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일 새벽 충분한 숙면(熟眠=깊이 들었던 달콤한 잠)이 끝난 2시에 일어났다 먼저 1급자 출석을 끝내고 오늘의 만평으로 웃음글(유머)란을 24개신문에서 흥미로운것과 특이한것으로 가려뽑아 탑재한 다음 예약된 계획에 따라서 금년 첫산행으로 태백산눈꽃축제에 참여하는것을 아올러 민족의 영산에서 한해의 새로운 축복의 건강을 다짐하려는 뜻깊은 결의를 실천하는 시간속으로 진입하고있었다
6시에 집을 나서기로 작정하고 등산장구를 하나하나챙겨 만반의 준비를 완료한것은 5시가 넘은 새벽이었다 어제 새로사온 스펫치(우리말로는 행전(行纏)이고 일본군대에서는 각반(脚絆=왜군의 특별한 군인모습에서 각반을 젊은 사람들은 모를것이지만 아주 날렵하게 빠른동작을 할수있는 모양새를 연상시켜준다)를 비롯해 아이젱은 물론 모자 장갑등 모두 최신고가의 장구 값 만도 상당할것이지만 단하루에 신고 끝낼것을 그렇게 값비싼것으로 낭비할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가장 값싼25,000원짜리를 산것이다
그러니까 신발과 양말은 불랙야크 등산복은 K2이었으나 배낭은 7,500원짜리를 어제 새로구입한것이었다
5::55 집을나섰다 24시 김밥집에서 4,000원을 주고 4줄의 김밥을 사서 두줄은 점심먹을것으로 배낭에 넣어챙기고 두줄은 아침밥으로 그곳에서 먹는것으로 산행준비는 모두 완료되었다
하소동에서 7시에 버스가 대기하고 운동장에서는 7시20분에 출발하는것으로 계획되었기에 1호차를 타게 된 나의 행보는 하소동7시출발 대기차량에 탑승하는것으로 20분을 걸으면 충분하므로 새벽추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심산에서 6시30분에 김밥집에서 나가기로하였다
적진을 향해 새벽진군을 서둘르는 군인정신으로 단단히 무장을하고 일기당천의 승기를 다짐하는 敢鬪姿勢를 일으켜세우고있었다 새벽 찬공기보다가 더욱 앗찔한것은 이틀째 눈비가 내린 미끄럼틀 길이었다 비끗 잘못 딛뎠다가는 어디로 넘어질런지 가늠할수가 없는 터이라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야하는 어슴푸레한 가로등불빛마져 혼돈스러운 길이었다
용두교를 지나면서 시간을 체크해보니 아니 벌써 5분전 7시가 되었다 반쯤 남은길이라 다급하게 뛰었다 아무리 빨리달려가도 도착지에 닿는 순간 버스는 후미등을 깜박거리며 나의 손을 졋는것도 아랑곳없이 출발하는것이었다 오늘아침에 그 미끄럼틀 길을 예상하지 못한 잘못 계산한 시각 차 때문에 놓쳐버린 그곳에서 다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기다리었다
한참만에 겨우 택시하나를 잡아타고 시간을 물으니 이제 7시2분이라고했다 1분을 기다린것이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이었다
종합운동장에 다다르니 버스보다 내가 타고간 택시가 먼져 도착하였다 겨우 안정된 마음으로 자리를 잡으니 언제나 출입구쪽 두번째 좌석 창측에 앉게되었다
날씨가 추운탓인가 사람들이 빨리모이지않아서 계획시각보다 34분이나 늦은 7;34 제천을 떠났다 멀지않은곳이라 금방 도착할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잠을 설치고 또 마음의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1차 휴계소로 민둥산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이었으니 바로 증산이었다 늘푸른산악회의 새로운 진영이 지난 12월년말 총회에서 짜여진 이상복등산대장이 신임회장으로 오늘 첫 산행이라는 뜻깊은 희망으로 새등정었는데 나에게 특별히 축을 일러달라는 부탁이었으니 쾌히 응락할수밖에 없었다
축문을 받아들고 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유세차~~ 서기 이천십삼년 계사년 정월 이십오일 날 늘푸른山岳會員 및 봉사단 일동은 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 천제단 頂上에 올라, 左로는 靑龍이요,右로는 白虎요,南으로는 주작이요,北으로 는 현무를 각각 거느리고 이 땅의 모든 山河를 굽어보시며 그 속의 모든 생육을 지켜주시는 山神靈님께 고합니다. 감 소고우~~~
