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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성인주막)
중화 고을에서 채씨 노인의 손자를 백교리댁 따님과 혼인 할수 있도록 글자를 알아 맞추어준 은공으로채노인은 김삿갓을 붙잡아 앉혀 두고 오래도록 함께 하려 했지만 김삿갓은 홀연히 빠져 나와 평양으로향하고 있었다.
산속 어디쯤을 내려 가다가 보니 길가에 성인(聖人)이라는 주기(酒旗)가 보인다.
술집 이름치고는 너무도 엉뚱한 이름이라 호기심이 솟아 서슴치 않고 주막 안으로 들어가니 주막 주인은 여자가 아니고 70이 넘은 늙은이였는데 수염과 머리는 백발이요 풍채도 늠름하여 첫눈에 보아도 예사 노인이 아니었다
나 술 한잔 주시요 ~술집 이름을 성인이라 한데는 무슨 연유가 있소이까?
노인이 말하길 옛날부터 좋은 술은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나쁜 술은 현인(賢人)이라 불러오고 있지않소?우리 집에서는 좋은 술만 팔으니 아예 그렇게 지은것이라오 !
아닌게 아니라 김삿갓이 술을 마셔보니 술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김삿갓은 자기 자신이 유식 하다고 자부해 왔다,그런데 주막 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좋은술은 성인이라부르고 나쁜술은 현인이라 부른다니 그것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해서 김삿갓이 물었다.
그 호칭에 대하여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름 한건지 정중하게 물었더니 노인이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그것은 위략(魏略)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지요 식화지(食貨志)라는 책에 보면 <소금은 모든 반찬의 으뜸이요味鹽食肴之將 술은 모든 약중에서 가장 좋은 약,酒百藥之將> 이라는 말이 나와요 ~ 사실 모든 음식중에서 술처럼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런데 위왕(魏王)이란자는 그것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금주령(禁酒令)을 내려 버린 일이 있었다우.그래,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렸다 해서 술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술을 끊을수는 없는일이라 모두들 밀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감히< 술 >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좋은 술은 성인(聖人) 나쁜 술은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말하자면 은어(隱語)를 써 온것이지요.
비록 만권서적을 읽어온 김삿갓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노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인이 또 말 하기를, 금주령이 그토록 철딱서니 없는 일이건만 그처럼 어리석은 금주령이 우리나라 에서도 실시 되었던 때가 있었다우 ~ 젊은 양반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으로 부터 80여년전 영조때의 일이었지요 ~ 영조는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금주령을 내렸는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금주령을 어기는 일이 허다하자 나라에서는 본보기를 보이기로 작정을 하고 나의 조부님을 사형에 처했다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산업을 장려하고 구휼해서 건질 생각은 아니하고 한낱 금주령으로 해결 하려고 한 잘못된 발상이 이렇듯 죄없는 백성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한 가문을 망처 놓았으니 어찌 이 나라가 술로 인하여 망하고 흥하는 나라입니까?...에이 술이나 드시구려 ~ 노인과 김삿갓은 밤새는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권커니 자커니 끝없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때 김삿갓의 눈에 바람벽에 기가 막히게 잘쓴 한구절의 휘호가 걸려 있슴을 보았다.
硯田無惡歲 (연전무악세) 글을 쓸때에는 나쁠 때가 없고
酒國有長春 (주국유장춘) 술에 취하면 언제든지 봄이로다
저 글씨는 놀라운 필적인데 누가 쓰신 글씨옵니까? 글씨가 하도 명필이라서 김삿갓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한숨을 토해 내며 저 글씨는 내 조부께서 쓰신 글씨라오 ~ 내 조부님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보다도 20년이나 연상이셨는데 완당이 명성을 떨치기 전까지는 내 조부가 독보적인 명필이셨다오.
그러나 그 어른이 돌아 가신거나 내가 술장수로 전락 하게 된것도 모두 천운일것이요, 그냥 술이나 마십시다.하며 쓸쓸한 표정으로 처량한 말을 잇는다.김삿갓 역시 기구한 팔자인지라 자못 노인의 신세가 자신과도 별반 다를바 없어 동정심이 발동 한다.그래,가족은 아무도 없사옵니까?
허허 ~ 마누라를 셋이나 잃었소이다 ~ 세번째 마누라한테서 딸을 하나 보았는데 그 애도 이미 20년전에 평양으로 양녀로 팔려가 버려서 천상천하에 나 하나뿐이라오 에이 ~ 이제 나도 죽을때가 다 된 모양이구려 .... 그래 손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시요?
김삿갓이 평양으로 간다 하니 노인이 자신의 딸을 찾아 달라며 애원조로 간곡한 부탁을 한다.
내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인데 딸 아이는 곤옥(崑玉)이라 지었다오 ~ 그 아이 세살때 어미가 죽은후 내가 홀로 키워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영 아이를 굶기고 제대로 키울길 없어 눈물을 머금고 그 애가 일곱살 나던해에 평양에 산다는 어느 기생이 양녀로 달라 하기에 그냥 주어 버렸다오.그러니 그 아이를 데려간 기생의 이름도 주소도 알길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소이다.
김삿갓은 불쌍한 예노인의 딸을 반드시 찾아 주어야겠다는 의협심이 일어 났으나 어찌 찾아야 할지 벌써부터 그 방법이 묘연해지기만 할뿐이었다.
김삿갓과 예노인은 기구한 서로의 팔자를 이야기 하며 술로 그밤을 새웠다.
예노인과 작별한 김삿갓은 평양길 50리를 사흘을 걸어 대동강변에 다다르니 용용 하게 흘러내리는 강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어 와서 " 이 강이 대동강이지요? " 하고 뱃사공에게 물어 보았다.
뱃사공은 제법 흥청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 이 강은 선남선녀들에게는 사랑의 대동강이요,이별의 대동강이요 눈물의 대동강이라오 " 한다.
김삿갓은 불현듯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이라는 시가 머리에 떠 올랐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긴 둑에 비 개어 풀빛 완연한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고운 님 보내자니 노래는 슬프구나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푸른 물은 언제나 마르련고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로 강물만 해마다 불어 가네
이 대동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혜어졌기에 고려때 부터 그와 같은 시가 나왔을것인가?
뱃사공은 흥겹게 푸른 물결을 갈라치며 배를 저어 나간다.눈을 들어 바라보니 수많은 놀잇배들이 떠 있는데 선남선녀들이 가득 타고 노랫소리와 장고소리가 제법 유량 하기만 하다.
