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회식보다 잠을 달라”… 땀과 열정의 25시 |
고객 사로잡는 혁신 제품 개발 피나는 노력 … 숱한 시행착오 딛고 ‘디지털 유토피아’ 선도 |
외국 언론은 삼성전자가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를 따돌리고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 세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삼성전자의 신제품 개발 과정은 외국 언론뿐 아니라 경쟁사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전자 임직원의 땀과 열정이 묻어난 신제품 개발 과정을 소개한다.
● 세계 최초 개발 4쿨링 콰트로 냉장고
“부장님, 회식도 좋지만 그냥 집에 가서 잠 좀 자게 해줄 수 없습니까?”
지난해 초 삼성전자 시스템가전사업부 냉기개발팀 이병무 수석은 팀원들에게 “오랜만에 회식이나 하자”고 제안했다가 오히려 이런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4도어 냉장고 ‘지펠 콰트로’ 개발에 지친 팀원들이 “회식보다는 잠을 달라”며 애교 섞인 항명을 한 것. 순간 이 수석의 뇌리에 그동안의 강행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개발팀원들은 2004년 4월 4도어 냉장고 개발에 착수한 이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명절 때도 장남이 아닌 엔지니어들은 귀향을 포기해야 했고, 심지어 진급 시 반드시 받아야 하는 회사 내부 교육도 빠져야 했다. 젊은 엔지니어들은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 애인과 헤어졌으니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병무 수석은 “소비자의 편의에 따라 4개의 저장공간을 냉동과 냉장용으로 자유롭게 변환할 수 있는 ‘지펠 콰트로’ 개발 과정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4도어 냉장고여서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개발팀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당연히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그럴수록 개발팀원들은 밤잠을 포기해야 했다.
4개의 냉장·냉동공간에 대한 성능 실험만 해도 그렇다. 여름철에 냉장고 문을 자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에도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에 대한 신뢰성 실험을 위해 연구원이 직접 수일간 4개의 문을 7분마다 한 번씩 개폐하는 지루하고도 단순한 반복실험을 해야 했다.
4개의 저장공간 가운데 2개를 서랍식 저장고로 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부들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저장고를 여닫을 수 있도록 레일을 이용했는데 레일에 남아 있는 물기가 냉동 시 서리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 저장고는 잘 열리지 않았고 한동안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팬을 돌려 레일에 남아 있는 물기를 증발시키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충격에도 이상이 없는지 검증하는 실험도 만만치 않았다. 이 실험은 냉장고를 영하 30도에서 얼려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아야 통과된다. 이병무 수석은 “이런 신뢰성 실험이 큰 항목만 해도 80여 가지나 되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회식보다 잠을 달라”… 땀과 열정의 25시 |
고객 사로잡는 혁신 제품 개발 피나는 노력 … 숱한 시행착오 딛고 ‘디지털 유토피아’ 선도 |
‘지펠 콰트로’는 지난해 11월 미국 시장에서 출시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저장공간마다 각각의 냉각기를 배치, 냄새 섞임을 방지하고 냉각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아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가전전시회 CES2006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삼성전자 생활가전 제품으로는 첫 수상이었다.
삼성은 특히 ‘지펠 콰트로’에 삼성의 독자기술인 독립냉각방식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켜 4개의 냉각기를 적용, 냉장실내 습도를 72% 수준으로 개선했다는 점을 크게 내세우고 있다. 냉장실내 습도는 식품의 신선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 양문형 냉장고의 냉장실내 습도는 17% 안팎이다.
‘지펠 콰트로’는 2007년 전 세계 양문형 냉장고 시장 1위 달성을 목표로 개발된 삼성의 야심작. 2007년은 삼성전자가 양문형 냉장고 사업을 시작한 지 꼭 10년째가 되는 해다. 삼성은 미국 시장에서 ‘지펠 콰트로’ 가격을 2999달러로 책정했음에도 시장의 반응이 좋아 고무돼 있는 모습이다. 일반 양문형 냉장고는 1800달러 수준이다.
