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초고] 핵을 가질 것인가는 누가 정하는가—필요성은 기밀이 아니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 AI 동료들
최근 트럼프의 발언을 둘러싸고 여러 파장이 일고 있다. 평화를 기대하는 내부의 희망이 있는가 하면, 한국이 핵무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외부의 의혹 제기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18일 사설에서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동맹이 되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아시아와 유럽에서 강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 안에서 자체 핵무장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의 행보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권자의 한 사람인 필자의 눈에도 여러 가지가 의문이다.
지난해 봄 나는 민들레 지면에 「'핵무장론'에 대한 상식적인 의문」을 썼다. 핵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상식적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 군사전문가들의 고견을 기다린다는 말로 맺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71
답은 열사흘 만에 왔다. 이론화학자 강홍석 선생이 「한국 자체 핵무장론의 허점…핵실험 대체 어디서 하나」로 응답했다. 그는 핵무장론 자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유보한 채, 핵실험이 돌이킬 수 없는 환경적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만은 경고해야겠다며 그 한 대목에 집중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55
그의 답은 내 의문을 풀어준 것이 아니라 훨씬 무겁게 만들었다.
핵보유국은 자기 땅에서 실험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1960년부터 1996년까지 210회를 실험했다. 알제리 사막에서 17회,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서 193회. 영국은 1951년부터 1991년까지 45회를 호주의 섬과 사막, 그리고 미국 네바다에서 했다. 그런데 두 나라를 합쳐 255회 가운데 자기 본토에서 실시된 것은 단 한 번도 없다.
대가는 남의 땅 사람들이 치렀다. 폴리네시아 주민들에게 암과 갑상선 질환이 나타났고, 끈질긴 항의 끝에 2016년에야 프랑스 대통령이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실험은 본국에서 결정하고 피폭은 식민지에서 감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디서 할 것인가"가 아니다. "누구의 땅에서 할 것인가"다. 우리에게는 알제리도 폴리네시아도 없다. 우리가 실험한다면 우리 땅에서, 우리 후손이 살아갈 땅에서 해야 한다. 강 선생의 말대로 국토는 우리 것만이 아니다.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반론에 대해서도 그는 정면으로 답했다. 우리가 193회를 실험한 프랑스만큼 핵폭발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가. 이론화학자로서 그는 그 복잡한 연쇄 반응을 계산만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터리 화학조차 이론과 실험을 거듭하고도 열폭주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부지 문제로는 부안을 들었다. 2003년 방폐장 부지로 확정됐다가 이듬해 주민투표에서 91% 반대로 백지화된 일이다. 중저준위 폐기물조차 그러했는데 핵폭발 뒤의 세슘과 스트론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우리 인구밀도는 북한의 두 배다.
시민은 답했는데, 국가는 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 글의 본론이 시작된다.
시민 과학자는 열사흘 만에 답했다. 정확하고 무거운 답이었다. 그런데 그 답이 국가의 결정 회로에 입력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정부는 이 물음들에 공식적으로 답한 적이 없고, 결정은 그와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그사이 미국은 지난해 9월 국방부를 전쟁부로 부르기 시작했고, 올해 7월 하원 본회의가 216 대 212로 그 개명을 담은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달 들어 한미 연합훈련은 축소 지시가 내려졌고, 일본에 배치돼 있던 항공모함은 중동으로 떠나 태평양에 미 항모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 쪽에서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이 승인됐고, 40년 넘게 묶여 있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협상이 처음으로 열렸다.
집단지성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작동했다. 다만 그 지혜가 들어갈 문이 없었을 뿐이다.
아직 답을 듣지 못한 물음들
강 선생이 답해준 것은 여러 물음 중 하나였다.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 있고, 그사이 새로 생긴 것도 있다.
첫째, 우리에게 없는 것은 폭탄을 설계하는 능력인가, 그 안에 넣을 물질인가. 흔히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에게는 농축시설도 상업 재처리시설도 없다. 일본이 재처리공장과 상당한 플루토늄 재고를 가진 것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후자라면 확보에 몇 년이 걸리며, 그 몇 년 동안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둘째, 재처리 시설을 어디에 둘 것인가. 미국 핸포드는 정화에만 수천억 달러가 들고 작업이 2070년대까지 이어진다. 영국 셀라필드와 프랑스 라아그도 해양 배출 논란을 안고 있다. 우리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부지조차 40년째 정하지 못한 나라다.
셋째, 원전 밀집지대가 재래식 무기로 공격받았을 때 우리는 핵으로 보복할 수 있는가. 자포리자 원전은 재래식 포격을 받았고, 원전 공격을 금지한 제네바협약 조항은 무력했다. 재래식 공격에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위협은 비례가 맞지 않아 상대가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핵무기는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
넷째, 핵확산금지조약을 벗어나면 원자력공급국그룹의 공급이 끊긴다. 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나라에서 스무 기가 넘는 원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기를 얻자고 전력망을 인질로 내주는 셈이 아닌가.
다섯째, 지난해 공동 설명자료에 담긴 국방비 증액과 대미 투자는 무엇을 얻기 위해 지불한 값인가. 그리고 그 지불의 상한선을 누가 정했는가.
다섯 문항 가운데 군사기밀은 하나도 없다.
8천 톤급 세 척은 어느 바다로 가는가
그리고 여섯 번째 물음은 이미 결정이 내려진 사안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정상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승인됐고, 정부는 올해 5월 '장보고 N 프로젝트'로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를 발표하며 배수량을 8천 톤급으로 올리고 3척 이상을 짓기로 결정했다. 6월부터 한미 협상이 진행 중이다. 조 단위 사업이고, 우리 해군의 성격을 바꾸는 결정이다.