유유창천(悠悠蒼天)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인데 북망산아 말 물어 보자
역대제왕(歷代帝王)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모두 다 네게로 가더란 말가
경리안색(鏡裏顔色)을 굽어보니 검던 머리 곱던 양자(樣姿) 어언간에 백발이로다 ...
때가 봄인지라 훈훈한 봄바람을 타고 멋들어진 수심가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뱃사공도 흥에 겨워 노를 저으며 남의 장단에 맞추어 자기 나름대로 노래를 부른다.
불이 붙는다,불이 붙는다 의주 통군정(義州統軍亭)에 붙는 불은 압록강수로 끄고
안주 백상루(安州百祥樓)에 붙는 불은 청천강수로 끄고, 삼산반락(三山半落)은
모란봉(牧丹峰)이요 이수중분(二水中分)은 능라도(綾羅島)라
능라도 을밀대(乙密臺)에 붙는 불은 대동강수로 끄련마는
이내 가슴에 붙는 불은 무엇으로 끄란 말가 ...
평양 사람들은 모두가 바람둥이인지 뱃사공의 노랫소리도 춘정에 겨워 있고 듣는이도 어깨춤이 절로이는데 그에게 평야기생에 대하여 물으니 수도 없이 많은 평양기생이라지만 빼어난 미인이 즐비하고 객고에 평양에 와서 기생한번 품어보지 못하면 천추에 한을 남길 일이라며 2,3백냥쯤 쓰면 후회없이 노시다 가리다 한다.드디어 배가 금수산(錦繡山) 앞에 이르니 문득 권근(權近)의 시가 떠 오른다.
峨峨遠岫圍平野 (아아원수위평야) 높디높은 산들은 들을 품어 안았고
衣衣長江繞古村 (의의장강요고촌) 넘실거리는 강물은 옛마을을 감싸는구나
저 멀리 능라도의 푸른 버드나무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패강가(浿江歌)라는 시가 또 떠올라 읊어본다.
浿江兒女踏春陽 (패강아녀답춘양)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江上垂楊正斷腸 (강상수양정단장)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닯다
無限烟絲若可織 (무한연사약가직)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爲君裁作舞衣裳 (위군재작무의상) 고운 님 위해 춤옷을 지으리
대동강은 개천(价川)에서 흘러오는 순천강(順川江)과 양덕(陽德),맹산(孟山)에서 흘러 내리는 비류강(沸流江)과 강동(江東),성천(成川)등지에서 흘러 내리는 서진강(西津江)등등 세갈래의 물이 모여 큰강을 이루었으니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대동강(大同江)이다.
일찌기 대유(大儒) 정도전(鄭道傳)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흥에 겨워 江水之辭(강수지사) 라는 유명한 노래를 남긴 일이 있었다,김삿갓은 또 그 싯귀를 떠올려 읊는다.
<이 강수지사는 마치 光武帝가 읊은 秋風辭와도 매우 흡사 하고 陶淵明의 歸去來辭의 일부와 유사한데,아마도 그 시의 영향을 받은듯 하다,강촌생각>
江之水兮悠悠, 泛蘭舟兮橫中流 (강지수혜유유,범난주혜횡중류)
高管교조兮歌聲發, 賓宴0兮獻酬 (고관교조혜가성발,보연0혜헌수)
或躍兮錦鯉,飛來兮白鷗 (혹약혜금리,비래혜백구)
煙沈沈兮極浦,草처처兮芳洲 (연침침혜극포,초처처혜방주)
覽時物以自娛兮,건忘歸兮夷猶(람시물이자오혜,건망귀혜이유)
景忽忽兮西馳兮,水운운兮逝不留 (경홀홀혜서치혜,수운운혜서불유)
曾歡樂之未幾兮,隱予心兮懷憂 (증환락지미기혜,은여심혜회우)
嗟哉盛年不再至兮,老將及兮夫焉求 (차재성년부재지혜,노장급혜부언구)
軒冕兮당來,富貴兮浮雲 (헌면혜당래,부귀혜부운)
惟君子所重者義兮,名萬古與千秋(유군자소중자의혜,명만고여천추)
擧一杯相屬兮,庶有企兮前修(거일배상속혜,서유기혜전수)
대동강 물이여 유유도 하여라,난주(蘭舟) 뛰웠더니 중류에 걸렸네
피리소리 떠들썩 하고 노랫가락 퍼져가니 손님들 잔치 즐겨 술잔이 오가도다
이따금 펄펄 뛰는 건 금잉어요 날아 드는것은 흰 갈매기
연기는 아득하니 막바지 개울인데 탐스러운 풀 우거져 꽃다운 강뚝일세
제철 맞은 경관 구경하고 스스로 즐김이여, 돌아갈줄 모르고 서성대노나
해그림자 바삐 서녘으로 달림이여,물이 콸콸 달려가 저물지 못하네
환락한 세월 얼마이겠는가,가슴속 남 모르는 근심 품었노라
아아 ~ 한창시절 다시 오지 않음이여,늙음이 곧 닥처 오리니 무얼 다시 구하리요
공명이란 어쩌다가 오는것이며, 부귀는 구름처럼 허망한 것
군자에게 오직 소중한건 의리뿐이라, 천추만대에 이름이 남는다네
술잔 들어 서로 권하노니, 옛 선현 높은 뜻 기려 닦아 나가세.
교= 부를교, 조=지저귈조, 처(풀무성할처)= 초두+ 妻,건(말더듬거릴건),운(흐를운)= 삼수변에 云,당(얽매지않을당)=인변에무리黨,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강산이다,숱하게 많은 중국사신과 관리들이 오가며 침이 마르도록 우리나라 강산을 찬미 하였다,그러기에 당나라 사신 사도(史道)는 평양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 하였다.
旣有錦繡山 (기유금수산) 금수라는 비단 산이 이미 있는데
更見綾羅島 (경견능라도) 능라라는 비단 섬을 또 보노라
東人戒驕誇 (동인계교과) 조선 사람들은 그 이상 사치를 경계 하려고
衣裳多素縞 (의상다소호) 일부러 하얀 옷을 입는것인가.
중국 풍류객들은 옛날부터
願生高麗國 (원생고려국) 바라건대 고려국에 태어나
一見金剛山 (일견금강산) 금강산을 한번 보고지고. 하였다 한다.
