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2장은 참 사도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다는 간증을 합니다. 환상이며 계시입니다(1절)
그가 비록 생전의 주님을 따르지 않았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빈 무덤을 보지
못하고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시는 그 현장에도 없었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은 분명합니다. 거기다가 삼층천 곧 하늘의 하늘들의 하늘에 이끌려갔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도와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요건을 갖추었습니다(11절)
따라서 바울서신의 지성소라 일컫는 에베소서를 기록하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구원을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완성하셨는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립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삼층천에 이끌려 올라간 것처럼 아담 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주께 붙잡혀 주와 함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힌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그 비밀을 알므로 사도라고 칭함에 조금도 하자가 없듯이
자신이 하나님의 종 곧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을 할라치면 에베소서의 비밀을
파악하고 숙지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죠.
바울과 같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하나가 되고 십자가로 화목하게 되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죠(엡3:18)
나름 좋은 교회를 목회하고 지금도 유튜브나 방송국에서 교회와 신앙에 대해
말을 이어가는 목사가 교회가 예배에 집중하는 기초가 확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백번 맞고 옳은 말입니다. 근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한다는 말을 하고 맙니다.
어떻게 하면 신령하고 진정한 예배입니까? 예배에 은혜를 받아야 하고 감격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진리의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그 방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국교회의 대표라면 한국교회의 예배는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사람들에 비해 신앙이 열세에 놓이고
거듭났다는 사람들에게 위축이 되고 믿음의 결과를 안다고 하는 이단들에게 밀립니다.
만일 새 언약의 일꾼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가는 회개와 세례를
전파하여 성령 안에 잠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을 바라보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리 교회에서
아멘 할렐루야 외치지만 더부룩한 신경성기독교 신자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그에게 가시가 있고 약점이 있으나 그건 삼층천을 본 것에 비해
대수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떠나면 좋고 아니면 그대로도 좋다 이겁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지만 자신을 쳐서 자만하지 않게 하는 장치인
것으로 수용합니다. 인간의 성정은 아담 이후에 어떤 인간도 우열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임하신 그리스도께서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원(고전1:30)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겁니다.
그래서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어떻게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기를
바라는 사도의 정신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그들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그들을 원한다고 말합니다(14절) 그래서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각별하게 조심했습니다(13절) 그건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긴 하지만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젖만 먹는 어린아이기 때문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20절)이 그대로
있어 이런 모습으로 서로 대면할까 심히 두려워하는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서 보고 그들에게 실망하며 체면이 말이 아닐까 두려워하고
또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죄로 인해 슬퍼할까 두려워했습니다(21절)
이와 같은 일꾼이 바로 참 사도입니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바울이
삼층천에 이끌려갔듯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이끌려 간 적이 있는가?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사로잡혀 하늘에 앉힌 자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영적인 도구들을 따라 아버지께 나아가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짓고 있는가?(엡2:22)
그리고 자신의 명성이나 재물에 관심이 없이 자신이야 만물의 찌꺼기가 되던
천사들의 구경거리가 되던 아랑 곳 하지 않는 믿음의 배짱이 그 기준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찬양을!