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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13권을 쓴 이재언 섬 전문가, 다시 <북한의 섬> 두권을 쓰다
북녘 바다 128개 유인도서를 생생하게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 섬 소개서
이재언 섬여행 전문가가 또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남북이 휴전선으로 가로 막혀 직접 가볼 수 없는 북녘 땅, 그것도 북녘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찾아나선지 수년 만에 <북한의 섬> 128개 유인도를 소개한 책을 펴냈다.
2016년부터 3년에 걸쳐 <한국의 섬> 시리즈 무려 13권을 펴냈을 때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누구도 감히 생각지못한 <북한의 섬> 소개 책자를 2권이나 한꺼번에 세상에 내놓다니 놀라지않을 수 없다.
국내 섬 여행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지닌 필자 역시 북한의 섬에 관해서도 늘 궁금해 하던 차, 이재언 작가가 북녘의 섬에 관한 책을 내고싶다는 말에 필자 역시 크게 공감하고 미력이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왔었다.
함께 이북5도청을 수차례 찾아가 몇몇 도지사를 직접 만나 도움을 청하고, 유격군연합회 등 북한 섬 관련부서에서 각종 관련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또, 실향민들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는 민통선 안의 여러섬들, 강화도는 물론, 볼음도, 주문도, 서검도, 심지어는 일반인들의 경우 별도 허가를 받아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 섬 말도에 이르기까지 함께 돌아다니면서 아직 생존해 계신 고령의 실향민들을 찾아 그들의 생생한 고향이야기를 직접 듣고 인터뷰하곤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북한의 섬> 책이 두권이나 발간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다.
북한에는 총 1,045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이 중 유인도서는 128개. 현재 서울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인 이재언 작가는 128개의 유인도를 함경남도, 함경북도, 황해남도, 두만강의 섬 등으로 분류하고, 다시 각 도를 시 및 군 단위로 세분하여 지도는 물론, 섬의 위치, 크기 및 특징, 역사적 유래, 각종 언론보도자료 등까지 삿삿히 찾아내어 정리하였다. 1권 423쪽, 2권 447쪽의 방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섬 출신 실향민들과의 대담을 통한 섬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북한의 대표적인 서해지역 섬은 비단섬과 초도이며, 동해지역 섬은 마양도와 여도를 들 수 있다. 비단섬(緋緞島)은 압록강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 64㎢, 섬둘레 49km이며, 여의도 면적의 7.7배에 달해 평안북도 신도군 군 소재지이기도 하다. 비단섬 다음으로 큰 섬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것으로 유명해진 위화도(15㎢), 다지도(13.4㎢), 황금평(10.45㎢)의 순서이다. 비단섬은 압록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섬 북쪽의 물길이 워낙 좁아 멀리서 보면 마치 만주지역에서 튀어나온 반도처럼 보인다. 비단섬 북서쪽 마안도 남쪽 갯벌에는 일명 ‘코키리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길이는 46.5m, 너비 8m, 높이 15m, 코둘레는 9m이다. 머리 부분에는 뿔처럼 바위가 솟아 있고 배부분에 해당하는 곳이 크게 뚫려 있으며 등 부분에는 잡초가 자란다. 만조일 때는 코키리의 하체가 물에 잠겨 헤엄치는 것 같이 보이고 간조 때에는 코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시 앞바다에 위치한 마양도(馬養島)는 함경남도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마양도는 신포항의 천연방파제 구실을 하여 신포항을 최고의 양항(良港)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마양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 포경(捕鯨)의 중심지였다. 육지와 가까운 이곳은 접근성과 유통여건이 좋아 1916년 포경회사가 설립되었다. 마양도는 수심이 깊고 접근성도 좋아 북한 최대규모의 잠수함기지가 있다. 속초의 아바이마을은 함경도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정착한 마을이다.
1968년 1월 강원도 원산 앞바다 여도(麗島) 부근 해역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발생 후 11개월만인 1968년 12월 23일 28차례에 걸친 비밀협상 끝에 합의문서에 서명함으로써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게 되었다. 여도는 동해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섬이었다. 첩보부대 대원들의 대북 침투 및 공작 거점으로도 활용되다가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철수한 섬이다. 원산 갈마반도와 호도반도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는 원산만은 수심이 깊어 1만t급 이상의 큰 배도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서 예로부터 조선 동해안의 각 포구와 연결된 주요 항만이었다. 원산 앞바다에는 여도, 신도, 웅도, 대도 등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다.