날이 어두워 오자 강위에 떠 있는 놀잇배에서는 등불들이 하나둘씩 꽃처럼 피어 오르고 그것은 마치 꿈나라의 환상인것만 같아 김삿갓은 불현듯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연상하였다.
幻世春來夢 (환세춘래몽) 꿈 같은 세상에 봄이 찾아드니
浮生水上구 (부생수상구) 허황한 인생이 물거품 같구나 구(물거품구 )=삼수변+ 區
百憂中莫入 (백우중막입) 오만가지 시름 모두 없애려거든
一醉外何求 (일취외하구) 술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 !
이제 살아 생전에는 이 평양의 대동강에 다시는 오지 못할것 같은 아쉬움 속에 꽃처럼 피어오른 등불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시흥이 절로 일어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大同江山仙舟泛 (대동강산선주범)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
吹笛歌聲泳遠風 (취적가성영원풍) 피릿소리 노래소리 바람결에 들려 오네
客子停참聞不樂 (객자정참문부락) 길손은 말 멈추고 시름겹게 듣는데 참(黑+參)
蒼梧山色暮雲中 (창오산색모운중) 청오산이 구름 속에 저무네
날이 저물자 뱃놀이를 마친 김삿갓은 평양의 밤거리로 들어가 주천(酒泉)이라는 주막에 들었다.
들어가 주모를 찾으니 60대 늙은 여자가 술상을 들고 나오는데 제법 예쁘다, 아마도 젊었을때 기생이었던듯 하여 수작을 걸기를 이곳 주막 이름이 범상치 않은데 누가 지은거요? 하고 물으니 주모는 일찌기 20년전에 세상을 등진 자신의 서방님이 지었다 한다.이어서 방이 단 하나밖에 없는데 먼저 오신손님이 있어 그와 같이 잘려면 그리 하라고 한다.
김삿갓이 그럽지요 ~ 하며 방에다 대고 " 안에 계신 길손은 나와서 같이 한잔 합시다 " 하며 부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방안에서 나이 40쯤 돼 보이는 시골풍의 우둔한 사내가 나와서 술한잔을 쭈욱 마시더니 " 나는 황해도 옹진에 사는 강 서방이외다 " 하며 자기 소개를 한다.
옹진의 강서방은 소금을 배에다 가득 싣고와서 뙤돈을 벌었는데 ~ 그만 평양 기생한테 빠져서 돈도 몽땅 빼앗기고 달랑 노자 몇푼 쥐어주며 다음에 또 만나자며 기생한테 차인 이야기를 하며 아니, 그눔에 기생은 소금 한배를 집어 먹구도 짜다는 말이 없지 모유 ~ 하면서 익살을 떤다.
김삿갓이 넌즛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강서방은 아직도 그 열아홉 앳된 기생과의 몇달 살림이 꿈결만 같아 죽어도 후회는커녕 다시 소금을 실어다 돈을 마련해서 또 한번 만나야겠다 한다.
그때 주막집 노파가 끼어 들며 남자들은 입으로만 먹을줄 알지만 기생들은 생강이든,소금이든,소,말,논밭전지를 죄다 집어먹는 입이 따로 있다우 ㅎㅎㅎ .... 얼마전에 전라도에서 왔다는 생강장수는 생강한배를 실어와서 큰돈을 벌었는데 역시 기생한테 홀딱 반해서 한달간 살림하며 죄다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었다우 ~ 그러구서는 기생의 옥문(玉門:생식기)를 들여다 보며 아주 재밋는 시를 지었다우 ~
遠看似馬目 (원간사마목) 멀리서 보면 말 눈깔 같고
近視如膿瘡 (근시여농창) 들여다 보면 진무른 농창 같구나
兩頰無一齒 (양협무일치) 두 볼엔 이가 하나도 없건만
能食一船薑 (능식일선강) 생강 한 배를 몽땅 삼켜 버렸구나
김삿갓은 주막집 노파가 써놓은 전라도 소금장수의 옥문시(玉門詩)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런 와중에도 주막집 노파는 자꾸만 김삿갓에게 마음을 둔듯 한 말과 눈치를 해 오건만 김싯갓은 소름이 끼칠정도로 싫은데 때마침 옹진의 소금장수가 끼어들며 자기를 기둥서방 삼으라며 익살을 부린다.
술도 취하고 피곤하여 방으로 들어가 곤하게 잡이 들었는데 잠을 깨어 옆을 보니 소금장수 강서방이 안보인다?... 문득 안방에서 이상한 숨소리가 들리는데 ~ 사실인즉 강서방이 60노파와 역사를 치루는 밤이 될줄이야 ~ 세상이치가 이렇구나 ~ 엊그제까지만 해도 새파란 열아홉살 기생에게 껌뻑죽어 사족을 못쓰던 사내가 이제는 60대 노파를 덮치다니 ... 참으로 해괴망측 하구나 ~ 하며 잠을 청했다.
밤늦게 돌아온 강서방을 놀려주니,강서방은 아, 나는 선생이 싷은 눈치길래 대신 부역을 치룬거요 ~ 내일 아침 보구려 아침상이 푸짐 할테니 ....
아침 상을 받아보니 아닌게 아니라 정성을 들여 보아온 상에는 길손에게 주는 밥이 아니라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그런 푸짐한 아침 상이었다...
덕분에 김삿갓은 포식을 하고 모란봉을 향하여 주천 주막집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김삿갓이 모란봉에 접어드니 때마침 온통 진달래가 피어서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산으로 오르니 시야기 탁 트이면서 저멀리 비단폭 처럼 넘실거리는 대동강과 실실이 늘어져 바람에 나뿌기는 수양버들의 섬 능라도를 보노라니 이곳이 바로 선경인듯 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노니는 연인들과 상춘객의 모습에서 평양의 진면목을 보는듯 하여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고려때의 시인 권한공(權漢功)이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을 굽어 보며 지었다는 시를 읊조려 본다.
磯邊綠水春陰薄 (기변녹수춘음박) 모랫가 푸른나무는 봄빛이 엷고
江上靑山暮色多 (강상청산모색다) 물에 비친 청산엔 저녁놀이 짙구나
宛在水中迷遠近 (완재수중미원근) 물 속에 있는듯 원근 조차 모르겠는데
夕陽何處竹枝歌 (석양하처죽지가) 어디선가 석양에 노랫소리 들려오네
눈앞의 풍광이 너무도 황홀하여 김삿갓은 시상이 떠 오르지 않았다,그리하여 하릴없이 김종서(金宗瑞)가 모란봉 위에서 지었다는 이별가를 또 떠올린다.