‘지펠 콰트로’ 개발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도어 냉장고가 나온 것을 본 이병무 수석은 ‘다음에는 어떤 혁신 제품을 내놓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무렵 미국 법인의 상품 기획 담당자가 4도어 냉장고 개발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국내 판매법인에서도 비슷한 요청이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2004년 4월 4도어 냉장고 개발 목표가 정해졌고, 1년 6개월여 만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 ‘TV는 가구다’, ‘보르도’ LCD TV
지난해 7월 초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한 건물에 캐주얼 차림의 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왼쪽 귀에 귀고리를 한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신세대 직원도 끼여 있었다. 반면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전형적인 삼성맨 스타일의 과장급 직원도 있었다. 한 방에 모인 이들 태스크포스팀에 주어진 과제는 ‘다음해 봄 시장에 내놓을 신제품 TV를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난상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소비자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삼성전자 매장을 직접 찾아가 소비자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자는 데 합의가 이뤄진 것. 아울러 상품기획 부서만 참여했던 소비자 조사에 처음으로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 신제품 개발에 관련된 모든 부서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이들의 결론은 단순했다. 과거처럼 화질이나 기능으로 타 회사 제품과 차별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대신 집안 분위기에 맞는 고급가구라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하기로 했다. 태스크포스팀 관계자들은 마침 디자인 부서에서 제시한 와인잔을 형상화한 디자인 시안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이것이다’라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들의 작업은 TV의 개념을 ‘기능적 TV’에서 ‘감성적 TV’로 바꾸는 일대 모험이었다. 기술적으로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개발팀 내부에서는 논란이 거의 없었다. 김민석 대리는 “소비자 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TV를 가구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회식보다 잠을 달라”… 땀과 열정의 25시 |
고객 사로잡는 혁신 제품 개발 피나는 노력 … 숱한 시행착오 딛고 ‘디지털 유토피아’ 선도 |
디지털미디어 총괄 최지성 사장은 태스크포스팀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개발 컨셉트를 보고받고 “무조건 이 디자인대로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고객의 감성을 자극해 호평받고 있는 초슬림 LCD TV ‘보르도’ 시리즈다.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김현석 상무는 “TV도 100만 대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게 당초 목표였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200만 대 정도는 팔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흐뭇해했다.
태스크포스팀은 ‘보르도’ TV 개발 과정에서 수없는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지난해 9월 말 무렵, 당초 디자인 시안대로 시험제품을 제작해 최지성 사장에게 보고하자 최 사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당장 집어치우라”였다. 당시 32인치의 두께가 100mm였는데, 더 얇게 하라는 질책이었다. 결국 80mm의 초슬림으로 결정됐다. 좁은 공간에 모든 회로를 집어넣어야 하다 보니 회로팀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금형 기술도 문제였다. ‘보르도’ TV는 붉은 포도주가 담긴 와인잔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어서 금형 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또 제품의 앞면뿐 아니라 테두리와 후면까지 표면 전체를 광택처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협력업체 가운데 제일정공㈜ 등 3개 업체가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웰드리스(weldless) 스팀몰드 기술을 갖고 있어 큰 힘이 됐다.
웰드란 TV 외관에 나타나는 가는 실 모양의 접합선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를 감추기 위해 도장을 했다. 그러나 고온의 스팀을 이용해 사출을 하면 웰드가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표면 광택도 뛰어나 아크릴시트를 따로 붙일 필요가 없다. 김민석 대리는 “웰드리스 스팀몰드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곳은 일본이지만 이를 꽃피운 것은 삼성전자”라고 자랑했다.
‘보르도’ TV에 대한 성공을 확신한 것은 지난해 9월 미국과 프랑스에서 현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컨셉트 조사를 했을 때였다. 현지 소비자들이 모캅(디자인대로 만든 모형 TV)을 보고 상품 기획 당시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현석 상무는 “‘보르도’ TV는 외관에 의한 차별화뿐 아니라 삼성이 자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제품화했다는 점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 ‘제3의 물결’ 이끄는 UM PC
3월10일 독일 하노버 세빗(CeBIT) 컨퍼런스 룸. PC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전자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3사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개발한 새로운 플랫폼을 발표했다. 이 플랫폼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기존 PC 기능 및 인터넷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모바일 시대’의 선구자라는 게 3사의 설명이었다. ‘Ultra Mobile PC(UM PC)’ 센스Q1이 바로 그것이다.
