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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사역
- 1996년 2월호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화해를 거쳐 종말의 완성에 이르는 구원사 과정에 있어서 성령론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성령의 사역이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2장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모든 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경 가운데도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에 관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계시해주고 있다.
요한복음이 성령의 본질적인 면을 계시해준다면 사도행전은 성령의 사역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계시해주고 있다. 사도행전의 경우 이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령에 해당하는 프뉴마(Pneuma)라는 말이 무려 70회나 나오고 있다. 이는 성령이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누가복음이 36회, 고린도전서가 40회 사용함에 비하여 볼 때 사도행전에 성령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통하여 계속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모으며 시작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주체는 사도들이 아니고 성령이시다. 1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보혜사요 돕는 자요 교사가 되신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의 생활과 전도의 모든 것은 살아 계신 구주요 높임 받으신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다(행 1:8).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는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이다. 이런 점 에서 사도행전은 성령에 의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 역사이기에 성령행전 이라 할 수 있다.2
성령에 관한 사도행전의 전체 주된 흐름은 성령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그것은 최초의 오순절 체험에서 뿐만 아니라 성령의 임재, 교제, 인도하심에 대한 매일 매일의 인식으로부터 그러고 그의 능력의 특별한 나타남 등에서 얻은 자각이었다. 그들이 받은 성령의 능력은 먼 과거에 일어났던 기억 속의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체험이었다.3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책에 나오는 순서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영으로서의 성령
사도행전 1장에서 성령강림에 관한 준비와 이에 관련된 말씀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는 명령을 받았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며 그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강림하심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가 사람의 능력이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또 예수님이 성령을 가리켜 아버지의_약속하신 것이라 함은 약속된 성령을 보내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약속받았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1:5).
여기에서 뜻하는 요한의 물세례란 죄를 씻는다는 상징적 의미의 외적인 표식인 반면(마 3:6,11,막 1:4),성령세례는 내적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와 은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여기에는 반드시 권능이 뒤따르는데 여기에 뜻하는 권능이란 '뒤나미스 (Dunamis)’로(행 1:8)폭발적이고 역동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뜻한다.
셋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단순히 기다린 것만이 아니라 기도와 간구 가운데(행 1:14),교제와 사귐 가운데(행1:14,2:1), 말씀을 상고하는 가운데(행1:16-20)기다렸다. 그들은 모여서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 가운데(행1:16~20) 기다렸다. 그들은 모여서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하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되었다. 그들은 모두 큰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고 계속 함께 머물면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성령은 이미 그들의 삶 속에 역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다윗을 통해 말씀하였던 성령은 그들의 관심을 가룟 유다에 관한 사건에 돌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맛디아를 가룟 유다 대신으로 뽑았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준비와 함께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교회의 탄생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죽으심 및 부활 못지않게 구원사적인 대사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오순절의4 성령강림 사건을 면밀히 연구해야 함은 대단히 중요하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나타난 표적들은 구약의 체험뿐만 아니라 구약의 약속으로 연결된다. 사실 오순절은 구약의 추수축제였다. 교회에 있어서 그 날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영적 수확이 시작된 날이다. 그러나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두 가지 표적들이 나타나 구약의 상징적 의미와 연결시켜 주었다.
첫째로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있었다.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 구약에서 바람은 흔히 성령의 상징이었다. 불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람은 그 부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처럼(요3:8) 성령의 임재 또한 이와 유사하게 언제 어떻게 임재 했는지 파악하기 힘들 것임을 뜻한다. 그러나 본 절에서 성령강림 사건을 일차적으로 바람소리, 즉 청각적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은 매우 세밀한 표현이다.
