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재길을 따라 도동서원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정수암(淨水庵)으로 꺽어지는 대니산 샛길이 나타난다. 정수암은 한훤당 선생이 선고(先考) 어모장군 충좌위사용(禦侮將軍忠佐衛司勇) 휘 유(紐)를 시묘(侍墓)하던 여막(廬幕)이 있었던 우리 문중의 유서깊은 유적이다.
지금은 영천 성도사에서 17년 전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77세의 스님이 선화당(禪華堂)을 짓고 참선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건장한 모습이다. 스님이 정자암 아래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도로가 있다며 산길을 따라가다보면 한훤당 선고의 묘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물 웅덩이를 피해 자동차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계단이 보인다.
유자 할아버지 묘소가 나타난다. 할아버지께 엎드려 절하다. 언제 이곳을 다시 찾을지 기약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주위를 오래동안 둘러본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과 다시 도동서원쪽으로 내려와 서원 옆 시골집에서 국수로 아침을 때우다.
2012년 6월14일 아침8시30분. 이제 한훤당 묘소를 찾아 발길을 옮기다. 도동서원 앞 비각옆으로 난 숲길 입구에 ‘한훤당(寒暄堂) 묘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서원을 끼고 소나무 숲길 800M 정도 이어진다. 상큼한 솔냄새를 맡으며 10여분 정도 오르니 한훤당묘소 주변 묘역 안내도가 세워져있다. 한훤당묘소 위로 한훤당배위 정경부인 순천박씨의 묘가 있다. 한훤당 묘소 아래에는 손자인 호조정랑 휘 대(岱)의 묘가 있다. 안내판에는 동부참봉(東部參奉) 대(垈)의 묘라고 씌어있는데 한자표기가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또 동부참봉이란 벼슬은 보감과 족보의 기록에는 기술되어있지 않다.
한훤당 묘소는 3기의 묘 중에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아래쪽에 두기의 묘가 있다. 한훤당 셋째딸 숙부인의 묘와 한훤당의 넷째 아들 휘 언학(彦學)과 배위 공인(恭人) 고령박씨(高靈朴氏)의 묘가 있다. 안내판에는 청주정씨(淸州鄭氏) 정응상(鄭應祥)에게 출가한 셋째딸이 친정묘역에 묻히게 된 사연이 적혀있다. 넷쩨 아들 참봉공(參奉公) 휘 언학(彦學)은 영남 계파 파조가 되어 매년 음력10월2일 묘제를 올리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이 통했나보다. 누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한훤당 할아버지 묘소 앞에 예를 갖추고 서다. 24世孫 기후(基後), 29世孫 윤호(潤浩), 30世孫 성용(聖容) 두손모아 엎드려 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