그 山行 하나하나마다 山을 배우고 산과 하나되는 기쁨으 로 충만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작은 事故 하나없고 아무 낙오 자 한명 없었으니 이는 모두 자애로우신 山神靈님의 보살핌 이 있었다고 우리 모두는 굳게 믿고있습니다. 조용히 저희들의 발거름을 지켜보시며 흥에 겨워 질러 대는 노래 소리나 왁자지껄한 우리의 경망스러움도 너그러이 들어 주시며 오로지 無事安全한 山行이 되도록 저희들의 발거름을 보살펴주신 山神靈님이시여! 바라옵건대 계사년 올해도 저희 늘푸른 산악회원과 봉사단원 모두의 가 정에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고 사업번창하게 하시고,산속 만 물들이 아름답고 소중하여 풀 한 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 그 루 함부로 하지 않으며 새 한마리 다람쥐 한 마리와도 벗하 며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늘푸른산악회가 되고 싶 나이다. 근이 청작포과 공신전헌 상향~~
읽은후에 생각에 잠겨보았다 아무래도 이것을 그냥 읽을수는 없는노릇
우주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제하고 엉뚱한 우상숭배를 그대로 고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망발이라고하겠다 그렇다고 이왕 응락한것을 다시 물릴수도없는노릇이라
"위에 계신 하나"를
<산신령님께> 세곳에다가 첨가하기로 마음속에 다짐하였다
이렇게 말이다 <산신령∨님께>---------∨---------위에 계신하나 그래서 산신령위에 계신하나님께라고 삽입하였고 또 감소고우~~에 연결로 감소고우~~늘푸른산악회장 이상복----------을 추가하였다
태백산은 입산지점으로 유일사와 소도당골과 산등성이를 바로따라 올라가는 곳으로 너덧곳이있다 우리는 공원관리소가 위치해있는 그쪽을 택한것이다
입산지점에 돠착하자 곧바로 始山祭를 올리는 순서이었다 식당과 주유소가 주변에 있었다
고루갖춘 제상을 배열한 가운데는 돼지머리가 돈을 받치라는 신호라도하는듯하였다 등산대원이 모두 90명쯤이었다 오늘은 날씨탓인지 버스 두대가 온것이었다
드디어 고축차례에 나는 옆에서 마이크를 들이대고있는 사회자의 도움을 받아 큰소리로 고축을 하였는데 모두 숙연한 자세로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제례가 끝났다
그리고는 돼지머리에 배추잎사귀라고하는 만원짜리를 곶아넣기시작하였다 나는 그곳에 돈을 넣을수는 없는것이다 팀장에게 한장을 주었더니 거기입에다가 물리는것을 말릴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30만원도 넘게 돼지입속언저리가 배춧잎으로 웃게하였다
그때 휘발유주입차가 들어왔으며 제례가 끝나면서 소지(燒紙=신령앞에서 비는 뜻으로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일)를 하려고 불을 붙이자 휘발유 주입차에서 노발대발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은 쎄고 날씨는 추운데 큰일날일이었다
이렇게 행사가 끝나고 간단한 준비운동이 끝나면서 깃대를 잡은 등산대장이 앞장을 서고 곧바로 산마루를 오르기 시작햇다
나는 20명쯤앞장선뒤를 따라서 줄을 이어 올라가는길은 삼년전에 그 코스를 한번 올라갔던곳이었기에 생소한길은 아니었다
그때는 여름철이라 비가 마구 쏟아지는 데를 무릅쓰고 친구와 둘이다녀온 잊을수없는 어려움의 기억이되살아나고있었다
오늘은 그때와는 아주 딴판이었고 시작부터 어려움이 도사리고있는 1M가넘는 쌓인 눈이었다 생판길을 뚫으면서 올라가는 길은 아예 설산에 도전장을 내는 무모한 짓 이었다
앞장을서서 올라간 발자국하나하나에 발을 들여놓으면 풍덩빠지는 기분에다가 또 그발을 다시 뽑으려면 다시한번 힘을 불끈 주어야하는 힘의 발산의 연속에다가 새로운 힘을 축적시켜야만 전진할수가 있었고 그것은 평지가 아닌 오르막길에 잘못 딛으면 어디로 나가떨어질런지 알길이 없는 위험스럽고 힘겨운 산행이었다
한참을 오르려니까 그 당당하고도 경쟁적으로 언제나 남자앞장을 서서 끊질긴 내구력을 과시하던 맹열여성들조차도 기력이 빠지는가보였다
하나 둘 뒤로 쳐지고 드디어 내앞에는 두사람의 남자뿐었다 관리소에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그곳에 혼자있다가 입산료를 내라는것이었다
1인당 2,000원인데 단체니까 꺾아서 1,500원씩 인원수대로 내라는 떼를 쓰고있으니
오늘은 몇사람이 올라올것인지 조차 가늠할수가 없는터이라 맹랑스러운일이라
하는수 없이 깃대를 잡은 등산대장이 인질로 잡히다 싶이 그곳에 남아서 올라가는 사람들을 점검하기로하였고 우리는 그대로 올라가는판이었다
아니 이렇게 어려운 설원을 뜷고 올라가는데 돈을 주기는 커녕 돈을 내라는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않는것 같다
