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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다도해 그리고 기암의 향연 천관산
1. 일자 :
2. 장소 : 천관산 (723m)
3. 행로 및 시간
[주차장(
4. 동행 : 홀로 / 구의산악회
5. GPS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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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산 산행을 준비하며 >
지난 10월말 이래 근교 산만 돌아다녔더니 좀이 쑤신다. 회사 조직이 변경되고 새로운 일들이 자주 발생하여,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없었다. 다음 주도 중요한 업무보고가 있지만 심리적 안정이 더 중요할 것 같아, 먼 곳으로의 산행을 준비한다. 다행이 지난 주와는 다르게 이번 주는 안내산악회에 마음에 드는 산행지가 많다. 그 중 장흥의 천관산을 택한다. 요즈음 ‘1박 2일’에 소개되어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곳이다. 땅끝, 남해 바다에 가까운 먼 곳이지만, 지난해 두륜산, 올해 팔영산 등 부근에 만만치 않게 먼 곳도 다녀 온지라 심리적 거리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천관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다. 수 십 개의 기암괴석과 걸출한 모양의 암봉이 능선을 따라 삐죽삐죽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 하여 천관산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정상능선에 서면 남해안 다도해,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제암산, 광주의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다.
출발 전 지도를 살피니, 천관산 주변으로 사방으로 저수지가 산재해 있다. 수동저수지란 곳은 규모가 꽤 커 보인다. 정상 동쪽편 외동리 방향으로는
바다 조망도 예상된다. 남쪽으로 제주도도 가까워 보이니, 심리적
거리는 수용 가능하지만 멀기는 참 먼 곳이다. 장천재에서 출발하여 중봉과 환희대를 거쳐 억새능선을 지나
연대봉을 오르고
천관산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는 억새, 다도해 전경, 기암일 것이다. 정상부 능선 상에 위치한 기암은 멀리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다도해의 전경은 날씨만 허락한다면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나, 억새는 제 철이 지나 제대로 감상하지 못할 것 같다. 남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운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따스하다는 느낌과 풍부한 물산, 땅끝이 주는 아련한 슬픈 감정과 더불어 흐드러진 판소리 가락이 뇌리에 스친다. 자! 미지의 땅. 장흥으로 가 보자.
< 희망사항 >
미망(迷妄),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못 잡고 헤맴’ 이라는 뜻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변화들, ‘조직변경, 새로운 방식의 공모, 북한의 도발’등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러한 변화들 속에 내 스스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아마도 세상을 사는 이치에 어두워서 일 것이다. 잡생각이 이어지고 불면의 날들도 늘어 간다.
문득 최근에 읽은 ‘느리게 사는 즐거움, 어니 J 젤린스키’의 글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트리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 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났으며, 22%는 사소한 사건이고, 4%는 바꿀 수 없으며, 4%만이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 한다. 즉, 나를 괴롭히는 불안과 걱정거리의 96%는 어찌할 수 없거나 쓸데없는 마음고생이라는 것이고, 그리니 근심걱정은 훌훌 털어 버리고 살라는 것이다. 또한 피천득 선생은 ‘수필’이라는 글에서, 청자연적의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언급했고, “창조에는 한 조각 연꽃 잎을 꼬부라지게 하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고 했고, 그 마음의 여유가 없이 초조와 번잡에 사로잡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라고 했다. 내 고민의 근본을 치유해 주지는 못해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글들이다.
나를 둘러 싼 어려움은 결국 나의 처절한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것임을 그간의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산으로 내 번뇌를 가져간다고 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도의 산에서는 다만 편한 마음으로 ‘태초부터 그러했을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심적 안정을 얻어 돌아 오고 싶다.
< 장흥 가는 길 >
구의산악회를 따라 산에 가는 것이 몇 달 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가끔 이 산악회를 택하는 이유는 물론 산행지가 구미에 당겨서 이겠지만 한 가지를 더한다면 ‘28인승’ 버스의 쾌적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거의 낙제점 수준이라 전혀 기대해서는 안 된다. 평소보다 일찍 복정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만원이다. 젊은 아가씨 옆이 내 자리다. 우측 홀로 앉는 자리를 기대했는데 기대 반 아쉬움 반이다. 장흥까지는 5시간이 족히 걸릴 것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한다. ‘위 워 솔져’라는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 영화다. 전투에 참가 하기 전 훈련 모습, 가족과의 정겨운 장면들이 초반부에 보여지더니 곧 전장이 이어진다. 출정 시에 기병대의 대대장인 주인공의 연설이 인상 깊었다. “모두를 다시 이곳으로 살아서 데리고 오지만 못하지만, 그 누구도 사지에 버려 두고 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가장 먼저 전투에 나서고 가장 늦게 전장을 떠날 것이라고”. 리더십이 무언인가를 보여주는 명연설이다. 영화 내내 치열한 전투장면과 죽어가는 군인들을 보면서, ‘베트남전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영화가 갖는 보편적인 주제들, ‘동료애, 리더십, 가족, 조국’등이 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고, 미국의 시각에서 전쟁을 묘사했지만 월맹군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표현한 것이 그나마 영화를 싸구려 전쟁애국주의 영화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원제가 ‘우리도 한 때 꽃 같은 군인이었다’라 하니 잔인한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의 다른 한편에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적이 따스한 정서를 ‘꽃’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실제로 전쟁에서 숨져 간 젊은 군인들은 피워 보지도 못하고 진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 편 보고 비몽사몽 간 몸을 뒤척이다 보니 어느덧 광주를 지난다. 낯선 남도의 땅을 달리는 길은 풍경은 봄 날이었으나,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의 난폭운전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는 ‘빠-앙’하는 소리가 내내 신경을 거슬렀다. 하여간 덕분에 예상보다 이른 11시 40분경에 천관산 부근 주차장에 도착했다.