送客江頭別恨多 (송객강두별한다) 임 보내는 강가에 한이 서리어
管絃凄斷不成歌 (관현처단불성가) 풍악소리 처량할 뿐 노래를 못 이루네
天敎風伯阻旌旗 (천교풍백조정기) 하늘은 바람을 시켜 돚을 막고 있는가
一夕大同生晩波 (일석대동생만파) 저녁 대동강에 늦물결이 거칠고녀
만고에 다시없는 시인 김삿갓... 결코 저 당나라적 이백이나 두보에 뒤지지 않는 시재를 지닌 사람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가 이렇듯 빼어난 풍광을 보며 혹은 자신의 시를 읊고 혹은 선유(先儒)들의 시를 떠올리며 산 꼭대기로 오르니 그 정상에 훤칠한 을밀대(乙密臺)가 나온다. 거기에는 사허정(四虛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일명 을밀대를 사허정이라 불러 온다는데 가만히 사방을 살펴보니 과연 동서남북 모두가 탁 트여 있어서 그 이름이 자못 일치함을 느꼈다.
하늘로 날아 오를듯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을밀대 아니,사허정의 웅자(雄姿)! 이것을 보고 일찌기 당나라의 어느 시인이 이렇게 시를 지엇다 한다.
錦繡山上頭 (금수산상두) 금수산 꼭대기
一臺平和掌 (일대평화장) 손바닥 처럼 평평한 대가 있다네
恐有天上仙 (공유천상선)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乘風時來往 (승풍시래왕) 바람타고 수시로 놀러 오는 곳이리
이때 마침 정자 위에서는 질펀한 풍악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안주와 술이 풍성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김삿갓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무슨 잔치냐고 물으니 평양부자 임진사댁 회갑연을 이곳에서 하는중이란다,꽃다운 기생들이 태평가(太平歌)를 나즈막히 부르는 가운데 자손들이 부친께 헌수를 올리고 다음은 친지들이 올리는 차례가 되자 김삿갓도 술을 얻어 마시려는 마음에 그 행렬에 끼어 " 학수천세(鶴壽千歲) 하옵소서! " 하며 돌아 서려는데 임진사가 언뜩보고 처음 보는 얼굴이라 김삿갓을 불러 세우고 묻기를 귀공이 누구신지 소생이 모르겠사오니 함자를 가르처 주시기 바랍니다 ! 하는 정중한 모습이 매우 진실되고 젊잖은 노인이었다.
김삿갓은 더이상 신분을 속일수 없어 세상을 내집 같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라 허기도 면할겸 이처럼 잔치에 끼어들어 결례를 저질렀소이다, 소생은 김립(金笠)이라 하옵니다.
옛..? .. 아니 ` 그러면 선생이 바로 저 유명한 방랑시인 <삿갓선생>이란 말입니까?
환갑노인 임진사는 뛸듯이 기뻐하며 오늘 선생을 만난건 평생에 크나큰 복이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그러면서 임진사가 몇해전에 금강산에 갔다가 공허(空虛)스님으로 부터 뛰어난 김삿갓의 문장에 감탄해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하시는 말씀에 생전에 꼭 한번 뵙고 싶던차 였습니다. 한다.
금강산 공허스님은 당금천하에 몇분 안되는 고승이기도 하지만 시문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재였고 드디어 몇해전 김삿갓과 암자에서 만나 몇일을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재주를 다하니 그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지경이 있었다. 임진사가 그 공허스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이었다.
흥에 겨운 임진사는 여러 하객들에게 시선(詩仙) 김삿갓의 존재를 큰소리로 알리며 축하 하도록 권하니 졸지에 분위기는 거지행색의 삿갓에게 쏠렸고 무안해진 김삿갓이 자리를 뜨려하자 한사코 손목을 잡고 자기 집으로 가자 해서 마지못해 임진사 댁으로 가서 묵게 되었다.
김삿갓은 그날 밤부터 임진사가 수발을 들리기 위하여 열일곱 아릿따운 기생 산월(山月)이를 딸려 주어 잠자리까지 모시게 하니 이보다 더한 대접은 일찌기 없었다.
산월이는 비록 어리지만 몸매가 풍만하게 성숙하고 서글서글 하여 뭇 남정네들을 유혹 하기에 충분 했고 김삿갓이 첫날밤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자 짐짓 희롱의 말을 걸어 보았다.
삿갓 : 平壤妓生何所能 (평양기생하소능) 평양기생은 무슨 재주를 가졌는고?
산월 : 能歌能舞又能詩 (능가능무우능시)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시도 잘 짓지요
허허 ~ 산전수전 다 격은 노기(老妓) 뺨칠정도로 대답이 그럴듯 하다,삿갓,빙그래 웃으며 다시 물었다.
삿갓 : 能能其中別何能 (능능기중별하능) 모두 잘 한다지만 그중 특별히 잘 하는건 무언고?
산월 : 月夜三更呼夫能 (월야삼경호부능) 달밤에 서방 불러 들이는 재주라오
하고 말 하더니 희롱은 그만 하시고 술이나 드사이다. 하며 곱게 흘긴다.
몇잔의 술을 거듭 마시고 산월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며 밤늦도록 시를 읊고 또 마시다 보니 취기가 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생 외도다,그녀와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은 역시 혼을 빼앗길 정도로 감미로웠다.
다음날 아침 곱게 단장하고 앉아 기다리는 산월에게 예곤옥(芮崑玉)에 대하여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 하므로 기루마다 알아보아 달라 일러 놓고는 그날부터 평양의 이름난 명승지를 구경에 나섰다.
그리하여 연광정(練光亭)을 비록 하여 부벽루(浮碧樓),망월루(望月樓),풍월루(風月樓),영귀루(詠歸樓),함벽정(涵碧亭),쾌재정(快裁亭),영명사(永明寺),장경사(長慶寺)등등 평양의 이름난 명소는 모두 다 둘러 보았다.김삿갓은 경치도 경치지만 아름다운 누대마다 걸려 있는 옛 시인묵객들이 시를 써서 걸어놓은 현판(懸板)을 감상 하는 재미가 더 좋았다.
