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기 교수의 죽음학
<2013. 7. 2>
배 영 기 교수 (숭의여대 명예교수 -교육학 박사) 1. 전통습속에서의 죽음 호칭 가) 일반적인 죽음 명칭 : 사망, 산화(散華), 유고, 고인, 운명, 하직, 요절, 사몰, 영면, 졸거, 별세, 타계, 비명, 임종, 기세(棄世) 황천, 귀천, 유명, 서거(逝去) 나) 종교적인 죽음 명칭 : 초혼, 고복(皐復), 순교, 소천, 입적, 원적(圓寂), 적멸, 열반, 해탈, 영생, 다비, 성불, 왕생, 선종(善生福終正路), 화천, 승하 다) 신분에 따라 죽음 명칭 : 단현(斷絃:아내), 천붕(아버지), 지붕(어머니), 시해(왕비), 열사, 순국, 붕어 또는 붕서 (임금), 훙거(薨去 왕세자), 졸(대부), 불록(不祿 선비), 고분(叩盆:아내), 할반(割半:동지), 물고(物故:죄인) 라)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 : 돌아가시다. 잠들다. 눈감다. 세상 뜨시다. 운명하셨다 로 표현하였다. 다만 죽음의 결정은 우리나라 의료법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심폐설과 뇌사설이 있다. 뇌사설은 최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안락사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심폐설은 목숨이 끊어진 상태인데 즉 운명 이다. 숨이 중지된 상태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 ※ 참고1 : 배아-태아(탯줄)-영아(배꼽)-청소년(배)-장인(가슴)-어른(코, 입)-노인(목숨,헐떡임) ※ 참고2 : 九는 수의 끝수인 동시에 굳은수 또는 금강수라해서 유명을 달리한 명사들이 많다. 김구(49), 조봉암(59), 장택상 (69), 박정희(79), 함석헌(89), 노무현, 김수환(2009) ※ 참고3 : 五福 - 수, 부, 강, 덕, 고종명(자기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 객사를 기피하였다) 신오복 - 건, 구(俱), 재, 사(事), 우 2.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남긴 말 - 천상병 시인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중 광 스님 : “괜히 왔다가는 구만!” - 조병화 시인 : “어머님 심부름을 끝내고 어머니께로 돌아간다.” - 성 철 스님 : “무척이나 사기치고 간다. 나는 나를 많이 속였으니 남은 오즉 많이 속였으랴!” - 법 정 스님 :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가 흉하므로 지체 없이 다비한 후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로 가고 싶다.” - 노 무 현 : “ 죽고 사는 걸 자연의 티끌이라 원망하지 마라. 작은 비석하나 세워주려무나.” ※ 참고1 : 새도 죽기 전에 슬피 운다. 사람도 죽기 전이 착한 말을 남긴다. ※ 참고2 : 처음 쇠가 생겼을 때 모든 나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우리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우리를 헤칠 수 없다. 3. 옛날 한국인의 죽음관 모든 사람들은 넋이 있다. 이 넋(혼, 영, 얼, 정신의 복합지칭)은 음양의 기운이 뭉쳐진 것이 혼백이다. 혼은 양의 기운이고 백은 음의 기운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육체를 떠나는데 이때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으로 흩어진다. 이를 혼비백산이라 한다. 기독교의 소천도 하나님(天)의 부름을(召) 받아 간다고 본다. 영혼은 하나님께로 육신은 땅속에 묻히므로 옛한국의 죽음관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천에는 천, 혼, 신이 있고 땅에는 백귀신이 있어 이들이 분리되지 않고 뭉쳐 다니면 살(煞)이 씌었다 해서 풀어주는 일을 무(巫)가 굿판을 벌려 살풀이를 하였다. 그래서 무슨 일을 열중하였을 때 ‘혼신의 노력’ 또는 천지신명께 빌거나 의존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일이다. 4. 시대별 장례의식 고대는 순장(殉葬)을 하였다. 왕이 죽으면 살아있는 그의 아내, 신하, 종을 산채로 함께 묻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의 유래도 순장에서 왔다. 천장(독수리 밥), 초장(전라도, 경상도), 매장(봉분), 화장, 수목장, 산골장, 조장 5. 각 종교별 죽음관 가) 유교 : 유교는 음양오행으로 천지만물을 해석하였다. 그래서 기(氣)의 집합이 생(生)이고, 기(氣)의 흩어짐이 멸(滅) 즉 죽음으로 보았기 때문 취즉생 산즉멸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을 슬퍼하면서 혼을 따라 지붕에라도 올라가 혼을 불러들이려고 하였다. 그것이 초혼(招魂)의 절규다. ‘돌아가셨다.’도 자연의 모태로 혼백이 회귀하려는 본능이다. 그러나 흩어진 혼과 백은 다시 하나로 모아지지 않기에 내세를 믿지 않는다. 나) 도교 :도교 역시 내세보다 현세중심이다. 죽기가 싫어서 장생불사, 신선, 선인(仙人)이 되어 선계(仙界)에서 미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다) 불교 : 불교는 현세에서 선업(善業)을 쌓아 영겁과 찰나를 오고가는 윤회를 거듭 반복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추구한다. 라) 기독교 : 기독교는 한마디로 영혼불멸이다. 그리고 영생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하늘나라에 올라가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고 믿는다. 6. 죽음에 대한 재정의 - 너는 흙(먼지)에서 나서 흙(먼지)으로 돌아가거라.(창세기 3.19) - 죽음은 우주질서 중의 한토막이다. 사람들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몽테뉴 수상록) - 열심히 일한 날은 잠이 잘 찾아오고, 열심히 일한 일생에는 조용한 죽음이 찾아온다. (다빈치) - 죽음은 인간 육체에 가장 큰 최후의 변화이다. 어린이의 이빨, 머리카락, 손톱, 발톱이 빠졌다가 다시 태어나오고 어른이 되면 백발이 모두 빠져버린 후 대머리가 되는 것에 대해서 겁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최후의 변화인 죽음에 대해서 겁낼 필요가 없지 않는가(톨스토이) -기독교는 죽음을 실제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사후의 생활을 약속함으로써 불행한 개인을 위로해 주려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단순히 죽음을 부정하므로 써 생의 근원적인 일면을 부정하고 있다.(E. 프롬, 자유로부터 도피) 7. 결 론 죽음을 미리 배워야 삶이 보인다. 그런데도 죽어보지 않고 죽음에 대해서 왜 알려고 하느냐고 야단들이다. 무섭기만 하고, 피하고 싶지만 한 죽음에 대해서 점점 관심이고 조되고 있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천문학을 하는 사람이 별에 갔다 온 사람일까? 축산학을 하는 사람이 소가 되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죽음이란 삶의 종점이므로 좀 더 의미 있고, 알차게 살기 위한 궁극적 회의요, 물음이요, 자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웰빙=웰다잉 등식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죽살이 문화에 젖어왔다. 좋아죽겠다 에서부터 바빠서 주겠다까지. 졸려죽겠다 에서부터 시계가 멈춤이 아니라 죽었다 까지 유기물, 무기물을 가리지 않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한이 많아서인지 죽음을 덮고, 입고, 깔고. 온몸에 두르고, 감고, 일하며 ,노래하며, 울며 살다시피 하였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삶은 더 충실할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우리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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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박사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자주 오십시요.. 정산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