센스Q1은 PC 업계에 불어닥친 ‘제3의 물결’이 될 것이라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세대는 IBM 컴팩으로 대표되는 8086/8088 PC였다. 2세대는 과감한 유통 혁명을 통해 새로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델 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센스Q1은 이들을 이은 ‘제3세대’로, 책상 위에선 인터넷 검색과 워드 작업, 지하철에선 동영상플레이어, 자동차 안에선 네비게이션으로 쓸 수 있는 다기능 휴대용 PC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회식보다 잠을 달라”… 땀과 열정의 25시 |
고객 사로잡는 혁신 제품 개발 피나는 노력 … 숱한 시행착오 딛고 ‘디지털 유토피아’ 선도 |
센스Q1 개발은 2004년 말에 시작됐다. 삼성전자 컴퓨터시스템 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엄규호 상무는 “컴퓨터란 게 PC와 노트북으로 정해져 있는데, 당시 3사 모두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이 힘들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이를 위해 우선 고객의 욕구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세계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이동하면서도 e메일을 체크하거나 웹 서핑을 할 수 있기를 가장 많이 원했고, 그 다음으로 원한 것은 엔터테인먼트 등 부가 기능이었다. 3사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의 이런 욕구를 하드웨어로 구현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핸드백에 들어가는 노트북’을 개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
가장 큰 문제는 화면 크기를 얼마로 하느냐였다.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일반 PC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려면 7인치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7인치의 화면은 2002년에 출시된 넥시오(nexio)의 단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넥시오는 출시 이후 국내에서 3만 대 정도 팔리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했지만, ‘대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휴대성 측면에서는 유용했지만 화면 크기가 5인치에 불과해 윈도 구현이 안 돼 컴퓨팅 기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 e메일의 경우도 첨부 파일을 읽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화면 크기가 정해지면서 삼성전자와 인텔, MS 등 3사는 서로 역할을 분담해 개발에 들어갔다. 우선 MS는 12인치 이상의 화면에 맞춰져 있는 윈도 해상도를 7인치 화면에 맞추기로 했다. 인텔에 맡겨진 임무는 스케일을 자동적으로 조정해주는 ‘오토 스케일링’ 기능과 저전력·저소모 CPU 개발이었다. 삼성전자는 두 회사의 성과를 통합해 상품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막상 제품화 과정에 들어가니 3사의 역할 분담이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많았다. 에러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소프트웨어 쪽인지 아니면 하드웨어 쪽인지를 밝혀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겨우 소프트웨어 쪽 문제라는 것을 밝혀내도 삼성 직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인텔의 인도 연구소나 MS의 미국 시애틀 연구소를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특히 오토 스케일링 기능 개발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는데 개발 도중 인텔의 조직 개편으로 일부 개발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삼성 개발 인력을 인도에 직접 파견해 함께 개발에 나서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5월 초 출시 이후 다행히 시장의 반응이 뜨거워 개발팀 관계자들은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규호 상무는 “일부에서 센스Q1에 대해 ‘입력장치가 불편하다’ ‘배터리 수명이 짧다’ 등의 지적이 있어 다음에는 더 얇고 더 가벼운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회식보다 잠을 달라”… 땀과 열정의 25시 |
고객 사로잡는 혁신 제품 개발 피나는 노력 … 숱한 시행착오 딛고 ‘디지털 유토피아’ 선도 |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협력업체 밀고 끌며 ‘윈-윈 경영’ |
기술과 자금 지원 파트너십 구축 … “부품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 상생이 확실한 투자 |
2004년 초 대구 달서구 대천동 성서4차지방산업단지 내 쉘라인㈜은 삼성전자에 플라스틱 힌지 개발을 제안했다. 슬림형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힌지를 개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힌지에는 금속 재질이 쓰여야 한다는 게 상식이었는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 플라스틱 힌지 개발에 나선다고 했기 때문이다.
힌지란 슬라이드형 휴대전화의 폴더를 살짝 밀었을 때 반자동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도록 하는 스프링장치.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위아래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내구성과 강도 측면에서 금속 재질 사용이 당연시됐던 것. 그러나 쉘라인 측의 끈질긴 설득에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두 손을 들었다.
삼성전자의 핵심기술 지원 등에 힘입어 지난해 1월 쉘라인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힌지 개발에 성공했다. 플라스틱 엔지니어링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당시 두께는 2.5mm였으나, 1.8mm를 거쳐 지난해 말엔 1.6mm에 불과한 슬림 플라스틱 힌지까지 내놓았다.
플라스틱 힌지 개발한 쉘라인
플라스틱 힌지 개발의 성공은 삼성전자와 쉘라인에 ‘윈-윈’ 결과를 가져왔다. 플라스틱 힌지는 금속형 힌지보다 가볍고 슬림화가 가능해 삼성전자는 이를 적용, 초슬림폰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또 삼성전자는 힌지 구매가가 낮아지면서 연간 540억원에 달하는 원가를 절감하게 됐다.
