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소감 / 수필문학 평론】
건강한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모든 ‘부부의 꿈’
― 九旬 원로 학자 지교헌 교수의 수필 「부부(夫婦)에 대하여」를 읽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한다.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라는 찬송가를 부른다. 태산을 넘고 넘어가면 또 험곡이 나타난다. ‘빛’이 나타나길 바라는 소망과 기원이 담겨있다.
인간이 어찌 보면 나약한 존재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곱게 늙어간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이 먹는 것을 ‘익어가는 것’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한 대중가요도 있다. 오늘은 수필 문학을 통해 그런 분을 만난다.
지교헌(池敎憲) 박사.
나는 일찍이 수필 문학 전문지에서 그 어른의 함자를 발견하고 성명에서 풍기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매한 인품’에 매료됐다. 작품을 교류하기 전에 이미 함자(敎자, 憲자)에서 그 어른 특유의 인품을 읽었다면 ‘전생의 인연’으로 봐야 한다.
유력 언론사 ‘인물 정보’를 검색하면 이렇게 노출된 이력이 나온다. 더 많은 자료는 ‘유료’이니 우선 ‘무료’로 공개된 인물 정보만 참고하기로 한다.
▲ 지교헌 수필가
◇ 지교헌(池敎憲), CHI KYO HEON - 출생 : 1933년(양력), 닭띠, 남 - 소속[前]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직업 : 교육자(교수), 철학 박사
※ 출처 : 조선일보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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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생이니까 나의 장형 연세와 같다. 장형은 늘 아버지처럼 어렵다. 매사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어른이다.
원로 학자를 본격적으로 뵙게 된 것은 내가 특별회원으로 참여하는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 창작 글 마당이었다. 카페 공간에서 수많은 수필 작품을 교류했다.
작품을 읽고 댓글란에 소감을 적고, 어떤 글은 문학지에 싣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원로 학자 문인에 대한 존경심이 싹트고, 고매한 인품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또 원로 학자의 인품을 탐구할 만한 수필 작품이 올라왔다.
「부부(夫婦)에 대하여」라는 평범한 제목의 수필이다.
제목은 평범해 보이지만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철학이 담긴 중수필(重隨筆)이다.
동양 철학을 전공한 노학자의 옥고답게 이른바 꼿꼿한 선비 스타일의 큰기침이 살짝 묻어나지만, 그런 독자의 경직된 생각을 일거에 바꾸어야 하는 장면이 곧바로 나온다.
바로 노환으로 병석에 계신 사모님의 자세한 근황이다.
『나는 오늘 며칠 만에 경로당에 들러서 잡담도 나누고 간식도 하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돌아가면 내자가 홀로 있게 되고 홀로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자는 수년 전에 대수술을 받고 최근엔 실내에서 졸도하여 골절상을 입기도 하고 음식이라고는 정상인의 반의반도 먹지 못하고 영양제 주사로 겨우 견디는 형편에 설상가상으로 매우 좋지 않은 다른 증상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원로 학자는 ‘내자’로 표현되는 ‘사모님의 근황’을 알리면서 경로당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귀가하는 이유를 자상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內子’란 예스러운 단어가 일반 독자의 눈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남 앞에서 자기 아내를 일컫는 말’인데, 호칭 하나에서부터 옛 선비의 겸손이 묻어난다.
원로 학자의 연세가 구순(九旬)을 훌쩍 넘겼다. 구순 노인이 병석의 ‘내자’를 돌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 수필은 요 한 대목만으로도 이미 ‘성공’이구나> 느낀다.
아내가 몸이 아파 누워있다면 남편의 심정이 어떠한가. 필자도 경험한 바 있다. 아내가 힘든 병고를 치르고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직접 겪었다.
우환이 계속되는 집안에서는 환자는 물론 가족에 대한 연민과 착잡한 심경을 이루 다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다.
원로 학자는 수필에서 ‘특별한 장면’을 도입한다. 부러워 보이는, 건강하고 다정한 부부 모습이다.
『내가 경로당 문을 나서자마자 언제나 친절한 K 선생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산책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의 운동장 한구석을 가리키며 맨발로 걷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신고 있던 끌 신을 벗고 맨발로 모래밭을 걷기 시작하고 나는 구두를 신은 채 그의 옆을 따라가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다가 둘이서 발걸음을 되돌려 오는데 그의 영부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발을 보니 맨발로 걷기 위한 모습이었다. 두 부부는 조용한 학교의 운동장을 이용하여 맨발로 모래밭 걷기를 하러 나온 것이었다.』
요즘 도시 근교 산책길이나 등산길에서는 맨발 걷기 운동하는 시민들을 자주 목격한다. 맨발 걷기 운동이 건강 장수 비결이라는 어느 언론 보도 이후 선풍적인 건강 운동요법이 됐다.
하지만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구순 노학자는 꿈도 꾸지 못할 모습이다. 더구나 병석의 ‘내자’를 생각하면 그런 한가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풍경일 뿐이다. 여기서 노학자의 간단치 않은 심경이 드러난다.
