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16:23~31 마지막 끝에 매듭을 풀고 매듭을 짓고 2012.12. 30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운 마음과 행복한 얼굴로 인생에 대처할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느 때이든지 어느 공간이든지 적용이 됩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잘 웃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사실은 의학상의 상식입니다. 송년 마지막 주일 우리는 크게 한번 웃고 행복한 얼굴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마음껏 웃으면, 허파가 크게 늘어나면서 몸에 아주 좋은 현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 잘 웃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2012년 마지막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볼 적마다 한결같은 무표정과 씁쓸한 얼굴들 뿐….‘산다는 것이 저토록 피곤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비 오는 날에도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름날 태양까지도 흐리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마음으로부터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옆에서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신앙인.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활기와 쾌활함을 옮겨 줄 수 있는 신앙인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평안함을 누리며 삽니다. 내 얼굴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함이 발견되는가? 시 34:5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2012년을 보내면서 주님의 기쁨과 평안함이 나를 주장하고 있습니까?
어떤 단어가 한 시대의 분위기를 요약하기도 하는데, 그 단어가'멘붕'이라고 합니다. 'mental breakdown'이라는 말인데 어정쩡한 번역약어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사람의 삶의 경험에 적용이 되고 일상생활의 여러 면을 서술하는 말이 멘붕입니다. 시대의 징후, 시대의 상황을 반영해 <멘붕 스쿨>이란 코너도 있습니다. 문제학생을 상담하는 교사에게 이런저런 학생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해 선생님을 당혹감에 빠뜨린다. 불량기 넘치는 아이, 조기유학 실패자 청년, 연기자 지망생 , 여자 꾀는 데 몰두해 있는 납득이, 부르지 않았지만 찾아오는 범생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제인 '갸루상'이 등장해 선생님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그들은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컨텍스트를 무시하거나 벗어나 독백을 거듭할 뿐입니다. 예를 들면 "그거나 그거나" 헤리곱터균이나 헤리코 바터균. 베트남 칼국수나 베트남 쌀국수나 똑같다고 우기고, "미국영어는 다르다"고 억지를 쓰며, "납득시켜드리겠다"고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말을 합니다. 이런 소통장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도의 과잉이 의도의 배반으로 귀결되는 상황이 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라고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고 사과를 말해야 할 자리에 위로를 말하고 화해가 요청되는 곳에 통합, 그것도 대통합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멘붕 끔찍한 유머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위로하는 자의 위치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통상 가해자로부터 위로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위로를 구하는 자는 상처에 공감하지만 삶의 은혜로움 덕에 그 상처받은 자보다는 덜 상처받아 아직 사랑을 나눌 마음의 여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니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주님과 사랑을 나눌만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위로를 자양분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가해자를 용서하는 고양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시대에 절대적을 필요한 위로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런 위로와 사람을 받지 못한채 2012년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입니까?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도쿄 키요미즈 데라< 淸水寺>에서 12월에 2012년의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한자 한 글자를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올해는 "金"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잘 되어서 金인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쇠금을 정했는데 몇가지가 있습니다. 왜 쇠 금자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지난 5월 22일에 전국적으로 관측된 "금"환일식("金"環日食)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금자탑이 있었습니다. 런던 올림픽의 "금"(金)메달과 도쿄 스카이 츄리, ips 줄기세포로 노벨생물학상수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돈에 대한 스캔들이 많아서, 부정 생활수급, 사자에 대한 연금 수급 등 좋지 않은 이미지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소원도 담고 실망도 담고 반성도 담고 개선하고 앞으로 이런 일들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가절함이 있기에 쇠 금을 확정 했습니다. 지난 2012년이 안좋아서 다시 한번 사모하는 마음의 쇠금을 선정을 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교수들이 2012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擧世皆濁(거세개탁)'을 뽑았습니다. 교수신문은 10~19일 전국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28.1%(176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선택했다고 23일 밝혔습니다. '거세개탁(들 거, 세상 세, 다 개, 흐릴 탁)'이란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실린 고사 성어인데 충신,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굴원은 "온 세상이 흐리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고 답을 했습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이 뽑힌 것은 혼탁한 한국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입니다.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파당적 언행을 일삼고 "MB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해법과 출구는 잘 눈에 띄지 않고 "MB 정부 끝 자락에 윤리와 도덕이 붕괴하고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며 "검찰과 법원은 법을 오ㆍ남용해 정의를 우롱했고, 대통령은 내곡동 부지문제 등 탐욕의 화신임을 보여줬고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좌우가 갈리고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불신과 불만으로 사회가 붕괴ㆍ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소망할 것이 없어서 거세개탁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왜곡된 세상에서 발버둥칩니다만 그때마다 답이 없습니다. 