그것도 길을 쳐놓은것도 아니고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우리일행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코스를 이용하므로 이렇게 어려운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리도 아프고 무릎도 식근거리는것 같아서 나도 아예 잘못 들어선것이 아닌가 싶도록 인내력의 한계점을 점검해보는것이었다
그때 내앞에서 뒤로 쳐지면서 나에게 나이를 묻는것이었다 그 사람에게 스무살이라고 하니까 알아차리고 80이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예 육갑을 빼어버리기로하였다고 하면서 그게게 나이를 물으니 꼭 십년아래인 70이라는것이었다 그역시 노익장을 자랑삼아 올라온것같았다
기진맥진할즈음에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나는듯 그곳에 오뎅을 팔고있는 나무집한채가 아주 신나게 장사를 하고었었다
그 길몫에는 유일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합류하는 지점인것이었다
값도 비싸지않은 오뎅한꼬치에 1,000원씩이었다 오뎅꼬치보다가 국물을 선호하는것으로 이때까지 몫이 타는 것같았기 때문에 오뎅두개에 국물을 받아들면서 돈부터 내라는것을 돈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먼저먹고 주겠다면서 한숨을 돌리는 기분으로 그곳에서 휴식을 겸한 추위를 녹이는 작전타임에 회복과 갱생을 기대하는 휴계시간이었다
먹은후에는 돈을 찾는데 아무리 뒤져보고 호주머니가 아홉개쯤은 달린것들을 모조리 찾아보아도 천원짜리 한장을 찾은후에는 찾아내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생면부지사람들뿐인지라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작정도 아니고 30분이나 지체되어도 찾아낼 재간이 없는것에 답답해보기가 안쓰러운지 그냥 가시라는것이었다 겨울 추위에 택시값을 재빨리 내지않는다고 택시기사의 짜증이 대단하다는것쯤은 알고있는터이지만 오늘 이렇게 돈을 찾아내지못한것은 참으로 민망스러운 작태이었다 산밑에서 올라올때 천원짜리여러장과 오천원짜리 한장 만원짜리가 호주머니에 넣은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난감한일을 치르게되었다
우리 일행을 모두 놓쳐버린것으로 생각하면서 여러곳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류되었는데 이곳은 아주 비로 쓸은 듯이 깔끔하게 오르막길이 잘 정비되어 딴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나 미끄럽기는 매일반이었다 쉬엄쉬엄 올라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막길에 시간을 물어보니 11시40분이라는것으로 올라오기시작한지 한시간40분쯤 흘러가고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이제 정상도 얼마남지않았으리라는 희망으로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한곳에 다다르니 안내판에 천제단 0.7K라는 표지판을 보는순간 아직 반도 올라오지못한것을 께닫는순간 다급해지기시작하였다 바람은 세차고 눈은 다시 쌓여있었고 하늘에는 쌩쌩 하늘을 찢어버릴둣한 저공비행의 제트기 훈련이 이곳이 미군항공훈련장소임을 일깨워주었다 하늘은 파랗게 맑아서 여러날 동안 눈으로 뒤덮혀 온누리를 하얗게 덮어씨운 은백의 순결을 한결더 반짝거리게 빛을 발산했지만 강추위는 절정에 도달한것이다 벌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린아들과 함께 산을내려오는 모자산행에 아름다운 모습에 아이의 나이를 물었더니 여덟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보다 어린아이도 하나볼수가있었다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맹훈련으로 어린 산악인을 키워나가고있는 현장을 목격할수가 있었다
산마루쪽에 거의 다다르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군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추위속에서도 눈꽃이 만발한 크고작은 나무가지마다 육각어름송이로 수놓아진 백설이 만건곤한 가운데 오직 하얗게 하얗게 순백을 자랑하는 순결속에 자신의 오염들을 씻어버리는 추억을 담으려는듯 사진찍기에 열심인 장면도 볼수가 있었다