부벽루 다락에 올라 언뜩보니 정도전의 시도 걸려 있고 고려때의 정보(鄭보)란 사람의 시가 더욱 마음에 든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登臨盡日却忘還 (등림진일각망환) 다락에 올라 진종일 돌아갈줄 모르고
食看樓前水與山 (식간누전수여산) 눈 앞의 산수를 정신없이 바라 보노라
교渚鷺明煙雨裏 (교저로명연우이) 물가의 해오라기 보슬비 속에 선명 한데 교=足+喬
倚蘭人在畵圖間 (의난인재화도간) 난간에 기대선 이는 그림 속에 있네
一天下애心何限 (일천하의심하근) 하늘이 훤칠하여 마음은 탁 튀여도 애(그칠애)=石+疑
萬景爭牽眼未開 (만경쟁견안미개) 온갖 경치 서로 끌어당겨 눈을 뜰 겨를 없네
誰把蓬壺移此地 (수파봉호이차지) 누가 이 땅에 봉호를 옮겨 놓았는고 봉호(신선사는곳)
直將風骨換童顔 (직장풍골환동안) 나도 금시 신선이 된 것만 같도다
부벽루 난간에 기대서서 눈앞의 풍경을 황홀 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명시라 아니할수 없다. 김삿갓은 그 시를 오랫동안 감상 하다가 저 멀리 백은탄(白銀灘) 은빛 백사장을 바라보며 문득 건성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읊는다.
三山半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산은 높아 아득히 하늘 밖에 솟았고
二水中分白鷺州 (이수중분백로주) 물은 둘로 갈려 모래밭을 이루었네
已矣謫仙先我得 (이의상선선아득) 이태백이 그런 시를 먼저 썼기에 謫仙=이태백
斜陽投筆下西樓 (사양투필하서루) 석양에 붓 던지고 다락을 내려오네
위에 있는 시의 두구절은 이백의 시를 그대로 인용한 시이다, 거기에 자신이 두구절을 더하여 이렇게 멋들어진 시를 읊으며 연광정으로 돌아 왔다.연광정(練光亭)은 덕암(德岩)이라는 수백 척 절벽위에 날아 갈듯 솟아 있는 정자이다.
연광정은 성종(成宗)때 평안감사 허굉(許굉)이 지었다는데 규모나 건축미가 크고 뛰어난 걸작품이다.
일찌기 임란(壬亂)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이 왜장(倭將)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강화담판(講和談判) 한 장소가 여기며, 나라가 위급지경에 처하자 일개 기생의 몸으로 적진 속으로 숨어 들어가 왜장을 죽이고 순국절사(殉國節死) 한 평양명기 계월향(桂月香)이 평소 즐겨 찾던곳이 바로 여기다.
그 연광정 다락에서 굽어 보는 풍광이야 어찌 다 필설로 다하랴 !
능라도와 백은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왼편으론 대동루(大同樓)요 오른편엔 읍호루(읍濠樓)가 지호지간(指呼之間)인데 밤낮없이 용용한 대동감 위에는 사시장철 놀잇배가 무수히 떠 있다.
그러기에 그곳 정자에는 연광정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가 걸려 있었는데 숙종때 시인 김창업(金昌業)의 시에 이르기를
普通門外草靑靑 (보통문외초청청) 보통 문밖 벌판엔 풀빛 푸른데
浮碧樓前春水生 (부벽루전춘수생) 부벽루 앞 강엔 봄물결 이네
誰道吾行歸未晩 (수도오행귀미만) 일찍 돌아오라 그 누가 말했던고
杏花如雪滿江城 (행화여설만강성) 강마을엔 살구꽃이 눈발처럼 날리네.
또 정조때의 시인 조의겸(曺義謙)의 시에는 이렇게 읊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 했는가 ?
江樓四月已無花 (강루사원이무화) 사월이라 첫여름 꽃은 이미 져버리고
簾幕薰風燕子斜 (렴막훈풍연자사) 주렴 바깥 훈풍에 제비가 날아드네
一色綠波連碧草 (일색록파연벽초) 언덕 위 푸른 풀에 강물도 푸르니
不知別恨在誰家 (부지별한재수가) 이즈음 어느 누가 헤어지고 애태울꼬
역시 대동강은 사랑의 대동강이요 이별의 대동강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지사를 외면한체 용용히 흘러만 간다.연광정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잔디밭에 때마침 진달래는 붉게 피었는데 그곳에서 10 여명의 노기(老妓)들이 둘러 앉아 화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전이란 소금물로 반죽한 찹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부칠때 진달래꽃을 넣어 익혀내는 매우 풍류적인 음식으로 꽃시절이면 의례히 시인묵객들이 시회(詩會)를 이렇게 열기를 많이 했다.
김삿갓이 그 곳을 지나치려니 시장하던차에 고소한 기름냄새를 맡고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어 체면불구 하고 머리를 숙이며 "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전병 몇장만 얻어 먹게 해 주십시요" 하니 50쯤 되어 보이는 노기가 지금 시회가 막 끝나서 일어 나려던 참이었는데 남은 전병이 석장뿐이니 허물치 말고 자셔 주시요, 하는데 그 말품이 제법 공손 하다.
전병 석장을 게눈 감추듯 모두 먹어치운 김삿갓은 고마움에 이렇게 수작을 걸었다.
즐거운 시회에 불청객이 훼방을 놓아 죄송 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뜻에 답례로 시 한수를 적어놓고 가겠습니다, 하며 일필휘지로 써 갈기니 내용인즉 이러하다.
鼎冠撑石小溪邊 (정관탱석소계변) 솥을 돌로 괴어 놓은 개울가에서
白粉淸油煮杜鵑 (백분청유자두견) 흰 가루를 기름에 튀겨 전병을 부치네
雙箸挾來香滿口 (쌍저협래향만구) 저로 집어 넣으니 입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一年春信腹中傳 (일년충신복중전) 한 해의 봄소식에 뱃속에 전해 오네
이렇게 써놓고 일어 서려는데 기생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 가지고 그 필적과 내용에 감탄하며 이 시를 선생이 지으신겁니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에 김삿갓이 짐짓 손사래를 치며 아니올시다 이 시는 명종때
풍류객 임백호(林白湖)가 지은 시입니다 하니, 모두들 일찌기 평양에 도사(都事)로 와 있던 백호(白湖)임제(林悌)에 관하여 이야기 해 달라 졸라대는것이었다, 해서 김삿갓은 백호 임제의 이야기를 하였다.원체 풍류를 타고난 임제는 평안도 도사(종5품관:관찰사의 부사격) 로 평양에 부임했는데 색향(色鄕) 평양에는 수천명 기생이 있건만 유독 마음속에 둔 여인은 한우(寒雨) 라는 기생뿐이었다.