또 불의 혀(tongues of fire)란 표현 역시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묘사하는데 이 성령의 임재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함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과 불이가지고 있는 정화력과 같은 능력과 임재가 그들에게 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활동은 도저히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둘째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표적이 나타났다. 이 때에 방언은 12개 이상의 방언 이었다5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즉 그들은 자신의 혀로 말했지만 그 말들은 마음이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신 말들이었다. 오순절의 방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방언과는 구별되는데 이는 그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순례객 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각의 다양한 언어로 들려졌다는 점이다. 일반적 방언이 통역 없이는 알아들을 수 없음(고전14:13,19)에 비하여 통역 없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6
이에 관하여 물론 다양한 해석을 하는 이 들도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발성(speak-ing)의 기적이 아니라 청취(hearing)의 기적이라고 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했는데 성령이 각각 듣는 이의 귀에 모국어로 통역해 주셨다고 하기도 하며 이 방언들이 복음의 확장을 촉진하기 위한 발성의 은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에 나타난 방언과는 다르다. 우리는 오순절에 나타난 방언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였다. 놀라기도 하며 의심하기도 하며 조롱하기도 하고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는 등 그 반응은 각각이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2:28-32)을 통하여 성령의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고 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사건으로 말세에 부어주시기로 한 성령이 강림하였음을 뜻한다. 성령의 새로운 시대에의 도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 3,000명이 세례를 받아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작이다. 물론 구약에서도 신약의 교회에 해당되는 회당이나 성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새 언약의 공동체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신약의 교회가 탄생한 것은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탄생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시작됨을 항상 인식하여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는 교회 본래의 자기 사명과 그 뜻을 성취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하여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구약시대에 성령이 특별한 경우에 역사한 특수한 사역이었다는 것과는 달리 신약시대는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므로 성령의 역사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고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이 강림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성령의 역사의 차이점, 즉 특수성과 보편성의 차이점(행 2:)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7
성령충만한 제자들과 초대교회 오순절 이후 우리는 성령님께서 교회 안에 살아 역사하심을 본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능력을 입은 제자들은 그들의 새로운 사명을 위하여 일어났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대신하고 또 교회를 가르치고 치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으며 또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 전에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는데 수제자인(마 26:56,막 14:50)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하였다(마 26:69-75, 막 14:66-72,눅 22:54-62,요 18:15-18,25-27).
또 그들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었으며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는 지경이었다(요 20:19).이런 그들이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통하여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관원과 서기관과 제사장들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하였으며 산헤드린 공회는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한 이 영적인 능력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였다. 이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마찬가지였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성령은 제자들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시고 때에 따라 꼭 필요한 말씀을 주셨다(행4:13).뿐만 아니라 사도를 통하여 많은 기사와 표적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행 2:43, 3:1-10) 예를들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그 표적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성령은 제자들과 초대교회에게 무엇보다 더욱 깊은 사랑의 교제에 이르게 하였다. 이 교제는 영적 교제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교제였다. 성령사역의 목적은 성도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새로운 연합을 이루게 하는 것에 있다(행 4:32).
에스겔서 11장 1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 마음, 즉 마음과 뜻의 통일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체험과 병행해 나간 것이며"성령 안에서의 이런 교제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서로를 향한 관심을 갖게 하므로 궁핍한 형제들이 있으면 자기들이 가진 것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행2:44-45).여기에 통용했다는 말은 나누었다는 뜻이다. 아무라도 도움이 필요한 형제가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구제하였다(행4:32).어떤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져와 분배하게 하기도 했다(행 2:44,4:37).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억지로 행한 것이 아니었다(행 5:4).이 교제를 통하여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행 2:46,47).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냈다(행 2:42, 4:24-30,12:5,12). 이 같은 그들의 삶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와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2:43).이처럼 성령 충만한 생활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였으며 사랑을 나누게 하며 기도하게 하며 나아가 예배에 참여하며 가르침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칭송받는 삶을 살게 하였다.
교회를 지키시는 성령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교회는 시작하여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내적으로 외적으로 교회는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이것은 외적인 것보다 내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는 교회를 위협하는 내적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사도행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행 5:1-11)
초대교회는 공동생활을 위하여 자기가 소유한 땅이나 재산을 자발적으로 내어 놓았다. 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순전히 자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그의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어 두고 마치 전부 내어 놓은양 베드로에게 내어 놓았다. 이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며(행 5:4),또한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이었다(행 5:9).이는 죽음에 이르는 죄였다. 따라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같은 날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를 목격한 온 교회와 이를 들은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행 5:11).
우리가 이 사건을 접할 때에 너무 극한 심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순수성과 성령사역의 완전성이 지켜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를 훼손하는 일, 특히 거짓되게 하는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신 준엄한 심판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개인적 차원에서 해석하지 말고 공동체적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원망사건 (행 6:1-6)
본토 유대 지방을 떠나 외국에 흩어져 살다가 돌아온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헬라파 유대인이라 하였는데 이들 중에도 복음을 영접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 중에는 교회의 구제생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과부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밀려 구제에서 제외되었고 그 결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사도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하는 것에 전무하기로 하고(행 6:4),구제하는 일에 전적으로 봉사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를 택하여 이 일을 저희에게 맡겨 해결하게 한다. 이 일곱 집사중 한 사람이 스데반이다
교회가 원망, 불평, 불만이 고조되게 되면 교회는 분열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는 떠나게 되며 인간적인 조직체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는 원망, 불평, 불만의 소지를 제거하며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조직, 제도, 행정적인 면에서의 보완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사역자이다. 결국 성령이 역사한 성령 충만한 사람에 의해서 이런 분열과, 갈등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집사를 세워 이 문제를 잘 해결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복종하니라"(행6:7)고 말한다.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 (행 8:7-24)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에 전해지게 되면서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마리아의 시몬은 본래 마술사로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빌립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 더군다나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성령이 임함을 보고 그는 돈을 사도들에게 주고 성령의 능력을 그에게 팔도록 요청한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는 준엄한 말로 그의 악독을 지적한다.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주권성, 성령의 인격성을 침해한 사건으로 물리적 현상적 성령이해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옛부터 성령이해가 단순히 능력, 힘, 영향력이라는 잘못된 이해에 이르게 하여 성령의 인격성과 성령의 주권성을 상실하게 함을 크게 질책한 것이다.
