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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갈등문화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권귀좌
이나바의 하얀토끼를 통해 고찰한 한일 문화 교류의 중요성
일본말에 이런 말이 있다.
‘구다라 아란고도 샤베루나’
이 말은 일본에서 ‘모르면 말하지 말라’ 또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의 본뜻이나 어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자
<구다라 = 백제>
<아란고도 = 알고서도 >
<샤베루나 = 지껄이지 말라> 라는 뜻이 있다.
다시 이를 풀이 해보면
‘백제가 아니면 지껄이지 말라’
‘백제를 모르면 말하지 말라’
‘백제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지 말라’
‘백제를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등의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백제를 일본에서는 ‘구다라’ 라고 불렀었다.
‘아란고도’라는 말은 우리의 사투리에 남아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데.
‘알겠니?’ 라는 말을 줄여 ‘알안?’ 혹은 ‘아란’ ‘알간’ 등으로 쓰이고 있다.
‘아란고도’란 ‘알고도’ 라는 말과 동의어로 해석할 수 있다.
‘샤베루나’ 라는 말은 사투리로 ‘씨부리다’와 동의어로 해석할 수 있다.
‘말을 씨부리다’ . ‘말을 씹다’ 등에 사용되는 단어가 일본어의 ‘샤베루나’다.
위에 보듯 ‘구다라 아란고도 샤베루나’ 라는 말을 구어로 표현해본다면
“구다라를 알고나 씨부리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백제의 위상이 그만큼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백제를 모르고서는 아는 체 하지 말라는 말이 쓰였고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말로 ‘구다라 나이(くだらない)’라는 말은 시시하다. 형편없다. 쓸모없다. 라는 말이다. 이 말 속에도 “백제가 아니면 시시하다”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일본 속에 심어진 백제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고삼국시대의 영향은 지금의 일본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과 문화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왜구’니 ‘왜놈’, 혹은 ‘쪽바리’라 불리며 천한 야만인으로 불리던 일본이었다.
백제의 왕족이 대륙에서 추방되거나 피난을 통해, 또는 권력 다툼과 전쟁에 의해 일본이라는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원주민들과 섞이고 그들과 융합하며 고난과 설움의 세월을 이기고 살아온 나라가 지금의 일본이다. 그러한 피눈물 나는 회한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전통과 문화를 지키면서 척박한 땅을 일구고, 그들만의 왕조를 이루고, 자손을 이어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권력을 차지하며... 살아남기 위한 수많은 내전을 겪기도 했다.
사내들은 칼을 들고 무사가 되어야 했고 아녀자들은 그러한 무사들을 기다리며 살아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역사는 고스란히 일본 문화 속에 남아있다.
2011년 3월 5일 남산 국악당에서는 주한 일본 대사관 후원으로 일본 민간 예술단 공연이 있었다. 대학생과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공연단 등이 일본의 전통 공연을 위주로 공연을 선보였다.
일본의 전통공연은 동작이 극도로 절제되고 단순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우리의 마당놀이나 전통공연에서 볼 수 있는 넓직한 공간에서 활달하게 이뤄지는 공연과는 사뭇 달랐다. 춤을 추어도 팔이 머리위로 올라가거나 발을 구르는 등의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 이는 일본의 주거 형태가 협소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얼굴은 마치 백짓장처럼 하얀 분을 바르고, 무사들과 가족들의 염원을 담은 이야기의 바탕에는 우리의 한과 설움과는 차원이 다른 극도로 절제된 슬픔과 한이 베어 있었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공연 분장을 했는데 붉은 눈과 얼음처럼 차가운 하얀 얼굴에서는 금방이라도 뜨거운 피눈물이 흘러 나올듯한 아픔을 느꼈다.
일본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에는 특이하게도 허리에 두르고 있는 담요가 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건 피난 채비를 해야 했고, 살던 땅을 떠나 남은 가족을 데리고 도망을 해야 했던 아녀자들로서는 허리춤에 담요를 둘러메고 살아야했던 급박한 시대적 상황이 기모노에 남아 있다고 보여 진다. 백제와 대륙의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일본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어졌을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영광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 그들은 돌아갈 고향을 잃었고 가고 싶어도 갈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불모지 낮선 곳에서 그들은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원주민들과 서로 힘을 합하고 서로 위로하며 훗날을 기약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냈고 그곳에서 그들만의 삶의 터전을 구축했다.
