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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3일 젊은 엄마 키아라 코르벨라의 첫 번째 기일인 그날 로마의 성모님 성지 '디비노 아모레'에서 24명의 사제들이 그녀를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그 미사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1000명이 훨씬 넘는 신자들이 참례했는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쟌나 베네타 몰라 성녀(1922-1962, 축일 4월 28일)가 그러했듯이, 엄마 키아라 코르벨라도 아들 프란치스코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엄마 키아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보호하는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키아라 코르벨라는 1984년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의 부모는 성령쇄신운동을 통하여 신앙 성장에 도움을 받았으며, 두 딸이 예수님과 성모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에도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키아라는 유년시절에 아시시에서 열린 프란치스코회의 피정에 참여한 뒤 그 영성에 매료되어 '할 수 있는 작은 걸음부터'를 삶의 표어로 삼았다. 18세에는 자신에게 맞는 남편을 찾아주시라는 지향으로 메주고리예로 향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즉각 전구해주셔서, 청년 엔리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난 그와 결혼 할 거야."
그러나 두사람은 6년간의 성숙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서, 2008년 9월 21일에 부부가 되었다. 약혼 기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낸 만큼 신랑과 신부는 잘 준비되어 있었고, 정말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었다. 24세의 신부 키아라가 친구에게 그랬다.
"우리가 가진 두려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기로 했어. 덕분에 우리는 평화를 가지게 되었고, 큰 신뢰를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할 수 있게 되었어.
마리아 그라치아 레티치아의 출생과 죽음
결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부부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다. 키아라가 임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첫 초음파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의사와 함께 우리 딸의 초음파 사진을 보았는데, 두개골 덮개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뇌의 결함을 무엇이라고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서 '태아가 문제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살아남을 확률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의사는 이 사실을 키아라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키아라의 즉각적인 이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십니다."
낙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을 키아라는 이 말로써 분명히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 딸을 돕고 싶었고,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나는 끔찍한 하룻밤을 보내고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아픈 딸을 주시렵니까? 왜 하필 남편 엔리코가 없는 어제 이 검사를 받고 이 슬픈 소식을 저 혼자 알게 하셨나요? 왜 저더러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어서 나는 성모님을 생각했다. 성모님도 예수님을 잉태한 상황을 남편 요셉에게 설명해야 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에게도 아이를 선물하셨다. 그러나 그 아이는 성모님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도 죽을 운명이었고,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곁에서 당신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셔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내가 알지는 못해도 하느님께서는 나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남편이 나를 안으며 그랬다. '우리 딸이니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 우리는 한참을 울었다. 임신 기간에 우리는 우리 딸 마리아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즐거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병 때문에 내 뱃속의 양수는 정상적인 임산부들보다 7리커나 많았다. 마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세쌍둥이를 임신 했냐고 물으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마다 부모인 우리는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우리 얼굴을 보면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린 정말 행복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키아라에게 산모의 위험을 감안하여 제왕절개를 권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는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했다.
"출산은 자연분만으로 빠르면서도 큰 고통 속에 진행되었다. 두 시간 만에 우리 딸 마리아는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나는 딸을 처음 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짧은 시간이 우리 딸의 한평갱이 되리란 것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딸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살아있는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예수님께 기도했었는데, 예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다. 출산 후 30분은 나로서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기억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이를 포기했더라면 절대로 이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딸에게 '마리아 그라치아 레티치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남편 엔리코가 딸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이러했다.
"'마리아'라고 한 이유는 바로 성모님께서 그 아이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도로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라치아'('은총'이라는 의미)라고 지은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음의 은총을 주셨기 때문이다. 즉, 한 생명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출생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임신가간의 매일매일은 우리와 함께하는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은총의 순간들이었다. '레티치아('기쁨'이라는 의미)라고 지은 이유는 9개월 동안 큰 고통 중에서도 우리 딸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딸의 도움으로 우리 부부간의 사랑이 고통 중에도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각각에게는 주어진 선교 사명이 있는데, 마리아 그라치아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선교 사명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우리 딸은 하늘에서도 우리를 위한 자신의 사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느님만이 아시는 신비가 우리 마음안에 주어져 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십자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 그분의 길을 걸어갈 때만이 하느님의 그 신비를 알게 된다. 바로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 안에 주어진 신비를, 즉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비를 밝혀 낼 수 있다."
