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으로 출발한 아주 큰 학교
[예일법대 이야기 ⑤] 로스쿨 도서관 이야기
작은 도서관으로 출발한 아주 큰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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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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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로스쿨에서는 ‘예일 로스쿨의 역사(The History of the Yale Law School)’ 라는 강의가 개설돼 있다. 수강신청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주로 모교인 예일 로스쿨의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인 학생들이 듣고자 하는 소규모 세미나 강의이며, 담당교수도 그런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수강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
학생들은 미국 법학교육의 흐름 속에 예일 로스쿨이 어떤 위치를 점해 왔는지를 공부하고 예일에 몸담은 학자들과 그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간 여러 학파의 이론을 고찰하면서 모교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자부심을 기른다. 내가 재학중일 땐 예일대 사학과에서 학위를 받고 예일 로스쿨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여교수가 그 수업을 맡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다.
수업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수강중인 선배를 졸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어듣곤 했다. 예일 로스쿨이 세드 스테이플즈(Seth P. Staples)라는 판사 소유의 작은 도서관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얘기도 그 선배를 통해 처음 들었다.
사실 이것은 예일 로스쿨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다. 책이나 종이 등 자원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미국의 도제식 법률가 양성 제도하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그나마 잘 갖춰진 곳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지식을 다져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 같은 장소가 교육기관의 역할을 병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예일대 학부를 나온 스테이플즈 판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미스타드(Amistad)호 선상 반란 사건에서 자신들을 노예로 팔아 넘기려 했던 백인 선원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들을 변호하여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변호인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유능하고 명망 있는 법조인이었을 뿐 아니라 1800년대 당시 미 동부 지역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개인 서재 겸 법학 도서관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서재 겸 도서관에는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의 영국법주석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등 당시 법학도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명저들이 무려 몇십 세트씩이나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 도서관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던 예일대학 측은 스테이플즈 판사 사후 4,188 달러 65 센트에 이 도서관을 매입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정식 법학 교육 기관의 틀을 갖춘 로스쿨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1843년에 처음으로 지금의 J.D. 학위에 해당하는 L.L.B. (Bachelor of Laws) 학위를 수여하였다.
한때 작은 도서관 하나로 학생을 받았던 예일 로스쿨이 지금은 훌륭한 법학도서관 외에도 여러 가지 시설을 고루 갖춘 어엿한 법학 교육 기관으로 거듭났다. 현재 예일 로스쿨 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릴리언 골드먼 법학도서관 (Lillian Goldman Law Library) 이다. 예일 로스쿨 도서관은 약 80만권의 장서와 1만여종의 연속 간행물 이외에도 수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외국법, 국제법, 비교법 관련 서적은 20만권에 이른다. 작년 5월 로스쿨에 폭발사고가 나면서 수도관이 파열되어 고서적과 희귀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로스쿨 도서관의 희귀도서실(Paskus-Danziger Rare Book Room)이 물에 잠기는 일이 생겼는데, 이때 예일대의 고서적 도서관인 바이니키(Beinecke Library)의 기술자들이 출동해 글씨가 번지거나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젖은 고서적들을 급속 냉동시키는 등 노력을 기울여 다행히 피해가 크지 않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예일 로스쿨 동창으로 만나 부부가 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위원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진 것도 예일 로스쿨 도서관에서였다. 힐러리가 밝힌 바에 의하면 도서관에서 넋을 놓고 자기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빌에게 자신이 먼저 다가가 자기 소개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학생들이 입학하게 되면 사서의 안내로 도서관을 구경하면서 어떤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배우게 된다. 미국 로스쿨에서는 사서들이 로스쿨 출신인 경우가 많고 도서관에서 오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법률 리서치 과목을 강의하기도 한다. 예일 로스쿨 도서관 사서 중에는 예일 로스쿨 정교수인 사람도 있다. 사서들은 학생들이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어떤 점을 힘들어 하는지,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할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논문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야 할 때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 우리를 안내해 준 예일 로스쿨 도서관의 한 노(老)사서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는데, 갓 입학한 어린 학생들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새삼 옛 기억들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는지 ‘힐러리와 빌’이 함께 도서관을 오가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다고 회상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배필도 구할 수 있으니, 학교에 다니는 동안 도서관에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하고 우스개 소리를 해서 새로운 환경에 던져져 잔뜩 얼어 있던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에서의 소중한 인연이 그렇게 한 순간에 만들어지기도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배필은 구하지 못했지만 로스쿨 3년 내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로스쿨에 들어가자마자 거쳐야 하는 여러가지 관문 중 하나로 ‘도서관 과제’(library assignment)라는 것이 있다. 온라인 법률문헌 데이터베이스인 LEXIS와 Westlaw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료를 검색하면 간편하지만, 이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어, 법학도서관에서 직접 자료를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 놓지 않고는 학교 생활을 도저히 제대로 해 나갈 수가 없다.
