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백주간과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님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욥기 1.21)
2020년 8월 5일 저녁 장익 십가가의 요한 주교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깊은 곳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이별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칼날에 베이는 듯 아픈 통증으로 다가왔다. 무릇 모든 사람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립고 아쉬운 감상 대신 감사의 기억과 기념으로 성서백주간과 주교님과의 인연을 담는다.
성서백주간과의 인연으로 주교님을 뵈 온 것은, 1997년 노틀담 수녀회에서 실시한 ‘성서백주간 연수’ 때였다. 그러나 연수 도중 1남 4녀 맨 위에 있는 나의 오빠가 마흔아홉 젊은 날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급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는 변고가 있었다. 그 바람에 성서백주간과 인연은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귀하고 중요한 것과 늦게야 인연을 갖는 조금은 불우한 운명의 소유자인 것 같다. (장익 주교님은 성서백주간이라는 "Brend" 만 듣고도 한달음에 일본으로 달려가 통째 수입해 오시는 혜안과 역량을 지니셨다는데...) 광주 교구에서 평생교육원 소임(2005년)을 하는 중에 성서통독 피정을 하였다. 구약과 신약을 짧은 시일 내에 완전 통독하는 피정 프로그램이었다. 이것은 나의 신앙과 수도 여정에 코페르니쿠스 같은 변화를 주었다. 이 피정 효과는 혼자서도 계속해서 꼼꼼히 성경말씀을 성독聖獨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성경과 말씀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10년 성서백주간 소임을 받았다. 늦게 만난 이 은혜로운 말씀의 강에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영했다. 그리고 성서백주간식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정착시켜 보급해 주신 주교님께 문득문득 자주자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백주간 봉사자가 내게 불평을 토로했다. “성서백주간은 세 가지가 꽝이에요. ”예산 꽝” “기획 꽝” “교육프로그램 꽝”이예요” 그분에게 꽝이란 질적 양적 빈약貧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얼핏 죄다 맞는 말 이라고 여겨져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어느 특별한 날 작정하고 사무실과 컴퓨터 안에 있는 성서백주간 자료들을 총정리하였다. 하다 보니...양적量的으로 뭐 그다지 자료라고도 할 수 없는 몇 가지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성서백주간을 처음 만드신 도르즈 신부님의 낱 장 자료를 책으로 만드신 도움책 4권 1세트, 참가록(출석카드), 도장, 로고, 성서백주간 서체, 백주간과 한국에서의 활동사항 소개 책 1권, 그리고 봉사자 교육 자료인 A4자료 몇몇 페지...... 그게 전부였다. ‘이미 도입 10주년 기념 행사도 치렀건만...왜 이렇게 꽝이지?’ 순간 번쩍하는 통찰...장익 주교님과 성서백주간은 원조 도르즈 신부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내용과 방법을 원래대로 보존, 계승, 운영하고 있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중 있는 자리에 앉으면, 내 입맛대로 자르고 고쳐서 내 것처럼 만들고 싶은 전시행적적 유혹에 빠지는데, 주교님과 성서백주간은 단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계셨다. 큰 감동과 존경심이 하나 가득 밀려왔다. 나 자신도 성서 백주간을 직접 해보니 고치고 바꾸면 안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르즈 신부님이 정말 잘 만들어 놓으신 완전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가벼운 마음으로 자꾸 손을 대고 뜯어 고칠수록, 본인은 물론 대상자들에게 은혜와 유익은 커녕 손해와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교님은 이를 깊이 통찰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아~....나는 이 사실을 감지하면서 도르즈 신부님과 장익 주교님의 말씀이신 하느님 앞에 한없는 겸손과, 하느님 백성의 더 큰 유익을 최우선 배려하는 그 혜안과 역량에 격하게 감전되었다.
장익 십자가 요한 주교님은 여든여덟 해를 대한민국 국민과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오셨다. 사제로서 그 분 한평생은 다양하고 훌륭한 이력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성서백주간에 대한 것은 대부분 빠져 있다. 아마도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나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에 교회 역사에 성경이, 말씀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으뜸이라고 여기는데 많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러니 부족한 이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기록할 일이다. 나는 장익 주교님께서 하신 일들 중, 성서백주간을 도입 정착시키고 성장 발전시켜온 역사가, 한국교회의 현대사에 큰 발자취로, 어제와 오늘은 물론이고 어느 내일에 사람들에게 더욱 더 빛나게 기억되고 선용되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너무 훌륭하고 너무 완벽하고 그래서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님!
이제 당신의 하느님과 기쁜 해후의 시간 향유하시고,
당신의 사랑하셨던 한국 교회와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십시오!
2020년 8월 6일.
당신의 작은 몸을 하느님이 마련하신 땅에 누우시는 시각에, 에스텔 수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