성령은 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교회의 순수성, 공동체성, 일치성을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령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역사하였다. 즉 성령은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교회를 확장시키시는 성령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흩어졌던 예루살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사도행전 8장 26절에 의하면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사마리아에서 가사를 향해 가라고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그런데 빌립이 에디오피아인을 접근하게 한 것도 성령이었고(행 8:29),빌럽이 그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 후에 그곳에서 그를 옮겨간 것도 성령이었다.(행 8:39). 뿐만 아니라 고넬료의 가정을 개종시킨 것도 성령이었다. 또한 성령은 베드로의 환상 이후에 고넬료의 하인들을 따라 가도록 지시하였고(행10:19)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용서 받았음을 확인해주었다(행 10:43).나중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개종사건을 보고하면서 성령의 인도(행 11:12)와 그가 말할 때에 내린 성령에 대하여 언급하였다(행 11:15).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심은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며 이와 함께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안디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정책을 시도한 것은 교회의 급속한 확장을 위한 돌파구가 되었기에 대단히 의의가 크다. 9
그런데 이 일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성령은 바나바와 바울을 다른 사역을 위해 따로 세우라고 하였다(행 13:2).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택하는 일뿐만 아니라 파송하는 것도 성령의 사역으로 간주되었다(행 13:4).이리하여 이방 땅에 대한 선교사역은 성령의 역사로 그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이방선교에서 성령 역할의 다른 측면은 인도하심이다. 사도행전 16장 6절은 대표적인 좋은 실례이다. 성령은 바울과 그의 일행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 비두니아로 들어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10
이 같은 성령의 금지는 유럽 선교의 환상으로 인도되었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의 적극적 측면이다. 성령은 바울로 하여금 마게도냐를 거쳐(행 19:21) 예루살렘에 가게 하였고(행 20:22, 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교회로 하여금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고 또 교회를 선교하도록 인도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사도들로 하여금 유대인의 편견, 배타주의, 독선주의를 버리게 하였다. 성령은 사도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위한 하나의 빛으로 택함 받았음을 깨닫게 하였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교회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교회는 유대교회의 한 분파로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살펴보았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사역의 특징은 교회와 관련된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성령이다. 4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서신이 개인과 관련된 성령에 관해서 주로 기록하였다면, 사도행전은 교회와 관련하여 성령의 역사를 논하였음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시작되고 지켜지며 확장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회는 항상 성령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함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된다.
교회란 인위적 기구나 조직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공동체이기에 성령이 함께 할 때에만 참 생명에 이르게 된다. 성령이 함께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거듭 바란다.*
l. J.H.E. Hull, The Holy Spirit in the Acts of the AtiostIes (London: Lutterworth Press, 1967), P 27.
2. W.T. Conner, The Faith of the New Testament(Nashville: Broadman Press, 1940), P.198.
3. R. Richardson, ScriptuaI View of the Office of the Holy Spirit(St. Louis: Christian Publishing Company, 1832), P.32
4.하영배, 성령론(서울. 경향문화사, 1992), P.8.
5. James D. G. Dunn, Baptism in the Holy Spirit(London: S C M Press, 1970), P.40.
6. 오순절의 방언은 혼잡한 방언(Glossolalie)가 아니라 오히려 뜻이 명확한 방언(Xenolalie), 즉 외국의 언어로 말하는 방언을 뜻한다. cf. Michael Welker Gottes Geist: Theologie des Heiligen Geists, 김희진 역, <하나님의 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P.324.
7. Arno C. Gaebelein, The Holy Spirit in New Testament, P.34.
8. Richardson, op.cit,p.110
9. E.M.B Gree. I Believe in Holy Spirit(1975), PP. 58ff
10.본 절에서 성령을 가리켜 예수의 영이라 하므로 이는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필자 정보 - 황승룡
장신대(M.Div., Th.M., Th.D)에서 공부했으며,<개혁교회와 성령>,<신학적 성령론>외에 다수의 책이 있다. 지금은 호남신학대학교 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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