각했다. ‘어린아이들은 간혹 믿을 수 없거나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곤 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에게는 충고의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좋겠다.’
부처님은 라훌라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들 라훌라야, 사미는 거룩한 도과에 위배되는 일을 말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오직 도과를 드러낼 수 있는 것만을 말해야 하느니.”
그러면서 부처님은 라훌라에게《사마네라판하》의 법문을 설했다. 이는 과거 모든 부처님의 전통을 따르는 일이었다. 그 법문은 교리문답의 형태로, 사미 수준에 걸맞은 간단한 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10법에 이르기까지 법수(法數)가 점점 늘어가는 방식으로 정돈된 것이다.원서 주5
그런 후 부처님은 다시 숙고했다. ‘어린아이는 거짓말하기 좋아하여,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고 본 것은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도록 충고해야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육안으로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베풀었다. 즉 물 컵의 4가지 예, 군대 코끼리의 2가지 예, 거울 표면의 한 가지 예를 들면서《암바랏티카라훌로와다숫타》를 설한 것이다. 원서 주6
그런 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아빈하라홀로와다숫타》를 설했다. 이는 라훌라에게 4가지 필수품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떨칠 것이고, 5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포기할 것이며, 선량하고 진실한 친구와의 교제가 얼마큼의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보여주는 경이었다. 원서 주7
나아가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라훌라상윳타》라는 법문을 설했다. 이는 라훌라로 하여금 3가지 존재에 대한 집착과 욕구를 제거하도록 하는 가르침이었다. 원서 주8
그런 뒤 부처님은 《마하라훌로와다숫타》를 설했다. 이 경은 ‘나는 대단히 우아한 모습을 지녔다. 나의 용모는 맑고 밝다’라며, 자신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육감적인 생각(세속적인 욕망, gahassita chandarāga)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원서 주9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출라라훌로와다숫타》를 설했다. 이 경은 라훌라가 비구가 된 후와 그가 첫 번째 안거를 끝내기 전에 설해진 것으로, 라훌라가 아라한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법문이었다. 원서 주10
그중《아빈하라홀로와다숫타》가 설해진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논할 수는 없다. 왜냐면 부처님은 기회가 닿는 대로,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라훌라에게 그 경을 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훌라상윳타》는 라훌라가 7살 때 비구가 된 후부터 첫 번째 안거를 시작할 때까지 설해졌다.
《마하라훌로와다숫타》 는 그가 아직 사미일 때인 18살 때 설해졌다. 《출라라훌로와다숫타》는 그가 비구가 되고 첫 번째 안거를 시작한 뒤 설해졌다. 《사마네라판하》와 《암바랏티카라훌로와다숫타》는 라훌라가 7살 사미일 때 설해진 것이다.
그 모든 가르침 중에서 라훌라가 일생 동안 따라야 할 근본 가르침으로 설해진 것은 《아빈하라홀로와다숫타》이다. 그리고 《라훌라상윳타》는 라훌라의 마음을 위파싸나의 앎(觀智)으로 가득 차게 하려고 설해진 것이며,《마하라훌로와다숫타》는 ‘세속적인 탐욕’을 제거하게 하려고 설해진 것이다.
《출라라훌로와다숫타》는 라훌라가 비구가 된 직후와 첫 번째 안거가 끝나기 전에 설해진 것으로, 해탈을 가능하게 하는 15가지 요소(vimuttiparipācaniya)를 얻게 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마네라판하》는 도과를 성취하는 데 이롭지 못한, 부적절한 말을 못하도록 가르친 것이고, 《암바랏티카라훌로와다숫타》는 알면서 교묘하게 하는 거짓말을 금지하는 경이었다. 원서 주11
이와 같은 경들을 설할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승원에서 두 번째 안거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당시 라훌라는 아직 어린 사미로 암바랏티카의 명상 승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승원은 웰루와나 승원의 끝 부분에 위치한 망고나무 근처에 있었다. 라훌라는 그곳에서 원리(遠離, viveka)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사가 처음부터 날카로운 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라훌라는 7살의 어린 사미 때부터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신원리와 심원리를 실천했다.
어느 날 저녁, 부처님은 과정(果定, phalasamāpatti)에서 일어난 뒤 라훌라가 있는 암바랏티카 명상 승원으로 갔다. 라훌라는 부처님이 먼 곳에서 오는 것을 보고 부처님을 위한 자리를 정돈하고 발 씻을 물을 갖추어놓았다.