북한이 대표적 건설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업 중 하나는 바로 서해갑문이다. 평안남도 남포시 영남리와 황해남도 은율군 피도 사이를 연결하는 너비 14m,길이 7km의 제방으로 3개의 갑문과 거대한 인공호수를 건설한 것이다. 1981년 대동강 종합개발계획으로 착공돼 1986년 6월, 불과 5년 만에 완공됐다. 피도는 대동강 하류의 끝살뿌리-피도-광량만 사이 20리 바다를 가로막은 서해갑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늘날 남한의 새만금에 비유하자면 신시도와 비슷한 위상을 갖는 섬이다. 2007년 10월 2일 개최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방북단 일행이 남포 서해갑문을 시찰하기도 하였으며, 필자 역시 2002년 5월, 우연한 기회에 5박6일 북한방문시 이곳 서해갑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저자는 북한 섬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지정학적 위치도 꽤 자세히 조사하여 정리해 놓은 점도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황해남도 옹진군에 속한 창린도를 보자. 창린도는 해방 당시 행정구역상 황해도 옹진군 서면 창린도리였으나 휴전협정으로 북한에 귀속된 섬이다. 창린도는 옹진군의 70여 개 섬 중 순위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지정학적 특성상 고대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창린도는 베트남 왕족의 표류지이기도 하다. 화산(花山) 이씨(李氏) 시조이자 800여 년 전 안남국(安南國,베트남) 이씨 왕조 6대 왕인 영종의 왕자 이용상 씨가 고려 23대 고종 12년에 창린도에 표류해 왔다. 베트남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가 3,600km, 요즘 비행기로 5시간 거리인데 그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구사일생으로 한반도 옹진군 창린도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베트남 선상난민인 셈이다.
북한의 섬 중에서 남한의 백령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은 월래도이다. 백령도 옹기포항에서 월래도까지는 15km남짓에 불과하다. 백령도 바로 코앞이 장산곶이고, 백령도는 북방한계선(NLL)까지 5km 떨어져 있다. 백령도 바로 우측에 월래도, 마합도, 기린도, 비압도가 줄지어 서 있다. 모두 북한 땅이다. 연평도는 북방한계선(NLL)불과 3.4km, 북한 섬인 석도와는 채 4km도 떨어져 있지 않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백령도와 월래도 사람들은 서로 자주 왕래하였다. 월래도는 수산물이 풍성해 어업으로 생활하
는 민가가 여러 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주민들이 백령도로 피난 갔다가 이제나 저제나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허망한 꿈이 되었다. 지금 월래도는 북한의 군사기지로 변해 있다. 백령도 심청각에서 바라보는 월래도는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온다. 월래도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세 차례나 방문한 곳이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섬이라는 의미이다. 멀리서 보는 월래도는 마치 거대한 군함 같기도 하고, 커다란 고래 같기도 하다. 원래도 근해에는 북한과 중국어선이 그물을 내리고 조업하고 있고, 지척에는 한국 해군 경비정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황해남도 청단군 소속인 용매도 역시 한국전쟁 당시 유격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섬이다. 볼음도 북쪽해안을 걷다보면 멀리 용매도가 아련히 시야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를 안불러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바로 전석환 씨(89). 번안곡에 아름다운 우리 가사를 붙여 ‘건전가요부르기’에 앞장 섰던 분이 바로 전석환 작곡가다. 그는 60-70년대 소위 ‘Sing-Along’, 즉 ‘다 함께 노래 부르기’ 의 선구자일 뿐 아니라 통기타 전파의 원조이기도 하다.
이제 미수(米壽)를 넘기신 전석환 작곡가는 볼음도라는 서해 최북단 섬에서 머무르고 계신다. 볼음도는 강화도 선수선착장에서 배로 55분 쯤 걸리는 섬으로 민통선 내 위치하고 있다. 전석환 작곡가가 볼음도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고향이 그리워서다. 그의 고향은 황해남도 용매도(龍媒島)라는 섬. 북방한계선(NLL) 바로 위 북한 땅에 위치하고 있다. 용매도는 볼음도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섬이다. 볼음도 북쪽해안을 걷다보면 멀리 용매도가 보인다.
2021년말, 필자는 NLL 최서북단 ‘말도’라는 섬을 다녀오면서 볼음도에서 하룻밤 전석환 선생님 댁에서 묵은 적이 있다. 함께 간 이재언 광운대 해양섬정보연구소장이 전석환 선생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만나게 된 것이다. 말도에 들어갈려면 행정당국(서도면)의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군사작전지역이다. 허가를 받은 사람만 볼음도에서 다시 행정선으로 바꿔타고 30-40분 더 들어간다.
전석환 선생님 댁은 볼음도에서도 제일 북쪽, 북한땅이 바로 보이는 곳이다. 저수지가 있고 800여 년 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는 볼음2리 마을이다. 볼음도 북쪽 끝단 저수지 제방을 걷다보면 말도 뒤로 용매도가 시야에 잡힌다. 전석환 선생님은 매일 이 길을 산책하면서 용매도를 바라보고 고향생각에 잠기곤 하신다고 한다.