드디어 장군봉이라는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아직우리일행들이 있었고 대구 부산 서울 등지에서 온 전국산악인들이 태백의 정기를 받으려는 정점에 서려하는것이었다 그곳에서 기념사진들을 찍으려는 욕심은 굴뚝같았으나 선듯 용기를 내기는 쉽지않았다 작은 성으로 둘러쌓인곳과 또 장군봉이라는 커다란 돌비석이 서있는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모험에 세찬 바람과의 일대격전이 벌어지고있는현장이었다
우리 일행중에 사진을 찍는용감한사람이있었기로 나도 하나 부탁하면서 그곳에서 300M쯤 떨어진 천제단을 행해 약간은 비스듬하게 아래쪽으로 있는 천제단을 향해서 가는 길에는 그 흔한 관목조차도 자라지못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수가 있었다
300M를 걸어가는데 얼마나 바람이 센지 도저히 걸어갈수가없었다
자꾸만 날라갈듯한것을 간신히 거름을 띄어놓으며 한참만에야 겨우 천제단 돌담안으로 드러서는데 돌에 새겨넣은 주홍색의 한배검 이라는 표식이 있는곳으로 들어선것은 참으로 아늑한 곳이라고 기대하였으나 큰 착각이었다 그곳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것을 금방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모장갑을 낀 손등이 얼어빠지는것을 느끼면서 배낭에 챙겨넣고온 등산용 K2장갑을 간신히 찾아내어 낀 후에야 안정이 되었다 그곳에 더 오래지체하는것은 모험이었다
얼어죽는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야하였다 다른때에는 평탄하게만 느껴졌던 내려오는 길도 발자국을 제대로 띄어놓을 수가 없는 미끄럼틀이었고 무당이 칼날에 춤을 추는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단종각에서 용정이 있는 그곳이 여름철에는 경개좋은 장소이었지만 오늘은 그런곳이아니었다
용정옆의 건물에는 자판기의 커피와 매점의 여러가지 일회용 라면종류들을 팔고있었지만 올라올때 오뎅국물을 좀사먹다가 혼줄이 빠진 터인지라 아예 먹을 것을 단념하고 하산길을 재촉하는 발거름으로 소도당골을 향해내려오는길이었다
12시가 지난지는 오래이었고 오후 1시가 거의 넘은것같았다
한참을 내려오려니까 지금 막 유일사쪽과 소도당골로가는 지선의 팻말이있었다
이제 내리막의 시작을 알리는 길이었다
내리막길은 목판과 고무판으로 층층대처럼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굴절의 연속된 한늘 사다리처럼 어려움은 그곳이 평소엔 잘 다듬어진 멋진 아슬아슬하면서도 스릴만점의 장쾌함을 느낄수있는 곳으로 되어있엇던 것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스릴만점의 위험천만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아떠러이지는 생명을 질식시키는 숨막히는 순간이요 찰라이었다
그것은 고무판 목판 할것없이 쌓인눈이 얼어붙어서 어딜어떻게 디뎌야 넘어지지않고 내려갈수가있느냐가 문제인 까닭이었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청아하면서도 창공의 흰구름마져 두둥실 떠있는 상황의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더욱 절망의 갈등으로 빠져 들어가는 몰락과 괴리감은 더 한층 살맛을 없애주었을것이리라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2시반쯤되었을것이라고했다
이렇게 힘겨운 등산길에 하오3시가 가까운 시각에 언제내려오려고 이렇게 올라가느냐고 질문을 던져보았더니 자기들은 부산에서 왔는데 5시에 되돌아가는 버스가 조금은 시간이 있어서 조금 올라가다가 내려올것이라고 하는것이었다 이렇게 간신히 발을 가누고 디뎌가면서 2개의 다리를 건너내려오니 길섶에 119구급차량이 대기하고있는것이 보였다
아하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으니 여기까지는 차가 올라올수있는것으로 보아서 신작로가 개설되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적중되었고 너머져도 크게 다칠염려를 놓게되었다는 안도감으로 한참을 더 내려오게되니 드디어 단군신전이있는곳이고 또 당골막바지 입구이면서 오늘행사장인 태백산 눈꽃축제의 주행사장과 각종 어름으로 만들어진 조각들로 일대장관을 일으키고있었다
큰 토끼모습의 어름눈꽃집안에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입구에서는 기념사진들을 찍는폼을 재는 모습들로 축제분위기를 연출하는것이었으며 개방된 입구안에 들어가보았더니 그곳은 일대 어름나라사람들의 식사하는 모습들로 거기에서 팔고사는 먹거리와 기념품과 또 오색무늬로 알록달록수놓은 반짝거림의 작동들이