일본에는 이나바의 하얀 토끼(因幡の白うさぎ)라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이나바(因幡.혹은 인슈因州)란 현재 돗토리 현의 동부지방의 옛 이름으로 사닌도(山陰道)의 8개지역중 한 곳 이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나바에 사는 하얀 토끼는 바다를 건너고 싶었다. 그러나 토끼는 바다에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와니자메(鰐鮫)라는 무서운 상어와 악어들을 일렬로 서게 하여 그 등을 건너뛰어 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어들은 토끼의 꾀를 알고 토끼를 잡아 털과 가죽을 벗겨버렸다,
발가벗겨져 피투성이가 된 토끼를 구해준 신이 있었는데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國主神-おおくにぬしのかみ)였다. 오오쿠니누시노카미 는 일본신사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에 모셔져있다.
<이즈모타이샤 의 오오쿠니누시노카미 동상>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일본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며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 전국의 젊은 남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나바의 하얀 토끼 이야기가 어느 개인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대륙에서 건너간 유민들의 향수를 표현한 이야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나바의 햐얀 토끼가 고향을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려 했고 결국 무서운 상어에게 잡혀 털과 가죽이 벗겨져 피투성이로 이국땅에서 죽어간 운명적인 이야기 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언뜻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신라의 박제상이다. 볼모로 잡혀간 신라 왕자 미사흔(未斯欣)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간 박제상은 신라에서 도망 온 사람처럼 속이고는 왕자를 몰래 신라로 도피시킨 후 이 사실이 탈로나 붙잡혀 일본에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만약 박제상의 이야기가 하얀 토끼 이야기로 그려졌다면 하얀 토끼를 구한 ‘오오쿠니누시노카미’역시 백제의 왕손이거나 유민일 계연성이 크다.
‘오오쿠니누시노카미’ 라는 본래 뜻은 ‘오오’는 크다는 뜻이고 ‘쿠니’는 우리 고어인 신(神)과 나라(國)를 뜻하는 ‘검. 감. 곰’ 으로서 이 말이 변형된 ‘코미. 쿠미. 가미. 카미’ 이고 ‘누시(ぬし)’ 는 주인 이란 뜻이니 ‘오오쿠니 누시노 카미’란 뜻은 결국 대국주신(大國主神)을 뜻하는 우리의 고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볼때 하얀 토끼인 박제상이 왕자를 구출하고 왜인에 붙들려 흰 옷이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이를 구하여준 대국주신(大國主神)역시 일본에 고대 왕국을 세운 백제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박제상의 또 다른 이름은 모말(毛末)인데 이는 털과 가죽의 신하라는 뜻이 담겨있어 이나바의 하얀 토끼 주인공이 다름 아닌 신라의 충신 박제상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더구나 오오쿠니누시노카미 기키신화(記紀神話)는 서기 712년 백제 귀족인 오오노야수아마로(大野安麻呂)가 편집한 고사기 (코지키古事記) 와 720년 쓰여진 일본서기(니혼쇼키日本書紀)에 나오는 내용이니 그 연관성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국력이 강해지고 부유해 지면서 지나간 역사를 고쳐 새로운 역사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변에 깔린 일본의 문화는 분명 백제의 전통문화가 바탕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2천 여 년 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고대 삼국의 역사와 문화는 아직도 일본 속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대왕국인 아스카 왕국은 백제인에 의해 세워진 왕조로 학계에서는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스카 왕국에 대한 발굴 작업을 중단했다. 일본에서는 아스카 왕국이 그들이 세운 왕조라고 하였으나 유물을 발굴 할수록 백제의 흔적이 역력하고 자신들의 문화와는 다른 역사 유물들이 출토되었기에 발굴을 중단하는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가를 천황이라 하여 오늘날에도 신적인 존재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의 왕조차도 그들의 “조상이 백제인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일본의 문화와 역사가 백제에 의해 태동했다고 말 할 수는 없으며, 백제인들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확대 해석 할 수도 없다. 다만 일본과 백제의 문화가 융합되고 어우러지며 그들의 역사가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는 서로 교류되고 융합되며 발전하고 있다.
그 옛날 백제인과 일본인이 함께 어울려 어려운 난국을 이겨내고 불모지를 개척하며 한과 설움의 역사를 극복하면서 전통과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그러나 수많은 침략과 전쟁의 역사는 서로에게 너무도 깊게 파인 골로 남아있어 그 앙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로 간에 문화와 전통의 공유와 백성들의 정서는 통하는 부분이 상당함에도 정치적인 면에서는 이와는 상반되게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며 강압자의 지위를 누리려 하는 마성이 늘 존재하고 있다. 또한 끊임없이 이를 부추기고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는 극우주의자들도 존재 하고 있다.