저녁 식사후 전석환 선생님은 지나온 삶 및 고향 용매도에 관해서 적지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석환 선생님께서는 현재 북한 땅인 용매도에서 태어나서 서울유학으로 한성중학을 다니다가 중3 때 6·25사변이 터졌다. 휴전 이전에 용매도는 남한 땅이었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용매도에서 유격군에 입대했다. 전 선생님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놀랄만한 일화도 소개한다.
서울에서 용매도까지는 580km거리. 전쟁소식을 듣고 혼자 닷새 동안 걸어서 용매도까지 갔다고 한다. “첫날은 파주, 둘째 날은 개성, 셋째 날은 봉서에서 자는 등 하루에 거의 100km씩 걸었습니다. 고향 가는 도중 인민군의 검문을 받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니 남한에서 북한으로 피난가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어이없어 하더군요”라는 일화도 얘기해 주신다. 고향 용매도에 도착해보니 다행히 부모님 모두 안전하시고 섬 역시 별 피해는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인데도 고향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바로 유격군에 합류했다.
당시 용매도 청년단원이 800여 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유격군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전 선생님은 “한국전쟁이 터진 후 1950년 9월 18일. 용매도 청년들로 구성된 유격군이 6·25후 북한군에 점령당했던 용매도에서 의거를 일으켜 인민군, 내무서원, 보위부원, 인민학교 교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8명을 생포하여 연평도에 주둔하고 있던 우리 해군에 넘기고 휴전 성립 때까지 용매도를 사수했지요”라고 당시의 전황을 이야기해주신다.
이러한 공로로 휴전이 이루어지자 우리 해군은 손원일 제독의 지시에 의해 LSD를 동원, 용매도 주민 800여 가구, 3500여 명을 모두 남한땅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당시 용매도 주민이 3500여 명이었다니 용매도가 제법 큰 섬이었던 것 같다. 섬 길이가 동서 약 3.5km, 남북 폭 0.8km, 둘레 11.9km 정도. 전 선생님 응접실 벽에는 용매도 지도가 붙어 있다. 구글어스에서 다운받아 주요지명은 전 선생님께서 직접 써넣은 것이다. 용매도는 1953년 휴전협정으로 북한으로 넘어간 이후 섬 전체가 군사기지로 요새화되었다.
이재언 작가는 “1991년, 우리나라에 섬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 나는 알 수 없는 소명에 이끌려 2.5t 등대호를 타고 전국 총 446개 유인도 순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한국의 섬> 13권이 완간되자 사람들은 나에게 ‘섬박사’, ‘섬 탐험가’라고 불러주었다. 그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이자 꿈과 낭만이 머무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섬에 관한 관심 만큼 섬의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남한의 섬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하물며 북한의 섬은 어떨까? 우리나라 국민에게 북한의 섬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하나도 대지못할 사람들이 태반일 거로 생각한다. 북한의 섬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도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섬들이 많이 있다. 고려시대 번성한 국제 무역항이었던 벽란도, 한반도의 영외 영토라고 할 수 있는 압록강 하구의 비단섬, 황금평섬, 요동정벌을 떠난 이성계가 회군해 조선 건국의 기점이 되었던 위화도,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녹둔도, 2019년 9월에 함박도에 북한군 막사 및 인공기가 보인다고 하여 국회 및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섬 함박도 등이 그런 섬들이다.
어쨋든 북한은 다른 나라의 영토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선언적인 문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고향을 떠나와 그리워하고 다시 한번 돌아가보고 싶어 하는 실향민들이 많다. 이북5도민회에서 실향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에게는 북한의 섬이 정서적으로 그리 먼 곳에 있지않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재언 작가는 그의 책 말미에서 “이 책은 훗날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통일이 되면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북한의 섬을 방문하고 주민과 소통하는데 이 책이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북한의 섬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또 남과 북이 평화의 장이 조성되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한다.(글/임윤식)
저자 이재언 프로필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50세가 넘어서 중, 고 검정고시를 통해 전문대학교, 사이버대학교 및 대학원을 나왔다. 작가, 항해사 겸 선장, 섬 탐험가, 섬 박사, 드론사진작가, 대학교 연구원, 사회복지사, 목사, 섬 NGO단체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등대1호, 등대2호 배를 직접 몰고 전국에 있는 총 446개 유인도를 3회 탐사했다. 2009년-2019년까지 목포대학교 도서(섬)문화 연구원 재직, 2020년 1월부터 목포 과학대학교 해양레저사업단에서 선임연구원, 2022년 9월부터 현재 서울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공동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해양수산부 산업포장 훈장, 장보고 대상, 여수시장상, 서울공동모금회 회장상을 받았다. KBS저녁 9시 뉴스, MBC느낌표 5개월 출연,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등 유수의 방송과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