삼성전자도 쉘라인에 플라스틱 힌지 구매 확대로 화답했다. 이에 따라 쉘라인 매출액은 2003년 226억원에서 2004년 327억원, 2005년 563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쉘라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기술 개발 과정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데다 설비자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쉘라인의 슬림 플라스틱 힌지를 적용한 초슬림폰 40여 종을 개발하고 있다. 신제품이 본격 출시되면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경쟁력은 더욱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5월 초 출시된 ‘스킨폰’은 3주 만에 하루 실개통 수가 최고 3300대를 돌파하며 빅 히트를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쉘라인의 이런 ‘윈-윈’은 2003년 말 발표된 삼성의 ‘협력업체 상생경영 방안’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삼성은 350여 협력업체에 시설투자자금 875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하는 등 향후 5년간 모두 1조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사출, 프레스, 금형, 전기, 기구 등 집중 육성이 필요한 5개 업종으로 정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거듭하고 있지만 협력사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하면 ‘모래성’에 불과할 뿐이라는 삼성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2004년부터 체계적인 지원
삼성전자는 그룹의 발표가 있자 2004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전담 조직까지 만들었다. 경영지원총괄 구매전략팀 구매선진화그룹 김영도 부장은 “△부품 설비의 국산화 극대화 △차세대 기술 개발 및 육성 △공장 선진화 △협력사의 인재 육성 등의 추진 방향을 정하고 이를 위해 무이자 장기 자금 대여, 생산 노하우가 없는 곳엔 인력 지원, 인력 육성을 위한 교육 지원 등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협력업체 상생경영 방안’은 과거의 지원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삼성전자가 필요한 부분만 지원했고, 그나마도 외환위기 직후에는 삼성전자도 구조조정을 하느라 국부적 지원에 그쳤다. 하지만 2003년 이후엔 삼성전자 제품군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제품군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것.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협력업체 밀고 끌며 ‘윈-윈 경영’ |
기술과 자금 지원 파트너십 구축 … “부품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 상생이 확실한 투자 |
삼성의 상생경영 방안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외환위기 이후 경영혁신을 통해 한 해 수조원대의 순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삼성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도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자체 경쟁력이 약해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키워줄 수 없었고, 이는 다시 삼성전자 경쟁력을 좀먹는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뒤늦게 깨닫고 ‘선순환’ 구조로 바꾼 것이 상생경영 방안인 셈.
삼성전자의 이런 방침은 협력업체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처음엔 ‘생색내기용 아니냐’ ‘처음에만 요란하지 언제까지 가겠어’ 등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삼성전자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의 지원이 큰 힘이 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협력업체에 돈을 펑펑 쏟아붓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지성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협력업체 가운데 사장이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업체는 적극 지원해주지만, 삼성 직원들을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자거나 골프를 치자고 하는 업체는 절대 육성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경기 안양시 제일정공은 최지성 사장의 분류법에 따르면 적극 지원 대상. 제일정공과 함께 웰드리스 스팀몰드 기술을 개발했던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영상디스플레사업부 이상운 수석에 따르면 “김 사장을 비롯한 제일정공 임원들이 가장 늦게 퇴근할 정도로 항상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수석은 이어 “지난 20여 년간 삼성에 납품해 번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하다가 그 사업이 부실에 빠지면서 도산한 협력업체를 많이 지켜봐 왔는데, 제일정공은 한눈팔지 않고 금형기술 개발에만 올인한 업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일정공 ‘보르드 TV’ 개발 일등공신
제일정공은 1959년 국내 두 번째 금형공장으로 설립된, 국내 금형산업의 산증인이다. 삼성전자와는 79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최근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삼성전자 ‘보르도’ TV는 제일정공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보르도’ TV에 적용된 웰드리스 스팀몰드 기술은 삼성전자와 제일정공이 2004년 2월부터 공동 개발에 착수, 그해 12월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웰드리스 스팀몰드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은 2004년 TV 외관을 납품받던 일본 업체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기 때문. 제조 공정을 파악하기 위해 일본 업체를 방문했는데, 정작 이 업체는 기술 유출을 꺼린 탓인지 TV 외관을 찍어내는 금형틀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삼성전자는 TV 외관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인 금형기술의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제일정공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공동 개발을 시작했다.
먼저 두 회사는 일본 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스팀몰드 원천 기술을 들여왔다. 이후 삼성전자 금형기술팀 직원 2명이 제일공정 공장에 상주하며 협력에 나섰지만 일본에서 들여온 중소형 디지털TV용 금형틀 기술을 대형 TV로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2004년 12월 스팀몰드 자체 제작 능력을 확보했고, ‘보르도’ TV의 대박으로 이어졌다.
쉘라인이나 제일정공의 사례는 협력업체와의 상생이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상생이 결국 승승(勝勝)을 낳은 셈이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협력업체 밀고 끌며 ‘윈-윈 경영’ |
기술과 자금 지원 파트너십 구축 … “부품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 상생이 확실한 투자 |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고기 잡는 법’ 전수, 홀로서기 성공 |
삼성전자가 산파 역할 무궁화전자 … 흑자전환 후 자체 브랜드 스팀청소기 시장에서 호평 |
199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공장이 하나 들어서고 있었다. 1780평 규모의 작은 공장인데도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애인 전용’ 공장을 지으라고 지시했고, 국내 최초의 장애인 전용 기업인 무궁화전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장애인 고용 2%를 맞추라는 정부의 요구가 커지자 삼성전자는 아예 장애인 전용 기업을 만드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최고’로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삼성전자가 234억원을 출연해 만들어진 무궁화전자는 삼성전자의 자회사도 협력업체도 아니다. 장애인들만의 독립기업이다. 자생력이 강한 무궁화를 회사 이름으로 삼고 정원에 무궁화를 심은 이유도 그래서다. 그 후 10년, 이 회사는 청소기 5만 대를 수출하는 흑자기업으로 성장했다.