< 장천재에서 환희대 >
당초 들머리로 생각했던 장천재는
주차장에서 10여분 거리 위쪽에 있었다. ‘위’씨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입구에 600년 수령의 소나무가 인상
깊었다. 장천재를 지나 본격 오르막 길에 나서니 곧이어 1박 2일에서
< 천관산 들머리 / 남해 바다의 전경 >
12시 30분경 커다란 바위전망대에 올라서니 환희대로 향한 능선에 기봉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초입부터 눈이 이리 황홀하면 오르는 시간보다 전망 보며 사진 찍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다. 멀리 연무 너머로 장흥의 또 다른 명산 제암-일람산 능선이 우람하다. 10여분 경치 좋은 능선 오르막을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길가에 서 있다. 선인봉인가 본다. 솟은 모습이 사람이 서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선인봉’ 이라 하나 보다. 이제는 정상부의 기암들이 한결 더 가까워 보인다. 고도는 이미 500m를 넘어서고 있다.
< 장천재 노송 / 선인봉 ? >
가야 할 길을 올려다 보니 하늘 끝에 솟은 기암의 모습이 마치‘冠’자를 닮아 보인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이는 ‘모자’. 천관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나 보다. 먹물깨나 먹은 학자인냥 하는 자들이 갖다 붙인 천자의 면류관보다는 보다는 내 생각이 더 시각적인 느낌을 준다. 12시 50분 커다란 바위 전망대에 도착했다. (뒤에 추정해 보니 이곳이 종봉이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일부는 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고 있다. 나도 배가 고파오고 좋은 경치를 놓아 두고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바위 전망대 뒤편에 자리를 잡는다. 우측으로 장흥 일대의 마을과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고, 좌측으로는 금수굴로 향하는 능선의 바위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편편한 너럭바위 위에 조촐한 식탁이 마련되고, 비록 햄버거와 커피우유가 전부이지만 맛나게 나만의 성찬을 즐긴다. 입과 눈이 풍요로움에 행복해진다. 문득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내가 지나온 길은 능선으로 이어지고, 능선은 산으로, 산은 다시 산으로 끝없이 이어지며, 내게 이 길의 끝에 있을 또 다른 길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닌가?
< 冠 자 연상되는 기암들 / 종봉 부근 전망대에서 >
식사를 하고 바위 모퉁이를 돌아 드니 금강굴의 이정표가 보인다. 그렇다면 조금 전 식사했던 바위가 종봉이란 말인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난다. 금강굴을 지나며 간간이 계단길이 나타난다. 덕분에 손 쉽게 고도를 높일 수 있었다. 1시 20분경 해발 695m 천주봉에 닿았다. ‘天柱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꽃아 세운 것 같다.’고 한다. 햇살에 빛나는 봉우리를 사진으로 담았으나, 빛의 부담을 이겨 내지 못했다. 돌아 보는 지나 온 바위 능선의 전망이 근사하다.
< 바위 능선의 전경 / 천관산 정상 연대봉의 원경 >
천주봉을 지나며 길은 조릿대가 간간이 있는 편한 길로 변한다. 멀리 연대봉 부근의 봉수대의 모습도 아스라하다. 긴 오름 길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드디어 천관산에서 경치가 가장 좋다는 환희대에 도착했다(13:27). 멀리 연대봉 방향으로 억새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남서 방향으로는 이제와는 다른 모습의 바다 전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다도해’의 모습이다. 셀 수 없는 섬들이 연무에 젖어 바다의 떠다닌다. 올라 오면서 본 남동쪽 해변과는 마치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남해와 서해의 만남이 많은 섬들을 만들었나 보다. 처음 보는 황홀경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 환희대에서 바다를 배경 삼아 / 다도해 전경 1 >
< 환희대에서 연대봉 >
환희대에서 정상 연대봉까지는 거리가 1km. 억새 능선 길이 빤히 보인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하겠다. 계절이 많이 지나, 억새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끝물이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만큼은 길가를 누렇게 물들이고 있다. 천관산의 억새는 11월 하순이 절정일 듯하다. 우측으로는 다도해의 전경, 정면으로는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진 길을 경치에 취한 하염없이 걷는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하다.