사과와 반성, 보상과 배상은 분명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인 앙금이 어느 정도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일방이 완전한 무릎 꿇기 식의 사죄나 보상을 강요한다면 이는 오히려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죄를 받는데 어디까지 사죄를 받아야 하는지의 문제도 있다.
일제 강점기만 사죄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임진왜란에 대한 사죄까지 물을 것인지? 그 이상의 역사적 사실까지도 사죄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대마도 정벌과 그 이전 일본으로 쫓겨난 백제 왕가 세력들에 대한 사죄는 우리가 해야 하는지의 문제까지도 거론해야 하는 것이다.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일본 원주민과 어울려 살아가며 그들과 융합하여 왕국을 건설하였고 일본 건국 신화의 주체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볼모로 온 왕자를 구출한 후 잡혀 고초를 당한 박제상을 구해준 인물로 비정된다. 이렇듯 일본과 백제 그리고 신라의 인연관계는 아직도 일본 내에서 이나바의 하얀토끼로 구전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관계가 아닌 인연을 이어주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관계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모두 어울려 함께하는 ‘마츠리(まつり)’ 축제가 전국적으로 열린다.
‘마츠리(まつり)’라는 말은 ‘마쓰루’(祭る)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마쓰루’(祭る)는 ‘제를 올리며 신을 모신다는 뜻이 있다. 신을 맞이한다(마즈리)는 ‘마츠리’ 축제에서 “오이소 오이소!” 와 “왔쇼이 왔쇼이!”라는백제 사신을 맞이하는 구호를 외치는데, 이는 ‘마츠리’ 축제가 신(神)과 백제가 연결되어 있는, 일본과 백제의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임을 알 수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된 회사로 일본의 고건축 회사인 ‘공구고미(金剛組)’는 1.400여년을 이어온 기업이다. 이 ‘공구고미(金剛組)’는 백제의 왕인박사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던 당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건축하고 지금까지 보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으로 백제인인 공고시게미츠(金剛重光, 한국 이름 유중광)가(家)의 대를 이어오고 있는 기업이다.
이렇듯 일본에는 우리의 오랜 문화가 아직까지 살아있으며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오사카(大阪) 시텐노지 (사천왕사 四天王寺) ‘마츠리(まつり)’ 축제는 매년 11월 열린다.
이 ‘마츠리’ 축제는 비단 일본인만의 축제로 끝날 일은 아니다. 한일 간에 화합과 문화의 교류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참여하여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일 간의 문제는 정치적으로만 접근해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한일 간의 앙금을 해소하고, 민과 관이 하나 되는 어울림의 장을 지속적으로 열어나간다면 자연스레 지난날의 아픔과 한은 해소 될 것이며 서로를 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같이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고 함께 존재하는 공생 공존의 장을 열어내어야만 정치적인 화합도 이루어 질 것이다.
문화를 통한 대 화합의 장을 열어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현재는 물론 후손에 물려줄 밝은 미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문화와 전통까지도 정치적 틀로 규정하여 배척하거나 교류를 중단한다면 영영 회복하기 어려운 길로 접어들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민간교류와 평화공존의 기틀을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3월
일본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일본은 미웠으나 지진으로 희생된 많은 민간인들의 고통이 남일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다.
애증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희생된 분들과 가족들의 슬픔을 남이 아닌 우리라는 연대감 속에서 민간 지원이 이뤄졌고 모금행사도 진행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인접성을 떠나서도 역사와 문화적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아프고 괴로운 지난 역사가 저물고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새로운 시대가 하루빨리 도래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 서로의 아픔을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관계되 개선될 수 있다. 민간 교류와 문화예술 교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첫댓글 왜노의 후예들이랑 친하게 진해서 머하게여?? 통일은 거녕 한반도 반쪼가리에 만족하고 사실렵니까?
아니면 동족인 북한 몽골리안 연합이랑 교류가 더욱더 강해지면 천속족들의 영토가 엄청커지는데
왜노들의 후예들과는 친하게 진해고싶지않으니 자기들끼리 살라구하세요
금강조는 몇년 전에 망했습니다. 지금은 다카마츠건설의 한 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은 글 잘 보아씀네다,
지나+코레+니혼+조선+몽고+러시아 동쪽+쭝앙아세아 연합? 먼훗날 이루어지길!. 쉽지않겠지만요.
동아시아에서 순수 혈통이 유지된곳은 조선 입니다. 현재 천자국 U.S.+ Yanggae 싸워 이긴 정황이보입니다,
천하 제일 으 깡다구=조선. 추카추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