한우는 외모도 출중 했거니와 시문과 풍류에도 능통하여 임백호의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지조 높은 그녀는 좀체로 임백호에게 잠자리를 함께해 주지 않았다.
어느 초겨울 밤 단둘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임백호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싶어 시조 한수 를 읊으니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 요 은근히 동침을 요구한 내용이다.
북창(北窓)이 맑다기에
우장(雨裝) 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에 기생 한우가 어찌 임백호가 부른 시조의 뜻을 모르랴 !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응수 하고 그야말로 달콤한 밤의 역사를 열어 젖히니 그 이상의 이야기를 어찌 다 하리요.
어이 얼어 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비단이불 원앙베개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으셨다니
녹여 드릴까 하노라.
김삿갓이 능란한 입담으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기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는중에 더러는 한숨을 쉬면서 어쩌면 옛날분들은 그렇게도 멋진 사랑을 했을까 ? 과연 요즘 세상에도 그런 풍류남아가 있을까?하면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내려갈 생각들은 않고 한가지만 더 들려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여 한가지를 더 들려주고 일어 서려는데 여러 기생들이 이제는 김삿갓을 존경 하는 눈빛으로 처다 보면서 선생도 필경 시인 아니냐고 물어 대는데 김삿갓은 그저 떠돌이 걸객이라고 대답 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몇몇 기생들이 한편쪽에서 무엇인가 쑥덕거리더니 드디어 김삿갓에게로 몰려와 서는, 맞다! 그분이 아니라면 이토록 옛시와 역사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요 ... 아마도 선생은 김삿갓 !
그분이 맞으시죠? 하면서 난리법석이 나고 말았다.
김삿갓은 졸지에 신분이 밝혀지자 겸연쩍어 어쩔줄 몰라 하면서 그저 걸객에 불과한 소생이 김립,김삿갓이올시다! 하자 좌중의 기생들 모두가 그를 향하여 손뼉을 치며 정중히 머리숙여 예를 올리며 말하기를 존귀하신 어른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하며 정중히 술을 따라 올린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 가는데 그들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은 않하고 낮에 자기들이 지은 시를 가져와 김삿갓에게 강평을 해 달라고 졸라댄다.
어쩔수 없이 시문을 적은 종이 뭉치를 받아든 김삿갓은 시는 짓는데 뜻이 깊은것이지 잘짓고 못짓는게 문제가 아니라며 미리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설명해 놓고서는 한장 한장 넘겨 보니 시의 수준은 보잘것 없는 수준의 졸작들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 부터 저만치서 새초롬해 보이는 제법 예쁜 기생 하나가 이런 말을 해준다.
저희들은 오늘 <門>, <村>,<昏> 세글자를 운자(韻字) 로 썼사옵니다.
아 ~ 그래요?... 하면서 넘겨 보니 영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것들이 무슨 시를 쓴다고....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며 넘겨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대작(大作) 의 명시(名詩)를 하나 발견 하였다.
거기에는 강촌모경(江村暮景) 이란 제하의 시가 아름다운 글씨로 적혀 있었으니
千絲萬樓柳垂門 (천사만루유수문)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綠暗如雲不見村 (록암여운불견촌) 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수 없네
忽有牧童吹笛過 (홀유목동취적과) 목동의 피리 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一江烟雨白黃昏 (일강연우백황혼) 보슬비 내리는 강촌에 날이 저무네.
김삿갓은 두번세번 읽어 보고 나서 이처럼 기가 막힌 시를 누가 썼습니까?...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필경 이것은 누군가 남의 시를 베껴쓴것이라라 여기면서 거듭 다그처 물었더니 아까부터 새초롬 하니
앉아 있던 기생이 얼굴을 반짝들며 선생님! 그 시는 제가 쓴 시입니다,저는 죽향(竹香)이라 하옵니다.
바라보니 참으로 어여뿐 32,3세의 기생이었다.
거듭 김삿갓이 그녀의 시를 칭찬하자 다른 기생들이 기분이 언짢은지 선생이 우리들의 시를 모두 보셨으니 이번에는 선생이 우리들에게 시를 지어 달라는 주문을 한다.
김삿갓은 좌중의 어색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나서 이를 가라 앉히려면 도리없이 시를 지어야 했다,해서 일필휘지로 종이에다 먹을 듬뿍 먹여 연광정(練光亭)이란 제하의 시 한수를 똑같이 <門,村,昏>세글자를 운자로 하여 써 갈기니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碧萬頃蒼波直번 (벽만경창파직번)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물결 굽이치네 번:뒤집힐번,番+羽
一斗酒三春過客 (일두주삼춘과객)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했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유십리강촌) 천만 가닥 수양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孤舟鷺帶來霞色 (고주노대래하색) 외로운 따오기 노을빛 끼고 날아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나르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경야월황혼)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이 시는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을 굽어 보며 즉흥적으로 읊은 시로써 죽향(竹香)의 강촌모경(江村暮景) 시에 대한 화답으로 읊었지만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이 없었다,다만 죽향만이 의미심장 하게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날이 저물어 오므로 김삿갓은 여러 기생들에게 그동안 잘 얻어먹고 잘 놀았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 서다가 문득 예곤옥 에 대하여 알아보아 달라고 청하여 놓고 그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임진사댁으로 돌아오니 임진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 어디를 다녀 오셨냐며 영명사의 벽암(碧巖)대사가 여태껏 선생을 기다리다 조금전에 돌아 갔다 한다.
사실인즉 벽암대사와도 모르는 사이건만 벌써 김삿갓의 명성을 들어 알고 시를 논하고싶어 만나고져 한다는 이야기였다.그러면서 아마도 내일 아침 찾아 오실거란 말을 덧붙인다.
그 영명사 벽암스님은 도가 매우높은 스님으로 시문에 능통 할뿐만 아니라 술도 잘해서 인근에 미치광이 스님이라 정평이 나 있다 하는데 술을 곡차(穀茶)라 부른단다.
김삿갓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벽루 서쪽 기린굴(麒麟窟)위에 영명사로 벽암대사를 찾아 갔다.
영명사 누각에 걸린 시 한수가 반긴다.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절 앞엔 강물만 흐르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입정제)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섯는데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사람 없는 나루터엔 조각배만 떠도네
김삿갓은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들어온 느낌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가 상좌에게 벽암대사를 만나러 왔다고 전하니 선실(禪室)로 인도하여 들어가니 80을 넘긴듯한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반기는데 첫눈에 거룩한 모습이 완연하다.