한국도 지난 5년의 결국, 2012년 한해도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인간들의 모든 행적은 후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평가 받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 뿐 아니라 성경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사람들의 행적은 신약 사람들에 의해서 고스란히 평가를 받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아담의 아들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줄줄이 나옵니다. 물론 악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나오지 않고 믿음의 후예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들만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믿음의 조상들 중에 가끔은 들어갈 만한 사람이 빠지고, 도저히 그 대열에 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들어갔습니다. 예를 들면, 솔로몬은 분명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 리스트에 없습니다, 반대로 어떻게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그 명단에 들어 습니다. 그리고 라합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몇몇 사람도 더 들어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들어 있을까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 분들의 마지막이 좋았고 끝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매듭을 잘 마무리 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전적으로 100 % 수긍할 수는 없지만 믿음세계에 있어서 가끔은 있습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주일이고, 내일이면 올해는 완전히 물러납니다. 그러기 전에 좋은 끝을 위해서 반드시 정리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들 모두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사사 중에 하나였고 힘이 장사였던 삼손입니다. 오늘 그의 최후를 봅니다. 사실 솔로몬 같은 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사람으로서 업적으로만 따지면 삼손 같은 사람 10명이 합해도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끝이 너무 나빴습니다. 제일 먼저 지혜를 구했고, 일천 번제로 치세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세 권의 성경까지 썼던 너무나 대단한 왕이었는데 끝에 가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방 신들과 이방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삼손은 참 어리석게 산 부분이 길었습니다. 지난 날의 잘못이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끝에 가서는 그가 할 일을 했고 이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믿음장에 이름을 올리고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을 말할 때에 삼손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 했던 세 가지 일을 잘 하면 역시 좋은 매듭을, 좋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2013년, 새해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마지막까지 그의 신앙 속에 있었던 3가지는 마지막 순간에 기도했고, 마지막 순간에 사명을 되찾았고, 마지막에 매듭을 풀었습니다.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매듭을 짓고 풀어야 할 매듭은 풀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는 모두 21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13, 14, 15, 16 넉 장이 삼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 21장 중에 넉 장을 할애해서 한 사람의 전기를 보여 주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 만큼 위대하고 본 받고 따라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삼손의 그 숱한 행적 중에 기도했다는 내용은 딱 두 군데입니다. 먼저는 15장에 나오는데, 삼손이 나귀턱뼈 하나 가지고 블레셋 사람과 전쟁을 벌이는데 순식간에 1000명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나니까 너무 목이 말랐습니다. 몹시 가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가 이제 목말라 죽게 되었으니 물을 주십시오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 우묵한 곳을 쳐서 거기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삼손이 그 물을 먹고 회복이 되어 소생했습니다. 그 터져 나온 샘물이 엔학고레 입니다. 부르짖는 자의 샘, 엔학고레 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시간 기도하므로 엔학고레의 샘이 터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회복이 되고 소생함이 있기를 축원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도가 오늘 본문입니다. 들릴라의 꼬임에 빠져서 자기 힘의 근원인 머리를 싹둑 잘리고는 블레셋에 잡혀서 눈알을 뽑힌 채로 짐승처럼 맷돌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바로 오늘 블레셋의 축제날 그들 앞에 불려 나갑니다. 그리고 신전 두 기둥 사이에 서게 되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합니다. “정말 내 할 일을 잊어 버리고 바보처럼 살았는데 하나님 저를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셔서 제게 힘을 주십시오. 저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에게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삼손이 힘을 한 번 쓰자 두 기둥이 뽑혀 버립니다. 신전이 와르르 무너지고 거기에 모인 블레셋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그리고는 삼손 자신도 함께 죽습니다. 그날 죽은 블레셋 사람이 한 삼천 명 가량되는데, 성경은 아래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여러분! 마지막 때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될 것은 기도입니다. 삼손은 생애 딱 두 번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소망이 아닙니까? 올해 여러분이 얼마나 기도하시면서 사셨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남은 하루 동안이라도 기도한다면 거기에 얼마나 대단한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은 같은 사람인데도 다릅니다. 뭐가 다르냐?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기도를 부탁해도 기도할 줄 모르는 영적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오히려 기도시간에 졸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은 기도시간만 되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시고 자기들이 사명을 이어받아야 하니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도하므로 성령을 받으니까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이 뭐였습니까? 