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 성모, 아기, 동물
이콘의 중심 부분에 있는 산에는 열린 동굴이 있다. 성경에는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는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다.’(루카 2,70 참조) 라고 되어 있다.
방이 없어 구유에 눕힌다는 것은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근처에 아무도 살지 않는, 목동들이 양을 치는 외진 곳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여관 밖에 자리한, 여행객들이 타고 온 말들을 관리하는 외양간일 수도 있고, 투숙객이 가축 냄새를 피할 수 있도록 한 외진 곳일 수도 있다. 그곳이 동굴이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콘에서는 사실성보다 관계된 많은 것들을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마도 이 이콘에서는 외양간을 동굴로 상징화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콘에서 성모 마리아는 동굴 밖에 등장한다. 몸을 반쯤 구부린 채 피곤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성모님은 아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 쪽으로 향해있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급박한 상황에서 임신한 몸으로 겪은 힘든 여정, 목동들의 천사의 목격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천사의 알림 등을 떠올리는 듯하다. 또한, 아드님의 초라한 탄생의 의미, 무언가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한 요셉의 표정 등 많은 것을 생각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라고 기록되었다. 그 생각은 당시에 닥친 상황에 관한 생각이라기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인에게 다가왔던 하느님의 섭리와 주변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기쁨만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고뇌, 슬픔 등도 읽을 수 있다. 성모님은 산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산은 이미 말한 대로 하느님을 의미하기에, 아기 예수와 가장 가까운 분임을 드러낸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가까이 그릴 수는 있으나 여기서는 ‘가장 가까우신 분’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성모님의 눈은 하느님의 눈을 대신하고 있다.
성모의 자색 겉옷(마포리온)에는 머리와 양어깨에서 상징적인 별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한 완전한 은총을 의미한다. 즉, 하느님을 잉태하신 분으로서 탄생 이전이나 임신 기간이나 탄생 이후에도 영혼 안에서, 육체에서도 영원한 동정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녀가 낳으신 분은 하느님이셨기에 그 본성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다마스코스의 성 요한은 찬양하였다.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할 때에는 먼저 온 몸을 깨끗이 씻기고 얼굴을 곱게 다듬은 뒤 정갈한 옷을 입힌다. 그러고 나서 옷과 주변 매무새를 여러 번 잘 정리하고 탄탄하게 묶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정녀와 동굴의 입구 사이에 아기를 보면 흡사 시신을 묶듯 포대기로 차곡차곡 감아서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천사들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이 표징이라는 말을 전한다(루카 2,12).
금방 태어난 아기를 구유에 눕힌 것이 어째서 ‘누구인지 또는 무슨’ 표징이 될까? 현실은 마땅히 쉴 만한 방이 없어서 구유에 눕혔을 터이지만, 하느님의 특별하신 의도가 함께하심을 알게 된다. 구유는 ㅡ ‘돌아가심을 그리고 동굴 밖에 내어놓으므로 부활하심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ㅡ 시신을 담는 관(棺)을 의미한다. 죽은 사람처럼 천으로 십자형으로 또는 엮듯이 감아 놓은 모습은 죽었다 살아난 라자로의(요한 11,34-44) 모습과 같다❲그림 48❳.
동굴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옛 교부들의 찬미 노래와 복음서의 일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마스코스 성 요한은 복음을 인용하여 “동정녀에 의해서 영광의 왕이 나셨습니다. 그는 자주색 옷을 두르시고 억눌린 자를 찾아보시며 어둠 속에 갇혀있던 그들의 해방을 알리십니다.”(루카 4,18-19 참조)라고 하였고, 예루살렘의 키릴(315-387)56은 “주께서는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고 그의 몸은 죽음이라는 용을 유혹해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쓰였습니다. 그 용은 그를 삼키러 나왔으며 삼켰다고 자만했지만, 다시 토해냈습니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동굴은 지옥을 상징한다. 동굴은 아기를 삼키려고 열려있는 괴물의 아가리이며, 죽음이고, 무덤 속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콘에서 우리의 눈에 익은 자색 옷에 청색의 긴 포목 형태의 겉옷을 두르신 모습으로 등장한다.
청색은 하늘의 색으로 하느님의 색깔이다. 물, 청결, 고요함 등을 나타냄과 동시에 ‘육화’, ‘밖으로 드러나신 하느님’의 의미로 인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콘에서 이 두 색조는, 자주색 옷에 청색 겉옷은 예수님만, 청색 옷에 자주색 겉옷는 성모님만으로 제한되어 있다.
흔히 동굴 안에 소와 나귀가 그려지는데, 슬라브 지방에서는 말이 그려지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동굴 밖의 아기 예수를 향하여
공경의 모습인 이 짐승들은 다른 나라 민족(이방인)을 상징한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 1,3)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방인인 동방 박사의 경배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이스라엘 백성보다 이방인들에게서 강한 믿음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마태 8,11-13;15, 24-28, 마르 7,24-30).
56 예루살렘의 주교, 성 키릴루스 또는 치릴로. 이단을 단호히 배척하고 성삼교리의 확립에 대한 공헌과 성체성사에 참된 현존을 명확히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