< 다도해 전경 2 / 연대봉을 배경으로 >
경치에 취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탐산사 갈림과 헬리포트를 지나자 바로
눈 앞에 연대봉이 보인다. 천관산
< 천관산 정상에서 >
< 연대봉에서 장천재 >
하산 길 초입도 정상부와 같은 억새밭이다. 길게 이어진 누런 길이 포근해 보인다. 다도해의 모습이 암릉과 산에 가려 사라진 것이 아쉽지만 너른 남해 바다가 한결 가까워진 모습으로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온다. 앞 섬 너머로 새로 난 다리를 건너면 이청춘 선생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무대, 소록도의 모습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소록도는 제법 큰 도시의 풍모를 지녔다.
< 하산 길의 남해바다 / 양근암 >
이제 막
핸드폰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잠시 후 또 다른 생각에 젖는다. 어인
일인지 몰라도. 얼마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얼굴이 떠 오른다. 수술 상태의 다리를 이끌고도 스승의 부름을 저버리지 않은 ‘
< 하산 길에 올려다 본 천관산 / 하신 길 전망바위에서 >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길을 내려서다, 문득 다시 올려다 본 천관산의 모습은 아직도 늠름하다. 곧게 서서 내게 잘 내려가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으라고 부탁한다. 나도 그러겠다고 답한다.
2시 30분경 멋진 전망바위에 섰다. 시간도 많이 여유가 있어, 보온병에 녹차를 타서 한 모금 마신다. 뱃속에 따스한 것이 들어가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바다와 섬과 마을이 어울러진 천상의 풍경을 한참이나 관망한다. 남도에서의 여유가 한껏 느껴진다.
하산의 끝이 머지 않았다. 오전에 남아 있던 연무가 거의 다 걷혔다. 좌측 일람-제암산 능선이 나를 바라 본다. ‘내게도 눈 길을 주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높다란 산군이 제법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언젠가 따스한 봄 날 그곳을 찾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 일람-제암산 전경 / 수문 해수욕장 부근 포구 전경 >
낡은 절의 풍취가 느껴지는 장안사 앞 마당을 거쳐 장천재 갈림길에 다시 섰다. 시간은 이제 막 3시를 지났다. 참 좋은 날에 참 좋은 경치에 흠뻑 젖은 오늘도 내가 왜 산에 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 에필로그 >
하산이 오늘 장흥에서의 일정의 끝이었다면 먼 길을 달려 온 것 치고는 참으로 빨리 귀경할 수 있을 것이지만 상황은 늘 내가 희망한 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능구렁이 구의의 대장, 버스가 출발하자 ‘1박 2일에도 소개된 바지락 비빔밤 드시러 가지 않으실 분?’ 하고 심리전을 펼친다. 나를 비롯한 오전의 대장의 꼬드김에 반신반의 하던 사람들은 결국 손을 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20여 분을 더 차를 타고 수문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대장이 도착만 하면 바로 차려져 있을 것이라는 바지락 회 무침은 정상적인 주문 절차를 거쳐 자리에 앉은 20여 분 후에 맛 볼 수 있었다. 11000원이라는 값어치를 전혀 하지 못하는 음식을 보며, 오늘도 ‘얼렁뚱땅 구의 대장’에서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귀경 시간을 쪼개어 가며 음식의 질과 양에 비해 터무니없는 값을 치르고 산꾼들을 이리로 데려 온 이유를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의심하는 장삿속이 아니라, 남도의 음식의 맛과 여유를 찾고자 함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 한마디 할 것은, 정말 여러 번 느끼지만 유원지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본인들이 타지에서 이런 음식을 이런 가격으로 사 먹었을 때의 느낌을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귀경 길에 석양에 물든 보성의 녹차 밭의 진수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비탈진 사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 녹차 밭을 감상하며 남도의 포근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귀경 길 오전과 같이 난폭운전을 일삼은 기사 덕분에 출발 4시간 20분 만에 복정에 도착했다. 승객의 안전을 등한시 하는 기사에 처사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 덕에 전용차선의 위용을 확인한 것에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니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산행일기 쓰기를 마칠 무렵, 뉴스에서 전해오는 소식 ‘영덕 산꾼들이 표충사로 향하던 중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탑승객 3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하루의 남도 여행을 이렇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