하여,김삿갓이 어제 자리를 비워 대사께서 헛걸음 하신것을 사과 하니 벽암대사 김삿갓을 크게 칭찬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삿갓이 방안을 둘러 보니 벽에 족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내용이 이러하다.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 (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구름은 천만리에 덮여 있어도 구름일뿐이요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 (명월전계후계상무이월) 달은 앞내 뒷내 모두 비추나 다른 달이 아니로다.
김삿갓이 크게 감동해서 벽암대사에게 저 글은 대사께서 지으신 글입니까 하고 물으니 고승이 답하기를 저 글은 신라적 진경(眞鏡)선사 께서 읊으신 게송(偈頌)이라 한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벽암대사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상좌가 전한다.
문을 열고 밖을 보니 80이 넘어 보이는 쪼그랑 노인인데 벽암대사는 서슴없이 그 노인을 방으로 안내 하고는 그 연유를 물으니 " 내 나이 90 이올시다,대사께서 영험 하시다 하니 더 오래 살게 해 주십시요" 한다.
벽암대사 서슴없이 백살,이백살 살아도 결국은 언젠간 죽는 이치를 말하며 타이르니 90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하고 만다. 김삿갓은 이 광경을 보고는 역시 대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격했다.
이윽고 노인이 돌아 가고 선방엔 벽암대사와 김삿갓만이 남았다.
방문 너머로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이 한눈에 삼삼하다.
삿갓어른 ! 저기 보이는 놀잇배들을 여기 앉아서 멈추게 하려면 어찌 하면 되겠소이까?
김삿갓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물론 선문답(禪問答)의 정답이었다.
허면, 삿갓선생 ! 문을 닫지 않고도 배를 멈출 방법은 없겠소이까?
김삿갓 눈을 슬며시 감아 버리자 .... 벽암대사 크게 웃으며 좋아 한다.
대사와 삿갓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고금의 명시와 고승대덕들의 게송을 논하며 곡차(穀茶:술)를 내오게 하여 취하도록 마셨다.역시 벽암대사는 취해도 자세 하나 허트리지 않는다.
또 몇수의 시를 짓고 게송을 암송하며 술을 서로 권하며 환담중인데 또 밖에서 상좌가 이르기를 일영(一影)이란 보살이 김삿갓을 찾아 왔노라고 고하자 벽암대사 빙그래 웃으며 참으로 삿갓선생은 염복도 많으시구려 ~ 타고난 미인에다 시도 잘 하는 일영보살이 이렇게 찾을정도면 말이외다. 하며 방안으로 들어 오게 하여 합장하는 모습을 보니 ...
아 ! 그녀는 다름 아닌 일전에 연광정에서 만났던 기생 죽향(竹香)이가 아닌가?
죽향이 조용히 앉아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자신이 어느 평양기생의 양녀로 끌려온 이후 예곤옥(芮崑玉)이란 이름을 버리게 하고 죽향(竹香)으로 개명 하였으며 기생교육을 강제로 시켜 거부하면 수도 없이 매질을 당했고 오매불망 보고싶은 아버지를 만나고싶어도 무서운 양모는 철저하게 가로 막으며 오로지 기생으로 살아가기를 종용했다 한다.
하기야 어차피 양모가 기생이니 그 양녀가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장성 해서는 남의집 첩실이나 소실 밖에 더 되랴 ! 그럴바엔 차라리 이름 있는 기생이 되는게 났겟다는 양모의 판단이 옳았던건 사실인데 ..그 어린 나이에 견뎌 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던건 사실이다.
이제 그 양모도 죽고 아버지 살아 생전에 만나뵙고싶은 마음을 가눌길 없어 이렇게 어른들께 결례를 범하고야 말았나이다 한다.
이에 김삿갓은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이며 이미 나이가 80을 넘겼다는 이야기와 사시는곳은 이곳 평양에서 50리 떨어진 중화고을 어느 산속의 길가에 성인주막(聖人酒幕)에 사신다고 했다.
죽향은 아니,예곤옥은 슬프게 통곡하며 아버지를 뵙게해 달라며 꼭 수고스럽지만 김삿갓에게 그곳을 안내해 달라고 두번세번 간곡하게 청하는게 아닌가....
예곤옥은 아예 벽암대사에게 자기가 삿갓선생을 지금 모시고 집으로 가겠다며 청하였다.
벽암대사는 흔쾌히 승락하며 일영보살(예곤옥)은 자신이 불가에 입문시킨 불제자이니 삿갓선생께서 잘 좀 도와 주시기 바라오 하며 일영보살에게 어서 모시고 가게 한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대동문 근처에 있는 죽향의 집에 오니 집은 작으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벽에 걸린 한폭의 족자에 눈이 멈춘다.
妾身倫落屬娼家 (첩신윤락속창가) 이 몸이 윤락하여 기생이 됐을망정
願得賢郞送歲華 (원득현랑송세화) 어진 낭군 만나 길이 섬기고 싶었소
不識郞心磐石固 (불식낭심반석고) 임의 마음 반석처럼 굳지가 못해
暫時移向別園花 (잠시이향별원화) 오래지 않아 딴 여자로 옮겨 갔구료
이 시를 보노라니 과연 죽향의 성품이 어느정도로 갈끔하고 여성다운 풍모인가를 짐작 할수가 있다.
죽향은 김삿갓을 모셔 오고는 정성을 다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 하기를 최고의 수준으로 하면서 거듭 아버지 만날 일을 상의 함에 내일 당장 떠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죽향은 아버지께 드릴 예물을 사야 한다며 출타를 하고 김삿갓에게 먼저 주무시라며 나가니 쓸쓸한 객고에 허전한 마음 한량 없으나 어쩔수가 없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두사람이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데 마치 한쌍의 연인이 유람을 다니는 기분이라 김삿갓이 짐짓 죽향에게 백년가약을 맺고 신행(新行)을 가는 기분이라 하니 죽향이 눈을 곱게 흘기며 부끄러워 한다.산은 첩첩하고 물은 맑은데 어디선가 두견새 울음 소리가 영절스럽게 들려옴에 김삿갓은 즉흥시를 한수 읊는다.
春去無如老客何 (춘거무여노객하) 봄은 갔는데 늙으신 몸 어떠 하실까
出門時少閉門多 (출문시소폐문다) 방에 앉아 나들이도 안 하셨다니
杜鵑空有繁華戀 (두견공유번화련) 두견새야 뭐가 그리워 애타게 우느냐
啼在靑山未落花 (제재청산미락화) 울음 소리에 못다 핀 꽃 떨어질세라
김삿갓은 이렇게 예노인을 생각 하며 읊으니 죽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삿갓에게 어서 길을 서둘자고 간청을 했다.