그곳에 도착한 부처님은 준비된 자리에 앉아 발을 씻었다. 원래 부처님의 발은 먼지가 묻지 않지만 제자의 봉사를 은혜롭게 받는다는 의미에서 발을 씻었던 것이다. 사미 라훌라는 부처님께 공경스럽게 절한 뒤 6가지 결점이 없는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은 발을 씻은 뒤 대야에 물을 조금 남기고는 라훌라에게 물었다. “내 아들 라훌라야. 내가 대야에 물을 조금 남긴 것을 보았느냐?” 라훌라가 대답했다. “예, 세존이시여.”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처럼 훈계했다.
“대야에 남아 있는 물이 적은 것처럼, 알면서 거짓말을 했음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상속체 속에는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선량하고 고상한 비구의 법이 아주 적다. 이것이 내가 네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대야의 물을 마저 부어버리고는 라훌라에게 물었다.
“대야에 조금 남은 물을 내가 버린 것처럼, 알면서 거짓말을 했음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자는 번뇌를 제거해주는 선량하고 거룩한 법을 던져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내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대야를 뒤집어놓고는 라훌라에게 물었다. “내 아들 라훌라야, 내가 대야를 엎어놓은 것을 보았느냐?” 라훌라가 대답했다.
“예, 세존이시여.” 그러자 부처님이 말했다. “내 아들 라훌라야, 대야가 뒤집어진 것처럼 알면서 거짓말을 했음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번뇌를 제거하는 선량하고 고상한 비구의 법을 완전히 거부한 것과 같다. 이것이 내가 네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뒤집어진 대야를 바로 세운 후 라훌라에게 물었다. “내 아들 라훌라야, 대야 안에 한 방울의 물도 없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보이느냐?‘ 라훌라가 대답했다. ”예, 세존이시여.“ 그러자 부처님은 네 번째 충고의 말씀을 베풀었다.
”물 한 방울 없는 이 대야가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모두 공허하니, 번뇌를 제거해줄 선량하고 고상한 법을 한 방울도 지니지 않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은 계속해서 법문을 베풀었다.
“내 아들 라훌라야, 왕에게 있는 전쟁용 코끼리의 경우를 생각해보아라. 그 코끼리는 전쟁터에서 앞발과 마찬가지로 뒷발도 사용했느니라. 다시 말해 자기 행동반경 안에 들어오는 모든 앞부분과 뒷부분을 함께 움직였느니, 기회만 닿으면 적의 나무 방책을 몸의 앞부분이나 뒷부분으로 뭉개버렸느니라.
코끼리는 또한 이마를 사용하기도 했느니라. 즉 언제 어디로든 돌격하기 위해 위치를 측정하고 뒤로 움직이면서 노려보았느니라. 이렇게 노려보는 방대한 전쟁용 코끼리의 모습은 수천 명의 적군에게 위협을 가하여 그 무리를 흩어지게 만들었느니라.
코끼리는 또한 자신의 귀도 사용하였느니, 적군의 화살을 귀로 막아서 땅에 떨어뜨렸느니라. 코끼리는 한 쌍의 상아도 이용했느니, 적의 코끼리나 말, 코끼리 몰이꾼, 기병, 보병 등을 그 상아로 찔러대었느니라. 또한 꼬리도 사용했느니, 칼이나 철퇴 등을 덩굴로 묶은 꼬리를 휘둘러 적을 자르고 뭉갰느니라. 하지만 코끼리는 자신의 코만큼은 둘둘 말아서 입 속에 집어넣어 보호했느니라.”
“그때 코끼리 몰이꾼은 코끼리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이런 생각을 떠올렸느니라. ‘이 코끼리는 전쟁터에서 앞다리와 뒷다리, 몸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모두 사용하며 이마와 귀, 상아와 꼬리 역시 사용한다. 그러나 코만은 입안으로 밀어 넣어 보호한다. 이 코끼리에겐 자기 생명을 희생할 마음이 아직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느니라.”
“내 아들 라훌라야, 한때 왕의 거대한 전쟁용 코끼리는 전쟁터에서 그처럼 앞다리와 뒷다리, 꼬리를 사용해 싸웠느니라. 그리고 코 또한 사용해 철퇴나 나무를 높이 들어올려 18완척 높이의 목표물을 때리고 부쉈느니라.
그때 그 코끼리의 위에 올라타고 있던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느니라. ‘왕의 거대한 그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이던 사람은 생각했느니라. ’왕의 거대한 전쟁용 코끼리는 전쟁터에서 앞다리도 쓰고 뒷다리도 쓰고 꼬리를 가지고도 싸운다. 그리고 코 또한 사용한다.