다비드 요한의 아주 짧은 삶
엔리코와 키아라 부부는 다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메주고리예 순례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태아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이 초음파 검사에서 발견되었다. 임신 7개월째에는 태아의 내장 전체에도 문제가 있어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시금 시련에 봉착한 부부는 이번에도 임신 지속을 주저 없이 결정했다. 그러자 담당 의사는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키아라처럼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녀가 미소를 띠면서 자기 아이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사실 나는 놀랐다. 큰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의사는 이 젊은 부부에게 큰 감동을 받아 이들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제부터 나는 여러분에게 단지 의료인이 아닙니다. 내 이름을 다니엘라예요.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하루 중 어느 때든 연락 바랍니다."
반명 이 부부에게서 점처 떨어져나간 친구들도 많았다. 더욱이 부부는 자신들에게 유전적인 문제가 있거나 죄의 결과로 이런 시련을 당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래도 부부는 그 힘들고 외로운 시간에 부모들의 사랑 가득한 기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에 엄마 키아라는 깨달았다.
"우리 다비드는 하느님께서 원하신 대로 창조되었다. 몸이 아픈 건 우리 아이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우리가 바로 아픈 사람들이다."
2010년 6월 24일 다비드 요한이 태어났고, 이 세상에서 지낸 시간은 단 38분이었다. 다비드도 세례를 받고 하늘 나라로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아빠 엔리코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다비드로 인해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새롭게 계시되었다. 그 아이를 통해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이 사랑받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다비드가 태어날 때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리대 많은 사랑과 기도안에서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출산 후에 엄마 키아라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불행보다 더 크신 분이야. 그분께서 나에게 삶이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시고 계셔. 그것은 바로 삶의 영원성이야."
아들 프란치스코
조심하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키아라와 엔리코는 다시 아이를 갖고 싶었다. 로마의 일곱 성당을 걸어서 순례하며 키아라는 임신의 은총을 간구하였고, 하느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렇게 하여 가진 아들 프란치스코는 초음파 검사에서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넘치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임신 5개월째에 키아라의 혀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다. 아주 드물 정도로 공격적인 종양이 빠르게 전이되고 있어 치료를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키아라와 엔리코는 태아에게 해로운 치료를 모두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키아라는 자신들의 영적지도자인 프란치스코회 비토 신부님에게 편지를 썼다. "엔리코와 저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깁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키아라가 빨리 치료를 시작하도록 임신 8개월째에 출산을 강하게 권했지만 부부는 아이의 건강을 이유로 거절했다. 그렇게 하여 2011년 5월 30일에 프란치스코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키아라에게 급히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2012년 3월, 키아라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말기상태에 이르렀다는 판정을 받았다. 부부는 다시 자신들의 가정을 성모님께 맡기고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여러 친지들과 친구들과 함께 다시 메주고리예로 갔지만, 키아라는 자신을 위한 치유 기적은 청하지 않았다. "다만 저는 이 은총을 청합니다. 은총 안에서 살고 은총 안에서 고통받을 수 있기를..."
키아라의 어머니는 발현 목격자 이반과 딸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반도 세아이의 아빠였기에 키아라를 만났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젋은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이반에게 키아라가 이렇게 물었다. "만약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즉 지금 바로 성모님께로 가든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족과 남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성모님께로 갈 건가요?" 이 질문에 이반은 성모님께로 가겠다고 망성임 없이 대답했다. 이 대답은 키아라가 메주고리예 순례를 기쁘게 마치고 돌아가서 고통이라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데에 충분했다. 항암 치료 때문에 기도와 식도에 염증이 생겨 더 이상 삼킬 수도 없었다. 암세포는 근육으로 전이되어서 오른쪽 시력도 앗아 갔으며, 폐에도 전이되어 호흡도 매우 힘들어졌다.
