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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5:22-33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좋으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율법 곧 말씀 또한 좋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는 이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 밖에서 스스로 살아가려 하다가 40년 광야생활 중 모두 메말라 죽었습니다. 이에 출애굽 2세대는 의무감과 두려움 속에 기계적이고도 맹목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이 지우신 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는지 본래의 취지와 정신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이에 위기의식을 느꼈고,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출애굽 2세대를 향해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재강론하며 하나님과 그분이 주신 율법에 대한 출애굽 2세대의 생각을 영점조정 하려 했습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과 그분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바르게 상기시켜서 그들이 기쁨과 누림 속에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이 기록된 신명기 5장 속 오늘 본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22-27절)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중재자로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22-27절 부분, 이 요구를 수용하시는 하나님을 그린 28-31절 부분, 이에 대한 결어인 32-33절 부분입니다.
앞선 21절까지 십계명을 재강론한 모세는 22절부터 이어지는 본문에서 십계명이 주어질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22절은 십계명에 대해 4가지를 말한다고 송병현 교수는 말합니다. 십계명의 기원과 특징, 적용대상과 권위입니다. 첫째로, 기원입니다. ‘여호와께서 … 이르신 후에’라는 표현은 십계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특징입니다. ‘불, 구름, 흑암’이라는 하나님 현현에 대한 세 가지 가시적 표현은 십계명이 하나님의 영광과 성품을 반영한 기준임을 보여줍니다. 셋째로, 적용대상입니다. ‘총회에 이르신 후에’라는 표현은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예외없이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권위입니다.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은 앞서 주신 십계명은 덧붙일 내용 없이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를 지님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십계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을 반영했으며,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를 지니는 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 회중 전체에게 주셨지만 온 회중은 하나님의 거룩하고도 의로운 임재 앞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앞서 언급됐던 불과 흑암은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흑암은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하나님의 신비를 나타냅니다. 강렬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 수령과 장로들이 모세에게 나아왔습니다. 수령은 열두 지파마다 한 명씩 선출했던 대표였고, 장로는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어 백성들의 신뢰를 받았던 유력 인사들이었습니다. 즉 수령과 장로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집단이었습니다.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수령과 장로들은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언약 백성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관계를 맺은 하나님은 ‘영광과 위엄’을 그들에게 나타내셨는데 영광과 위엄은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철저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음에도 죽지 않고 생존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25-26)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은 모세의 생존을 보고 그를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자신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자신들을 ‘육신을 가진 자’라고 표현하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육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사르’는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는 문맥에서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그에 반해 그들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이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을 대하지 않도록 모세에게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주시도록 요구했습니다.
(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그들은 구체적으로 모세에게 중재자 역할을 요청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듣고 그 명령을 자신들에게 전달해주면 기꺼이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자신이 중재 사역을 하게 된 데에는 백성들의 요청과 합의가 먼저 있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주는대로 지키겠다고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출애굽 2세대에게 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사항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28-31절)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하나님은 ‘그 말이 다 옳도다’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중재 사역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에 하나님께 권위를 둔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적 기원을 강조했습니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29절 앞부분은 기원문입니다. 이를 살려서 의역하면, “오, 이와 같은 그들의 마음이 그 모든 날 동안에 그들에게 있다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여 중보자를 구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는 열매로 맺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복 주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그 복이란 하나님의 명령 곧 율법을 지키는 삶 자체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명령은 우리에게 선하기에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은 아름답게 가꾸어져 갑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러한 복을 이 땅에서만 얻고 누리도록 국한하지 않으시고, 영원히 베푸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큰 스케일로 품으며 사랑하십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본심을 출애굽 2세대에게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즐거이 따라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30-31)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에게 각각 다른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요구했던 대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자리에서 제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자기 곁에 서 있게 하셨습니다. ‘서 있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모드’는 ‘머무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권하는 표현입니다. 영원히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바르게 알았던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렸습니다. 물론 이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곁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 법도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을 행하는 중재자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자리는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는 땅 곧 가나안이었습니다. 아직 광야에 머물고 있었기에 가나안은 미정복 땅이었습니다. 즉, 우상숭배로 만연한 세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듣고 배운 말씀을 행할 자리는 모든 정복이 끝난 천국이 아닙니다. 정복 전쟁이 한참 펼쳐지고 있는 세상 한복판입니다. 그 중 우리에게 기업으로 맡겨주신 지금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자리입니다.
과거 십계명을 받던 상황을 회상하던 모세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말을 맺었습니다.
맺음말(32-33절)
(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모세는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출애굽 2세대가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라며 관용구를 사용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좌 또는 우로 향해있는 세상의 길로 가는 행위로 삶의 방향을 돌이키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권면은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을 떠나려는 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33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모든 도’라고 표현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사람이 길을 걷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이를 통해 말씀 실천이 추상적 앎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신명기는 하나님과 그분으로부터 나온 율법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아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제한하고 속박하기 위해 율법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시려, 즉 하나님의 형상답게, 하나님의 백성 및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옭아매는 구속의 사슬이 아니라 우리를 어그러진 죄의 늪으로부터 건져내는 사랑의 밧줄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5절도 율법을 가리켜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지킬수록 매이는 것이 아니라 지킬수록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갓 성인이 되어 아직 운전을 배우지 못한 자녀가 자동차 운전을 하고 싶다고 부모에게 요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부모가 자동차만 사주고 자유롭게 다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자녀가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혹은 운전연수교사를 붙여서라도 자동차 조작법부터 교통법규 및 운전 연수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자녀가 스스로 운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주는 것입니다. 그때 자녀는 진정 원하던 대로 자유롭게 전국을 다닐 수 있습니다. 율법은 마치 운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가이드와 같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율법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율법을 주셨지 결코 율법을 위해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 순서를 뒤바꾼다면 율법주의이고,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좋은 열매 맺는 복 있는 삶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을 온전히 이룬 삶은 생각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삶을 실제로 살고 누린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삶 가운데 십계명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절정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구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참포도나무가 되어주셔서 메마른 우리를 접붙여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흘려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성부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자 예수님과 함께 순종합니다. 로마서 8장 4절입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이미 거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룹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십계명을 온전히 이룬 복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대림절 속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십계명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을 사랑하지 못했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여 값없이 성령과 성자를 보내주시고, 성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원히 복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참포도나무로 오신 예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며, 십계명을 온전히 이룬 아름다운 나무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나를 구주가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3. 하나님께서 오늘 내 삶에 맺기 원하시는 행함의 열매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4. 내가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