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산 아래에서
본문 ; 막 9:14-29 (신 68)
(마17:14-21, 눅 9:37-43 상)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건망증이 심한 집사님이 있었답니다.
-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데 리더에게
갈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왜 올 수 없냐고 물어보니까
갑자기 큰아버지 회갑 잔치에서
회갑잔치란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머리에 육순(60세)이란
말이 생각나 “큰 아버지 육갑잔치간다”고
했답니다.
- 회갑잔치에 참여했는데
조카가 특별 서비스를 한다고 와서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겠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설레임"을 먹고 싶었는데
설레임이 생각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망설임 갔다 달라”고 했답니다.
- 집에 와서 은행 통장 재발행하러 갔는데
은행원 앞에서 갑자기 “재발행”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이것 재개발하러 왔습니다” 했더니
은행원이 한 참 웃더랍니다.
- 옆에 임산부가 있어서
"산달이 언제예요" 물어 보고 싶은데
그 말이 생각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만기일이 언제예요”라고 물어보자
임산부가 노려보더랍니다.
저도 자주 아이들의 이름을
바꾸어 부를 때가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며 살아갑니다.
말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내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 몸이지만 내 속에 있는
장기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발이지만 내 발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지만
내 마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건강과 자식 문제는
더욱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에 자식 문제로
자신의 능력의 한계 앞에 몸부림치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아들이 간질병에 걸린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나왔습니다.
아들의 질병은, 겉 모습은 간질병이지만,
간질병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간질병은 뇌 속에 비정상적인
조직이나 뇌 기능의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병인데,...
그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간질병은
난치병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간질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귀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인격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귀신이 마음대로 그를 움직이면서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불에도
넘어지게 하고 물에도 넘어지게 하여,....
목숨을 잃을 뻔한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귀신은 아들을 아예
말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온갖 장애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아버지는 아이를 고치지 위해
재산은 허비했을 것이고,
그 가정은 웃을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온 식구가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 아버지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라는 분과 제자들이 모든 병과
귀신들린 것을 능히 고친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제자들의 실패>....
예수님의 일행의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예수님은 제자 3명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오르셨고
나머지 제자 9명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자들도 자신만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귀신을
내어좇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6:7-13 읽어라
7절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절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절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절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절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절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아마도 제자들은 자신만만하게
귀신을 내어좇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귀신아 물러가라” 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액센트를 주어서
“예쓔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면서
안간힘을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자들은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 때와 지금이 다른 것입니까?
그 때는 주님에게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들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좇아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하면서 제자들이
그만 교만해졌습니다.
주님 못지않게 자신들도 귀신을
내어좇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자신 능력으로
하려한 것입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론하는 제자들> ....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
14절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본래 변론은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때 생깁니다.
그 변론(논쟁)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제자들끼리는 ‘전에는 되었는데
지금은 왜 안되냐’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들을 엿보고 있던 서기관들과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은 고치는 데
왜 너희들은 고치지 못하느냐?”고
따졌을 것입니다.
‘혹시 너희 선생도 가짜가 아니냐’며
몰아붙였겠지요.
마침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그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16절)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자초지정을 이야기합니다.
17-18절 읽어라
17절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절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제자들에
대해서 고자질합니다.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심각한 질책을 하십니다.
19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결론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했다는 증거입니다.
제자들의 영적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에 있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성도님들은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떤 것으로 칭찬을 받으시고 싶습니까?....
물질으로는 예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없습니다.
지혜만으로도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는 주님을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성도님들에게
바로 이 믿음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그 아이를 자기 앞으로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발광을 합니다.
귀신이 두려워 더 크게 역사는 것입니다.
20절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더욱 간절히 예수님께 구합니다.
22절 b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버지의 회의적인 믿음을 경책하십니다.
반신반의의 믿음을 책망하십니다.
아이의 치유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도
그들 마음 속에 내제 되어 있는
이런 불신앙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힘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24)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혜가 없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을 확인한 예수님께
귀신을 꾸짖어 명하셨습니다.
25-27절 읽어라
25절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절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절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그러자 귀신이 경련을 일으키며 떠나가고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잠잠하여 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 아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완전히 고침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그 일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28절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절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도가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사는 지름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병든 아이를
고치신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기도가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더 이상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더 이상 지식이나
돈,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리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능력은 사실 기도에서
나왔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기도행전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회의보다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교회는 기도보다
회의를 더 많이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펄전은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항상 교회 본당이 아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 아래층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제 목회의 비밀은
여기 기도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 교회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스펄전의 탁월한 설교 때문이 아니라 ....
기도하는 그 성도들을 통해서 그 교회가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혁시키는
초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루를 시작할 때 ....
“아침에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나를 이긴다”고 하면서....
기도 생활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바쁠 때일수록 더 많이 기도한다.
그것은 바쁠수록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쁠수록, 피곤할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도님들에게 믿음이 충만하고,...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성도님들 자신의 모든 문제들이
풀려지기를 원하십니까? .....
성도님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 하는 사람들이......
성도님들을 보고서 주님께로 와서
그것들을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
그렇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씀>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한 남자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여,
실패하고 비난받고 책망 받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제자들의 무능함,
이런 모습을 보시고 한편으로는
진노하시면서 가슴 아파하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
범사에 믿음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아이의 아버지처럼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는 믿음을 낳고 믿음은 역사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의 역사가 나와 교회를 통하여
일어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충만하고....,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되시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