이 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포기한 것이다. 이제 이 전쟁용 코끼리가 못할 일은 없겠구나.‘ 내 아들 라훌라야, 나는 너에게 말하노니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저지르지 못할 악이란 없느니라.“
“그러므로 라훌라야, 너는 다짐해야 하느니.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재미나 장난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3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느니라.”
부처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 아들 라훌라야, 내가 너에게 질문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을 말해보아라. 거울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느냐?” 라훌라가 대답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아 검은 점이나 사마귀 등이 있으면 그것을 제거해 모습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아들 라훌라야, 사람은 몸과 말, 뜻으로 행동해야 하느니라.” 이처럼 부처님은 간단히 머리말을 제시하고는, 몸으로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고 말로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자세히 설했다. 그리고 지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주위 깊게 고려한 다음에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했다.
3업, 즉 신업과 구업, 의업을 짓고자 하는 의도가 일어날 때는 먼저 이렇게 성찰해야 한다. ‘내가 의도하는 신업과 구업, 의업이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 혹은 그 모두에게 해로운 것은 아닌가? 그 업들이 결국 고통을 증대시키는 악업이 된다면 그러한 신업과 구업, 의업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과 남들에게, 그리고 그 모두에게 해롭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거나 즐거움을 증진시키는 선행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신업과 구업과 의업은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3업을 짓고 있는 과정에 있다면 이렇게 성찰해야 한다.
‘내가 지금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내 자신이나 남에게, 혹은 그 모두에게 해로운 것은 아인가? 그것읃이 괴로움을 증진시키는 악행은 아닌가?’ 자신의 행위가 그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면, 도덕적인 염리심(厭離心)을 가지고 그 업들을 당장 멈춰야 한다.
그와 달리 그것들이 자신이나 남, 그리고 그 모두에게 해롭지 않은 것이며 행복과 복지의 원인을 증진시키는 선행이라고 한다면 정진력을 발휘하여 계속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3업을 이미 지은 상태라면 이렇게 성찰해야 한다. ‘나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자신이나 남, 혹은 그 모두에게 해로웠던가? 괴로움을 증진시키는 악행이지는 않았는가?’ 만일 악한 신업과 구업을 지었다고 판단된다면, 부처님이나 현명하고 박식한 동료 비구에게 솔직하고 명료하게 잘못된 신업과 구업을 지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미 저지른 악한 의업에 대해서는 스스로 걱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며 싫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악한 의업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절제하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만일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자신이나 남 혹은 그 모두를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님을 성찰하게 되었다면, 그것들이 오히려 행복과 복지를 증진하는데 기여했음을 알게 되었다면 밤낮으로 그 선행들과 관련한 만족을 느끼며 지낼 것이다. 그리고 3학을 준수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 벽지불, 성성문(聖聲門)들은 그처럼 자심들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성찰하며 살았고, 살 것이고,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정화했고, 정화할 것이고, 정화하고 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법문의 마지막을 맺었다. “사랑하는 아들 라훌라야, 너는 언제나 너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그 행위들을 정화하려고 애써야 하며, 3학을 준수하고 수습하는 데 힘써야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러한 3업은 어떻게 정화해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이렇다. 우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침에 지은 신업과 구업은 아침식사를 한 뒤 곧바로, 그리고 낮 동안을 보내기 위한 장소에 앉았을 때 정화해야 한다.
비구는 새벽부터 낮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신업이나 구업을 짓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에게 좋지 못한 신업과 구업을 지은 것이 떠오른다면 그는 동료 비구에게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
만일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실재로 크나큰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의업에 대해서는, 아직 걸식하고 있는 중이라면 다음처럼 반성함으로써 죄를 털어내야 한다. ‘오늘 걸식하고 있는 도중에 색 등으로 말미암은 약하거나 강한 탐착, 진에, 치암이 발생했는가?’
만일 그런 일들이 있었다면 ‘탐착, 진에, 치암이 내 속에 결코 일어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결의해야 한다. 그런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스스로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고요한 마음에 계속 머물게 될 것이다.
원서 주
5
《쿳다카니카야》1,3쪽
6
《맛지마니카야》2,77쪽
7
《쿳다카니카야》1,328쪽
8
《상윳타니카야》1,439쪽
9
《맛지마니카야》3,83쪽
10
《맛지마니카야》3,424쪽; 《상윳타니카야》2,324쪽
11
Mattha, 3,88~89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