죽향이 감삿갓에게 그 성인주막은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애타게 보고싶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을 시로 지어 보겠노라 하므로 삿갓이 즉석에서 어서 지어보라 권한다.
相思人在山中村 (상사인재산중촌) 간절히 그리운 임은 산속에 계시건만
消息天涯久未聞 (소식천애구미문) 소식 모르는지 너무도 오래였소
今日獨涯芳草路 (금일독애방초로) 오늘은 오솔길 밟으며 찾아오건만
夕陽何處掩柴門 (석양하처암시문) 석양에 사립문 닫힌 집은 어디에 있는고
이렇게 두사람은 시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예노인의 집 성인주막에 다다랐는데 성인주막 이라는 주기가 거꾸로 매달린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고 집이고 근처고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죽향을 밖에 세워두고 삿갓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데 다만 방 아랫목에 제삿상이 차려져 있고 거긴엔 다음과 같은 지방(紙榜)이 붙어 있는게 아닌가?
顯考學生府君 芮東哲神位 돌아가신 선비 예동철의 신주
이 지방을 보고 죽향은 엎드러져 대성통곡을 한다,그동안 참고 살아온 온갖 서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모두가 쏟아져 나오는듯 그녀의 통곡소리는 너무나도 애닮아 듣는이도 함께 울 정도로 섧게 운다.
가까스로 죽향을 진정시킨 김삿갓은 그녀에게 그 마을 풍헌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 보기로 했다.
풍헌(風憲) 영감을 찾아가자 예노인이 운명 하던날 <곤옥아 너는 애비가 죽어도 찾아올 줄을 모르느냐>고 외치고는 돌아 가셨다 하며 동네 사람들이 집뒤 양지바른 곳에 묻어 묘소를 지었다는 말을 해주는데 죽향이 울면서 거듭거듭 감사의 절을 한다.
이어 성인주점 뒷산에 가 보니 예노인의 묘소가 있는지라 죽향이 또 다시 곡하고 예를 다 하였다.
그날밤 삿갓과 죽향은 예노인의 빈집에서 자게 되었다.
죽향이 삿갓에게 아버님의 상중(喪中)이라 만부득 선생님을 잠자리로 모실수 없사옵니다.
어찌 김삿갓인들 이런 마당에 그녀를 품어 그 정성을 망가트릴 생각인들 가졌겠는가?
염려 마시게 ~ 내 아무리 천하를 주유하는 걸객이기로서니 자네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
그러자 죽향이 결심한듯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내일중으로 평양으로 올라가 모든걸 청산 하고 이곳에 와서 3년간을 시묘살이를 할것입니다.
그녀의 다짐은 철석 같이 굳어 보였고 때마침 두견새 울음 소리는 처량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다음날 죽향이 평양으로 가는 길에 김삿갓도 함께 동행했다.
이제 대동강의 아름다운 모습도 엊그제 바라보던 풍류의 강으로 보이질 않았다.
삿갓선생님 !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
어허 ~ 그렇군 평양에 자네가 없는데 내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더 있겠는가 ... 이제 자네가 떠나는걸 보고 나면 나도 이곳을 떠나 관서지방으로 갈것이네 ~
드디어 대동강가에 이르러 눈물을 펑펑 쏟는 죽향이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삿갓을 바라보며 울먹인다....선생님 언제 또 뵈오려는지요 ~ 소녀 꼭 다시 뵈옵고 모시기를 원하옵니다 ! 하며 시 한수를 읊는다.
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상별정인)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楊柳千絲未繫人 (양류천사미계인) 천만가닥 실버들도 잡아 매지 못하오
含淚眼看含淚眼 (함루안간함루안) 눈물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데단장인)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그야말로 간장이 녹아 내리는듯 한 죽향의 시를 들으니 어찌 김삿갓이 화답을 않겠는가... 도도히 넘실대는 대동강을 바라보고 한수 읊기를
翠禽暖戱對沈浮 (취금난희대심부) 푸른 새는 강물에 정답게 노닐고
晴景欄珊也未收 (청경난산야미수)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人遠만愁山北立 (인원만수산북립) 임 보내는 시름 북쪽 산에 어리고 만(늘일만)=言+曼
路長惟見水東流 (로장유견수동류) 멀리 떠나는 길에 강물은 동으로 흐르네.
垂楊多在鶯啼驛 (수양다재앵제역)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고
芳草無邊客倚樓 (방초무변객의루)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 보노라
초창送君自崖返 (초창송군자애반) 그대 보내고 나 홀로 언덕에 남으면
那堪落月下汀州 (나감낙월하정주) 달이 질때 설움을 어이 달래리
초(섭할초,심심할초) = 心+召 , 창(섭할창,슬플창)= 心+長
이렇듯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읊으니 죽향은 소매로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마치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오다 헤어지는 연인들 처럼 차마 떨어지질 못한다.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시옵니까?
내야 정처 없이 떠도는 몸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걸세 ~ 어서 배에 오르게나 ....
죽향은 설움이 북바처 올라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이별의 시를 읊조리는데 그 모습이 불쌍 하면서도 고혹적이다.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만리다)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하늘에 달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외기러기 슬피 울으오리다!
이 시 속의 외로운 기러기는 물론 죽향 자신을 말함이다,눈물로 얼룩진 그녀...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한적도 없건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김삿갓은 남이 아니었다...언제고 다시 만나면 평생을 모시며 섬길 어른이라 여기며 가슴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삿갓에게 건넨다... 돈이었다.
아니 되네 ~ 자네가 더 어렵지 아니한가 ~ 이 험한 세상을 여인네가 홀로 살자면 ......
아니옵니다 ~선생님... 당장 오늘밤은 어느집에 무슨 끼니로 ... 목이 메인 어조로 애원하는 죽향의 어여쁜 마음을 더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허리춤에 받아 넣는 김삿갓 .....
더 이상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 볼수없어 울면서 돌아 서야만 했다.
죽향아 ! 부디 잘 가거라 ! 오늘의 우리들 이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 !
죽향이 오른 나룻배도 떠나가고 정처없는 나그네 김삿갓은 소리없는 눈물을 훔치며 관서지방을 향하여 떠나가고 있었다.
<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