원자력 추진이 왜 필요한가부터 짚어야 한다. 배터리가 좋아져 재래식 잠수함도 저속에서 2~3주를 물속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면 전지는 이르게 바닥난다. 반면 원자로는 출력을 뽑는 데 산소가 필요 없으므로 빠른 속도로 몇 주를 달릴 수 있다. 그래서 길목을 지키는 매복은 재래식으로 되지만, 달아나는 표적을 따라붙는 추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 방향의 사실도 함께 놓아야 한다. 정지 상태의 정숙성에서는 재래식 잠수함이 우세하다. 원자로는 끌 수 없어 늘 열과 소음을 내지만 전지 추진은 완전히 멈출 수 있다. 값은 몇 분의 일이고, 좁고 얕은 서해에서는 큰 잠수함이 오히려 불리하다.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을 비롯한 미국 전문가들이 한국 해군의 작전 반경이라면 재래식으로 충분하며 그 비용을 다른 방어역량에 쓰는 편이 낫다고 지적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정작 물어야 할 것이 나온다. 대양에서 잠수함을 추적하는 일은 오랫동안 미 해군의 영역이었다. 해저 청음망과 음향측정함, 초계기, 그리고 자체 공격원잠이 하나의 체계로 엮여 있다. 그렇다면 우리 배 세 척은 어디로 가는가. 동해에서 북한 잠수함을 쫓는다면 그것은 우리 임무다. 그러나 서태평양이나 남중국해로 간다면 그것은 자주국방이 아니라 미 해군 임무의 분담이다. 자율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의 전쟁에 끌려들어갈 지분을 사는 일이다. 지난 6월 협상 첫날 기자들이 미국 대표단에게 물은 것도 정확히 "한국의 핵잠이 중국 견제용이냐"였다. 답은 없었다.
세 번째 가능성도 있다. 이 사업이 실제로 열어젖힌 것은 배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이라는 것이다. 1974년 이후 묶여 있던 농축과 재처리 논의가 잠수함을 지렛대 삼아 처음 본궤도에 올랐다. 배는 2030년대 중반에나 뜨지만 연료주기 자립은 별개의 주제다. 만약 그것이 진짜 목표였다면, 그 또한 국민에게 설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동해의 대잠 임무인가, 미 해군 임무의 분담인가, 아니면 농축 권한을 얻기 위한 명분인가. 셋은 필요한 척수도, 배치할 바다도, 감당할 위험도, 붙는 청구서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 셋 중 무엇인지가 주권자에게 설명된 적이 없다.
형식을 바꾸면 절차가 사라지는 수법
이 질문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물어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조약이 아니라 '공동 설명자료'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조약이 아니면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다. 헌법 60조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국회 동의를 요구한다.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3.5%로 올리는 일이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런데 형식이 조약이 아니어서 그 문턱을 넘지 않았다.
낯익은 수법이다. 원전 증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세대를 넘고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행정계획에 담아 국회 동의를 비켜갔다. 에너지에서 쓰던 우회로가 안보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이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정한다. '붙일 수 있다', 곧 재량이다. 핵을 가질 것인가야말로 이 조항이 상정한 전형적 사안인데, 문을 여는 열쇠가 한 사람 손에만 있으니 주권자는 스스로 물을 수조차 없다.
필요성은 기밀이 아니다
협상에는 비밀이 필요하다. 어느 선까지 물러설지를 미리 밝히면 상대는 그 선까지만 내주면 된다.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감출 수 있는 것은 '어떻게'이지 '왜'가 아니다. 소나(음파탐지기)의 성능과 원자로 제원, 협상의 순서와 카드는 덮어둘 수 있다. 왜 이 무기가 필요한가, 어떤 위협을 얼마나 줄이는가, 값은 얼마이고 대안은 무엇인가 — 이것은 기밀일 수 없다. 필요성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대개 보안 때문이 아니라 설명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누어야 할 것은 밀실과 광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길 내용이다. 협상장 안은 닫아두되, 들어가기 전에 목표와 지불의 상한선을 위임받고 나온 뒤에 결과를 승인받는 것. 유럽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카드는 감추되 한도는 공개하는 방식이다.
매번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안이라면,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갖고 숙의하는 자리를 두면 된다. 전화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와, 위의 물음들을 사흘에 걸쳐 듣고 내리는 판단은 전혀 다른 것이다. 되돌릴 수 없고 세대를 넘는 결정일수록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주권자는 백지에 서명하지 않는다
미국은 78년 만에 자기 이름을 되찾아 '전쟁부'로 돌아갔다. 감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상대와 마주 앉아 우리의 명운이 걸린 문서에 서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문서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주었는지 주권자는 신문을 보고서야 안다.
시민 과학자는 열사흘 만에 답했다. 물을 곳이 없어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할 의무를 진 쪽이 입을 열지 않을 뿐이다.
대통령을 뽑은 것은 결정할 권한을 맡긴 것이지 결정할 자격을 넘긴 것이 아니다. 위임에 해지 조항이 없으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양도다. 우리는 양도를 하지 않았다.
주권자는 백지에 서명하지 않는다. 광복 81년, 이제는 그 종이에 무엇이 적히는지 함께 읽을 때가 되었다.

첫댓글 https://www.p-um.net/politics/policy/cmtared2v01hn01ahz30arxz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