도서관 과제는 이를 염두에 두고 학생들로 하여금 마치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직접 발로 뛰면서 이 책 저 책을 뒤져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동시에 도서관 구석구석을 익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내주는 것인데, 로스쿨 신입생들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숙제다. 내 경우, 숙제를 받아 보니 ‘Using Shepard’s, provide the cite for the most recent case questioning the continued validity or precedential value of Batson v. Kentucky (1986).’처럼 알쏭달쏭한 문제가 수십 개였다. 아니, 셰퍼즈란 무엇이며 대체 뭘 찾으란 말인가? 지금이야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떤 책의 어느 부분을 보아야 하는지 감이 금방 오지만 입학한지 겨우 나흘째였던 그날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었다.
예일 로스쿨 도서관은 열람실과 서가로 나뉘어 있는데, 로스쿨 학생 두 명 당 하나씩 도서 열람용 책상(study carrel)이 배정된다. 나도 단짝 친구와 열람용 책상을 함께 썼다. 내가 입학한 이듬해인 2001년은 예일대가 개교 300주년을 맞는 해였기 때문에 행사도 많았고 또 그만큼 공부를 접어두고 구경나가고 싶은 유혹도 많았다. 하루는 대경기장에서 ‘사이먼과 가펑클’의 전 멤버인 폴 사이먼이 전설적인 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불렀는데, 로펌 1차 면접 준비가 겹쳐 안타깝게도 가지 못했다. 도서관 책상에 자료를 펴놓고 앉긴 했지만 정작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니 집중이 될 리 없었다. 내 책상 맞은편에는 작은 창문이 나 있었는데, 그날 밤 내내 창밖에선 3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이 팡팡 터졌고 그걸 멀리서 바라보는 내 가슴도 따라 뛰었다. 지리하고 피곤할 때마다 창밖을 살짝살짝 내다보는 걸로 마음을 달래며 그렇게 도서관에서 지샌 밤이 참 많다.
2학년때부터는 법학지 활동 때문에 도서관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로스쿨에는 그 학교에서 펴내는 학술지가 있는데, 이를 로리뷰(law review)라 부르기도 하고 로저널(law journal)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법학지의 편집위원단은 해당 로스쿨 학생들 중에서 선발된다. 학생 편집위원들은 학술논문을 받아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논문에 인용되는 판례들을 꼼꼼하게 읽어 인용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등의 다양한 작업을 거쳐 글을 다듬어서 출판하는 역할을 한다. 로리뷰나 로저널에 글이 실린다는 것은 큰 영광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앞다투어 명성이 있는 로리뷰나 로저널에 논문을 싣고자 한다.
나는 예일 로저널(The Yale Law Journal) 과 예일 법인문학저널(Yale Journal of Law and the Humanities) 등 두 종류의 법학지 일을 했다. 예일 로저널은 예일 로스쿨을 대표하는 법학지여서 법학관에 위치한 사무실도 널찍하고 재정도 넉넉했지만 법인문학저널은 규모도 작고 사무실도 단칸으로 로스쿨 정원 한쪽의 꽃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법인문학저널 일이 개인적으로 조금 더 재미있었다. 문을 열어놓으면 다람쥐가 들어오기도 하는 아담한 사무실에도 정이 갔고, 무엇보다 법과 문학, 법과 예술을 접목시킨 논문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 번은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The Moonstone’ 이라는 고전 추리소설을 분석한 논문이 들어와서 잔뜩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좋은 글이긴 했지만 주제가 그리 신선하지 못해 편집회의에서 찬반 투표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반대 의견을 냈던 적도 있다.
편집하는 일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후에야 이처럼 글의 내용과 관련해 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햇병아리 시절에는 주로 하는 일이라는 게 연필을 잔뜩 깎아 놓고 다른 편집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깨알 같은 글씨로 달린 수많은 논문 주석을 전부 읽고 거기에 인용된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또는 문장부호의 용법이 틀렸거나 문법상의 오류는 없는지 짚어내 하나하나 표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주석에 인용된 책을 일일이 찾아다 주석의 내용과 비교해 보며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였으므로 이런 종류의 편집 작업은 주로 법학도서관에서 했다.
이런 일을 싫증이 나도록 하기 때문에 미국 로스쿨 학생들끼리는 농담삼아 로저널 편집위원은 10m밖에서도 마침표나 쉼표가 이탤릭(italic)체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법학지 활동을 통해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미국 법학계에 발자취를 남길 훌륭한 논문들의 초안을 접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졸업 후 예일 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로스쿨 건물에 들어가 습관처럼 도서관 입구 쪽으로 발을 옮기다가 문득 이젠 졸업을 해서 외부인이 되었으니 이전처럼 마음대로 도서관에 드나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 라는 푸시킨의 시처럼, 도서관에 앉아 피곤함을 떨쳐버리려 애쓰면서 멍하니 학교 밖의 세상을 꿈꾸곤 하던 그 시간들도 이젠 오히려 돌아가고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정원선 변호사·뉴욕 심슨 대처 & 바틀릿 소속·2003년)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1/2004010800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