올 초에는 자체 브랜드 스팀청소기를 개발,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곳 직원의 75%(126명)는 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들이 근무하는 이곳은 세상 어느 공장보다 편하게 지어졌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인들을 데려와 체험토록 해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완공됐다. 경영 지원을 맡고 있는 김기경 차장은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 사업장 어느 곳이라도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다”며 “비 오는 날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기숙사고 식당이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 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
삼성전자의 역할은 그것뿐이었다. 장애인 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고 생산도 마케팅도 그들 스스로 하도록 했다. 초기에 인력을 파견해 준비를 도왔지만, 본격적으로 가동된 뒤에는 모두 철수했다. 이곳 장애인 근로자 수만큼 면제받는 부담금(직원의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지 않는 기업에 부과하는 벌금. 직원 1명당 50만원 정도)을 전액 복지재단을 통해 무궁화전자에 지원한 것이 전부였다.
무궁화전자는 95년부터 유·무선전화기, 정수기 등을 생산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일본 장애인 회사인 혼다태양과 교환근무를 시작했다. 일본 닛산과 제휴해 장애인 운전보조장치인 핸드 컨트롤러 장착사업도 했다.
그러나 근무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장애인의 생산력은 일반인에 비해 떨어지게 마련이다. 불량률도 문제였다. 그런데도 시설과 인력에 대한 고정비용은 더 들 수밖에 없다. 김 차장은 “일반인에 비해 생산성은 25% 떨어지는데 비용은 25%가 더 들어 결국 우리는 절반의 경쟁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97년 경제위기의 파고는 높기만 했다. 청소기 등 소형가전을 단순조립해 납품하는 것만으로는 만성적자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나마 가동률도 50%를 넘지 못해 일손을 놓고 지내는 직원도 상당수였다.
삼성전자도 고심했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지원할 방법은 없었다. 재단을 통해 기부 형태로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근본적으로 자생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2002년 부임한 김동경 공장장이 해결사로 나섰다. 그가 찾아낸 답은 ‘디지털’이었다. 장애인이라고 편리한 근무환경만 제공하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고기 잡는 법’ 전수, 홀로서기 성공 |
삼성전자가 산파 역할 무궁화전자 … 흑자전환 후 자체 브랜드 스팀청소기 시장에서 호평 |
그들에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첨단분야에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TV, 휴대전화 등의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을 조립하는 표면실장라인(SMP)을 증설했다. 이를 위해 지하 1층 작업장에 라인도 신설했다. 또 놀고 있는 조립라인에 삼성전자의 디지털TV 조립라인도 새로 설치했다. 기존에 생산하던 청소기, 유·무선전화기, 정수기 등보다 훨씬 시장성이 있는 디지털 가전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아래층에서 작업 물량을 확보하면서 후공정을 하는 위층의 라인도 활기를 띠게 됐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주문이 쏟아졌다. 어느새 공장 가동률은 100%가 됐고 핸디형 청소기 등 수출 물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자립경영의 기틀을 잡았다. 그리고 2003년 무궁화전자는 6억7000만원의 순이익을 내며 설립 9년 만에 드디어 흑자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난 3년간 매출액은 총 350억원이 넘고 흑자 규모는 15억원 정도다.
김동경 공장장은 “당시 무궁화전자의 사업 혁신을 통한 흑자 전환은 우리 직원들에게는 하나의 신화였다”며 “그것은 가전회사였던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수종해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에 견줄 만큼이나 기록적인 사건이었다”고 자평했다. 자신감을 얻은 직원들은 더욱 욕심을 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브랜드를 만들자’는 꿈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무궁화전자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삼성’ 브랜드로 팔리고 있었다. 이런 OEM(주문자상표 부착)방식이 아닌 자체 브랜드를 가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은 머리를 맞댔다.
고심 끝에 찾아낸 아이템은 스팀청소기.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에 기대지 않으면서 그동안 쌓아온 청소기 개발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판단했다. 2월 출시한 ‘바로바로 스팀청소기’가 그것이다.
독자 제품 개발에 성공하고도 정작 직원들은 ‘이것이 잘 팔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스팀청소기 시장은 이미 몇몇 유명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불안감은 더했다. 더구나 이렇다 할 마케팅 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공장장이 직원들을 독려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우리 힘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가 공들이고 노력한 만큼 제값을 받을 것이다.”
무궁화전자는 스팀청소기 분야에서 후발주자면서도 ‘바로바로’를 기존 유명 브랜드보다 비싼 값에 출시했다. 제품이 더 뛰어나다는 자신감에서다.
