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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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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필 산문 및 기행문 스크랩 정남진 장흥(長興)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효자송과 후박나무
은하수 추천 0 조회 150 16.03.09 08: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녹색 건강휴양촌 정남진 장흥(長興)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에 이르는 경계는 고지대로 화순, 보성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득량만이 접하고 안양, 용산, 대덕,회진면 등 4개 면과 관산읍은 해안선에 연해있어 고흥군, 완도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부에서 서남쪽 경계는 산악지대로 영암,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용반들, 부산들, 한들평야 등 동북쪽의 보성강 유역과 남부의 득량만에 흐르는 대소하천 유역에 평야가 산재해 있다.

북동쪽으로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지나며, 유치면의 삼계봉(503.9m)을 거점으로 동남으로는 장평면의 봉미산, 벽옥산(479.2m) 등에 연결되고, 중앙으로는 유치면의 가지산(509.9m), 용두산, 보성군과 경계인 장흥면의 제암산(807m), 안양면의 사자산(666m), 곰치산 등에 연결되어 있다.

서남으로는 유치면의 민들고랑(479.9m), 국사봉(613.3m), 부산면의 수인산(516.2m), 용산면의 부용산(609m), 관산읍의 천관산(723.1m)과 양암봉(464.9m)으로 연결되어 남북 일대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강진군의 3대 하천의 하나인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유치, 부산, 장흥에 이르기까지 대소 20개 하천이 합류되어 장흥군에서 예양강(일명 금강)이라고 하고 사인암에 이르러 영암강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천과 합류하여 강진만으로 흐른다. 강 유역에는 용반, 부산, 한들 등의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여 장흥군의 명산품의 하나인 은어가 여름철에 서식하고 있다.

기타 대소 하천들 중 동북쪽 장평면의 9개 하천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남상천의 16개 하천은 득량만으로 흐르고 있다.

정남진은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하여 장흥군에서 발굴한 지역브랜드로서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해변이며 북쪽의 가장 추운 지방인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있다.

그 좌표점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표시되어 있다.

 

이번 장흥 여행은 남쪽 끝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하여 이동거리가 멀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지정된 천관산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2박3일로 실시가 되었다. 첫째날 숙소는 다음 날 천관산 산행을 위해 산행들머리와 가까운 산림청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정하였으며, 장흥의 관광명소 등의 탐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둘째날 늦은 시간이라도 장흥 탐방을 1박2일으로 마치고 떠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징흥의 별미인 징흥삼합(득량만의 키조개와 새조개, 표고버스, 그리고 한우 쇠고기 구이)을 맛보기 위해 장흥읍내로 이동, 숙소를 정하고 토요시장에서 저녁에는 삼합, 다음 날 아침은 3대곰탕 등의 별미를 즐기고 나머지 관광명소를 탐방하였다.

사흘간의 장흥탐방이라 관광명소만 탐방하지 않고 먹거리 탐방으로 둘째날에 '장흥삼합'으로 저녁식사를 하였고, 세째날 아침식사로는 '3대곰탕',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관산읍 '천관다원(T.061-867-7811)'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차인 '청태전(떡차)'를 음미하고 사흘간의 장흥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의 자생차! 청태전 」

우리 고유의 전통차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유일한 차이며 떡차의 일종이고 고려시대에 전국 19개소 다소(茶所) 중 13개소가 장흥에 존재했을 만큼 장흥은 차산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장흥차의 품질이 으뜸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 가오고락과 임하필기에 장흥의 떡차(청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자생찻잎을 정통제다법으로 제다한 청태전은 만든 직후 녹차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나, 6개월여의 숙성과정을 거쳐 담백하고 독특한 맛과 아름다운 향을 품은 부드러운 발효차이다. 중국의 보이차와 비교가 되곤 한다.

 

장흥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보림사와 천관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천관산은 테마별 분류 '100대명산'에, 그리고 기타 관광명소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보림사에는 다수의 국가지정문화재를 포함하여 많은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는 등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Ⅱ편 :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 천관사(天冠寺)

- 정남진 장흥(長興) Ⅲ편 : 호남의 5대 명산! 천관산(天冠山)

- 정남진 장흥(長興)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옥당리 효자송과 삼산리 후박나무

- 정남진 장흥(長興)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 사인정 및 방촌리 석장승

 

【 일 정 표 】2015년 2월 12일(목)-14일(토) 2박3일

                             ◈ 첫째날(2/12) 오후 : 보림사

                             ◈ 둘째날(2/13) : 천관산 산행-장흥 방촌리 석장승-장흥 옥당리 효자송(천연기념물)-장흥 삼산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정남진오산도전망대

                             ◈ 세째날(2/14) : 장흥향교-사인정-탑산사-장흥존재고택(위계환가옥)-장흥죽헌고택(위성룡가옥)-천관사

 

◀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장흥군에는 장흥 용산면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268호), 옥당리 효자송(천연기념물 제356호), 삼산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481호) 등이 있다.

그러나 이번 장흥 탐방에서는 천년기념물 전체를 탐방하지는 못하고, 천관산 산행 후 둘째날 마지막 탐방지인 정남진전망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옥당리 효자송~방촌리 석장승~삼산리 후박나무들을 탐방을 하게 되었다.

 

♧♧장흥 옥당리 효자송(長興 玉堂里 孝子松)

*천연기념물 제356호(1988년04월3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160-1

 

 

천관산 입구 장천재주차장 가기 전 옥당리 마을 앞 농로 옆에서 자라고 있는 이 소나무는 곰솔로 주로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해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수령은 약 2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2m, 가슴높이의 둘레가 4.5m, 나무의 가지도 약 21m 정도 퍼져 있다.

 

 

키가 낮고 폭이 넓은 것은 겉가지가 가슴높이에서 사방으로 발달하여 옆으로 퍼져 자랐기 때문이며 와송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50여년 전, 이곳에 효성이 지극한 세 청년이 살았는데 무더운 여름날 자신의 어머님이 노약하신 몸으로 밭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늘을 만들어 쉴 수 있게 하자고 결의하고 각각 소나무, 감나무, 소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소나무만 남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장흥 옥당리의 효자송은 2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효 정신의 근원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뜻이 전해지고 있으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長興 玉堂里 후박나무)

*천연기념물 제481호(2007년08월09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324-8

 

 

이 후박나무군은 세 그루가 마치 한 그루처럼 서로 어우러져 있는 노거수들로서 전체 수형이 특이하고 아름다우며, 세 가지도 잘 자라 남부지방에 자라는 후박나무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주로 해안지방에서 자생하는 후박나무가 육지부에서 이만한 크기로 생육하고 있는 것은 흔치 않아 학술자료로서 가치도 가지고 있다.

 

높이가 13m, 수관폭이 동 12m, 서 12m, 남 14m, 북 13m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남쪽 나무가 2.9m, 북쪽의 두 나무는 3.2m, 2.3m이다.

산서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는 이 나무는 1580년경 경주이씨 선조가 이곳에 들어올 때 동서남북에 나무를 심었는데 현재 남쪽에 심은 나무만 남아있다는 전설 등으로 볼 때 마을과 그 역사를 같이 해 온 당산나무로서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잘 이용되고 있어 민속,문화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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