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1-26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자신의 태어난 일에 대한 탄식(11-12절)
욥기 3장 1절에서 10절은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탄식하였습니다. 이어서 11절부터는 자신이 태어날 때의 상황을 “어찌하여” 라는 말을 반복하며 탄식합니다. “어찌하여” 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의 사용을 보면 ‘그 일이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에 대한 의혹과 당혹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11-12)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은 11절과 12절을 통해 태아, 출산, 출생이라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자신이 어떤 시점에서든지 죽었으면 좋았을 것 이라고 탄식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는 모습도 욥에게 있어서는 없었어야 했음을 한탄합니다. 이러한 욥의 한탄의 내용은 과거 자신이 태어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욥이 쳐한 고통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욥은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동경하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욥이 동경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13-19절)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라는 표현은 욥이 탄식했던 11절과 12절의 내용들이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자신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또는 출산 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을, 태어날 때 산파가 받아주지 않았거나, 태어났더라도 젖을 빨지 않아 죽었다는 것을 가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욥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지금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평안히 쉬고 있을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욥이 당시 고통으로 인해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이 평안한 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4-16)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욥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는 임금들과 모사들 그리고 고관들이랑 함께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임금은 국가에서 최고의 통치자를 이야기하며, 모사는 지략이 뛰어난 왕의 상담자 또는 조언자를 이야기합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 왕과 아히도벨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관은 신분이 높고 가문이 좋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임금과 모사, 고관은 세상에서 힘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세상의 임금들과 모사들을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폐허라고 번역된 히브리단어 호르바는 에스겔과 말라기에서 폐허에서 도시를 건설하다 재건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미 무너진 성읍을 다시 재건하거나, 폐허된 땅에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폐허에서 도시를 건설한 임금들과 모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임금과 모사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건물들이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지금은 폐허가 된 성읍이지만 한때 그 성읍을 세우던 세상의 왕들과 라고 번역을 하였고, NIV 성경은 자신을 위해 거처를 세운 자들이 이제 폐허에 누워 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떠한 해석을 따르던 욥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세상 가운데 아무리 권력이 있고, 많은 업적을 남기고, 많은 재물을 가졌던 자들도 죽음 앞에서 덧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욥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더 이상의 삶의 소망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죽음 이후의 삶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욥은 죽음 이후의 세상이 이 땅의 세상과 다른 평화로운 세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7-19)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은 악한 자와 피곤한 자, 갇힌 자와 감독자, 작은 자와 큰 자, 종과 상전이라는 서로 대조되는 분류를 통해 이 땅의 세상과는 다르게 죽음 이후의 세상은 평안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악한 자의 소요가 그치지 않으며, 피곤한 자들에게는 안식이 없이 살아갑니다, 갇힌 자는 감독자의 호통 소리에 평안을 빼앗기며, 작은 자는 큰 자에게 시달리고 종은 상전에게 매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욥이 생각하는 죽음 이후의 세상은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피곤한 자가 쉼을 얻습니다. 갇힌 자가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또한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으며, 종이 주인에게 자유를 얻는 세상입니다.
욥이 말하고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모습에 있어 진위 여부를 떠나 욥은 현재 자신의 삶이 너무나 힘겨워 죽음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욥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20절부터는 욥이 쳐한 고통스러운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연장되는 것에 있어 욥의 탄식이 나옵니다.
(20-22)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욥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주셨다’ 라는 표현을 통해 욥기 1장 21절에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라고 고백한 것처럼 빛과 생명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 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차라리 빛을 주시지 않고, 생명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겪지 않았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아닌 빛과 생명을 주셨는지 탄식합니다. 욥은 지금의 고통으로 인해 얼마나 죽음을 갈구하고 있는지 욥은 땅을 파고 숨겨진 보배를 찾는 듯 죽음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다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 할 자신의 쳐지를 하소연 합니다.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사탄은 욥기 1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욥과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두르시고 있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23절에서는 욥이 하나님이 울타리에 둘려 싸여 고통 가운데서도 죽을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울타리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고통스러운 욥은 자신을 보호하는 그 울타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자신을 둘러 싸여져 있어 원망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임한 고난으로 인해 죽음을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간절함보다 더 큰 간절함으로 욥이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욥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소망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욥을 다시 회복시키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욥의 탄식은 현재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이야기하며 마무리가 됩니다.
(24-26)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현재 욥은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오며,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내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처럼 격렬하다고 탄식합니다. 또한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과 무서워하는 것이 자신에게 임한 결과를 26절을 통해 한 줄로 정리 합니다. 26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3:26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온다!
욥은 자신이 처한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있어 평화와 안정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마저 사라져 두려움을 가득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다보면 고난으로 인해 욥이 느끼는 것처럼 평화와 안정이 없고, 안식마저 사라져 두려움이 가득한 시간을 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때 한 사람이 떠오르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욥과 우리가 경험한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 가운데서 억울하고 부조리한 고난을 통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으며, 안식도 없고 비참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와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서 9절에 증거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친히 고난을 앞서 겪으시고 온전케 되셔서 인간의 질고를 아는 구원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모르지 않으시고, 외면하지도 않으시며, 알고 계심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께 창문을 나아가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허락하십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부모의 사랑, 친구의 사랑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금은보화가 아닌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이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 가운데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올 때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며,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현재 나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고통을 하나님 앞에 진솔한 마음으로 고백해 봅시다.
2. 고난을 당할 때 나는 그 이유와 해결방법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3. 나의 삶 가운데 내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이 임했던 적이 있었는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었는지 묵상해봅시다.
4. 오늘 하루 나의 삶 가운데 고난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 고난을 잘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정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