책임감, 협동심은 비장애인보다 뛰어나
그러나 막상 대형 할인점에 제품을 들여놓고는 모두가 마음을 졸였다. 이마트 매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간 한 장애인 직원은 “‘사람들이 값이 더 비싼 이름 없는 제품을 사갈까’ 하는 마음에 하루 종일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악조건에도 제품은 반응이 썩 좋았다. 써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현재 월 판매대수 1500대를 돌파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김 공장장은 “장애인 근로자 중에는 일반인보다 뛰어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제품 디자인을 알아서 스케치해 제안하는 열정을 보이는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의 가장 큰 장점을 맡은 일은 어떻게든 끝마치는 ‘책임감’과 ‘협력을 통한 경쟁’으로 꼽았다.
무궁화전자 직원들은 여느 중소업체 직원 못지않는 급여를 받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들이 받는 급여는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부가가치의 대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그들에게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아준 적이 없다”며 “단지 우리가 고기를 잡았던 방법을 알려주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무궁화전자는 지금 대어를 낚기 위해 힘껏 그물을 던졌다. 만선을 할지는 역시 그들의 몫이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치열한 경쟁, 달콤한 보상 ‘최고 CEO’ 배출 |
일찌감치 유능한 인재 선발과 양성 … 성과 최우선 평가, 전체 1%만 임원으로 발탁 |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스테니스호’는 그 크기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 배는 바닥에서 맨 위까지 총 24층이고, 매끼마다 5000여 명의 승무원이 식사를 한다. 최신 전투기 86대가 탑재되어 있고, 좌우 활주로를 통해 분당 최고 12대가 이륙할 수 있다. 이 항공모함이 항해에 나설 때는 전후좌우에 많은 배가 동행한다. 각각 2~3척씩의 잠수함, 순양함, 구축함, 보급함과 1~2척의 프리킷함 등 모두 10여 척이 함대를 편성해 움직인다.
삼성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함대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계열사들이 배치돼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삼성 함대’를 지휘하는 수뇌부를 ‘삼각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함대 사령관인 이건희 회장, 각 함정의 함장인 계열사 사장, 그리고 사령관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사령관과 일선 함정을 연결하는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이 삼성 함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삼각편대가 ‘견제와 균형의 마술’을 발휘하면서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견제와 균형 통해 오너십 영향력 극대화
이런 분석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견제와 균형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체계화한 시스템 덕분에 삼성이 거대한 함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 그리고 계열사 사장들이 서로 견제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너십을 기반으로 하는 회장을 정점으로 해서 계열사 사장과 전략기획실 참모가 서로 견제하며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분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모든 분석에서 계열사 사장과 전략기획실 참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 오너십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오너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삼성 함대의 항공모함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영책임자는 윤종용 부회장이다. 그는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지만 장기 전략이나 대규모 투자 등은 이학수 부회장이 실장을 맡고 있는 전략기획실의 지원을 받아 결정한다.
삼성전자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모든 부문에서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회사 전체를 총괄하는 부회장 밑에 각 사업을 이끄는 5명의 총괄사장과 16개 GBM(Global Business Management) 책임자들이 이끌고 있다. GBM은 사실상 독립회사처럼 운영된다. 삼성전자에선 물품의 생산과 판매는 물론, 사람을 뽑고 해외지사를 설치하는 것까지 총괄사장 책임 아래 진행된다.
사업부 간 거래도 외부 회사와 거래할 때처럼 납품 물량과 납기, 가격 등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합의가 이뤄지면 전표를 떼고 결제도 한다. GBM장은 신제품 기획에서 생산과 판매, 재무, 인사 등 자기 사업 부문의 모든 업무를 관장한다. 성과 보상도 사업부별로 다르다. 매년 말 이뤄지는 평가와 보상은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A는 최고의 보상을 받지만 C는 전혀 보상이 없다. 생산성장려금(PI)의 경우 평가를 잘 받으면 최고 월 기본급의 300%까지 지급받는다.
삼성전자가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경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유능한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은 어떤 기업보다도 인재 선발과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이를 통해 엄선된 최고경영자들이 삼성 함대의 효율적 항해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에게 인재 선발과 양성은 이제 하나의 전쟁이 됐다. 기업이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재 확보다. 삼성의 눈부신 성장 및 발전도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에 기반을 둔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치열한 경쟁, 달콤한 보상 ‘최고 CEO’ 배출 |
일찌감치 유능한 인재 선발과 양성 … 성과 최우선 평가, 전체 1%만 임원으로 발탁 |
삼성 인재시스템의 핵심은 경쟁과 보상이다. 이 두 단어는 ‘삼성식 경영’의 두 축을 이루며 삼성의 사장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한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정상적 승진 연한을 다 채웠다면 50대나 돼야 임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삼성 임원들의 평균연령은 47.5세에 불과하고, 40대 임원의 비율이 68%에 이른다. 삼성의 전·현직 사장 100명을 분석한 결과 임원이 된 나이는 40~42세이고, 51~53세에 사장이 됐다.