사명 감당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고보 같은 이는 바로 순교 당하잖아요? 그 기도가 12제자를 12사도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때 기도가 없으면 정리할 여력도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2012년 마지막 때에 기도하지 않으면 마지막 매듭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에너지원입니다. 밥 안 먹으면 힘쓸 수 없는 것처럼 믿음생활도 기도가 없으면 활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올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하루동안, 정말 일년동안 못한 기도를 다 하겠다는 심정으로 기도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춥고 힘들고 어려울수록 기도의 자리는 은혜스러운 법입니다. 우리가 12월 31일 밤 11시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데, 한 시간쯤 일찍 오셔서 기도하시면 좋습니다. 그 시간에 새해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오시고, 촛불예배를 위해서 초도 준비하시고 2013년을 위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2012년의 시온의 대로가 열리도록 그리고 복을 받기 위하여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는 것도 욕심이 있어야 받습니다. 지금 이 세모에 우리가 가장 먼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기도입니다. 삼손에게서 보는 것처럼, 기도는 언제 어느 만큼 하더라도 거기에 상응하는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하는 만큼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른 쓸 데 없는 것으로 한 해를 닫으려 하지 말고 마땅히 드려야 될 기도를 하심으로써 한 해를 마무리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기도에 매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지막에 할 일 두 번째는 사명을 되찾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사명을 찾는 것입니다. 삼손은 사사였고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해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생애 내내 그 사명을 잊고 살았습니다. 싸움을 하는 것도 유심히 보면 싸움을 위한 싸움이지, 그 목적이 정말 애국심이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인지 잘 안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자기 사명을 되찾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삼손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 옛날에 성문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삼손이 얼마나 힘이 좋은지 가드에 있는 성문을 떼어 가지고 헤브론까지 – 적어도 50 km는 될 텐데- 뛰어 갑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삼손을 제거해야 되는데 하다하다 안되니까 결국 들릴라를 이용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미인계를 씁니다. 이 것이 성공해서 힘 빠진 삼손을 사로잡고 두 눈을 뽑아서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그리고 축제날 신전 마당으로 끌어내서 재롱을 부리게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삼손은 사명을 기억해 냅니다. 여러분, 사명을 발견하면 거기에 반드시 기회가 생깁니다. 삼손은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곤 신전의 기둥을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일거에 블레셋 족속을 멸절시킵니다. 원래 마노아 가문에 삼손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삼손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평생 여자 뒷꽁무니만 쫓아 다닌 삼손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사명을 발견하니까 그것을 감당하잖아요? 기회가 오니까 그 기회를 멋지게 살립니다. 비록 자신도 죽었지만 그는 히브리서 11장에 당당하게 믿음의 족보로 이름을 올립니다.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명을 재발견했을 때입니다. 사명을 깨달았을 때에 기회도 보이고 기회가 만들어 지고 이미 나의 곁에 와 있는 기회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명과 관련돼서 마지막 기회를 살린 경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기생 라합은 여호와가 이 세상에 한 분 밖에 없는 신임을 믿고, 정탐하러 온 정탐꾼을 숨겨 줍니다. 그게 그녀의 사명이었고 그것은 자기와 자기 가족 전체를 살렸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혼자 죽을 운명인데 무슨 사명이 따로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사명은 다른 한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을 막는 거였습니다. 우리야 죽을 짓을 해서 죽는 거지만 저 분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기 동료를 야단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각자 연초에 맡겨진 사명이 있었습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분명하면 분명한 대로 불분명하면 불분명한 대로 뭔가 자기가 부담 갖고 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런 우리들 각자에게 그런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셨나요? 잘 감당하셨습니까? 오늘 그 사명을 다시 찾으시고 기회를 잡으십시오. 지금 그래 봐야 크게 달라질 일 없다 생각 마시고 그 일을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기회가 오고 복 받는 통로로 이끌림을 받습니다. 기도하고 기회를 살려 힘 한 번 쓴 게 삼손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는 불과 몇 분 안에도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올해가 비록 하루 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지금 기회를 잡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때에 삼손처럼 사명을 되찾고 기회를 잡고 할 일을 해서 마지막에 웃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에 삼손이 한 일은 하나님에 대한 매듭이였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있는 매듭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매듭을 풉니까? 삼손은 하나님에 대한 매듭을 회개로 풀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매듭이 있잖아요? 매듭이 있다면 풀고 가세요.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하는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잘나가던 못나가던 질시하거나 질타하는 이웃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을 결정해 주는 지표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대개가 남을 칭찬하는 쪽보다 남을 흉보는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 치우쳐져 있는 것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 성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수단들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을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이렇게들 말하지요. 