어름의자와 어름식탁에서 어름나라사람들의 식사광경을 체험해보려는 이색적인 풍경의 체험관광을 만끽하고있는것이었다
그곳을 벗어나 아주 다양한 인물과 동물들의 어름조각은 엄청나게 거대한 것으로 볼거리를 진열해놓아 관광 태백의 오래된 역사를 증거해주었다
마침 화장실을 발견하고 찾아들어가 그곳에서 휴식과 용변의 해우(解憂)를 말끔히 정리정돈하는 여유를 갖게되었다
얼마쯤의 휴식을 취하는 나의 단독공간은 참으로 다음 행동을 개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호주머니에서 가까스로 스마트폰을 끄집어내어보니 문자멧세지가 와있었다
팀장의 ---제4주차장으로 내려오시요----라는 다음행동의 결정적단서이었다
그곳주변에는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와 한국전래의 농악까지 없는것없이 모든 놀이틀이 짜여져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스케줄에 흠결사항이 없도록 진행하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있을 여유는 없었고 다만 빨리 내가 가서 평안히 휴식을 할수있는 제1호 나의 관광버스좌석을 찾아가는것만이 제1의 열망이었다
그런데 제4주차장이라는게 도대체 얼마나 멀리내려오면 있을 까 가도가도 끝이 없는양 멀기만 초행길처럼 미지수 그것이었다 여기를 내가 잘아는곳이련만 이렇게 당혹스러운 것은 처름겪는일이다
뚜벅뚜벅 비끄덩비끄덩 아젱을 한체 그대로 걷는 뒤뚱거리는 거름걸이가 마냥 오리거름처럼우스꽝스러웠으리라
드디어 제4주차장에 당도하였다 그것은 여러 주차장중에서 제일아래에 위치해있으면서 관광차들만 모여있는곳이었는데 관광차라야 도합 열다섯대도 않되었다 그중에 우리차량이 두대가 있는것을 발견하였으며 모두가 반기었는데 이곳에 당도한것은 아마도 내가 열손가락안에 들듯싶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당도하지않았음을 알수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한것은 오후 3시반쯤이었다
반가운마음으로 버스를 타려니까 운전기사가 아젱을 모두 벗어가지고 들어오라는 주문이었다
아젱을 벗고 챙기는것도 매우 힘겨운 일이라 나는 어거지로 아젱을 차량바닥에 닿지않게 뒷축으로 가까스로 바로뒷쪽 두째자리이므로 내자리를 찾아서 앉게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젱벗기작전을 시작했으나 그것역시 쉽지않았고 옆사람의 도움을받아서 아젱을 벗고 나니 이제 살것만 같았다
아젱을 벗지못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운전기사의 날카로운 경고조치를 듣고 주춤거리면서 안전지대요 임시라도 안정을 취할곳으로 버스안을 선호하기는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모두식사를 한사람도 대부분이었지만 아직도 점심을 먹지못한 사람들도있었다
젊은 여류인사는 배가곺아죽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배낭에서 오늘아침에 사가지고온 김밥을 끄집어내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집에가서 먹을까 하고 혼잣말처럼 뇌이고 있으려니까 바로 앞자리에 아름다운 인정미가 넘치는 서인정여사가 따뜻한 물을 드릴터이니 여기서 잡수시라는것이었다
매우 고마운 갸륵한 마음씨에 동조하여 김밥을 은박지에서 끄집어내어보니 차갑기가 어름짱이었다
그래도 먹기시작하였다 연실 묻는 말에 '아주 어름짱이야, 하면서 두즐의 김밥을 아주 천천히 다먹어치운것으로 오늘의 점심식사가 뒤늦은 감은 있었으나 꿀맛같이 좋은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여유있게 보내어도 다급한 사람들은 산악회장과 팀장들이었다
재빨리 아직도 연락이없는사람들 하나하나를 재점검하여 돌아갈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드디어 인원도착완료시각과 동시에 차량은 움직이기시작하였다
하오4시19분이었다
소도동에서 출발하여 태백시내를 거쳐 두문동을 넘어서 고한 사북 증산을 거져 동강휴계소에 다달라서 한번 쉬고 제천에 도착한것은 출발지 운동장에 6시20분이었다
꼭 10시간 54분걸린 태백산행의 막을 내리는 찰라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6시45분 옷을 벗고 발을 씻고 따뜻한 침대에 누으니 세상만사가 다 나의 것이었다 이렇게 오늘 태백산행의 경과는 아침6시출발을 기점으로 12시간 45분이 걸린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