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외출
어제 교회 상록수학교에서 가을 야유회를 갔습니다.
해마다 가는 연중행사입니다.
나는 5년 만에 참석하여 모처럼 서울을 떠나보았습니다.
2015년, 남편이 병으로 눕게 되자 나의 생활 반경은
집 근처인 신사역, 논현역, 학동역 근방이 전부였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와서 머무는 3시간 동안만 외출이 가능했으니까요.
시외버스는 고사하고 시내버스도 타보지 않았습니다.
노환의 남편이 점차 건강을 찾으면서 일상을 회복해 갔지만
내가 그 옆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조금씩 나아졌다고는 하나
5년 동안 스스로의 생활을 못하고 내가 늘 돌봤기 때문에 친절한 아내(?)의
과잉보호로 "홀로 지내는 법"을 잊어버렸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조금씩 "보호자 없는 생활"을 시도해 보곤 했습니다.
만일에 나에게 문제가 생기는 날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린아이 엄마 젖떼기 하듯 아내로부터의 離乳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행여 넘어져 골절이라도 될까봐, 노상 불안해서 곁에 있게 됩니다.
자연히 대부분 집에 머물며 두 노인네가 오손도손이 아니라 우순두순 살아갑니다.
내가 제법 괜찮은 아내인 것 같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혼생활이 58년이 되어갑니다.
둘 다 건강했던 53년간에 나는 참 못된 아내였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은 아내였으니까요.
성실한 주부였을 뿐, 남편으로 인해 행복하지도,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은
오만, 교만, 이기로 가득한 아내였으니까요.
그러다가 남편에게 우환이 닥치자 나는 비로소 나의 "본질"을 보게 된 것이지요.
늘 들어왔던, 그래서 타성이 되어버린, “원죄” “대속의 은혜” “죄 사함”이
우박 떨어지듯 머리와 심장을 강타한 것입니다.
뇌신경의 고장으로 심신이 망가진, 남편 앞에서
나는 두려움이나 절망보다 "감사"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것은 “은혜” 였습니다.
그리고 못된 아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허락된 감사였습니다.
대형병원, 요양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5개월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는 일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 이것이 기적이었습니다.
남편의 病苦를 통해 나는 정말로 행복한 아내가 되었고,
비록 병든 몸이지만 늙은 남편은 "지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우리부부는 늙고 병들고 가난해 지면서, 젊고 건강하고 부유했던 시절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산에 있는 "피나콜랜드"는 외도를 이룩한 분의 따님이 조성한 아름다운 동산입니다.
아이들이 뒹굴고 놀기에 좋아서인지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엘에이 갈비로 맛있는 점심도 먹었고, 커피에 아이스크림. 간식, 팥떡.
세심하게 준비하신 목사님, 부장님, 그리고 스텝분들, 감사합니다.
더 먼저 하나님과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의상 컨셉은 "가을 여인".
5년만의 나들이기에 야유회지만 멋을 부려보았습니다.
사진 속의 내가 행복한 소녀처럼 웃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남편이 지금 웃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