백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백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준다 해도 마지막 한명의 적이 나를 무너 뜨리기엔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을 뒤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무시했다간 언젠가는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서있게 된다는 것. 그것은 거짓 없는 현실입니다. 2012년 어쩌다가 행여 매듭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풀고 가십시오. 해를 넘기도록 오래도록 풀지 않고 있으면 훗날 아주 풀기 힘든 매듭이 될 수 있습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기도하고 사명을 되찾고 회개한 일이 순차적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그 세가지 일은 동시 다발적으로 왔습니다. 우리 역시 이 연말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엄청나게 범위가 큰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 회개라는 것에 있어서 각별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입니다. 마7장의 서두에 나오는 말씀, 혹 지난 일년 동안 다른 사람 때문에 낭패를 본 일이 있는 분들은 원망 대신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들어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4~5)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매듭 풀 것을 자신에게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삼손이 자신의 존재감을 찾은 것은 다른 데서가 아닙니다. 눈알이 뽑히고 연재 맷돌을 돌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아마도 블레셋을 저주하기 앞서 이 모든 일이 자기 자신의 허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평생에 시달리고 힘 자랑만 하며 사명을 팽개쳤던 그 모든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회개 없이 그런 대업을 이루었을 리 만무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내 자신에게 있는 들보와 허물을 발견하고 스스로 자책해야지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 없는 하나님과의 교통은 단 1%도 그 가능성이 없습니다. 회개 하기 싫으면 죄를 안 지으면 되는데 그 역시 단 1%도 가능성이 없습니다. 요즘 몇 가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기독교인들의 모습 때문에 기독교는 ‘개독교’로, ‘개차반 종교’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 원인은 자기 눈의 들보 대신 형제의 티를 먼저 본 까닭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게 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과연 기독교인들의 회개와 용서란 뭐냐에 대해서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을 때 가장 먼저 해방되는 게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게 우리들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만 반대로 가장 큰 딜레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회개와 용서에 대해서 사시(斜視)를 뜨고 봅니다. “너희들 어떤 줄 아니, 그래 예수 믿었어, 구원 받았어, 그리고 죄 사함 받았어, 그게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 받았다는 것 인정해. 그런데 그 절차가 너무 간단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지은 죄를 고하고 빌면 용서 받는다며. 그러니까 죄 지을 땐 신나게 죄 짓고 회개할 때는 예수 이름으로 한 번 기도하면 간단히 용서 받는다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 예수는 기도 한 번 하면 덜컥 용서라는 제품이 나오는 자판기네. 그런 회개가 무슨 회개냐? 그런 예수가 너희의 구세주라고? 우리가 보기에는 예수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예수는 너희의 주가 아니라 너희를 무책임하게 만들고 나약한 방임주의자로 만드는 인물이야. 우리가 알기에 예수는 그런 분이 아니야.” 이게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회개와 용서에 대한 시각입니다. 진짜 회개와 용서란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세 가진데 첫째는 회개, 둘째는 보상, 셋째는 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게 회개요,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물어주는 게 보상이며,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기를 고치는 것이 개혁입니다. 바꾸는 것입니다. 180도 뒤 돌아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 받기 원한다면서 뒤에 두 가지는 -보상과 개혁-은 안중에도 없고 생각지도 아니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회개와 용서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거부 당하는 것입니다. 이 연말에 한 번 심각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회개라는 문제까지 엮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한 것도 알고 보면 바로 이 점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했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부흥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 갈 때는 헌 집에서 썼던 더러운 것들을 다 버리고 갑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내 묵은 죄들과 못 다한 일들을 다 정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매듭을 짓는 것이면 매듭을 지어야 하고 매듭을 푸는 일이어야 하면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삼손은 마지막 때 기도했고, 마지막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마지막 때 하나님에 대한 매듭인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내내 끌려 다녔지만 마지막 때 할 일을 함으로서 인생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의 조상에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마지막이 금이 아니고 거세개탁이 아니였습니다. 우리의 2012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 속에서 진정한 회개와 자각이 일어나야 하고 올해의 할 일은 올해 마무리 지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덕분에 행복했고 복을 받았고 당신 ‘때문에’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있었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2013년은 밝은 모습으로 나를 찾아 올 것입니다. 묵은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저와 여러분의 연말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