삶의 마지막 몇달을 키아라는 바다 곁에 있는 자그마한 집에서 로마의 뜨거운 여름 열기를 피하며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남편 엔리코와 아들 프린치스코와 비토 신부님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이 함께하였다. 그들은 매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오래오래 찬미하며 조배했다. 그녀를 찾아온 많은 친구들은 올 때보다 더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들 프란치스코의 첫 생일에 엄마 키아라는 자신의 영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지를 남겼다.
임종 몇 시간 전에 엔리코는 사랑하는 아내 키아라가 심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물었다. "여보, 십자가는 가볍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맞아?" 그녀는 평소처럼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그럼요, 가볍고 아주 달콤해요."
아파하는 키아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 아내에게 엔리코는 자주 이렇게 힘을 주었다. "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당신을 위해 내 삶을 내놓을 수 있어."
키아라도 남편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요. 내 십자가는 가벼워요. 나는 천국에 있는 우리 아들과 딸에게 가요."
2012년 6월 13일 정오 무렵에 키아라는 비토 신부님에게서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셨다. 그리고 몇 분이 흐른 12시 30분에 스물여덟 살의 엄마이며 아내인 키아라는 숨을 거두었다. 더할 수 없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죽음에 들었다.
그녀의 남편 엔리코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키아라가 미소 지으면서 행복하게 죽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천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것이다."
엄마 키아라는 아들 프란치스코에게 이 말을 남겼다. "엄마는 마리아와 다비드 그리고 나를 위해 하늘 나라로 간단다. 너는 아빠와 함께 여기 남아있으렴. 천국에서 너와 아빠를 위해 많이 기도할게."
"나는 프란치스코에게 말할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도록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사랑받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이것이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란다. 사랑받도록 내버려두기. 이것이 바로 네 엄마가 한 일이란다. 그러면 너는 행복한 죽음을 밪을 수 있단다."
<Triumph des Herzens Nr. 119>에서 박안드레아 옮김
첫댓글 좋은 글을 올려주시어 하느님 뜻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은안나님 염치없지만 하나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p24에 있는 '지금은 천사들과 만나는 시간 1'을 메뉴 '천사'에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대로 천천히 올려주시면 됩니다.
복되신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하느님 뜻으로 건네어 드립니다.
네 그렇게하겠습니다. ^^ 저의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감동하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십자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 그분의 길을 걸어갈 때만이 하느님의 그 신비를 알게 된다. 바로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 안에 주어진 신비를, 즉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비를 밝혀 낼 수 있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도록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사랑받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이것이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란다. 사랑받도록 내버려두기. 이것이 바로 네 엄마가 한 일이란다. 그러면 너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단다."
아멘
키아라는 자신을 위한 치유 기적은 청하지 않았다. "다만 저는 이 은총을 청합니다. 은총 안에서 살고 은총 안에서 고통받을 수 있기를..."
"다비드로 인해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새롭게 계시되었다. 그 아이를 통해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이 사랑받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다비드가 태어날 때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리도 많은 사랑과 기도안에서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대로 두는 것.
내뜻이 꿈틀댈때면, 그대로 두는게 젤 힘들어요.
사랑하는 아빠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에 자신과 가족을 내맡기고 조용한 맘으로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나는 프란치스코에게 말할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도록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사랑받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이것이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란다. 사랑받도록 내버려두기. 이것이 바로 네 엄마가 한 일이란다. 그러면 너는 행복한 죽음을 밪을 수 있단다."
이 아침, 이 글을 읽게 하신 제 주님, 찬미합니다.
가족 때문에 참 힘들어서 그는 도대체 왜 태어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 글을 보게 되었어요.
하느님 뜻안에서 깊은 감사 드립니다.
<우리 각각에게는 주어진 선교 사명이 있는데, 마리아 그라치아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선교 사명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우리 딸은 하늘에서도 우리를 위한 자신의 사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느님만이 아시는 신비가 우리 마음안에 주어져 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십자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 그분의 길을 걸어갈 때만이 하느님의 그 신비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