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믿으려면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세례(침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행2:38)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 부활에
연합이 되어 새 생명으로 사는 것(롬6:3-4)이기 때문에 죄 사함과 동시에
의로움과 영생과 거룩을 한꺼번에 얻게 되는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표지는 말씀과 성례전 곧 세례(침례)와 성찬인 겁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을 안고 죽어서 이 땅에 태어난 땅의 형상이었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 하늘에 앉힌 자(엡2:6)가 되어
하늘의 형상을 입어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었다가 다시 산 자 같이 자신을 계산하고 이제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피동의 삶을 배우는 것이 참 경건이라고 피력하는 겁니다.
만일 주의 부활과 연합이 되지 않으면 세례는 그저 종교적 의식일 뿐이며 중생도 없이
죄 가운데 그 자리에 놓여 있으므로 마귀의 권세인 사망아래에서 신음하게 될 됩니다.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시니 사망에서 이기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으로 그야말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찬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15:50)
우리가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한 세례로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참예(메토코이)해야 하는 이유는 하늘의 형상을 입어야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중생 곧 거듭남이 없으면 땅의 형체뿐입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사는 부활이 없는데 중생이라는 말이 성립이 되겠습니까?
하늘의 형상 자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3:3,5)
땅의 형체 곧 혈과 육에는 성령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이 임하실 것라고 말하는 겁니다.
성령의 내주에 의해 평강과 안식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혈과 육은 아담의 혈통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은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멜기세덱을 만난 사람들로서(창14장, 시110편) 그 속에 성령의 강이 흐르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나팔사건이 일어나는 부활의 결과를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1-53)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가 됩니다.
죽은 자는 심판의 부활로 둘째 사망 곧 불 못에 들어갑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산 자는 생명의 부활(요5:29)로 주 앞에 서게 됩니다.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로서(계20:15) 마지막 나팔에 흰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마지막 나팔은 계20장의 마지막 부분과 같은 사건인데 그 전에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유황불 못에 먼저 들어가고(계19:20)
그 다음엔 마귀가 들어갑니다.(계20:10)
마지막으로 그 쪽에서 가장 센 사망과 음부가 불 못으로 들어갑니다(계20:14)
이 사망은 존재이기 때문에 불 못이 아니고는 처리가 안 되는 겁니다.
따라서 세상에 이 사망이 존재하는 한 주의 부활과 생명과 연합이
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 사망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자들은 사망을 향해 담대하게 외칩니다.
사망은 죄를 쏘아대는데 사망의 독이 들어있는 화살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사망은 고통을 느끼고 육신의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바울의 로마서 7장과 같은 죄를 가진 인간심리학의 변증처럼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게 가지 않으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구원하랴 하고 그 속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사망의 소환을
받아 항상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롬7:24,25) 이겨도 자신이 지고 져도 자신이 지고
마는 사망의 몸에서 해방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 부활과 생명에 연합이 되는 길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어 영을 좇아
행하므로 율법의 의를 이루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롬8: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우리가 감사할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부활과 생명으로 말미암아 이김을 계속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기는데 세상을 이김은 우리의 믿음(요일5:4)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이는 사망보다 크신 부활과 생명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롬7장과 롬8장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사망에게 지느냐 이기느냐의 싸움입니다.
롬7장은 언제나 마음뿐이고 결국은 지고 맙니다.
그러나 롬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이제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라 항상 넘치도록(충만)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항상 이김을 주십니다. 마음의 공허가 있으면 잡된 것이 들어가고 맙니다.
부활과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수고로 말미암아
항상 주의 영과 생명이 넘치게 하므로 사망을 덮어 이겨버립니다.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부활 장래 천국, 장차 휴거 부활 등등이면
지금의 사망을 어떻게 이겨내고 할렐루야를 크게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고전15장은 부활의 장이며 복음의 장입니다.
예수의 역사적인 죽으심과 다시 사심(1-11절)과 현재 아담 안에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부활한 것 곧 알갱이가
다시 살아서 하늘의 형체로 진화되어 가는 실체적 사실(12-49절)과
장차 형체가 썩지 않고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부활(50-54절)에
대해서 깊이 그리고 높이 생각해 봐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야만 현재적인 승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부활과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입니다.
생명과 부활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