사장 되려면 임원끼리 또 다른 경쟁서 이겨야
이것은 삼성에서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려면 정상적 승진을 뛰어넘는 발탁 승진이 필요함을 뜻한다. 삼성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1% 정도다. 나머지 99%는 탈락한다. 삼성전자에서도 전체 직원 7만여 명 가운데 임원은 700명 정도다. 결국 임원이 되려면 ‘1%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관문 통과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발탁 승진은 경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삼성은 2005년 1월 임원인사에서 3명을 ‘대발탁’했다. 대발탁은 기본 승진 연한을 2년 이상 단축시키는 것이다. 삼성은 해마다 탁월한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주는데, 2005년에도 10명에게 상을 줬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000만원과 특별승진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사장이 되려면 1% 관문을 통과한 임원들끼리 벌이는 또 다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삼성전자에는 16개의 GBM이 있다. 총괄사장이 5명이기 때문에 총괄사장이 되려면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평가의 핵심 기준은 성과다. 성과가 없으면 승진은 불가능하다. GBM 책임자들이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라붙는 것이나 매출과 수익을 늘리기 위해 직접 마케팅과 원가절감 전략을 지휘하는 것도 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경쟁의 결과는 달콤하다. ‘삼성전자처럼 월급을 받았으면…’, 2005년 4월 국내 한 신문에 실린 삼성전자의 평균급여와 관련된 기사 제목이다. 2004년 삼성전자의 경영실적이 좋아 생산성 격려금과 초과이익배당금이 많이 지급되면서 직원들의 평균급여는 4년 전의 거의 배에 이르는 7130만원이었다.
그러나 ‘월간 CEO’의 기사를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당시 삼성전자 등기이사의 1인당 평균 연봉은 89억7000만원이었기 때문. 국내 100대 상장기업 등기이사의 평균연봉(4억4140만원)이 직원 평균연봉(4420만원)의 9.9배 수준이지만, 삼성전자는 125.8배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받는 보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스톡옵션은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들을 수백억 원대의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성과 우수자 교육도 포상의 한 방법
삼성은 ‘임원으로 승진해 첫 월급을 받으면 한동안 정신이 멍한 상태’가 될 정도로 임원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지급한다. 이런 보상은 임원에게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인정돼 상을 받거나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으면 깜짝 놀랄 만큼의 포상이 주어진다. 특히 삼성에서는 교육도 포상의 한 방법이다. 교육은 성과부진자가 아니라 성과우수자의 몫이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시 승진과 보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승진과 교육 등 삼성의 보상은 철저히 후보상 성격이 강하다. 가령 삼성은 해마다 200~300명을 외국에 연수시키는 해외지역전문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수활동비로 기본연봉 외에 1인당 1년에 1억원 안팎의 지원을 하는 이 제도의 수혜자들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직원들이다. 삼성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인 삼성MBA제도나 삼성전자공과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과와 보상의 인재양성 시스템, 이를 뒷받침하는 엄격한 평가와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삼성의 오늘을 만들어놓았고 삼성 임직원에 대한 재계의 평가를 바꿔놓았다. 삼성을 이끌고 있는 삼성의 CEO들은 모두 이 같은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성과물이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치열한 경쟁, 달콤한 보상 ‘최고 CEO’ 배출 |
일찌감치 유능한 인재 선발과 양성 … 성과 최우선 평가, 전체 1%만 임원으로 발탁 |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끈기와 의리’… 러시아가 홀딱 반했다 |
1998년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철수 안 해 … ‘시장의 믿음’ 확고, 매출과 점유율 1위 질주 |
러시아 전자유통업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러시아의 삼성맨들은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온몸이 오싹해진다고 말한다. 영원히 잊지 못할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1998년 8월17일 러시아 정부는 “모든 외채 지불을 90일간 유예한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해 초부터 국제금융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가 경고하던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가 현실화된 것. 그때까지 러시아는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처음 맞는 호황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이 거품이었던 셈이다.
잘나가던 러시아 시장이 핵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금융거래가 마비되고 대형 상점들은 영업을 중단했다. 러시아에 진출해 한창 사업을 확장하던 외국 기업들은 초유의 사태에 당황했다. 물건은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의 사업 관행에 따라 현지 딜러들에게 외상으로 준 물건 대금을 받을 길이 없었다.
“더 손해 보기 전에 러시아를 떠나자.” 소니 등 외국 대기업들은 앞다퉈 짐을 챙겼다. 러시아를 떠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 끝까지 남은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는 사회주의 붕괴로 모처럼 찾은 거대시장이었다. 일본과 미국, 유럽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는 각오로 들어온 곳이어서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더 물러설 데도 없었다.