『나는 K 선생에게 얼른 작별의 인사를 던지고 슈퍼마켓에 들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K 선생 부부가 다정히 짝을 지어 모래밭을 걷는 광경을 상상하게 되었다.』
‘K 선생 부부가 다정히 짝을 지어 모래밭을 걷는 장면을 상상’하는 노학자. 독자는 여기서 남이 아닌 ‘우리 아버지’ 요,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느낀다. 장면을 상상하면 할수록 더 큰 ‘연민의 정’이 싹튼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수필의 핵심적인 주제를 담은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벌써 오래전부터 이웃에 살면서 느끼기로는 그들 부부는 항상 화목하고 건강하게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건강한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모든 부부의 꿈이다. ‘그들 부부는 항상 화목하고 건강하게 생활한다’라는 표현은 원로 작가의 솔직한 시선이다. 누가 봐도 부러운 모습이다.
원로 학자에게도 그런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남의 모습이 아닌 과거 내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원로 학자는 남의 행복한 부부를 보면서 내 인생을 반추한다. 남의 다정한 부부를 통해 내 삶을 성찰하고, 과거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한다. 삶의 경건한 모습에서 특유의 학자적 인품이 묻어난다.
『나는 오늘 K 선생이 영부인과 함께 건강을 위하여 맨발로 모래를 밟는 모습을 그려보며 참으로 보기도 좋고 당연한 부부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K 선생이 젊은 시절에 남편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얼마나 진심 갈력하였는지, 그리고 그 영부인이 내조를 위하여 얼마나 희생적으로 인내하고 봉사하였는지 짐작하고 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행하면서 사회의 귀감이 되고 성공한 가정을 이룩하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사회에 봉사하였으며 일심동체로 아름다운 생애를 영위하고 나아가서는 ‘상대여빈’(相對如賓)이란 예절과 당연한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그들의 가정적 사회적 인간적 생활철학을 존중하며 존경하여 마지않는다.』
「…나는 K 선생이 젊은 시절에 남편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얼마나 진심 갈력하였는지, 그리고 그 영부인이 내조를 위하여 얼마나 희생적으로 인내하고 봉사하였는지 짐작하고 있다.」라는 문장과,
「…일심동체로 아름다운 생애를 영위하고 나아가서는 ‘상대여빈’(相對如賓 : 상대편을 손님처럼 극진히 대함)이란 예절과 당연한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그들의 가정적 사회적 인간적 생활철학을 존중하며 존경하여 마지않는다.」라는 문장에서 독자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한번 읽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가도 좋은 문장이지만, 순간적으로 ‘일단정지’ 표지판이 눈앞에 우뚝 나타난다. 독자의 시선을 잠시 머물게 한다. 희생, 인내, 봉사라는 부인의 내조와 상대여빈이란 예절과 윤리라는 단어가 복합적으로 교차하여 밑줄을 긋는다.
한 편의 수필을 통하여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 임을 깨닫는다. 남의 건강하고 다정한 ‘부부’의 부러운 모습을 보면서 그 “생활철학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겸허한 인품에 경의를 표한다. ■
2023. 6. 2.
윤승원 소감 記
♧ ♧ ♧
첫댓글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高林 교수님 수필 옥고 댓글 란에 적으려던 소감이 길어져
별도 공간에 독후記 형식으로 졸고 소감을 올리게 됐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여 결례되는 표현은 없는지 걱정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소감을 올립니다.(필자)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高林 지교헌(필명 청계산, 철학박사, 수필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6.2. 21:29
변변치 못한 한 편의 수필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읽고 해석하고 평가한 윤 선생님의 글을 대하니 나도 모르게 새삼스러운 깨우침을 얻는 듯합니다.
내가 소개한 K 선생부부는 우리의 주변에서 보기 드문 전형적인 부부이며 특히 K 선생은 정년 퇴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봉사활동과 지역의 언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애국애족 정신과 시민으로 실천해야만 할 참여 정신과 봉사 정신을 실천하여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인물입니다.
나는 K 선생의 개인적 인격을 초월한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면서 간단한 에세이를 쓰게 되었고 그 속에서 진정한 부부의 윤리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장천 윤승원 선생님의 독후감을 통하여 바람직한 부부상에 대하여 더욱 깊은 성찰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윤리는 참다운 인간의 교양과 윤리와 가치관에 기초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윤 선생님의 독후감에 감사한 말씀을 올립니다. (청계산에서 高林 지교헌)
▲ 답글 / 윤승원
조심스럽게 올린 졸고 소감인데, 오히려 따뜻한 격려의 말씀으로 푸근히 감싸주시니 어쩌면 그렇게 저의 장형이 생시에 동생들에게 베풀어주신 크고 넓은 사랑과 같습니다.
‘琴瑟 좋은 부부’에게는 기본 조건이 따릅니다. 교수님 수필 옥고에 등장하는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분명 사랑과 정으로 기본 조건을 서로 맞춰가는 분들이겠지요.
예부터 ‘부부 십계명’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쉬운 것 같아도 대단히 어려운 관계가 부부지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문제, 경제적인 문제, 성격 문제, 자녀 문제 등등 부부간의 사랑이 원만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충족이 돼야 할 조건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 유명한 김소운의 명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처럼 모든 것을 누리는 풍족한 생활보다 가난했던 날의 부부 사랑이 더 따뜻한 경우도 많습니다. ‘행복한 부부의 사례’를 들자면 무궁무진합니다만, 이 시대 ‘보기 좋은 부부지간’, ‘바람직한 부부간의 윤리’를 짚어주시고 성찰하게 해 주신 高林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윤승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