“어떤 위기에도 상대 믿고 끝까지 함께” 각인
당시 러시아 최대의 컴퓨터 판매업체인 비스트(Vist)사는 삼성전자로부터 모니터를 공급받는 최대 거래처였다. 외상으로 가져간 물량은 600만 달러어치. “돈을 갚아라.” “조금만 기다려달라.” 지루한 협상이 시작됐다. 이전에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담보 같은 것도 없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비스트가 갖고 있던 6층짜리 사옥을 대신 받기로 했다. 러시아는 지독한 관료주의의 나라다. 소유권 이전 절차만 1년이 걸린 끝에 2000년 무사히 건물을 인수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원했던 것은 이 건물이 아니었다. 못 받은 대금을 돌려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5년 안에 외상대금을 갚으면 되돌려주겠다. 그동안에는 이 건물에 손대지 않겠다.” 삼성전자는 비스트가 그대로 이 건물을 사무실로 쓰도록 했고 건물 관리도 맡겼다. 임대 수입도 챙기지 않았다.
다행히 러시아 경제는 2000년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고유가 덕분이었다. 모스크바의 부동산값은 몇 배가 올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건물을 팔지 않고 비스트가 돈을 갚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이 없다. 약속을 지킨다.”
그동안 사옥을 되찾기 위해 눈물겨운 재기 노력을 해온 비스트는 지난해 약속했던 기간이 끝나기 직전 극적으로 모든 돈을 갚고 건물을 찾아갔다. 두 회사 대표는 밤늦도록 말없이 보드카를 마셨다. 5년 전의 약속은 결국 이뤄진 것이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끈기와 의리’… 러시아가 홀딱 반했다 |
1998년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철수 안 해 … ‘시장의 믿음’ 확고, 매출과 점유율 1위 질주 |
비스트는 그동안 가전유통 사업에서 거의 철수해 이제는 삼성전자와 거래 관계가 별로 없는 사이. 하지만 러시아의 전자유통업체들은 다 안다. 삼성전자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상대를 믿고 끝까지 함께한다는 사실을. 당시 떠났던 일본 전자업체들은 러시아 경기가 좋아지자 슬그머니 되돌아왔다. 하지만 모라토리엄 위기 당시 현지 딜러들과 고락을 같이했던 삼성전자는 이미 매출과 점유율에서 1위를 굳힌 뒤였다.
최초 상기도(TOM, Top of mind) 조사라는 것이 있다. 소비자에게 특정 분야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하나만 지목해보라는 질문을 하는 조사 방법이다. 지난해 TOM 조사에서 러시아 소비자 100명 중 28명이 전자제품 브랜드 하면 가장 먼저 삼성을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의 TOM 인덱스는 27.8%로, 2위의 보시(11.2%)와 3위인 소니, 파나소닉(9.9%)을 크게 따돌렸다. 삼성은 브랜드 인지도(BAS)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사람 10명 중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은 겨우 1명꼴이다.
시장 흐름 읽고 과감한 투자도 한몫
러시아에서 삼성전자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유는 90년대 초 개방 직후 어려운 시기에 가장 먼저 들어와 위기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시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사회에 공헌하고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말을 유난히 자주 한다.
세계 최정상의 러시아 클래식 발레를 대표하는 볼쇼이 극장. 지금 대대적인 수리가 한창이다. 볼쇼이의 공식 스폰서는 삼성전자다. 벌써 15년째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스폰서가 되겠다고 하지만 극장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리의 영원한 스폰서는 삼성전자뿐이라는 것.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며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하루아침에 끊어지면서 극장은 200여 년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를 겪었다. 이때 선뜻 지원에 나선 것이 삼성전자였다.
물론 삼성이 끈기와 의리만 앞세워 1등이 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인 LG전자는 러시아에서도 전 품목에서 삼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TV와 모니터에서는 삼성이 앞서고 에어컨과 세탁기 등 ‘백색가전’에서는 LG가 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 하지만 전체 매출에서 LG는 삼성에 밀린다. 휴대전화 판매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삼성은 1999년부터 러시아 시장의 주력 상품을 TV에서 휴대전화로 바꿨다. 당시 러시아 시장의 수준을 봐서 시기상조라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휴대전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발 앞서 휴대전화에 마케팅을 집중한 선택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시장의 흐름을 미리 읽고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 계속해서 적중하면서 삼성전자는 러시아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
[커버스토리|한국 대표기업 밀착연구 ④ 삼성전자] |
‘끈기와 의리’… 러시아가 홀딱 반했다 |
1998년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철수 안 해 … ‘시장의 믿음’ 확고, 매출과 점유율 1위 질주 |
|
첫댓글 이 글들을 읽고 있으면.. 리더도 직원들도 대단하다란 생각이 들어요..
어찌보면 똑 같은 학생들을 입사시켜서 이정도 결과물을 뽑아내게 만드는 삼성의 최고 경영층과 시스템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기사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